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씨앗'을 뿌리자

마가복음2:1-5

오늘은 ‘믿음의 씨앗’을 주제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주기를 원하십니다. 씨앗을 뿌려야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처럼 믿음도 씨앗 처럼 뿌려져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늘 본문에 중풍병자가 나옵니다. 그 환자는 병을 고쳐보려고 병원이든 의원이든 찾아 다니며 많은 재물을 허비했지만 아직도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그가 살고 있는 동네 가버나움에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병 고치는 능력이 있다는 걸 믿었지만, 그 믿음만으로는 병이 낫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 봐야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들 것에 누워 예수님 계신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입구부터 사람들로 붐벼 집 안으로 접근하는 것 조차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지붕을 뜯어내고 들것에 누워 있는 환자를 줄로 메달아 예수님 앞에 내려 놨습니다. 이것은 상식을 초월한 행동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틀림없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5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무모한 행동이 예수님께는 믿음으로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11절) 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말씀이 선포되자 중풍병자는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걸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12절)

중풍병자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비상수단을 강구한 일련의 행동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진실로 믿었지만 예수님을 직접 찾아가 만나기 전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병이 낫지 않는 자기 믿음에 실망하지 않고 예수님을 직접 만나 병을 고치겠다는 소원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의 죄를 먼저 용서해주신 후 다리를 고쳐주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주님이 보고 감동하시도록 믿음을 행동으로 옮길 것을 당부합니다. 오랄 로버츠 목사님(조용기 목사님)은 이것을 ‘믿음의 씨앗’을 뿌린다고 표현했습니다. 씨앗 속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씨앗 그대로 있으면 생명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땅에 뿌려져야 싹이 나고 열매가 맺습니다. 믿음 속에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씨앗 형태로 있으면 역사하는 힘이 나타나질 않습니다. 믿음이 행동으로 옮겨져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게 믿음의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진실로 믿습니다. 될 줄로 믿습니다.” 고백하는 것으로 끝낼 때가 많습니다. 앞으로는 여기서 끝내지 말고 믿는 바를 행동으로 보여줘 주님이 감동하여 주안에서 여러분이 바라는 소원이 성취되기를 바랍니다. 교회 부흥을 바라든, 대학입학이나 취업을 바라든, 자녀건강이나 병낫기를 바라든 이 중풍병자처럼 주님 만나서 해결되기를 축원합니다.

뿌려야 거두는 것은 농사일 뿐 아니라 신앙생활에도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두 형제가 있습니다. 형은 씨앗이 아까워 땅에 뿌리질 못했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100배의 소출을 기대하며 아낌 없이 씨앗을 땅에 뿌렸습니다. 때가 되자 씨앗은 자라서 싹이 나고 열매가 맺혀 정말 수십 배의 열매를 거뒀습니다. 반면에 형은 씨앗을 뿌리지 않아 아무것도 얻질 못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뿌려야 할 믿음의 씨앗까지 아껴서는 잘 살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절약하며 열심히 살았는데도 모은 게 없는 사람들은 앞으로는 절약하는 대신에 뿌리는 데 힘쓰며  살기 바랍니다. 그러면 수년 내에 수십 배를 거둘 것입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믿음의 씨앗을 뿌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 믿음 위에 하나님의 믿음을 더하여 응답하신다고 말합니다. 조목사님 자신도 중대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하나님께 자기의 믿음을 보여드리기 위해 큰 부담이 되는 엄청난 액수의 헌금을 드림으로 믿음의 씨앗을 뿌렸답니다(p.177).

