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와 '그리스도인'

사도행전11:19~26

오늘 본문 내용은 스데반으로 인해 예루살렘 교회가 유대인들로부터 박해를 받게 되어 그 환란을 피해 흩어진 사람들 중에 일부가 안디옥으로 피신하여 거기서 헬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믿는 사람들이 생겨 안디옥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교회가 바나바를 안디옥 교회를 돕게 했습니다. 이 때 바나바는 고향 다소에 내려가있던 사울을 생각하고 그를 안디옥에 데려와 1년 동안 함께 말씀을 가르치고 전도했습니다. 제자들은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렸습니다.

오늘 저는 이 본문을 통해 다음 몇 가지 사실을 여러분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로 교인들이 떠나는 게 아쉬운 일이지만 복음이 퍼져나가는 기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열심히 전도하면 교회는 저절로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인지 아닌지는 세상 사람들이 먼저 알아본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 세가지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1. 흩어짐과 복음전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것을 지적하며 책망하는 스데반의 말을 듣던 유대인들은 마음 한편으로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스데반을 돌로 쳐죽였습니다. 사도행전7장 51,52절을 보면, 스데반은 유대인들을 향해
[개역개정]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개역개정]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좀 심하게 말하긴 했습니다. 요즘도 이런 식으로 설교했다가는 오래 못 갈 겁니다. 교인들이 떠나든 설교자가 쫓겨나든 하겠죠. 여기서도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스데반의 설교를 듣던 사람들은 “마음이 찔렸습니다”. 죄의식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반응은 스데반을 향해 “이를 갈며”, 성밖으로 몰아내고 돌로 쳐서 결국 죽게 만들었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면 회개하고 구원을 얻게 되는 반면 사단의 영향을 받아 마음이 강팍해지면 도리어 자기 죄를 드러나게 하는 사람에 대해 적대감이 생기고 죽여버리고 싶어집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설교 중에 책망을 들으면, 성령의 영향을 받는 사람은 반성하고 잘하겠다는 각오가 생기지만 악한 영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은 날 들으라고 대놓고 저런 말을 한다고 기분이 상해 설교자에게 안 좋은 감정이 일어나 반항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그러다 교회를 떠나든지, 꼬투리를 잡아 목회자를 비난하며 몰아내려고 선동을 합니다. 요즘도 교회에서 이런 저런 분열과 싸움들이 일어나고 있는 건 별로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유대인들의 반발은 스데반 한 사람 죽이는 걸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교인들까지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인들을 모함하고 없는 죄도 씌워 감옥에 가두고 고문을 하며 괴롭혔습니다. 할 수 없이 사도 외에 교인들은 예루살렘교회를 떠나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게 되고 흩어진 사람 중에 성령충만한 사람들은 거기서도 예수님을 증거하여 믿는 사람들이 생겨습니다. 안디옥교회도 그렇게 생겨났습니다. 흩어져야 했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 결과 복음이 예루살렘과 사마리아를 넘어 이방지역으로 퍼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돌아보면 주로 유학생들이라 짧게는 1,2년 길게는 2,3년 머물다 흩어집니다. 지난 2년 사이에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머물다 흩어졌습니다. 다음주면 그 동안 함께 지내던 김영주 형제가 우리 곁을 떠납니다. 박해로 어쩔 수 없이 시애틀을 떠나거나 한국으로 쫓겨가는 게 아니고 대학원에 합격되어 꿈을 가지고 떠나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그래도 헤어진다는 건 아쉽습니다. 영주 형제가 가는 곳에서 만나는 누군가에게 주 예수님을 증거하여 믿는 사람이 많이 생겨나길 바랍니다.

2. 전도와 교회부흥
교인들은 어찌 생각하는 지 모르지만 목회자들에겐 교회의 양적 성장이 인생의 목표입니다. 양적 성장 없는 질적 성장은 속임수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만 봐도 성장하는 교회보다 정체되거나 침체된 교회들이 더 많습니다. 이 때문에 대부분 목사님들이 복음 때문에 기쁘고 평안하게 아니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미국에서도 전문직 중에 목회자들의 수명이 가장 짧다고 합니다. 주의 은혜를 누리며 복 받고 장수해야 마땅한 주의 종들이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제 수명대로 살지도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초대교회의 경우는 어떻게 교회가 부흥되었습니까? 오늘 본문을 비롯해 사도행전에서 보여주는 비결은 다른 게 없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가는 곳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말하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 증거하고 그 때마다 성령님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믿도록 역사하여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돌아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장원리는 간단합니다. 성령충만한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전도한 결과로 교회의 양적 부흥은 따라왔습니다.

