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사에 감사하라

데살로니가전서5:18

오늘은 감사를 주제로 말씀하겠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교인들에게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범사에’ 이 말이 쉬운성경에는 ‘모든 일’로, NIV엔 in all circumstances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든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상황가운데 있습니까? 더 넓게 올 한 해를 돌아보면 어떻습니까? 각각 다르겠죠? 올해 구원얻어 하나님 자녀된 분 있나요? 대학이나 대학원에 합격한 사람도 있죠?, 전공과정에 들어간 사람도 있고? 자녀를 얻은 사람들도 있고, 직장을 새로 얻은 사람도 있겠네요, 승진이나 재산이 늘어난 분있나요? 신분이 해결된 사람도 있죠? 애인 생긴 사람도 있을까요? 교회도 새로운 예배처소로 옮겼고, 새로운 교인들도 얻었습니다. 지금까지 말한 것들은 감사하기 쉬운 좋은 일들입니다.

반면에 원하는 대학에 못간 사람도 있죠?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짤렸거나 실직한 사람도 있죠? 잘 할려다 불경기를 만나 재산 손실을 입은 사람도 있겠고요, 이별의 상처를 가진 사람도 있겠네요. 직장이나 학업에 곤란한 일이 생긴 사람도 있겠죠. 가정 문제가 생겨 고민하는 사람도 있고, 부부간에 갈등에 빠진 사람도 있고, 심신이 지쳐 우울증에 빠진 사람도 있을 겁니다. 가족과 이별한 사람, 불경기에 환율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범사에 감사하기 힘들겁니다.

1690년 증기기관을 발명해 낸 프랑스 물리학자 "파핀"(Denis Papin)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세 가지로 인해 늘 감사합니다. 첫째는 날마다 주시는 일용할 양식이요, 둘째는 몸의 건강이요,셋째는 영원한 삶을 향한 소망입니다.” 사실 이 세가지 만으로도 우리는 늘 감사하며 살아 마땅한 것입니다.

지금 전세계에서 굶주리는 사람들이 8억4천만 명에 달한답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병원마다 아픈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중환자실엔 언제 숨이 멈출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우리나라 통계인데 실의 빠져 자살하는 사람이 매일 33명, 1년에 1만2047명에 달합니다(2007년 3월 동아일보). 이런 세상에서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굶주리지 않으며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조건은 충분합니다. 잠언 3장 9,10절을 보면,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10 명의 문둥병자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모두 고침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중의 한 사람만 예수님을 찾아와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이 이방인 한 사람 외에 나머지 아홉 명은 어디 있느냐고 아쉬워했습니다. 은혜 받고 모른척한다고 주님이 섭섭하셨나 봅니다. 아마도 나머지 사람들은 깨끗한 몸으로 회복된 것이 너무나 기뻤던 까닭에 가족과 친구에게 가서 기쁨을 나누고 있었을 수도 있었겠죠. 얼마 후에 예수님 생각이 나서 감사 드리러 예수님을 찾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 땐 이미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뒤였답니다.
 
저도 도움 받은 분들에게 제대로 감사드리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갈 때 아는 사모님이 입학금 일부를 도와주셨습니다. 신학생 때 1981,82년에 실습전도사로 주말 마다 모교회에 내려가 중고등부와 청년부를 맡았습니다. 그 때 목사님이 수시로 책 사보라고 봉투를 건네주셨습니다. 가난한 신학생에겐 그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나중에 꼭 은혜 갚아야지 생각했는데 신학교 졸업하고 목사 된 후에도 제대로 감사 표시를 하지 못해 그분들 생각하면 송구스런 마음이 듭니다.

