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의 이상(vision)

다니엘7:23-28

오늘은 다니엘의 네 짐승에 대한 꿈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네 짐승은 앞으로 일어날 네 나라의 왕에 대한 예언으로 마지막 열 뿔달린 짐승나라엔 주님의 재림 전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의 나라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음엔 다니엘서를 본문으로 하나님이 세상 나라들과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4번 정도 설교하고 마치려고 했는데, 대충 건너 뛸 수 없어서 8월 말까지는 다니엘서를 계속 강해하게 될 듯합니다.

1. 벨사살 원년
오늘 본문의 중심 스토리인 다니엘의 꿈은 벨사살 원년에 있었습니다. 벨사살이 누구인지 다 아시죠? 지난 번 설교에서 바벨론 11대 왕조, 신흥 바벨론 갈대아 왕조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앗수르 바벨론지역군사령관이던 나보폴라살이 앗수르왕 앗수르바니팔이 죽은 다음 해 바벨론에서 반기를 들어 갈대아왕조를 열었습니다. 그가 21년을 통치한 후 둘째 아들 느부갓네살II가 BC605년 왕위를 넘겨받은 후 갈그미스전투에서 애굽과 앗수르연합군을 격퇴했습니다. 그는 여세를 몰아 BC601년엔 애굽에 직접 침공했는데 국경 근처 전투에서 뜻 밖에 패배하자, 동부 지중해 연안국가들( 시리아,레바논,이스라엘)이 반기를 드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 때 BC597년 유다왕 여호야김도 느부갓네살에게 반역을 시도했으나 느부갓네살왕이 보낸 군사에 예루살렘도성이 3년동안 포위되었다가 결국 BC587에 함락되어 왕과 대신들과 수많은 유다인들이 바벨론에 사로잡혀갔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죽은 후 그의 아들 에월므로닥이 즉위했는데 그는 아버지와 다른 정책을 시도한다는 구실로 누이 남편 네르글리살에게 살해되고 왕위를 빼앗겼습니다. 네르글리살은 집권 4년 후에 자기 아들 라르시마르둑에게 왕위를 넘겼는데, 당시 군 사령관이던 벨사살이 라르시마르둑은 왕족의 피를 이어받지 못한 평민출신이라는 이유로 반역을 일으켜 왕을 죽이고 미망인이 된 princess Kasšaya 와 결혼한 자기 아버지 나보니두스가 왕위에 오르게 주도했습니다. 나보니두스는 하란에서 달신을 섬기는 여사제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달신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왕이 된 후에도 바벨론 신을 섬기는 대신 달신을 섬겼습니다. 조정 대신들과 국민들이 반대하자 나보니두스는 집권 4년 만에  아들 벨사살을 바벨론의 섭정자로 세우고 자기는 오아시스 지역인 Tayma로 가서 우상숭배에 주력하며 은둔해버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바벨론에서 벨사살이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겁니다. 

