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주도하는 삶

엡5:18

오늘은 ‘성령충만’을 주제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충만하다는 말은 지배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성령충만은 성령의 지배 곧 성령이 주도하는 삶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영의 지배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성령의 인도를 받고 불신자는 사단을 따르는 악한 영들의 지배를 받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성공하는 비결은 성령이 주도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에베소서2장 1-3절을 보면, 불신자에게 역사하는 영에 대해 설명되어 있습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과 공중의 권세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죄와 허물로 인하여 하나님과 단절되어 사는 사람은 이 세상의 악하고 음란한 풍속에 따라 삽니다. 그들은 배후에서 활동하고 악한 영들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바르게 살겠다고 결심해도 순간적으로 악한 생각, 음란한 생각이 들어와 넘어집니다. 생각이 문제가 아니라 배후에서 활동하는 악한 영들을 물리쳐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 성령으로 거듭나야 천국갈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나의 영이 성령으로 말마암아 다시 살아나는 것이 거듭나는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를 영적으로 죽었다고 말합니다.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음행과 온갖 탐욕과 악행 속에 살면서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지도 못하고 또 하나님을 섬기고 싶어하지도 않습니다.

크리스쳔 가정에서 태어나 하나님을 믿고 따르도록 교육받은 사람들도 성인이 되면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고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적잖습니다. 지금 3, 4살 어린이들에게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면 별로 의심없이 하나님, 예수님을 잘 받아들입니다. 그런 아이들도 중,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생이 되는 과정에서 자의식이 발달하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이 세상의 지식을 접하면서 의심에 빠져 믿음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거듭나지 못한 상태 학습이나 훈련으로 교회생활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지식이 아니라 믿음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성에 호소할 때는 논리적 증거가 필요합니다. 신의 존재를 믿게 만들려면 신이 존재한다고 추론할 만한 근거를 제시해줘야 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하는 사람들보다 기독교가 제시하는 논리가 더 뛰어나고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과연 기독교가 더 뛰어난 논리와 증거를 제시해줄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왜냐면 영이신 하나님은 합리적으로 입증될 수 있는 분도 아니고, 현대 과학의 지식수준으로 하나님의 창조를 입증해 보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과 이성적 추론과 과학적 방법을 동원해 논쟁하는 것은 소득이 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이미 믿는 사람들의 지성에 약간의 만족을 주는 것 같습니다.

바울 사도는 인간의 이성에 호소하는 것이 별로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1장 21절에 “인간은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인간의 지혜, 곧 이성을 통한 인식능력으로는 하나님의 존재와 특성을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영이 죽은 인간에겐 지식으로든, 감정으로든, 의지로든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 시대에 가장 뛰어난 물리학자로 평가되는 스피븐 호킹이 얼마전 “우주 창조에 신의 존재는 필요 없다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라고 말했습니다. 놀랄일도 아닙니다. 은혜로 주시는 믿음 없이 과학 그자체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 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믿음을 선물로 주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장 17절을 살펴봅시다.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이 구절은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얻는 것은 믿음이고 그것은 복음 속에 들어있다고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의 의가 복음 속에 계시되어 있기 때문에 복음을 듣고 공부할 때 믿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교회다니며 설교듣다보면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지 돌아보세요. 그러면 무슨 말인지 이해될 것입니다. 예수님에 관한 말씀을 들으면서 어느 순간 믿어진 게 아닙니까? 적어도 믿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게 아닙니까? 하나님을 믿는데 필요한 것은 신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는 더 많은 지식이 아니라 믿고 싶은 마음입니다. 아직 믿지 않는 분들에게는 믿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기를 바랍니다. 알게 해달라고 구하지 말고 믿어지게 해달라고 구하세요. 무식해서 덮어놓고 믿는 게 아닙니다. 믿음은 그렇게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성경을 파고들고 과학도 공부하면서 깊어지는 것입니다. 

불신자가 예수 믿고 거듭날 때 성령을 받습니다. 성령받은 분들은 성령충만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도 공중권세잡은 사단을 따르는 악한 영들이 불신자는 물론이고 그리스도인들도 유혹하려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우리들도 악한 영의 유혹을 받으며 육신의 욕망을 따라  하나님을 거역하며 죄가운데 살았습니다. 지금은 하나님 은혜로 죽었던 우리 영을 살아나고 성령님도 우리 오셔서 우리가 약간의 영적 분별력을 갖게 되었지만 성령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악한 영들의 간교한 속임수에 넘어갈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성령님과 동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인격을 가진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고 망칠 수도 있습니다. 성령님과 동거하는 것은 결혼생활과 비슷합니다. 배우자가 서로 신뢰하며 의지하고 따르면 편하고 행복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속이고 거부하고 서로 무시하고 그러면 갈등에 빠지고 돌이키지 않으면 죽은 관계가 될 겁니다. 성령과 동행하는 삶도 이렇게 양면성이 있습니다. 성령을 무시하고 살면 성령님의 존재의미가 없어지고 성령을 의지하며 순종하면 성령이 충만하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

충만하다는 것은 지배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말은 성령의 지배를 받다는 뜻입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사는 것이 성령충만한 생활입니다. 성령은 인격을 가진 분이시지 단지 능력이나 어떤 기운이 아닙니다. 성령충만을 방언이나 예언이나 병고침이나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으로만 생각하면 잘못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주도하고 지배하는 것이 성령충만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을 구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보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지성, 여러분의 의지, 여러분의 영이 아닌 다른 영에 사로잡혀 여러분 맘대로 살 수 없는 상태가 되기를 정말 바라는 것입니까? 삶의 주도권을 완전히 넘겨주고 싶습니까? 주님의 영을 내 맘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내 생각, 내 마음, 내 영혼까지 맘대로 주장해달라는 마음으로 성령께 사로잡혀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까? 지금까지 좋아하던 것도 성령이 싫어하면 포기할 생각입니까? 이렇게 사는 것이 성령충만한 생활입니다.

만일 당신의 영이 아닌 다른 영에 사로잡히는 것을 주저하고 두려워한다면 여러분이 간청해도 성령으로 충만해질 수 없습니다. 성령님은 그 사람의 진심과 다르게 활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충만하게 해달라고 간구해서, 성령이 여러분을 사로잡으려고 하자 본능적으로 저항하며 도망가는 경우도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입술로는 성령충만을 구하면서 실제로는 성령을 밀쳐낸 것입니다. 

다시 물어봅시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원합니까? 성령님이 여러분의 주도권을 잡고 이끌어주시기를 바랍니까?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할 마음이 있습니까? 찬양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주님이 “나가라” 하시면 나가고 “멈춰라” 하시면 멈추고 “앉으라” 하시면 앉고 “일어나” 하시면 일어나겠습니까? 교회생활 뿐만 아니라 가정, 학교, 직장, 대인관계 모든 영역을 간섭하도록 허락하시겠습니까? 성령충만하면 이렇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성령충만하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받아 죄 사람을 받은 사람에게 성령이 선물로 주어진답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오실 수 있도록 회개하고 거룩해져야 합니다.

성령님을 초대하려면 방청소부터 합시다. 우리 몸은 성령이 거하는 방입니다(고전3:16). 회개가 방청소하는 것입니다. 빛과 어둠이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성령님은 죄와 동거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거하는 우리 몸을 죄로 더럽게 해선 안됩니다. 이제 알았으니 지금 회개하여 깨끗하게 청소하고 성령이 임하시를 간구하기 바랍니다. 성령과 동거하는 교우들은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인생의 성패는 성령의 인도 여부에 달려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져 악령을 물리치고 신앙생활에서 승리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