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야 주님을 따라갈 수 있다

마태복음4:18-22

오늘은 “버려야 주님을 따라갈 수 있다”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할 사람들을 찾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육신의 귀로 들려오는 게 아니고 성령의 감동을 통해 마음으로 들려옵니다.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듣다가 주님을 위해 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주님이 부르시는 것이니 세상에 억매이지 말고 버려두고 주님을 따라 나서기 바랍니다. 먼저 본문의 말씀을 봅시다

1. 주님은 지금도 일꾼을 찾습니다.
때는 예수님이 공적인 활동을 시작한 직후입니다. 어느날 갈릴리 해변으로 나가 시몬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가 그물로 고기잡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불렀습니다. 신기하게 두 형제는 머뭇거리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조금 더 가서 아버지와 함께 배위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두 청년을 만났습니다. 야고보와 요한 형제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들도 불렀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배와 아버지를 놔 두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주님이 일꾼을 부르실 때 언제 어디에 쓸 것인지 계획이 다 있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따라가면 됩니다. 사도행전 9장을 보면, 부활하신 주님이 다메섹으로 가는 사울을 찾아갔습니다. 주님은 사울을 소아시아와 로마까지 보내 이방인들과 임금 앞에 세워 복음을 전하는 일꾼으로 쓸 계획이었습니다(행9:15). 그러나 사울은 그 당시는 물론 10년이 흐를 때까지 무슨 일을 해야 할 지 몰랐습니다. 무조건 나가 예수님을 전하면 될 줄 알았는데 제자들도 멀리하고 유대인들의 살해 위협에 직면해 고향 다소로 피신했습니다. 그후 10년도 더 흘러서 바나바의 인도로 안디옥교회에 와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항상 일꾼이 부족합니다. 주님께서 “추수할 것은 많은 데 일꾼이 적으니 아버지께 일꾼을 보내달라고 간구하라”(마9:37,38)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겨울 수양회 주제가 ‘소명’이었습니다. 소명에 대해 고민 좀 했습니까? 인생이 걸린 문제니 고민도 해야 합니다. 고민하며 기도해야 길이 보이잖습니까? 그런데 언제까지 고민만 하지는 마세요. 적당한 때 결단하기 바랍니다. 소명을 발견하기 위해 좋은 방법은 은사와 재능을 살펴보고 어느 대목에서 가슴이 뛰는가 봐야 합니다. 선교 이야기만 나오면 가슴이 뛰고 내 일이라고 느껴지면 선교사 소명이 있는 겁니다. 철없이 방황하는 교인들을 보면 불쌍하고 기도가 절로 나오면 목자나 목회자의 소명이 있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먼저 인턴 목자로 자원해 목장을 맡아 양을 돌보며 주님 뜻대로 살기 바랍니다.

올해 목장이 20개 정도로 확장되길 바랍니다. 현재 13개의 목장이 있습니다. 장년 목자들도 청년목장을 인도하고 있는데, 청년 목자들이 더 많이 준비되어 결혼한 장년들은 앞으로는 장년목장을 부흥시키는데 더 집중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전에는 최소한 1년 정도 지난 후에 목자로 임명했습니다.  1년 정도는 돼야 내 교회라는 의식이 생겨 헌신할 준비가 되고 교우들과도 관계가 발전되어 목자로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단기 체류하는 청년들이 많아 신앙경력이 있는 청년들은 새가족 과정만 마치면 인턴목자로 세워 6개월 지난 후부터는 목자로 섬기게 할 생각입니다.

2. 주님이 부르실 때 따라 나서야 쓸 수 있습니다.
주님이 부르실 때 따라 나서야 주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마음 속으로 아무리 주님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외쳐도 몸을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쓰임받기 어렵습니다. 주님께 쓰임받는데 능력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불렀을 때 순종하고 따라와야 쓸 수 있겠죠? 주님께서 교회 일꾼은 담임목사를 통해서 부르십니다. 에베소서 4장 11,12절에 그렇다고 나와 있으니 직접 읽어보세요. 목사인 제가 집사로 부르고 목자로 부를 때 순종하고 따라오면 쓰임받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런 이유로 머뭇거리면 쓸 수 없습니다. 특별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억지로 일을 맡기지는 않습니다. 12제자들도 모두 순종하고 따라온 사람들 아닙니까?

