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이 없다면?

고린도전서15:12-19

3년 동안 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며 훈련시키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그 훈련이 성공했다고 보십니까? 실패했다고 보십니까? 만일 실패했다고 본다면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훈련 방식이 문젭니까? 역시 인간은 안 되는 것입니까? 스승이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더라도 참 제자라면 죽음의 위험 앞에서도 스승을 지지하며 따라 가야 한다는 게 우리 생각입니다.

여러분 우리 역사에서 사육신과 생육신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死六臣은 조선 7대 왕 세조가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빼앗자 단종을 섬기던 신하들이 세조의 회유에 굴복하지 않고 단종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어 세조에 의해 죽임을 당한 6명의 신하들입니다:성삼문(成三問:承旨) 박팽년(朴彭年:刑曹參判) 하위지(河緯地:禮曹參判) 이개(李塏:直提學) 유응부(兪應孚:中樞院同知事) 유성원(柳誠源:司藝) 등.  生六臣은 단종에 대한 절개를 지키며 벼슬을 버리고 초야에 뭍혀 산 6명의 충신으로 이맹전, 조려, 원호, 김시습, 성담수, 남효온 입니다.

시대가 달라지긴 했지만 요즘에는 이런 충신들을 보기가 어렵죠? 정권이 바뀌면 말을 바꿔타는 게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한국에선 총선에 대비해 각 당에서 국회의원 후보자를 공천하고 있습니다. 공천 받을려고 당을 바꾸는 사람들을 “철새”라고 부릅니다. 나쁜 짓은 인간이 하고서도 죄없는 철새만 나쁜 이미지를 뒤 짚어 씌운거죠. 양심 있다면 철새에게 사과해야 할 겁니다.

리더로서 인간 예수님은 흠 잡을 데가 없는 분이셨지만 제자 훈련은 성공했다고 보긴 좀 어렵습니다. 스승이 죄 없이 잡혀 심문받는 현장에서 제자 베드로는 같은 패로 몰릴까 겁을 먹고 스승님을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고 세 번씩 딱 잡아 땠습니다. 혹시 스승이 높이 되면 그 권세에 기대어 출세해보려던 욕망을 가지고 따르던 사람들은 거의 실망하고 흩어졌습니다. 현직에 있을 때는 무능하다고 욕먹는 대통령이라도 그 옆에서 얻는 게 많으니 따르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내려온 후엔 얻어 먹을 게 없으니 이런 핑계 저런 핑계 대며 다 떠납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나 추종자 그룹들이 모두 개인의 부귀영화만 노리는 한심한 정치군들은 아니었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게 되자 대다수가 끝까지 흩어지는 분위기 였습니다. 그런 모습이 3년 동안 예수님의 제자훈련이 그렇게 성공적인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말입니다.

사실 인간이 인간을 훈련시킨다는 게 가당키나 한 말입니까? 제가 늘푸른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리더들을 훈련시키고 성경공부를 시키며 신앙훈련시키면서 어떤 때는 정말 막막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뭔가 좀 달라지는 거 같아 기대가 된다 싶으면, 얼마 못가 이런 저런 일들이 생겨서 뒤로 물러가 있는 모습을 봅니다. 지난 2년 가까이 이런 현상이 반복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보면서 이런 모습이 정상이란 걸 깨닫습니다. 예수님이 누굽니까? 그 권세와 능력으로 직접 3년 동안 훈련시킨 사람들이 이런 수준의 반응을 보이는 게 인간이라면 제가 인간적 노력 만으로 누군가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교만이죠. 결과부터 말하면 성령의 도움으로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믿음 없이 훈련만으로 변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걸 알고 목회를 하는 게 지혜입니다. 이런 걸 아는 걸 보면 제가 그렇게 바보는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스승의 죽음앞에 겁먹고 낙향하던 제자들이 죽음도 불사하는 특공대로 바뀔 수있었습니까? 뭐가 그들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 수 있었을까요? 오늘은 그게 뭔지 깨닫고 우리도 죽음도 겁내지 않는 주님의 참 제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신문이나 혹은 인터넷 검색창, 기네스북 등 어디서든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사람에 대한 소문을 들은 게 있습니까? 더나가 그 사람이 지금도 죽지 않고 수백년을 살고 있다 뭐 이런 이야기. 전 기절했다가 소생했다거나, 무덤에 묻기 직전에 재채기하고 깨어났다는 이런 정도 기사는 본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이런 사람들은 결국은 다시 죽어 다 땅에 뭍혀있습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본 사람만 믿을 수 있는 이야기 입니다. 여러분 누가 죽었다 살아났더라 그런 말을 들으면 믿어집니까? 전 안 믿어져요. 애이~ 뭔가 착각했겠지. 기절했다 깨어난 걸 가지고 그러든지, 아님 누가 사기치는 거지. 죽어 지옥갔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람들의 간증집도 참 많이 돌아다니는 데 전 별로 읽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걸 진짜라고 믿었다면 벌써 읽었겠죠. 신뢰가 안 갑니다.