1969년에 하나님께서 조목사님께 만 명이 앉아서 예배드릴 수 있는 교회당을 지으라고 하셨답니다. 먼저 장로님들이 모이는 당회에서 상의했더니 모두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600명이 모이는 안수집사님과 의논했는데 그 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할 수 없이 하나님께 그 보라고 그건 처음부터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네가 개인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느냐?” 물었습니다. 답답한 조목사님이 “예수님 저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저는 서른 살이 다 되어서 결혼했습니다. 그 동안 내내 저축해서 겨우 멋진 집을 지어 아내에게 마련해 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집을 팔 수 없어요” 그러자 주님이 “너희 집을 팔아서 믿음으로 내게 가져오너라” 그러더랍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네가 진정 나의 말을 믿고 내 기적의 증인이라면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먼저 내게 기꺼이 내어놓지 않으면 안 되느니라” 이 말을 전해들은 조목사님 사모님은 거의 일주일 잠 못 자고 고민하다가 결국 “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을 거절할 수가 없어요. 집을 하나님께 믿음으로 드리겠어요” 그렇게 교회당을 짓기 전에 먼저 조목사님이 집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불가능하다는 목소리를 잠재우고 지금 세계 최대의 교회건물이 여의도에 세워졌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의 역사를 얻기 위해 뭔가 노력하는 믿음을 보이고 있습니다. 가령 아브라함보고 이삭을 바치라고 하는 거나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는 거나 하나님 앞에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는 거나 하나님도 즐겨내는 자를 사랑한다고 하는 말씀들은 믿음 없이 들으면 실족하기 쉽습니다. 헌금만 믿음의 씨앗을 뿌리는 건 아닙니다. 재능으로 봉사하는 것, 직분을 맡아 교회를 섬기는 것,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도 믿음의 씨앗을 뿌리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주님께 응답 받기 원하는 절박한 필요가 있는 사람들은 믿음의 씨앗을 뿌리기 바랍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믿음의 씨앗을 뿌리고 기도하며 기다리면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를 알게 된다고 말합니다. 성령께서 말씀해주시고 그 말씀에 의지해 확신이 생기는 그런 방식입니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주어지는 약속의 말씀을 받았을 때는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고 말해도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일반적인 말씀 외에 성령께서 개별적으로 주시는 말씀을 받아 그 말씀에 의지하여 큰 믿음이 생길 때 역사가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오래 전 한국에 염해경이라는 여인이 삼각산에서 엄청난 규모의 청년 수련회를 가졌답니다. 이 분이 서 있을 때 사람들이 그 옆에 나가면 성령의 능력으로 쓰러졌답니다. 이 게 소문이 나자 수천 명의 청년들이 삼각산 집회에 모여들었습니다. 마침 수련회 기간 동안 폭우가 내려 계곡이 넘쳤습니다. 뒤 늦게 온 몇몇 청년들이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계곡을 건너려 했지만 이미 물이 넘쳐 건널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세 명의 소녀들이 외쳤습니다. “왜 우리라고 저 물위를 건너지 못하겠어? 베드로 사도는 물위를 걸었는데! 베드로는 믿음으로 물위를 걸었으니 우리도 해 낼 수 있어” 강물이 둑까지 넘쳐 흘렀지만 세 소녀는 무릎 꿇고 기도한 후 일행이 보는 데서 물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물 속에 들어가 몇 걸음 옮기지도 못하고 그들은 급류에 휩쓸려 익사했습니다. 3일 후에 그들의 시체는 계곡에서 가까운 해안에서 발견되었답니다.

그 당시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비기독교 신문에는 [그들의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할 수 없었다], [왜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는가?] 이런 제목이 머릿 기사로 실렸습니다. 기사의 내용 중에는 “이 소녀들은 목회자들의 가르침을 그대로 믿었다. 목사님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과감하게 행동하라고 촉구한다. 이 소녀들은 바로 그 말에 순종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셨는가? 여호와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님이 분명하다 우리는 틀림없이 형식적인 종교에 이제껏 빠져 있었음이 분명하다” 비신자들은 그 결과를 놓고 기독교와 하나님을 비난했지만 교회는 적절한 대답을 내 놓지 못했답니다.

여러분이 현장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뭐라고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대해 조 목사님은 이 소녀들이 성경말씀에 의지하여 실행에 옮겼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뒷받침해줘야 할 아무런 이유는 없다고 말합니다. 베드로의 경우를 보면, 그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일반적인 말씀으로 물위를 걸은 게 아니라는 겁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특별한 말씀을 해주시기를 요청했습니다. “주여 당신이 주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그 순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오라”고 말씀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에게 개인적으로 주신 이 말씀에 의지하여 물위를 걸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의 일반적인 말씀 외에 나에게 개인적으로 약속해주신 말씀에 주님이 책임지고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결코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일반 지식에 기초한 믿음만으로 물위를 걸은 게 아닙니다. 베드로는 그 순간 ‘걸어오라’는 말씀을 직접 받고 그 말씀을 의지하여 물위를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세 소녀들은 개인적인 약속의 말씀이 없이 주관적인 믿음만 가지고 자연질서를 벗어나는 행동을 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하나님의 질서를 무시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베드로가 물위를 걸었던 성경말씀을 주관적으로 자기들에게 적용해서 물위를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몰라서 오해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식으로 성경을 적용할 때가 많습니다. 만일 세 소녀들이 물을 건너기 전 기도할 때 성령께서 물을 건너라고 그들에게 개인적으로 말씀하셨다면 그들도 물위를 걸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약속이 없었다면 믿음을 앞세워 무모한 행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좀더 말씀드릴 생각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자녀라도 소원 성취가 똑 같은 게 아닙니다. 목회자들도 목회가 다 같지 않습니다. 1년 동안 어떤 분은 크게 성장하고 어떤 분은 오히려 실패합니다. 여러분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밤새 수고하고도 새벽에 빈 그물 들고 올라오는 인생이라면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오늘 제가 소원성취하는 두 가지 원리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는 믿음의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둘째는 개인적으로 주시는 말씀을 붙잡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두 원리를 잘 깨닫고 적용하여 앞으로 여러분 삶이 형통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