벨사살이 즉위한 해가 언제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자료를 보면 나보니두스가 즉위한 후 4년 되던 BC553년에 섭정왕이 되었다고 하는데 어떤 자료를 보면 BC550년으로 나와있기도 합니다. 다니엘 5장에 벨사살의 연회는 그가 죽던 해인 BC539년에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벨사살이 섭정왕이 된 해에 이미 꿈을 통해 바벨론의 종말도 멀지 않다는 걸 알았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BC605년에 바벨론에 잡혀왔으니 벨사살 원년인 BC553년은 다니엘이 포로잡혀온지 48년쯤 경과했고 15세 소년 때 잡혀왔더라도 이젠 63세 노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2. 다니엘의 꿈: 네 짐승 나라
하나님은 꿈을 통해 다니엘에게 바벨론과 그 뒤에 일어날 나라들과 그 나라들의 작정된미래를 알려주셨습니다. 1-8절을 보면. 꿈에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었습니다. 그 후에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차례로 나오는데 모양이 각각 달랐습니다. 참고로 계시록 13장 1절 이하에도 보면 바다에서 용의 하수인인 두 짐승이 등장합니다. 계시록에 대한 내용은 적당한 기회에 계시록 전체를 강해할 때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다니엘서만 살펴봅니다. 첫째는 독수리 날개 있는 사자 같은 짐승, 둘째는 한 쪽을 들고 있는 곰 같은 짐승, 셋째는 새의 날개 넷과 머리가 넷인 표범 같은 짐승, 넷째는 철이에 열 뿔과 그 사이에서 작은 뿔 달린 짐승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이 꿈이 뭘 뜻하는 것인지 몰라 번민했습니다. 전에 느부갓네살왕이 신상에 관한 꿈을 꾸고 그 속 뜻을 알지 못해 괴로웠던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꿈 속에서 하나님의 시종 중에 한 사람에게 그 뜻을 물었는데 그가 가르쳐주었습니다. 17절에 네 짐승은 앞으로 세상에 등장할 네 왕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네 짐승의 환상은 다니엘 2장에서 느부갓네살왕이 꿈에 본 신상을 연상시켜줍니다. 느부갓네살왕의 신상에 대한 꿈을 기억하십니까? 금머리는 바벨론, 은 가슴과 팔은 메대와 바사, 놋의 배와 넓적다리는 헬라 제국, 철로 된 종아리와 철과 진흙으로 된 발은 로마제국이라고 해석되었습니다. 다니엘이 본 네 짐승에 대한 환상은 네 왕이라고 했습니다. 23절을 볼 때 네 왕은 같은 나라의 연속된 네 명의 왕보다는 서로 다른 네 나라의 대표적인 왕을 가리킨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네 왕을 바벨론, 메데와 바사, 헬라 , 로마왕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여기 등장하는 네 짐승들은 각각 특징을 설명하는 말이 나옵니다. 첫째 사자 같은 짐승은 독수리 날개가 있는데 나중에 그게 뽑혔고 또 당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섰다고 돼있습니다. 날개가 뽑혔다는 말은 나라의 주권 혹은 세력이 상실되는 것을 뜻합니다. 둘째 곰 같은 짐승은 매우 공격적인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메데와 바사가 주변 나라를 정복하여 커가는 것을 보여줍니다. 셋째 표범 같은 짐승은 새의 날개 넷, 머리 넷이 있었는데 그것은 여러 나라를 정복해 사방으로 세력을 넓혀 확장해가는 바 알렉산더대왕 이후의 헬라제국을 상징하고 권세를 받았다는 표현에서 정복하는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암시해줍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할 것은 네 번째 짐승인데, 이 짐승은 열 뿔을 가지고 있었고 그 뿔 사이에 또한 작은 뿔이 자라나오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뿌리까지 뽑혀나갔고 작은 뿔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했다는 겁니다. 열 뿔 달린 짐승이 어떤 나라를 가리키는지는 다 알 수 없지만, 역사적으로 로마제국부터 종말에 나타날 적그리스도까지의 모든 나라를 상징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보면 앞서 세 번째까지의 짐승나라들은 역사 가운데 다 지나간 과거의 나라들이었지만 네 번째 짐승나라 중에는 앞으로 등장하게 될 적그리스도의 나라가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나라가 적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인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23절 이하에 네 번째 짐승 나라의 특징이 좀더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전의 바벨론제국, 메데파사제국, 헬라제국, 로마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강해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라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25절을 보면 그 나라는 특히 말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인간 삶의 근본 원리와 규범을 무너뜨리고 성도들을 극심하게 박해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되어 있습니다. 그 권세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나게 될 것입니다. 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기간을 나타낸다고 보기도 하고 권세가 강화되었다가 약화되는 상태를 묘사한다고 보기도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로마시대의 기독교 박해는 이 네 번째 짐승나라의 일부의 특징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때 그리스도인들 중 상당수가 예수를 부인하도록 고문과 처형을 당하고 사자의 밥이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서 하나님이 지켜주셨지만 로마 네로 황제의 박해 때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자밥으로 죽음을 당했던 것입니다. 다니엘의 열 뿔 달린 짐승이야기는 이런 극심한 박해가 로마시대에 끝난 게 아니고 앞으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하기 직전에 이 세상에 로마는 상대가 안될 만큼 더욱 강력한 세력을 가진 적그리스도가 등장해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들을 박해하고 죽음으로 몰고 갈 것이라는 말입니다. 종말에 가까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것을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3.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다니엘은 이 네 짐승에 대한 환상을 볼 때 동시에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대한 환상도 함께 봤습니다. 9절-12절을 보면, 다니엘은 왕좌에 하나님이 앉아 계신 환상을 보았습니다. 수종 드는 천사가 천천이요 만만이 호위하며 심판책을 펴 놓고 심판할 때 그 동안 무소불위로 권세를 휘드르던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권세를 빼앗깁니다. 14절에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여 모든 권세와 영광과 나라가 주어지고 22절에는 성도들이 나라를 얻고 다스립니다.