나사렛 예수가 죽었다가 살아났다카더라는 소문도 본 사람 외엔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천사로부터 처음 들은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였습니다(막16:1). 이 여자들이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돋은 때 무덤에 갔는데 흰 옷 입은 청년(천사죠)이 무덤을 찾아온 이 여인들에게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알려줬습니다(막16:6). 이 여인들은 즉시 열한 사도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 스승님이 살아나셨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사도들은 허황된 말이라고 생각하고 믿지 않았다는 겁니다(눅24:11). 차마 믿지는 못하지만 이런 엄청난 소식을 듣고 가만 앉아 있을 수 없었던지 베드로와 요한은 직접 확인해보려고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난 사람은 일곱 귀신들렸던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이제 마리아는 소문이 아니라 자기 눈으로 직접 본 것을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마리아의 증언을 믿지 않았습니다(막16:11). 그 후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시몬 베드로를 찾아갔습니다. 실망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엠마오 도상에 있던 두 제자에게도 나타났습니다(막16:12-13). 도마가 없을 때 제자들을 찾아갔습니다(눅24:36-38). 도마는 예수님을 봤다는 제자들의 말도 믿지 못해서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반론을 폈습니다. 요즘도 도마 때문에 예수님이 꿈이나 환상으로 보일 때 꼭 못자국 있는 손을 보인다고 합니다.

암튼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은 오늘 현대인들만 그런 게 아니고 정작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믿기 어려운 사건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눈으로 보지 못했더라면 제자들도 스승님이 죽었다 다시 살아난 것을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보는 순간에도 혹시 환상은 아닌지, 부활하신 게 아니라 영으로 오신 건 아닌지 의심할 정도 였습니다. 오죽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믿게 해보려고 “나 영 아니야! 진짜 사람이야. 내 손과 발을 보고도 그러니? 자 만져봐! 영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난 만져지잖아! 그래도 못믿어? 그럼 내가 생선 한 토막을 먹어볼께! 잘 봐! 살아난거 맞지?” 눈 앞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보고 스승님의 부활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자 제자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 믿음이 겁쟁이들을 죽음도 겁 안내는 특공대로 바꿔 논 겁니다. 안 그렇겠습니까? 예수님과 함께라면 죽더라도 다시 살아나고 또 영원히 죽지 않고 하나님나라에 들어가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자 죽음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이제 뭐가 제자들을 바꿔 놓은지 알겠습니까? 여러분 제가 아무리 설명을 잘해도 그 설명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만들어 주진 못할 것입니다. 왜 안그렇겠습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보인 반응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한결 같은 불신이었습니다. 부활은 인간이 자기 지혜로 깨달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차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자들이 IQ가 낮아서 부활의 원리를 이해못한 겁니까? 그리고 우리는 지적 수준이 높아졌기에 쉽게 알아들을 수 있단 말입니까? 제자들이나 우리나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 위해서는 똑 같은 과정이 필요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만이 부활의 사실을 믿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직접 찾아다니며 확인시켜줬습니다. 이 때 예수님 참 바뻤을 겁니다. 얼른 승천해서 하나님께 신고해야하는데 잔뜩 겁먹고 있는 제자들 그냥 둘 수 없어 일일이 찾아다니며 혹 누가 빠졌으면 그 사람을 또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부활의 사실을 믿도록 도와주신 것입니다. 얼마나 자상하고 사랑이 넘치는 주님이십니까? 대표로 누구 한 사람에게 부활을 증명해주고 “니가 가서 다 알려줘! 나 부활했다고”그래도 뭐 될터인데. 그랬더라면 꼭 도마 같은 사람이 나와서 “내 눈으로 보기 전엔 죽어도 못믿는다” 버틸게 아닙니까? 여러분 중에도 도마 기질을 가진 사람이 좀 있죠? 병완 형제 아닌가요? 그러니 예수님이 일일이 명부 챙겨가며 찾아다닌 겁니다.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 부활을 믿게 된 제자들은 가족, 친구, 마을 사람, 동포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의 부활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복음이 예루살렘을 요동치게 만들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증거로 예루살렘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부활을 믿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빌립의 전도로 사마리아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단지 몇 개월 만에 예수를 믿고 따르는 무리들로 차고 넘쳤습니다.

예수를 죽이라고 아우성 치던 무리들 대신에 이젠 예수 앞에 나와 통곡하며 회개하는 무리들로 넘쳐났습니다. 무엇이 사람들을 이렇게 달라지게 만들었습니까?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도 물론 많은 사람들이 따르긴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누구신지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베드로 정도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봤지만, 결정적 순간엔 베드로조차도 예수를 모른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얻는데 필요한 대속은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그러나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돌아온 것은 바로 예수님이 다시 살아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온 예루살렘에 퍼져나가고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이 여기 저기서 힘을 얻으면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조롱하고 무시한 걸 회개하고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로 인정하기 시작한 겁니다.