전에는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이 참 대단하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생업도 버리고 아버지도 버리고 그랬잖습니까? 그런데 최근에 이 구절을 묵상하면서 고기잡이나 가족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른 게 그렇게 어렵고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돈벌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영광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 고기잡이 포기한 게 그렇게 대단한 것일까요? 다 큰 청년이 언제까지 아버지 옆에 붙어 있으면서 그물이나 깊는다고 장래 희망이 보입니까? 사실 자라서 청년이 되면 부모 품을 떠나 자기 인생을 사는 거잖습니까? 다 큰 자녀들이 독립할 생각은 안하고 부모에 기대서 살려고 하는 게 더 문제죠. 그들은 모두 예수님에게서 뭔가 희망을 찾고 싶었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주님이 부르실 때 주저하지 않고 즉시 따라 나선 것은 개념없는 청년들이라 철없어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인생 고민은 그 전에 했을 것 같습니다. 30에 가까운 청년 중에 고민없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시대가 다르니 생활모습은 다랐겠지만 먹고 사는 일부터 장래에 대한 희망을 놓고 아무 생각이 없었겠습니까? 오히려 옛날 사람들이 조숙한 경향이 있잖습니까? 베드로나 안드레, 야고보나 요한 모두 나름 꿈을 가질 청년인데 식민지 백성으로 태어나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가 잡으며 살자니 답답했을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이 그들을 불러 줬으니 구원얻은 기분이었겠죠.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라고 불러주시면 솔찍히 황송하죠.

3. 작은 일부터 충성해야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일단 따라나서 작을 일부터 하는 사람이 나중에 큰 일을 합니다. 목자를 잘 따라다니는 사람이 나중에 목자가 됩니다. 여호수아가 모세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는데, 여호수아는 모세의 수종자였습니다. 말없이 저를 따라다니며 돕는 사람이 나중에 제 뒤를 잊게 될 것입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을 불러다 후임목사를 세우는 건 아니죠. 따라다니면서 하나씩 보고 배우고 실습하는 게 진짜 목회훈련입니다. 신학교 3년 나오는 것보다 낫습니다.

목회자로 소명받은 사람도 먼저 평신도 목자로서 목장 사역부터 하면서 하나님이 쓰시는 확신을 얻고 사역의 열매로 검증해보는 게 유익합니다. 예를 들어 사역자로 소명받았다고 말하는 형제가 있다고 합시다. 목자가 되어 목장을 돌보기 시작한지 1년이 다 돼갑니다. 그러나 목장의 양떼가 별로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있는 양들도 믿음이 자라지 않아 주일에 돌아가며 빠집니다. 양들에게서 이런 저런 불평만 들려옵니다. 그런 불평에 대해 목자로서 잘 대처하지 못하고 같이 불평합니다. 이런 목자가 전도사나 목사가 되면 더 잘 할까요? 선교사로 해외에 나가면 선교해서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까?

반면에 목회자로 소명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목장을 열심히 키우는 자매가 있습니다. 1년도 안돼 새가족이 늘어나 벌써 목장을 둘로 나눠야 할 정도가 됐습니다. 몇 개의 목장을 돌보며 인턴 목자들을 훈련시키고 또 문제가 있는 양들을 만나 상담하고 위로하느라 주말 시간 대부분을 보냅니다. 사역의 열매로 보면 그 자매야 말로 주님이 쓰시는 일꾼입니다.

집사, 권사, 장로, 목자도 소명받아 봉사하는 직분입니다. 이번에 서리집사님으로 몇 분이 결정되었습니다. 서리 집사로 봉사하는 동안 디모데전서 3장 8-13절의 지침을 따라 집사의 직분을 맡기에 합당하도록 준비하기를 당부드립니다. 준비가 안된 상태로 집사 안수를 받게 되면 당사자도 교회도 힘들어집니다. 안수집사님이 주일예배에 자주 빠지고 십일조생활을 하지 않아 교인들의 비난을 듣게 되면 어떡합니까? 서리집사로 봉사하는 동안 신앙훈련을 쌓아 모범적인 교인이 되도록 힘쓰면 좋을 것입니다.

