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파수군(watchman)

에스겔3:16-21

오늘은 에스겔을 통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와 파숫군의 의미와 역할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바벨론에 사로잡혀간 에스겔과 동시대의다. 사람도 아니고 살아가는 환경도 다릅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 어디서 살든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기대하는 바는 다를 게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여러분이 말씀을 들으면서 무엇이 우리를 멸망의 길로 빠지게 하는 것인지 깨닫고 삼가하는 삶을 살게 되길 바랍니다.

1. 역사적 배경
본문의 말씀이 주어진 역사적 배경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에스겔1장 1~3절을 봅시다.
 
1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 2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 3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에스겔이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은 때는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혀 간지 5년이 지난 때였고, 장소는 갈대아 땅 그발 강가였습니다. 갈대아는 그 당시 바벨론으로 오늘날 이라크 지역입니다. 연대를 추정해보면 여호야긴 왕은 남왕국 유다의 19대 왕으로 BC597년경 즉위해서 3개월 만에 바벨론(느브갓네살 왕)의 침공을 받고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갔습니다. 이 때 왕 외에도 고위직에 있는 신복과 방백들과 권세자들을 잡아갔는데, 에스겔도 이 때 끌려갔습니다. 이런 정황은 열왕기하 24장 10절부터 2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서른째 해”는 에스겔의 나이를 가리킵니다. 30세는 제사장직무를 시작할 나이였는데 하나님은 30에 에스겔을 사역자로 불렀습니다. 아직 30이 안된 청년은 좀 여유가 있네요? 그치만 30이 넘은 분들은 하나님 앞에서 일할 나이가 지났으니 기회가 주어지면 사양하지 말고 하나님께 쓰임받기 바랍니다. 어떤 면에선 에스겔도 이민 목회자였네요. 하나님 보호아래 있다면서도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평안할 때보다 늘 주변 나라의 지배를받는 설움과 고난을 겪습니다.

성경을 통해 보면 이스라엘 민족은 아브라함의 후손, 즉 야곱의 12아들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 내려가 430동안 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한 가나안 땅에 들아가는 과정이나 그 이후에도 참 험한 인생이었습니다. 광야에서 거지 떼들처럼 몰려다니며 먹는 걸 놓고 치열하게 싸우고, 살아남기 위해 남이 살고 있는 땅을 칼로 빼앗아야 했습니다. 늘 굶주림과 칼의 위험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뿐 아니라 세상 다른 사람처럼 대충 살려고 하면 그 때마다 하나님께 얻어터졌습니다. 기근과 질병이 오거나 주변 나라의 침공으로 먹을 것을 빼앗기고 자식을 포로로 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왕까지 사로잡혀가는 지경에 처했습니다.

역사상 이스라엘이 주변 나라보다 강한 때는 다윗(BC1050-1010)과 솔로몬왕(970-931) 중기까지 뿐이었습니다. BC931년 남북으로 나뉘어진 이후부터는 중간 중간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이 통치하는 동안 잠시 번영을 누리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쇠퇴하여 북왕국 이스라엘은 209년 지속되다가 BC722년에 앗수르 침공을 받아 멸망했고, 솔로몬의 혈통으로 왕조가 이어진 남 왕국 유다 역시 북왕국보다는 150년 정도 더 오래가긴 했지만 BC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망하고 말았습니다. 에스겔서는 이 바벨론 침공으로 망한 직후의 이야기 입니다. 자기가 사는 시대를 택해서 나올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니 좋은 때에 태어난 것만도 감사할 제목이 됩니다.

2. 에스겔의 소명
1.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3.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어느날 에스겔은 하늘이 열리고 거기에 하나님이 나타나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영적 세계를본다는 건 단순한 천국 여행이 아닙니다. 그건 소명과 사역과 항상 연결됩니다. 베드로도 바울도 환상을 봤는데 다 해야할 일이 있을 때 보여줬습니다. 괜히 천국 여행하고 싶어 환상 보겠다고 조르지 마세요. 만일 뭔가 본게 있다면 하나님이 뭘 시키려고 보여주셨는가 고민해야합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에 사로잡혀간 후에도 정신 차리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죄에서 돌이키는 사역을 맡기려고 에스겔에게 하늘을 열어 보였습니다.