사람은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브라질 아마존 유역 어느 호텔 사장님 이야기입니다. 이 분이 매일같이 바나나를 한 바구니 들고 숲 속을 거닐면서 달려드는 어린 원숭이들에게 하나씩 주었답니다. 곽목사님이 그곳을 방문한 날도 사장님이 그러고 있었습니다. 곽목사님이 보니 원숭이들이 바나나를 줄 때 빼앗듯이 가로채가지고 도망을 가는 겁니다. 매일같이 그렇게 준다는데도 좀 공손하게 받지를 않고 탁 잡아채고는 막 도망을 갑니다. “저것이 왜 저럴까?” 그런 생각이 들어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사장님 말이 "이것이 동물과 사람이 다른 겁니다. 원숭이들은 내가 매일같이 바나나를 이렇게 주어도 고마운 줄 모릅니다. 왜 저렇게 가로채듯 잡아채서 도망가느냐면 불신 때문입니다. 내가 이것을 주고 자기를 붙잡을까 봐 그저 이것만 받아가지고는 도망을 갑니다.”

오래 전 미시간 주에서 풍랑으로 배 한 척이 파손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한 수영선수가 목숨을 걸고 뛰어들어가서 무려 스물 세명이나 구했다고 신문에 났습니다. 오랜 후에 토레이(R.A. Torrey) 목사님이 설교시간에 미시간호 배 파손 사고 때 청년 하나가 23명의 목숨을 건진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 한 노인이 토레이 목사님께 "제가 바로 그 청년입니다" 그랬습니다. 목사님이 반가워 그분을 사무실로 안내하여 차를 나누면서, "당신이 그때 겪었던 일 중에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무엇입니까?"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 노인께서 "(구조받은 사람 중에) 한 사람도 고맙다는 말을 한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카드 한 장도 온 일이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더랍니다.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 이야기를 알고 있죠? 어떤 사람들은 귀신들린 막달라 마리아와 창녀였던 마리아와 동일인이라고 말하는데 사실이 그런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요한복음12장 보면 나사로와 마르다의 누이 마리아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암튼 이 마리아는 과거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신 예수님께 뭔가 감사를 표시하고 싶었던 듯합니다. 그녀는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로 닦아드렸습니다. 이걸 보고 가롯 유다는 비싼 향유를 허비한다고 비난했지만 예수님은 내게 좋은 일을 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그 향유는 자그마치 300 데나리온이 넘었다고 합니다. 1데나리온은 그 당시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불행 중에도 감사하며 산 사람들이 있습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연구를 위한 약품을 들고 기차에 올랐다가 그 약품이 쏟아지는 바람에 기차에 불이 났습니다. 화가 난 차장은 에디슨을 열차 밖으로 밀어냈습니다. 그 때 사고로 에디슨은 귀를 멀게 되었답니다. 에디슨은 듣지 못하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세계 제일의 발명왕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에디슨은 "나는 귀머거리가 된 것을 감사합니다. 딴 소리가 들리지 않으므로 연구에 몰두할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그랬답니다.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주’로 시작하는 찬송가 446장의 찬송시를 쓴 Fanny Jane Crosby(1820-1915)는 평생 8천편이 넘는 찬송시를 썼다는데요. 그녀의 찬송시에는 언제나 ‘감사’와 ‘기쁨’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1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다가 6살 때 감기에 걸려 안질로 발전했는데, 찜질 처치를 잘못한 의사의 실수로 평생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평생 동안 감사와 기쁨을 노래했습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감사할 조건은 보지 못하고 불평꺼리만 찾아내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마음을 바꾸면 누구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우화인데, 처음엔 새들이 날개 때문에 창조주에게 불평했답니다. 창공을 나는 축복인줄 모르고 날개를 붙이고 걸어 다니려니 불편했던 겁니다. 그러자 창조주께서 새들에게 “날개를 힘껏 펼쳐 날아보라” 말했습니다. 그러나 새들은 불평만 하고 날 생각은 안했습니다. 그 때 용감한 독수리 한 마리가 힘껏 날개짓을 하며 하늘 높이 차고 올랐습니다. 그걸 보고서야 다른 새들도 날개를 이용해 하늘을 날기 시작했답니다. ‘고통의 짐’이라고 생각하던 날개가 ‘하늘을 나는 축복’임을 알았답니다.