사단의 권세가 아무리 강해도 결국 승리하는 것은 교회입니다. 우리가 이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사람들이 행한대로 죄를 심판하십니다. 전지한 하나님이 꼭 책에 기록해놔야 그걸 보고 알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생명책이란 표현은 우리에게 우리 행동이 하나님 눈에 책에 기록된 것처럼 확실하게 나중에 판단받게 된다는 걸 깨우쳐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우리가 부인할 수 없도록 우리가 보라고 책에 기록해두시는 것이겠죠.

죄가운데 태어나서 철들면서 더욱 마음과 행동으로 죄를 범하며 살아온 우리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과연 누가 하나님의 법정에서 죄 없이 온전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죽어야 합니까? 그럴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죄를 지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자식이 죽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잖습니까? 하나님 아버지도 우리가 죄로 죽는 걸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죄를 용서받는 길을 만들어 하나님의 법정에서 마귀의 논고를 피할 수 있는 길을 만들었습니다. 그게 예수님의 속죄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 대신에 죄의 벌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고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죄를 없애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을 내것으로 만드는 길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담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을 마음으로 인정하고 입으로 시인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심판 법정에서 죄 없는 의인이라고 선언해주실 것을 약속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자리에서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마귀는 사람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도록 마음을 혼미하게 만듭니다. 논리에 약한 사람들은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대신에 논리적으로 접근해서 이해해볼려다가 넘어집니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말이 되고도 남는데 마귀가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뭔 소린지 못 알아먹게 만듭니다. 지금 여기에도 그런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마귀의 논리를 따라가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우리가 권세와 영광이라는 관점에서 한 번 생각해봅시다. 하나님의 나라를 막연하게 생각하니 세상 욕심을 못버리는 것이지 하나님의 나라가 눈 앞의 현실임을 깨닫고 나면 생각이 달라지고 삶의 모습이 변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성경구절). 무슨 말인지 아시죠?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밀가루 반죽 속에 들어있는 누룩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누룩이 반죽 속에 스며들어 전부 부풀게 만드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삶 속에 스며들면 변화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변화가 일어나지 못하는 건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지 못한 때문이고 누룩이 없기 때문입니다.모세는 공주의 아들로 살면서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기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받고 그리스도를 위해 능욕받는 것을 애굽의 보화보다 귀하여 여겼답니다. 히11: 25,26). 세상의 권세와 영광을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상받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다니엘서의 예언은 다니엘 시대의 성도들을 위한 것인 동시에 종말의 전시대에 속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종말론적 신앙’이라고 표현할 때 종말론적이라는 말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하늘과 땅의 권세를 받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크시 권능으로 짐승 나라 사단을 멸하실 때 예수를 믿고 따르던 성도들이 주와 함께 승리하여 세상을 다스리게 된다는 것을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까지는 박해와 고난을 당하는 게 맞습니다. 예수믿는다고 부모의 구박을 당하고 쫓겨나기도하고 세상 친구들로 왕따를 당하고 헐벗고 배고프고 외로움의 고난을 당하기도합니다.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앞으로 짐승나라 적그리스도의 박해와 고난이 올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짐승나라 적그리스도의 박해와 고난이 아무리 극심한 것이더라도 그 고난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아래 굴복당할 것입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상급을 바라봅시다.

지금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님을 위해 어떤 모양으로든 고난을 당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주님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수고를 다 알고 계십니다. 주의 나라가 임할 때 주를 위해 고난받은 성도들에게 영원한 상급이 주어질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좋습니다. 세상 재물과 영광을 위해선 물불을 안 가리는 욕심꾸러기들 눈엔 이런 영광이 가려있어서 몰라보고 있습니다. 주님의 나라를 위해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사단에게 속아 하늘의 복을 세상 영광과 바꾸지 말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