죄로 인해 나라를 잃고 포로가 되어 남의 나라에서 살면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못깨닫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매 맞을 때 잘못을 뉘우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자기 잘못을 생각하기 보다 때리는 사람에게 반감을 품습니다. 이방나라의 종노릇하고 있는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해 거친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반항하며 되는 대로 살고 있었습니다.

제가 미국 올 때 어떤 목사님이 이민 목회는 한국에서 목회하는 것에 비하면 10배나 더 힘들거라고 했습니다. 힘들게 일해야 살아가는 현실과 자유분방하고 물질 중심의 세속적인 문화가 형식적인 교회생활을 만들어냅니다. 하나님을 겁 안내는 데 목사들이 무섭겠습니까? 암튼 세상에 치면 하나님께 굴복하기 보다 반항하는 게 죄인의 심리 같긴 합니다.

에스겔2장 3, 4절은 이스라엘의 태도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정을 잘 보여줍니다.

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 그들과 그 조상들이 내게 범죄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나니/ 4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오죽하면 아버지가 자식을 반역자로 규정하고 뻔뻔하고 양심도 없는 자라고 했을까요? 우리가 제대로 된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런 성경구절을 읽을 때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참담했을까 느껴져야 합니다. 철든다는 건 부모의 안타까움과 고뇌를 이해하고 같이 느끼는 것입니다.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고 애쓰는 것도 바로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으려는 데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에스겔을 통해 전하는 말씀을 듣지 않을 줄 알고 있었습니다. 설교 안듣는 줄 알면서도 매주 마다 설교해야 한다는 게 때로는 스트레스입니다. 하나님도 괴로웠을 겁니다. 백성들 중에 선지자가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는 걸 깨닫게 해주려고 했습니다. 5절, 6절을 봅시다.

5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에 선지자가 있음을 알지니라 / 6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있으며 전갈 가운데에 거주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지어다

에스겔은 하늘이 열리는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에스겔은 백성들에게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겁내지 않는 백성들은 선지자의 말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했습니다. 귀찮게 한다고 협박하고 대들기도 했습니다. 이걸 보면 어쩜 그렇게 세월이 흘러도 인간의 모습은 한결같은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겁내지 않기 때문에 설교를 무시합니다. 그러면 안 된다고 하지 말라고 하면 숨어서도 하고 드러내 놓고도 합니다.

3. 에스겔의 사역
3장 17절을 보면, 하나님은 에스겔을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습니다. 파수꾼, watchman은 ‘지키는 자’라는 뜻입니다. 성문을 지키는 경비병, 국경을 지키는 보초병이 파수군입니다. 파수군으로서 에스겔에게 주어진 임무는 18절을 보면 악을 행하는 죄인에게 가서 말로 타일러 그 악한 길에서 떠나 구원얻게 하는 것입니다. 파수꾼으로서 에스겔은 백성들이 넘지 못하도록 죄의 경계선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악인들에게 죄를 깨우쳐 돌아오게 하는 게 파수군의 역할인데 힘들고 안듣는다고 포기하면 악인들의 죄 값을 파수군에게도 묻겠다고 했습니다. 듣든지 안 듣든지 파수군은 타이르고 깨우칠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은 목자의 책임이요 설교자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세요? 설교자를 무시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겁니다. 저를 배신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겁니다.

우리는 무엇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마음이고 악한 행위인지 생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구약성경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범한 죄악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에 우상을 섬긴 것, 안식일을 범한 것, 성적으로 방탕하게 산 것, 동포에게 포악하게 사기치는 것, 등 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출애굽 후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길 때 하나님은 진노했습니다. 안식일에 일하다 걸린 사람은 돌에 맞아 죽게 했습니다. 간음이나 간통도 죽음으로 다스렸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런 죄가운데 살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돌이켜 악에서 떠나도록 권고하고 경고하도록 시켰습니다.

4.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

자기 잘못을 지적하는 말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요즘 대통령 주변에 직언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대통령도 고언을 별로 잘 듣지 않아서 문제라고 말들 합니다. 못된 사람일수록 교만하고 완고한 기질이 있어서 더욱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듣기 싫은 충고는 누구를 통해 듣든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자녀가 부모로부터 책망을 듣는 것이나 교인들이 목사님을 통해 설교 시간에 책망을 듣는 것이나 남편이 아내를 통해 듣는 것이나 깨우치려는 소리는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이런 게 인간의 마음이기에 듣기 좋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 밥 한끼라도 얻어 먹지 깨우치는 설교로는 별로 인기가 없습니다.