세상에서 부귀영화 누리는 사람들 너무 부러워할 게 못됩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는 오늘날에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옛날 어느 농가에 개와 돼지가 살았습니다. 돼지는 아무 하는 일도 없이 주인이 가져다 주는 음식으로 배불리 먹고 우리 안에서 시도 때도 없이 잠을 잤습니다. 반면에 개는 밤엔 도적 지키느라 목이 다 쉬고 낮엔 주인 기쁘게 해주느라 꼬리가 휠 지경이었습니다. 개는 돼지 팔자를 부러워하며 한탄했습니다. 주인집 도령이 장가가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돼지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며칠 후에 보니 그 팔자 좋던 돼지는 온데 간데 없고 새끼 돼지가 또 그러고 있는 걸 봤습니다. 그러나 개는 더 이상 돼지가 부럽지 않았습니다. 돼지가 아닌 게 다행이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범사에 감사하며 삽시다. 감사하는 사람도 이유가 있고 불평하는 사람도 이유가 있겠죠. 감사냐 불평이냐 이것은 우리가 처한 환경보다 마음에 달려 있는 겁니다. 똑 같은 상황을 놓고도 감사할 수도 있고 불평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개척교회 다니는 것, 경기가 어려워진 것, 불평할 수도 있고 감사할 수도 있습니다. 전에 해뜨는교회 다니다가 형제교회 나가는 자매가 있는데 개척교회 지긋지긋했는데 큰 교회에서 예배만 참석하고 상관 안하니 얼마나 속편한지 모르겠다고 했답니다. 그런 사람도 있을 겁니다. 반면에 큰 교회는 사람도 많고 재정도 넘쳐서 자기 하나 나오든지 말든지 표도 안나지만 개척교회라 작은 힘이라도 큰 도움이 되고 이것 저것 닥치는 대로 주님을 섬길 수 있으니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쌍둥이 두 자매가 다니던 목사님이 미국가면 꼭 개척교회가서 섬기라고 그랬답니다.

요즘 불경기에 환율마저 올라 한국에서 돈을 보내와 생활하는 사람들은 힘들어 불평하기 쉬울 겁니다. 우리 집에 홈스테이하다 나간 윤모 엄마가 8월 말쯤 미국와서 하는 말이 자기는 참 운도 없다고 그랬어요. 자기가 미국 올 때마다 환율이 올라간다고요. 그러나 달리보면 경기가 어려워져 절약하는 생활을 몸에 익히고 또 어려운 사람들 처지를 이해하고 서로 돌아볼 마음이 생기니 이것은 감사할 일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행복을 느끼게 해줍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복받습니다.

올해로 제가 여러분들과 두 서너번 추수감사주일을 보내게 됩니다. 그 때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는 마음과 정성이 다소 미흡했습니다. 친구에게 주는 생일선물이라도 미리 정성껏 준비해 마음을 담아주면 받는 사람이 감동합니다. 1년에 한 번 드리는 추수감사헌금은 한 해 동안 하나님이 복 주신 대로 미리 정성껏 준비하여 드리기를 바랍니다. 평소 드리던 헌금은 추수감사헌금봉투에 넣어 드리지 말고 그대로 일반헌금으로 하기 바랍니다. 형편이 어려워 추수감사헌금을 못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이 여러분 사정을 다 아시니 마음을 받으실 것입니다. 준비 없이 왔다가 평소드리던 주일헌금을 추수감사헌금으로 내는 일은 없길 바랍니다.

신명기17장 9절부터 17절에 보면, 맥추절과 수장절에 대한 규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0절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칠칠절, 즉 곡식을 거두어 저장한 것을 감사하는 날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 말씀했습니다. 16,17절에는 “무교절, 칠칠절, 초막절 이 세 절기를 지킬 때마다 여호와께 빈손으로 나오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다음 주일 추수감사주일에는 우리도 이와 같이 주신 복을 따라 여러분 힘껏 하나님께 자원하는 감사의 예물을 드리고 좀더 형편이 되는 사람들은 불경기로 힘들어하는 가정들을 위해 사랑의 헌금을 드리면 고맙겠습니다. 잠언 3장 9,10절을 보면,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주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