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선행을 격려하자

히브리서10:24

좋은 교회 공동체는 사랑의 교제 특히 물질의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서로 돌아보며 물질을 나누며 살기를 바랍니다. 교인들이 하나님의 가족으로 서로 살펴주며 재물을 나누어 쓰라는 것은 예수님의 당부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교회가 처음 시작될 때 제자들은 이것을 잘 따랐습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은 사랑과 선행 즉 물질의 나눔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 6:38)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려는 사람은 누구나 이 말씀을 마음에 두고 실천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신앙은 말이 아니라 삶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는 지금보다 경제 사정이 더 어려웠습니다. 로마의 식민지배 아래 살면서 먹고 살기도 힘들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끼니도 해결하기 어려운 고아, 과부,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교우들을 모른척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 사도들에게 헌금하고 교회는 그것을 각 사람들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줬습니다(행2:44,45). 그러자 교회에 나오는 사람 중에는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점차 없어졌다고 합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먹는 것, 입는 것, 보금자리 모두 거저 받으며컸습니다. 올해 우리 교회에 다섯 어린이가(정유지, 신현준, 전채원, 박단아, 박노아) 출생했습니다. 여러분이 저절로 자란 것처럼 생각되면 이 어린이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살펴보세요. 먹고 입고 필요한 걸 부모든 친척이든 누군가로부터 받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자랐습니다. 받고 자란 사람으로서 베푸는 건 빗 갚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히브리서 10장 24절은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 믿는 우리들이 피차 서로 돌아보고 사랑하며 선을 베풀도록 격려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이 말씀에 의지해서 여러분에게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려고 합니다. 셀모임에서 서로 사정을 들어보고 형편이 어렵게 보이는 지체들이 있으면 말씀으로 위로해주고 물질도 나눠 쓰기를 바랍니다. 육신의 가족은 물론 하나님의 가족도 챙깁시다. 지금 배풀면 언젠간 또 받게 됩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물질을 나누어 주는 것은 하나님 백성의 생활방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년 마다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내서 자기 성읍에 거하는 레위인들의 생활을 돕도록 하셨습니다(신14:22,27). 이스라엘은 야곱의 아들들로 이루어진 12지파 연합 공동체였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셋째 아들 레위의 후손들에게 성막(회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했습니다. 가나안을 정복하고 땅을 땅을 분배해 줄 때도 레위지파에겐 땅을 주지 않고 나머지 11지파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들에게 주어 식량을 삼았습니다(민18:21.23). 그리고 매 삼년 끝에 그해 소산의 십분의 일은 성읍 공공장소에 저축하여 레위인은 물론, 고아, 과부, 나그네들을 도와주도록 지시했습니다. 이것을 잘 지켜야 하나님께서 우리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신14:28,29).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일조를 내도록 하신 목적에 비춰 볼 때, 십일조는 교회에서 일하는 사역자들과 어려운 교인들의 생활을 지원하는데 우선적으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요즘은 교회에서 십일조와 일반헌금 구분 없이 총수입으로 잡아 지출합니다. 십일조 수입총액이 목회자 사례비를 넘더라도 교인들 생활지원이나 선교 등에 지출하지 않고 교회 일반 경비로 사용합니다. 십일조 헌금으로 교회당도 건축하고 교회 운영비도 쓰고 그렇게 합니다. 교회당을 신축 혹은 증축하기 원하면 교인들이 별도의 건축헌금을 드려 재정을 마련하는 게 정도지만, 그러면 헌금 부담이 늘어나 좋아할 교인들이 별로 없습니다. 재정부도(목사님들?) 대부분 교인들 분위기를 고려해서 십일조를 포함한 교회 전체 수입 중에서 건축예산을 편성해 집행하는 쪽을 택합니다. 십일조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면서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담임목사 외에 부목사, 전도사, 그 외에 교회에서 일하며 수입을 얻는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은 일반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과 비교해서 훨씬 적게 받습니다. 재정이 넉넉치 못한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교회가 사역자나 어려운 교인들을 돕는 데 좀 더 마음을 써야할 듯 보입니다.