집사님들이 할 일은 교회에서 구제의 일로부터, 재정, 행정, 봉사의 일을 담당합니다. 스데반과 빌립처럼 전도에도 힘써야 합니다. 집사님들은 가정, 교회, 그리고 대인관계에서 비난받지 않도록 자신을 가다듬고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교회를 섬기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서리집사직은 바울사도의 조언을 따라 준비하고 시험해보는 기간입니다. 서리 집사로 먼저 3년 동안 교회를 잘 섬긴 분들 중에서 전체 교인들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어 안수집사로 세우고, 교인 100명당 1명 비율로 안수집사 중에서 장로로 추대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현재 14명의 목자와 4명의 인턴목자, 13개의 셀이 세워졌습니다. 지금 목자들은 지난 해 8월에 12제자 훈련에 자원한 분들입니다. G12 목장 운영원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양들에게 자신이 신뢰하고 따르기 원하는 목자에게 갈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양이 목자를 택하는 건 성경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예외적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지금은 전도한 사람이 속한 목장에 편성되어 그 목자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최근에 새로나온 분들을 위해 G12 목장운영원리에 대해 조만간 한 번 더 말씀드릴 겁니다.

셀목회 성공은 평신도 목자가 얼마나 잘 준비되었는가에 달려있습니다. 목회자 수준의 목자가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러니까 셀교회에선 전도사, 목사할 영적 수준의 사람들이 목자를 하는 겁니다. 셀 교회는 목자만 있으면 교회는 돌아갑니다. 반대로 다 있어도 목자가 없으면 셀 목회는 실패합니다. 목자할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 집사, 장로, 전도사, 목사되려고 하면 문젭니다. 목자 사역의 연장선에서 집사도 나오고 장로도 나오고 목사도 나와야죠.

교회사역은 양을 돌보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에 집중하는 교회가 부흥하고 은혜가 있습니다. 제 생각엔 목자 중에서 소명과 은사에 따라 집사도 되고, 장로되 되고, 전도사나 목사로 세워지는 게 맞습니다. 다시 말해 집사목자, 권사목자, 장로목자, 전도사목자, 목사목자가 돼서 일차적으로는 양을 돌보고 이차적으로 행정의 일을 하면 좋을 것입니다.

장로가 되면 목자의 일은 손을 놓고 재정관리나 행정을 담당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장로님이 평신도 중에 가장 성숙한 그리스도인 아닙니까? 그러면 나이든 장년부 양을 돌봐야죠. 부모가 자식을 낳고 양육은 고아원에 맡겨두고 자기들은 무슨 집안 청소니 가계부 정리니 은행다니는 일이니 재산증식이니 이런 일에만 골몰하고 있다면 그게 어디 제대로 된 부모입니까? 부모는 집안 잡무보다 자식키우는데 정성을 다해야죠.

미리 말씀드리지만 우리교회에서는 평신도 목자 중에서 집사도, 장로도, 전도사도, 목사도 세워질것입니다. 신학교 출신이라고 그 분을 전도사로 세워줘야할 의무는 없습니다. 반면에 목장사역에서 주님의 쓰임받아 여러 개의 목장을 증식시키고 수십명을 전도해서 교회를 부흥시키는 평신도 목자가 있다면, 그런 분을 전도사, 혹은 목사로 세워 교회를 섬기게 해야죠. 이것이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부흥한 원리였습니다. 구역장, 교구장, 교구담당 목회자를 세워 각 구역, 교구를 책임지고 목회하게 했습니다. 구역에서부터 충성되게 일하며 부흥시킨 평신도 사역자들이 구역장에서 교구장으로, 교구장에서 교구 담당 목회자가 되어 나중에 신학을 공부한 분들도 많았습니다.

2010년 1월 현재, 새가족부와 어린이 목장까지 포함해 목장이 13개, 목자는 14명, 여기에 인턴목자가 4명입니다. 올해 20개의 목장으로 증식시키는 게 목표입니다. 현재 김국용 목장, 김성암목장은 숫자가 늘어 둘로 나누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문제는 목자가 10여명 준비되어야 합니다. 자매들이 적어도 5명이상 인턴 목자로 자원하면 좋겠습니다. 청년대학생이 100명이 넘어서고 재정능력이 되면 청년부 담당 사역자를 세우고 저는 장년 목자들과 장년부 부흥에 주력할 생각입니다. 장년부가 성장하지 않으면 청년 유학생 중심으로는 재정적으로 자립하기 어렵습니다. 2013년 말 쯤엔 이렇게 목회방향을 바꿔 제2의 도약을 시도할 수 있도록 집사님과 목자님들 모두 분발합시다.