개척교회는 어떤 교회나 전도하지 않으면 침체됩니다. 늘푸른교회도 우리가 전도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올 이유가 없는 교회입니다. 홍보가 잘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시설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경제적 여건이 풍족한 것도 아닙니다. 주변에 우리 교회 밖에 없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가만 있으면 우리 교회에 나올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우리 중에 어떤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증거하기 시작하면 성령께서 역사하고 도와주어 믿는 사람이 생기고 그 사람은 전도한 사람이 다니는 늘푸른교회에 따라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교회가 부흥하기 시작하면 안디옥소식이 예루살렘까지 퍼져가듯 시애틀에 입소문이 나 자연증가도 생기고 재정도 늘어나고 예배당 교육과 사무실 이런 시설도 갖출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하고 할 수 있는 건 성령의 능력이 역사하도록 기도하며 전도하는 것입니다. 예배당 없고 돈 없어도 전도는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습니다. 예수믿는다고 박해받고 고통을 견디다 못해 고향을 버리고 떠난 사람들이 뭐가 그리 좋다고 타국까지 가서도 외국 사람을 붙잡고 예수믿으라고 전했을까요? 예수 믿어봐야 되는 일 하나도 없다고 불평하고 신세한탄 할 수도 있는 상황인데 흩어진 예루살렘 교인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은 신경쓰지 않고 예수님을 전하는데 몰두했습니다.

주님은 이들의 믿음과 열정에 감동하여 전도할 때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했습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했다’는 말은 뭘까요? 아마도 병든자를 고쳐주고 귀신을 몰아내며 이적의 역사들이 일어난 것을 뜻할 겁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복음증거 현장에는 예외 없이 성령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성령의 능력은 믿는 사람에게나 불신자에게나 다 필요합니다. 전도하는 사람은 그 능력으로 복음을 증거하고 불신자는 그 능력을 보고 하나님 말씀에 굴복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도 이런 역사가 일어날 것을 기대하며 기도합시다. 내게 이런 능력이 없는데 겁먹지 말고 어차피 이런 능력은 첨부터 우리에겐 없는 것이고 주님이 성령님으로 통해 역사할 때 나타나는 것이니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며 믿고 나가는 겁니다. 성경 약속의 말씀을 믿고 “예수 이름으로 병낫기를 기도하고 귀신이 쫓겨나가기를 명해서 안되면, 주님 책임이지 그게 내 책임입니까? 우린 첨부터 이런 일에 책임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못됩니다.

전도는 철학이나 과학적 지식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그 당시 헬라인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헬라인들은 예리한 지성의 소유자들(고전1:22)이고 최신 철학과 문화외엔 관심이 없었습니다(행17:18-21). 보통 지식인들은 철학이든 과학이든 종교든 나름대로 자기 세계관으로 무장한 사람들이라 남의 말을 잘 안듣습니다. 헬라인들도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논리적으로 설복되어야만 생각을 바꾸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가 이들을 설득해서 예수믿게 만들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주의 손의 역사 앞에서는 무너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대학생이나 대학 나온 사람들이 남의 말을 쉽게 듣겠습니까? 더욱이 다윈의 영향을 받고 자란 세대들이고 또 탈 종교적 세속주의에 물들어 돈과 권력과 세상의 쾌락을 추구하며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참 어리섞은 소리로 들리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쩝니까? 어리섞은 그 이야기로만 인간이 구원을 얻는 걸요. 그러니 예수 믿고 구원얻은 우리가 알 것은 세상의 학문이나 이데올로기 논쟁을 하지 말고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를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설적이지만 지성인에게 지성이 아닌 성령의 능력이 필요한 겁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단지 공부 많이 한 지식인들이었다면 전도에 엄청난 열매를 거둘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철학이나 과학적 지식으로 하나님을 설명하고 구원의 원리를 말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헬라인들에게 전도할 때 내가 사람의 지혜의 권하는 말로 전도한 게 아니고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했다고 말했습니다(고전2:4) 여러분들이 대학생 지성인들에게 전도할 때 그들보다 과학이나 물리학에 대한 어떤 지식이 부족하다고 겁먹을 게 없습니다. 어차피 예수 믿게 만드는 데 세상 지식이나 지혜는 크게 도움이 안됩니다. 믿음은 사람의 지식에서 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해야 되는 겁니다(고전2:5)

