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뭔가

히11:6-12

오늘 본문에는 노아, 아브라함부부가 나옵니다. 이들을 통해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지금 자신의 신앙생활에 좀더 활력을 찾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그런 인생을 사는데 오늘 메시지가 도움이 될 수 있기 바랍니다.

6절을 보면,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어주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을 기뻐하신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둡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 재물이나 봉사보다 먼저 하나님을 믿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최고로 믿어주고 하나님 말씀이라면 무조건 순종하고 그런 사람이 상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보상해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보상은 죄사함, 영생, 천국, 하나님 자녀의 권세, 건강과 재물 모두 다 포함됩니다.

하나님 잘 믿고 잘 섬기면 인생이 잘되지 손해 날 게 없습니다. 당대의 부와 성공만 생각하면 안 그런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자녀 후손까지 더 나가 사후의 천국까지 놓고 보면, 하나님 잘 섬기는 게 수지 맞는 길입니다. 예수 믿고 교회 다녀서 손해 볼 게 없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 잘하고 자녀들도 교회 떠나지 말고 하나님 잘 섬겨 복 받도록 힘쓰기 바랍니다. 자녀들에게 믿음이 들어가는가도 관심을 가지고 살펴봐야 합니다.

그 다음 7절에 노아가 나옵니다.  노아는 믿음으로 수 십년 후에 일어날 홍수에 대한 경고를 듣고 방주를 만드는 일에 온 가족이 매달렸습니다(창6,7장). 그 결과 홍수로 사람들이 죽음을 당할 때 가족들을 살렸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덕으로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들의 후계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노아를 생각하면 신앙생활에서 시대와 세상을 탓 할 일은 아닙니다. 노아 시대는 죄악이 세상에 두루퍼져 있고 사람들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하여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것을 한탄하실 정도였습니다. 그런 중에도 노아는 의롭고 흠 없는 사람으로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동행했다는 표현은 말을 잘 들었다는 뜻입니다.

믿음과 관련해 노아가 칭찬받은 것은 방주를 만든 것입니다. 수십 년은 걸렸을 것입니다. 쓸데 없는 짓을 한다고 미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을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돈 번다고 정신 없는데 노아는 모든 재산을 소비하며 산에 올라가 배 만든다고 세월을 다 보냅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이렇게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정신 나간 짓입니다. 돈을 벌어도 부족한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허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허비하는 게 누군가에겐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 되고, 그 허비한 재물이 생명을 살리고 거기서 수 십 배의 열매가 맺습니다.

그 다음 8절 이하에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옵니다. 오늘은 아브라함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알지 못하고 나간 것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시란 본토 친척 부모 곁을 떠나 지시하는 곳으로 떠나라는 것이었습니다(창12장).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땅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갔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땅을 한 번이라도 가 본적도 없습니다. 그러니 죽을 각오, 그 만큼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는 순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정든 집을 떠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나중에 우리 교회가 어느 지역에 자리를 잡게 되었을 때, 우리가 교회 근처에 살면서 전도하고 봉사하는 게 영혼구원에 유리하기 때문에 교회 근처로 다 이사 오라고 하면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사는 집만 못하고, 교육환경도 더 나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해쳐 모이겠습니까? 적어도 이런 상황을 놓고 아브라함의 이주를 바라봐야 아브라함이 어떤 희생과 모험을 감행한 것인 것 느껴질 겁니다. 나중에 늘푸른교회가 어느 지역으로 정해지면 제가 여러분께 그렇게 하자고 제안할지 모릅니다.

적어도 목사나 목자나 장로는 자기 개인 인생보다 주님 뜻을 받들어 교회를 섬기는 일에 우선하면 좋을 것입니다. 주님과 교회보다 자기 개인의 인생을 더 우선하는 사람이 목사든 목자든 장로가 되면 당사자도 교회도 힘듭니다. 목사로 헌신하려면, 먼저 자신과 가족을 주님 아래 둘 마음의 준비부터 하면 좋을 것입니다. 장로로 섬기고 싶으면 교회살림살이를 먼저 챙길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이 없으면, 목사나 장로가 되지 말고 그냥 일반 교인으로 있는 게 더 좋습니다.

노아와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하나님을 제대로 믿으면 못할 게 없다는 걸 보여줍니다. 배 만든다고 인생을 다 허비하고, 멀쩡하게 잘 살다가 갑자기 짐꾸려 훌쩍 타국으로 떠납니다. 이것이 비젼과 사명을 받은 사람의 삶입니다. 비전을 가진 자, 사명을 받은 자는 보통 사람들에겐 불가능한 그런 길을 갑니다. 그렇게까지는 못하겠다고 하는 것은 비젼도 사명도 없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별겁니까? 잘나가는 인생이라고 해도 호의 호식하다 늙어 죽는 것 말고 뭐가 있습니까? 지금 청년들도 3,40년 후엔 6,70이 됩니다.