요즘 설교도 코메디처럼 재미있게 말하는 사람이 인기가 있고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예화를 많이 들고 또 책망보다 위로와 치유 등을 주로 말하는 설교자에게 교인들이 모여듭니다. 에스겔처럼 파수꾼 노릇하면 아마 교인들 다 떠나고 나중엔 혼자 남을 지 모르죠. 그래서 교회 강당에서 파수꾼 설교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시대감각이 떨어지는 목사나 뭘 몰라 파수꾼 설교를 합니다.

듣지 않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 설교자로서도 고통입니다. 무시당하는 느낌에 화도 나고 저러다 된 통 당할 건데 싶은 생각에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게 파수군의 딜레마입니다. 말하자만 설교자도 파수군입니다. 기록된 성경말씀을 보며 성령의 감동에 따라 하나님이 회중에게 말씀하고 싶은 바를 헤아려 설교를 준비하고 선포합니다. 설교를 듣고 순종하는 교인도 있지만 무시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물론 여러분이 의도적으로 저를 무시하고 대적하려는 게 아닌 줄 알지만 설교 말씀과 다르게 행동하는 걸 보면서 저는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건강한 마음이 죄를 멀리하게 만듭니다. 육체의 욕망이 원하는 죄를 멀리하게 만드는 힘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나님의 말씀 외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동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두려워하는 마음 두 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잘 듣습니다. 부모님 은혜를 알고 부모님을 사랑하는 자녀들은 부모님 말을 잘 듣죠. 반대로 불만이 많은 자녀는 겉으로만 예하고 돌아서서는 제 욕망대로 행동합니다. 또한 겁이 나는 대상은 함부로 못합니다. 걸리면 죽는 줄 아니까. 죄인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데는 어느 정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도 필요합니다.

이치가 이러기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도 없다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가 어렵습니다.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십일조 등의 헌금을 드려 교회 재정의 필요의 일부를 돕고 사람들에게 복음전하는 모임이나 활동에 동참하는 정도는 신앙생활의 기본입니다. 이 세가지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필요조건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이 세가지가 별로 힘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이걸 지키려고 애쓸 겁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고 겁도 없다면 그렇게 살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 그렇게 살고 싶지가 않을 것입니다. 주일 마다 교회 가느라 피곤한데 잠도 실컷 자지 못하고 1년 지나도록 여행 한 번 못간다는 건 너무 고지식한 생각아닙니까? 부모님에게조차 제대로 드려본 적이 없는 내 수입의 10분의 1을 교회에 낸다는 건 너무 아깝습니다. 한국에서 일할 때 교회 목사님은 주례서줄 때 꼭 부모님께 10분의 1 용돈을 드릴 것인지 묻고 예라고 대답해야 주례를 서주는 분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그 목사님이 어떤 커플 결혼식을 앞두고 상담하면서 신부에게 물었더니 부모님이 자기들보다 형편이 좋으니 못한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이 주례를 거부해서 결혼식이 연기된 적이 있었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부모님께 드리기도 아까운 걸 하나님께 드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죠.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에겐 짐이나 부담이 아니지만 그냥 억지로 따라 할려면 모든 게 힘들고 아깝고 번거롭고 그런 겁니다. 말라기에 보면 제사장 조차 정해진 규례에 따라 하나님께 제물을 준비해 드리는 일을 번폐스럽게 여겼고(짐스럽게, what a burden!)(말1:13), 백성들은 십일조와 헌물을 빼먹었고(말3:8), 하나님 섬기는 것 다 소용없는 짓(말3:14)이라고 말했답니다.

하나님은 제가 여러분의 파수군 역할을 다하기를 원하십니다. 동시에 여러분은 세상에 나가 파수군 역할을 다하기를 바라십니다. 파수군은 사람들의 인기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죄에서 돌이키도록 타일르는 사람들입니다. 파수군에겐 침묵이 가장 큰 죄입니다. 경비병이 적이 침투하는 걸 보고 침묵하면 다 죽습니다. 잠잠하지 말고 세상을 향해 경계의 나팔을 울립시다. 안 들어도 계속 말하는 게 파수군입니다. 그래서 저도 안 듣는 줄 알면서도 “주일을 잘 지키세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세요, 세상을 멀리하세요, 육체의 욕망을 멀리하고 성령을 따르세요” 이렇게 매 주일마다 설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