3. ‘제자’와‘그리스도인’
정체가 불투명한 사람은 간첩입니다. 스파이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어떻게 보이게 하는 지는 다 알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 속에서 간첩처럼 활동하면 안됩니다. 세상 나라에선 자기 정체를 속여야 활동에 유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은 속과 겉이 투명해서 불신자가 봐도 금새 예수쟁이인줄 알도록 행동하는 사람이 참 제자입니다. 가끔 교회에 정체가 분명치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믿는 사람인지 아닌지 좀 헷갈리게 행동합니다. 한국 사람 눈에 수상한 사람은 간첩입니다.

성경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고 주님으로 따르는 사람들을 ‘제자’라고 불렀습니다. ‘제자’라는 말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정체성을 표현할 때 쓰는 말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안디옥 지역에서 다른 사람, 특히 불신자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보고 부른 호칭이었습니다. 두 용어가 결국 같은 의미이지만 ‘제자’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나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말이고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이 나의 삶을 보고 ‘예수쟁이’라고 부르는 말입니다.

제자는 누구나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그 교훈대로 살기로 결심한 사람이 자신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공자의 제자는 공자의 가르침을 받아 그 사상에 따라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도 마찬가지. 그런데 요즘은 좀 왜곡됐습니다. 제자라면서도 지식만 받아들이고 그 사상에 따라 살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자훈련 받으면서도 어째 교회생활하는 걸 보면 아는 것으로 실천을 대신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제자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불신자가 보기에도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 보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런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제자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가 힘든 이유는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한다고 했습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은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살지 말고 하나님을 위한 인생을 살라는 뜻입니다. 그러기 위해 적어도 세가지 삶의 목적, 인간관계, 소유물에 대한 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자신의 영광을 위해사는 사람은 주님의 제자로 살 수 없습니다. 배우자나 자녀가 주님을 섬기는 것보다 우선인 사람도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돈벌이가 교회를 섬기는 것보다 우선인 사람도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말이고 결국 구원얻을 수 없다는 뜻인줄 아십니까?

오늘 짧은 본문의 말씀 속엔 많은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박해와 같은 최악의 상황도 하나님의 손안에서 복음증거를 위해 유익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여러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건 아쉽지만 하나님의 손 안에서 복음전파의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빈자리 의식하지 말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담대히 예수님을 전하여 구원얻는 사람이 매주일마다 더해지도록 합시다.
앞으로도 우리 교회 특성상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나와 흩어지게 될 것입니다. 학업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을 비롯해서 타주로 전학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떠나는 사람이 더 힘든지 남아 있는 우리가 더 힘든지 잘 모르겠지만 정든 교우들을 떠나 보내는 건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떠나는 분들이 더욱 좋은 결과를 얻어 서로 위로가 되길 기원합니다.

여러분이 늘푸른교회에 머물러 있으며 봉사할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필요로 할 때 공부나 가정이나 자녀나 사업이나 다 소중하지만 그런 것들을 이유로 등돌리지 말기바랍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세상 영광을 구하는 사람들의 눈엔 인기 없는 인생이었지만 하나님 나라에선 최고의 인생을 살다간 분들입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동참하는 인생과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다가는 인생이 있습니다. 선택은 자기 몫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 정체성이 분명해지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제자라는 의식이 분명하고 세상 사람들 눈에 보기에도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그런 교회생활을 하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예수님을 분명하게 시인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주님은 그런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부인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주님께 인정받는 제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