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으로 거듭나야 천국갈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3:1-7

오늘은 거듭남을 주제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사람은 생리적 관점에서 보면 남자와 여자로 구분됩니다. 그러나 영적인 관점에서 보면 ‘육으로 난 사람’과 ‘영으로 난 사람’으로 나뉩니다. 사람은 누구든 부모를 통해 한 번 태어납니다. 이것은 육으로 난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믿고 거듭나면 두번 태어난 사람이 됩니다. 두번 태어나야 진짜 그리스도인입니다.

가짜가 더 진짜 같아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가짜 명품 가방을  AS요구해 매장에서 보상까지 받아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가찌가 얼마나 진품처럼 보였으면 파는 사람도 속았겠습니까? 명품 가방이나 시계 중에 소위 ‘짝퉁’이 많은데, 부피는 작아도 비싸고 또 수요도 많기 때문이겠죠.

오늘 진짜, 가짜를 강조하는 것은 여러분 신앙을 판단하고 비난하려는 게 아닙니다. 간혹 어떤복음주의자들은 자기들처럼 믿고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은 진짜고 자기 편에 속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다 잘못된 것처럼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기들을 의롭게 여겼던 바리새인같이 잘못된 태도입니다. 제 의도는 여러분이 거짓 신앙을 버리고 진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도와주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짝퉁 그리스도인인지 깨닫고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방문한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고 하셨습니다. 니고데모와의 대화 전체를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거듭난다’는 말을 단지 비유로 사용하신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분명한 현상과 실체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오해하지 말라고 예수님은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더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3:6,7)고 덧붙여 설명해주셨습니다.  ‘육으로 난 것’과 ‘영으로 난 것’은 서로 다르게 구분되는 말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부모를 통해 세상에 태어난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저도 육으로 났고 여러분도 육으로 났습니다. 세상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육으로 태어납니다. 지금도 어린이들이 태어나고 있으니 ‘육으로 나는 것’이 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으로 나는 것’은 눈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체험하기 전까진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거듭나는 체험을 한 사람은 영으로 날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어떤 특징이 있는지 그냥 알게 됩니다.

사람이 영적 지식을 얻는 방법은 크게 세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성을 통해 영적 지식을 습득하는 것입니다. 자연대상을 관찰하여 얻은 자료와 정보를 근거로 추론하여 하나님과 영적인 일들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창조과학회가 주로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믿음을 통해 얻는 영적인 지식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 하나님이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인간의 인식능력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알 수 없기 때문에 부정하든지 믿음으로 받아들이든지 선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믿고 받아들이면 몰랐던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셋째는 영적 체험을 통해 영적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의 경우, 그 사람 속에 거하는 성령께서 인간의 영혼이 좀더 높은 영적 실재에 접촉할 수 있도록 이끌어줍니다. 체험으로 하나님과 영적 세계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과 함께 변화산에 오른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하는 것과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수백년 전에 세상을 떠난 사람들 아닙니까? 이런 체험이 세 제자들에게 부분적이긴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영적 실제를 알게 해주었을 것입니다. 스데반, 바울, 밧모섬의 요한 등도 다 이런 영적 체험을 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짜리에서 공부한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짝퉁이 있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상태로 그리스도인이 된 교인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불신자들은 괜찮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믿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될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문제는 거듭나지 않은 상태로 그리스도인으로 간주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분들 중에는 이미 구원간증도 하고, 직분도 얻고, 목자로 활동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교인 중에도 진짜과 가짜를 구분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전에 나도 진짜인가 가짜인가 생각하며 헷갈릴 때가 있었습니다. 내 의지로 예수믿고 따르려고 했을 때 그런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헷갈려서 열 번인가 열 한 번인가를 영접기도했답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해주신다고 했으니 헷갈리고 불안할 때마다 그 말씀 생각하며 영접기도를 한 것이죠. 저도 나중에 깨달았는데, 그런다고 될 일은 아니죠. 영접기도보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두번 태어나지 못한 사람이 영접기도 10번 한다고 진짜가 되는 게 아니죠.

그러면 거듭났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영접기도나 고백이나 간증도 확실한 게 아니라면 뭘 보면 될까요? 말로 고백하는 것보다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어느 정도는 구별이 가능합니다. 두 번 태어난 사람의 특징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유익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고통받는 것도 감사하며 주님을 섬깁니다. 교회가 주님의 몸이기 때문에 교회를 위해 일합니다. 나에게 이익인가 아닌가, 편한가 고생인가, 나를 기쁘고 행복하게 해주는가 이런 걸 따져보는 마음이 있다면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성경의 증거이기도 하고 제가 경험해보니 그랬습니다.