1월부터 11월 말까지 십일조 수입은 $36,876.31 였습니다. 올해 미국 노동청 자료를 보니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사역자의 초임 연봉이 38,000~40,000으로 나와 있습니다. 이 기준으로 보면 십일조 수입이 아직은 초임 목회자 한 사람 사례비에도 못 미칩니다. 십일조 항목 외의 모든 항목수입이 11월 말까지 $28,710.05입니다. 렌트비, 식비, 수양회경비, 목회활동비, 복사기리스 기타 운영비 등 일반지출이 $35,000을 넘습니다. 어려운 교우들 사정을 들으면 돕고 싶지만 십일조든 일반헌금이든 여유분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십일조의 십일조, 곧 수입의 100분의 1일 사랑의 헌금으로 드려 어려운 지체들과 나누자고 한 것입니다. 저는 1월부터 11월까지 십일조 외에, 수입 중에 100분의 1로 사랑의 헌금을 드리고 임대료 10분의 1을 감당하려는 마음에서 매월 100$ 건축헌금을 드렸습니다. 내년에는 수입이 많든 적든 저를 따라 하는 분들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라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인색해지기 쉽습니다. 요즘 구세군 자선남비에 기부하는 사람들이 작년에 비해 많이 줄어들어 모금하는 사람들이 안타까워합니다. 그 동안 저축해 놓은 것을 쓰면서 견디는 분들은 그래도 낫지만 돈 나올 곳이 정말 없는 분들은 참 딱합니다. 그런 분들에겐 교회가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교회 가족을 돌아보고 사랑하는 마음의 싹이 돋아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중엔 개인적으로 교우를 돕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돕는 것도 좋지만, 교회에 헌금하고 주님 이름으로 물질을 나누는 것이 받는 받는 사람을 더 평안하게 해줄 수 있습니다.

바울은 부유할 때나 가난할 때나 자신의 경제적 형편에 맞추어 사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비결이 따로 있겠습니까? 가능한 지출을 줄이고 절약하는 것이죠. 내가 대학 다닐 때 대부분 신학생들이 지금 여러분 보다 훨씬 어려웠습니다. 기숙사 생활하는 학생들도 식비를 아껴 책을 사고, 방을 하나 얻어 여럿이 생활하고 그랬습니다. 혼자 아파트를 얻어 지낸다는 건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내가 학생 때 우리 신학생들 부모님보다 여러분 부모님의 경제적 형편이 좋은거겠죠. 돈을 모으기 위해서라기보다 나보다 어려운 이웃과 나누며 살기 위해 조금씩 절약하는 마음을 갖으면 어떻겠습니까? 

여러분들이 밖에서 모여 밥먹고 놀러다니거나 쇼핑하면서 쓰는 돈의 5%만 절약해도 사랑의 나눔에 동참할 수 있을 것입니다.평소 지출하던 것을 조금 아끼고 혹은 나중에 쓰기 위해 모아 놓은 것 중에 100분의 1이라도 교회 가족들과 나누며 삽시다. 나눔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면서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랍니다(요일4:20). 나중에 돈을 많이 벌어서 돕겠다는 생각도 이런 저런 이유로 실천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그냥 지금 매달 5불이든 10불이든 사랑의 헌금으로 나누면 그게 모아져서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년 말이 되면 한 해 동안 선행한 배푼 사람들의 이야기가 신문에 실리고 방송에서 듣게 됩니다. 기부천사로 불리는 가수 김장훈씨는 지금까지 십억이 넘게 어려운 사람들에게 후원해왔다고 합니다. 김장훈의 선행에 감동받은 성룡이 얼마 전엔 만 불을 보냈는데 그 돈을 서해안 살리기 운동하면서 보령시에 전달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문근영씨도  최근 6년 동안 소아암환자나 장학금 등으로 8억 원이 넘는 돈을 내 놓았답니다.  이 사람들 외에도 어려운 이웃을 도와 준 사례가 여럿 있습니다. 이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나눔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돈보다 서로 도우며 살려는 마음입니다. 거액의 자선은 돈이 없이는 불가능하지만 작은 나눔은 마음만 있다면 당장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불신자들도 어려운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는데 예수 믿는 우리들이 가족이나 이웃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불신자들보다 못한 사람이 될 겁니다. 야고보 사도는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말로는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면서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합니다(약2:15,16).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 (행20:35)고 하셨습니다. 서로 돌아보고 물질을 나누며 살면 주는 사람이 먼저 복을 받습니다. 그 동안 사랑의 나눔에 동참해준 교우들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나눔에 동참하는 교인들이 많아질수록 늘푸른교회는 사랑이 넘치는 교회로 변할 것입니다. 늘푸른교회 교우 여러분, 셀모임이나 GBS에서 서로 형편을 살펴보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넉넉한 마음으로 년 말을 보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