가만 앉아서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과 목자로 양들을 섬기며 시간과 재물을 허비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것이 진실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은 주님을 위해 시간이든 재물이든 허비하는 인생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뜻을 이루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아끼고 모으고 그러지 마세요. 자신을 위해 살면 주님과 교회에 인색해집니다. 자신을 포기하면 주님을 섬기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자신을 위해 수십 만 불을 쓰면서 교회를 위해 몇 천불이 아까운 사람은 그저 그런 교인으로 인생을 마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허비는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거 같아 허비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이 죄인이고 연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말로만 주님을 믿는다고 하지 않고 매일 조금씩 순종하며 살다보니 그런 믿음의 위인이 된 겁니다.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한다면서 방주 만드는 일은 못하겠다고 그랬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아브라함이 앞으로 하나님 잘 섬기겠지만, 고향을 떠나는 일을 할 수 없다고 그랬다면 또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노아나 아브라함을 통해 하려는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못하는 게 아니고 사람들이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때 열심히 했더라도 중간에 포기해도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하시려는 일은 성취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하는 게 중요합니다. 제가 늘푸른교회를 끝까지 지켜야죠. 여러분도 끝까지 저와 함께 늘푸른교회를 세웁시다. 배 만드는 것처럼 교회를 세우는 일도 어찌 힘들지 않겠습니까? 지치면 쉬어 가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가야 합니다. 그 다음 또 누군가 헌신하는 사람이 바톤을 넘겨받고 그렇게 주님 오실 때까지 가는 겁니다. 매일 할 수 있는 만큼 꾸준히 만들다 보니 방주를 완성한 것이죠. 교회 사역도 그렇게 끝까지 하다 보면, 때가 되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거두는 날도 올 것입니다.

쟁기를 든 사람은 뒤를 돌아보는 법이 아닙니다. 밭 가는 소가 자꾸 뒤 돌아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복음의 일꾼들이 세상에 미련을 두고 뒤를 돌아보면 주님을 따라가는 게 힘들어집니다. 주님만 보고 나가야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 못 챙긴 것 주님이 챙겨주시고 지켜주실 것입니다. 믿습니까? 교회 일은 적당히 하고 가정부터 먼저 챙기라는 충고를 듣게 될 지 모릅니다. 주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는 대가로 우리가 챙길 수 있는 게 대체 뭡니까? 약간의 재물과 세상 즐거움 아닙니까? 그걸 얻기 위해 잃어버리는 것이 뭔지 생각해본 적 있습니까? 주님의 칭찬과 하나님 나라의 상급입니다.

예수 믿어 죄 용서받고 영생을 얻어 천국을 선물로 받은 이런 엄청난 은혜를 받은 줄 안다면, 이젠 주님과 교회를 위해 희생할 때입니다.. 주님과 교회를 위해 재산이 축나고 몸에 무리가 가고 그랬다면 그런 것이 다 주의 나라에서 칭찬받을 흔적들입니다. 주님을 위해 수고하는 재미를 아는 사람이 멋진 그리스도인 입니다. 우리가 지금보다 훨씬 더 멋지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은 세상의 재물과 성공과 일과 오락이 우리 마음을 빼앗아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수중의 재물을 더 의지하고, 예배드리는 것보다 오락을 더 즐기는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도록 노력합시다.

그리스도인이 불신자처럼 사는 건 믿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지 않고 고백으로 끝내기때문입니다. 은혜 받고 어떤 결단을 하고 싶을 때는 마음이 변하기 전에 확 돌이킬 수 없는 결단을 하는 게 좋습니다. 때로는 회중 앞에 선포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살면 혁명적인 변화가 생깁니다. 신앙생활의 성패는 하나님 말씀에 지배를 받느냐, 내 감정이나 육신의 욕망에 지배당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나를 이끌고 가게 만듭시다. 내가 주인이 되어 잘 하려고 해도 연약하여 잘 안됩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고 말씀에 이끌려 가는 게 최선입니다.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고 성령이 감동할 때 그냥 순종하세요. 생각해보겠다는 것은 지금은 순종할 수 없다는 완곡한 표현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 위에 내 삶을 올려 놓고 하루 하루 말씀을 통해 성령이 이끄는 데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고백의 말로 끝내지 말고 고백을 삶 속에 행동으로 보입시다. 그래야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고 열매가 맺습니다. 믿음은 단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뿐 아니라 나에게 해당되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의 말씀에 나와 내 아내와 남편과 자식들의 미래를 맡기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신앙생활이 이전과 다르게 변할 것입니다. 삶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상 받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인생이 노아,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주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복을 누리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