4. 버려야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며 충성하기 위해서는 나를 붙잡고 얽매고 있는 것들을 던져버려야 합니다. 던져버린다는 것이 어떤 사람에겐 세속적 직업이나 야망을 모두 버리고 풀타임사역자가 되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무엇을 위해 인생을 걸고 목숨을 걸고 갈 것인지 결단하라는 말입니다.

솔찍히 우리는 세상을 너무 사랑합니다. 세상에서 성공을 너무 원합니다. 세상에서 성공이 곧 인생의 승리로 연결됩니다. 세상에서 실패하고 패배자가 되는 것을 너무 두려워합니다. 똑똑한 사람일 수록 이런 경향이 강합니다. 부모가 잘난 분들일수록 자녀들에게 세상의 성공을 강조합니다. 세상을 중시하는 마음과 태도가 주님을 따르는 걸 방해합니다. 주님을 따르면 세상에서 성공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교회 일에 너무 빠지면 학교공부나 직장일에 소홀하게 되어 손해라고 생각합니다.

목자 여러분들은 이런 부담이 없습니까? 목자로 충성하려면 시간을 빼앗기게 됩니다. 잠자는 시간 빼고 나머지 모든 시간 공부하고 일하는데 써도 늘 부족합니다. 주일에 교회가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목자일까지 할려면 공부나 일을 포기하지 않고는 안될 거 같습니다. 공부에 별 관심없는 성암형제나 국용형제면 몰라도 나는 못한다. 이래서 세상 욕심많은 똑똑한 사람들은 주님을 따르지 않습니다. 주님을 따르려면 먼저 뭔가 내 던져야 합니다.

베드로 형제와 요한 형제는 그물을 던져버리고, 배와 아버지를 뒤로 하고 주님을 따라나섰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이 고기잡아 돈버는 것보다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는 것보다 더 가치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주님 앞에 서보기 전까지는 누가 잘 했는지 증명해 보일 수 없습니다.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한 사람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아프리카, 몽골 등지로 선교사로 떠났습니다. 함께 공부한 친구 중엔 명문 대학 교수가 되고 연구업적으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하버드 박사가 몽골 선교사라니 아깝다고 합니다. 배운 학문을 가지고 더 효과적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길이 있을 텐데 아쉽다고 말하는 교인도 있습니다. 뭘로 이렇게 평가할 수 있습니까?
 
하버드대학 박사를 버리지 않았다면 그 선교사님은 주님을 따라가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세상에 주님을 따르고 주님의 일을 하는 것보다 더 가치있고 아까운게 있는 사람은 주님을 따라가지 못할 것입니다. 부자 청년의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이 청년은 나름 철저하게 계명을 지켜온 사람이었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한게 있습니까?”(마19:20) 물을 정도였습니다. 이 청년에겐 물려받은 재산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청년에게 내가 온전해 지려면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 주고 나를 따르라”(21절)고 했습니다. 재물을 던져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청년은 재물이 많은 걸 근심하며 주님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주님보다 소중한 것이 많은 사람은 주님을 따르기 어렵습니다. 주님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와 형제와 처자를 미워해야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의 뜻을 아십니까? 주님을 따라가는데 방해되는 게 있으면 다 던져버리세요. 막가파 목사같나요? 주님을 위해 살려는데 부모님이 방해하면 부모님도 버려두고 주님을 따르세요. 애인이 걸림돌이 되면 그냥 버려두고 주님을 따라가세요. 야망이 걸림돌이 되면 그 야망도 오늘 버리세요. 다 버릴 각오로 나가면 감히 누가 이런 사람을 막지 못합니다. 막았다는 버림당하기 때문이죠. 정말입니다. 부모도 이런 자식은 겁납니다.

전도서에는 해 아래서 행해지는 모든 일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다 헛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 헛된 것에 인생을 걸고 목숨을 걸고 살아갑니다. 물론 당사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나름대로 인생을 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겠죠: 배우자, 애인, 자녀, 부모형제, 가문, 직장, 조국과 민족, 학문적 성취, 인권, 민주주의, 자유와 평등, 권력, 돈, 개인적 야망-삼성맨, 대우맨, 등.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몰두하는 것이 주님을 따르는 것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까? 아니면 던져 버리고 주님이 부르실 때 따라나서기 바랍니다. 천국은 몸과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