죽은 자의 부활은 그 당시나 지금이나 믿기 쉬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살아나신 예수님을 보면서도 제자들은 쉽게 믿지 못했습니다. 20년쯤 흐른 후 고린도교회에 “죽은 사람이 부활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부활이 부정되면 신앙의 기초가 무너진다고 봤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복음 증거도 믿음도 다 무의미해집니다. 전도는 사기행위가 될 것입니다.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지 못했다면 결국 예수도 죽음의 권세아래 있는 한 인간에 불과할 것이기에 예수를 믿더라도 여전히 죄에서 해방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따라서 부활을 믿지 못하면 결국 그 신앙은 신앙도 아닌 것이 되고 맙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산다는 이야기가 믿기 쉬운 것도 아니고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눈으로 볼수도 없는 사람들은 그럼 어떻게 믿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기독교신앙이야말로 불가능한 걸 믿는다고 떠들며 믿으라는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스스로는 믿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아마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제자들에게 하신 것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이 직접 찾아가 보여주며 믿게 해주는 방법 밖엔 없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아는 것처럼 바울도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믿게 되지 않았습니까(행9:1-5).

그럼 지금도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들을 하나 하나 찾아다니며 믿게 해준다는 이야깁니까? 유대 땅에 사실 때 그 몇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부활을 증거하는 데만도 여러 날이 걸렸는데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을 찾아다닐려면 도대체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릴까요? 혹시 그래서 주님의 재림이 이렇게 지체되고 있는 건가요? 우리가 성령님을 몰랐다면 이런식으로 생각해도 무리는 아닙니다.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지혜로하면 우주를 설계한 분이요 능력으로 하면 말씀만으로 완제품을 만들어낸 그런 전지하고도 전능한 분 아닙니까? 그런 하나님이 엄청난 지혜와 능력을 동원해- 이런 표현을 쓸 수 밖에 없는 건 우리 머리론 다 이해도 안되고 우리 능력으론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실토입니다만- 동시에 여러 사람을 찾아가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는 방법을 찾았는데, 그게 바로 성령님을 보내 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쯤에서 무슨 말인지 아는 분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고. 뭔 소린지 모르는 분은 좀 걱정됩니다. 성령받지 못한 사람 같아서요.

지금은 성령님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자녀들에게 알려주고 믿게 해줍니다. 성령님을 오해마세요. 성령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요15:26). 예수님은 성령이 오시면 상당자로서 하나님의 자녀될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고”이며(요15:26), 예수님에 대해 세상에 밝히 드러내 깨닫게 해준다(요16:8)고 알려줬습니다. 결국 성령이 오셔서 하시는 일은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바로 이 성령님의 도움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됩니다(고전12:3). 따라서 성령님을 거부하면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령 모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신앙이란 건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고백 속에 부활은 핵심적 요소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면 사실상 예수님에 대한 믿음도 무의미한 것입니다. 부활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도대체 뭘 믿는다는 겁니까? 그런 믿음이 여러분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오늘 부활절이 그냥 교회의 절기 중 하나로 지나가게 해선 안됩니다. 오늘 여러분은 성령님의 도움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되기를 바랍니다. 역사 속에 어느 누구도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 영생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고 다시 죽지 않고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이 사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곧 구세주이심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4절에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다”.

늘푸른교회 성도 여러분!
이 부활로 인해 예수를 거부했던 사람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이 곧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이심을 고백하는 믿음입니다. 여러분 마음 속에도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까? 부활절 찬양곡을 부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로마서 10장 9,1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를[예수]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고 돼 있습니다. 구원얻기 원하면 지금 예수님의 부활을 마음으로 믿으세요. 하나님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때 당신을 의롭다고 인정해줍니다. 지금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의 선물을 받기 바랍니다.

초대교회나 지금 우리나 믿음의 핵심이 뭡니까?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십자가의 대속이 없는 복음이 허망한 것처럼 부활이 없는 복음 또한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여기 있는 여러분 중에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당신은 아직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란 걸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 친화적인 사람은 되었지만 아직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고 구원얻은 자녀는 아닌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그런 상태에 있다면 지금 성령님께 긴급히 구조를 요청하세요. 성령의 도움이 없이 자력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믿고 싶어도 말이 안돼서 믿어지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구원은 사람의 지혜로 볼 때는 미련한 소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전도할 때 지혜의 말로 설득하려고 하는 대신에 성령의 능력과 가르치심으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해 믿게 해주었습니다(고전2:4) 성령 하나님께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어 구원얻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이미 믿는 분들은 아직 불신자 교인들을 위해 중보기도 해주길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