세상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들은 환란과 핍박이 오면 예수님과 거리를 둡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군중들도 그들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자 대부분 떠나갔습니다. 그것을 보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도 나를 떠나려느냐?” 물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는데 우리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대답했는데, 이래야죠. 죽어도 안떠납니다. 그러다 실수하긴 했지만 끝까지 주님 곁을 지키다 순교했잖습니까?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에게 핍박과 환란과 고난이 따르는 것은 정해진 수순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할 것이다”(요16:33)고 경고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 때문에 가정이나 학교나 직장에서 무시당하고 손해보고 고난받아야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진짜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견뎌내고 가짜는 도망가든지 타협하든지 그런 식으로 살 겁니다. 예수 믿는다고 칭찬듣고 격려받는 것은 교회에서 뿐입니다.

‘한 번 태어난 자’가 ‘두 번 태어난 자’를 핍박하는 것은 가인과 아벨부터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영적 싸움입니다. 성경을 공부한 사람은 누구나 알겠지만, 한 번 태어난 자와 두 번 태어난 자 사이에는 휴전이 없는 싸움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두 번 태어난 사람이 더 이상 세상에 속해 한 번 태어난 사람들과 친구처럼 지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15:19)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나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다”(갈4:29)고 말했습니다.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낸 사람들도 한 사람이 예수 믿게 되면 멀어집니다. 속한 영적 세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고 나면 삶의 목적과 도덕적 기준 이런 것도 달라지지만 근본적으로는 영이 달라집니다. 하나는 불순종의 자녀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의 지배를 받고 다른 하나는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성령과 귀신은 결코 화합될 수 없습니다. 종교간의 화해와 교류를 강조하는 목사님들이 있습니다. 목사님이 석가탄신일에 절에가서 덕담하고, 스님이 크리스마스에 교회나와 축사합니다. 세상 사람들 눈에는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이 좋게 보일 것입니다. 진짜와 가짜가 섞여서 한 통속이 될 때 가짜는 손해 볼 게 없습니다. 진짜만 피해 입습니다. 맑은 물과 흙탕물이 섞이면 결과는 흙탕물이 됩니다. 진리를 오염시키는 화해는 마귀의 속임수라고 생각됩니다.

전에 우리 교회 나온 청년들 중에도 육에 속한 사람과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 구분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적으로 당연한 것인데 왜 불편하게 느낄까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 자신들이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혹시 오늘도 그런 사람이 있으면 불편하게 생각하지 말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좋을 것입니다. 거듭난 교인인지 아닌지 일부러 구분하지 않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을 더 이상 교회에서 하지 못하게 한다는 교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왜 교회에서 이런 현상이 생깁니까? 그것은 거듭나지 못한 교인들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교회직분 맡고 교사나 목자나 목회자가 되어 교회를 운영하고 가르치게 되면서 생긴 비극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가르치셨는데, 그런 주장을 하지 말라는 게 말이 됩니까? 이것은 성경과 다른 복음을 주장하는 이단입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누구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또 예수님을 믿을 마음도 안생깁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영적 지식을 얻고 또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따라갈 수 있습니다.

아담의 생명만으로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의지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교회 생활에 익숙해져 그리스도인이 다 된 것처럼 보여도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예수의 영이 없기 때문에 육에 속한 사람의 생각과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생활을 꼭 육신적으로 합니다. 칭찬해주지 않으면 토라지고, 교인들을 끌어 들여 자기 세력을 만들어 분쟁을 일으켜 교회를 분열시킵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들의 체면과 자존심을 더 내세워 목회자들을 핍박합니다. 목회자들도 쉽게 가려고 방치한 대가를 치루는 셈이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를 보면, 교회 나오는 이유가 참 다양합니다. 대부분 예수 믿고 천국가려고 교회다니지만, 사교의 목적으로 교회나오는 사람도 있고,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교회나오는 사람도 있고, 가정의 평화를 위해 따라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른 목적으로 교회나오는 사람은 그렇더라도 예수 믿고 천국가기 위해 교회 나오는 분들은 꼭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기 바랍니다. 제가 지적하면 기분나쁠지 모르니 여러분 스스로 그동안 어떻게 가정에서 교회에서 사회에서 살아왔는지 살펴보기 바랍니다.

예수 믿는다고 고백한 분들 중에도 살아가는 것을 보면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 허물은 잘 못 볼 수도 있으니 이번 한 주 동안은 무조건 감싸주기만 하지말고 가정에서, 목장에서 서로 사랑의 충고를 해주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중보기도합시다. 특히 최근에 나온 새가족들에게 더욱 관심을 가지고 예수 믿고 거듭났는지 서로 살펴보고 복음도 전하고 간증도 하면서 주 안에서 아름다운 교제가 있기를 바랍니다.

거듭나야 한결 같은 모습으로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주기적으로 상황이나 감정에 휘둘려 요동하는 분들은 스스로 돌아보기 바랍니다. 가짜가 아닌가 반성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환란이나 핍박이나 심지어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도 불평도 원망도 물러섬도 없이 주님을 따라가야 진짜 그리스도인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처럼 주님께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늘푸른교회 교우들 모두 성령으로 거듭나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