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할 때 복이 온다

눅17:11-19

추수감사주일인 오늘은 ‘감사할 때 복이 온다’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복이 온다'는 말은 좋은 일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분에 넘치는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 치료받은 문둥병환자 열 사람이 나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 간청해 문둥병이 나았습니다. 병이 나은 아홉 명은 그냥 가버리고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 다시 돌아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드렸습니다. 이 사마리아인은 주님께 돌아와 하나님께 감사드렸기 때문에 영혼까지 구원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은혜받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복이 임합니다.

먼저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살펴봅시다. 고대로부터 각 나라마다 추수 후에 감사하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맥추절과 수장절은 곡식을 거둔 후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였습니다. 추수감사가 교회절기가 된 것은 미국 청교도들의 영향 때문입니다. 영국 국교회의 박해를 피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이 1621년에 가을 첫 수확을 거둔 후 도움을 배풀어 준 인디언들을 초청해 함께 감사예배를 드린 것이 오늘날 교회에 추수감사주일이 생겨난 배경입니다.

16세기에 유럽에는 루터와 칼빈의 영향으로 종교개혁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영국국왕 헨리8세(1509-1547)는 여전히 카톨릭교회 신앙수호에 충실했었습니다. 독일에서 일어난 루터의 개혁사상이 문서를 통해 영국에 소개되자 헬리8세는 앞장서서 이 개혁신앙을 저지하여 교황으로부터 “믿음의 옹호자”라는 칭호를 받기까지 했답니다. 그런데 결혼무효청원이 거절당하자 헨리 8세는 카톨릭교회와 결별했습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헨리8세는 아라곤 왕가 출신 캐서린과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캐서린은 15세에 헨리8세의 형인 14세 아서와 먼저 결혼한 여자였습니다. 결혼한지 얼마 안돼 아서가 병으로 죽자 12세인 헨리와 결혼하여 18년동안 7명의 자녀를 낳았으나 모두 어려서 죽고 나중에 여왕이 되는 메리(1553-1558) 공주만 남았습니다. 케서린과 결혼한 헨리 8세에겐 정을 통하는 여인 앤볼린이 있었습니다. 헨리는 앤볼린을 통해 아들을 낳기 원했지만, 앤볼린은 정식결혼하지 않으면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우겼습니다. 헨리왕은 앤볼린과 결혼하기 위해 교황청에 캐서린과의 결혼 무효선언을 청원했습니다. 그러나 교황 글레멘스7세(1523-1534)는 이 청원을 기각했습니다. 그러자 헨리는 1534년 국왕이 영국교회에 대한 전권을 가지고 있다고 규정한 [수장령]을 제정하고 자치권을 행사하는 국교회를 탄생시켜 카톨릭교회에서 독립해버렸습니다.

1547년 헨리8세가 사망하자 셋째 아내 시모어의 소생인 에드워드6세(1547-1553)가 9세에 왕위에 올랐으나 재위6년 만에 일찍 세상을 떠나고 캐서린의 딸 메리(1553-1558 )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메리여왕은 개혁신앙을 지지하는 학자와 성직자들을 화형에 처하고 친 카톨릭교회정책으로 복귀시키려고 시도했지만 그녀 역시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메리에 이어 왕위에 오른 사람은 앤볼린의 딸 엘리자베스1세(1558-1603)였습니다.

엘리자베스1세 여왕은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중간을 유지하는 교회정책으로 영국 성공회의 국교회 체제를 확립해 나갔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치하에서 국교회를 따르지 않던 분리주의 회중파 청교도들은 핍박을 당했습니다. 이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홀랜드로 갔습니다. 홀랜드에서 10여년의 생활은 생활고와 자녀의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편치 못했습니다.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영국국왕은 국교도와 다른 신앙 견해를 가진 청교도들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죽자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6세가 잉글랜드 왕위를 계승해 제임스1세(1603-1625)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제임스1세는 의회를 해산시키고, 청교도에게 국교회를 믿고 따르도록 강요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북아메리카 신대륙으로 떠나게 된 것입니다.

102명의 청교도들은 1620년 9월29일 항해를 시작해 11월 9일 미국 메사추세츠주의 케이프 코드만에 도착해서 그로부터 41일 후인 12월 20일 플리머스 땅에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그들이 도착한 플리머스는 미국의 동북부에 위치해 있는 아주 추운 곳이었습니다. 청교도들이 도착한 때가 겨울이라 대륙의 추위와 굶주림, 질병 그리고 인디언들의 습격 등 악조건 속에 1621년 2월 28일까지 과반수인 50명이 죽었습니다. 하지만 청교도들은 절망하지 않고 윌리엄 브레드포드의 지도 아래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개척 의지를 불태우며 정착의 꿈을 펼쳐 나갔습니다.

처음에는 적대적이던 인디언들이 상호불가침협정을 맺고 화해한 후 청교도들을 도와주었습니다. 이렇게 상황이 좋아진 것은 하나님의 돌보심이 있었습니다. 청교도중 한 사람이 이런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금식하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생각을 좀 달리 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농사는 흉년이 들었고 형제 자매들은 병으로 쓰러지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 가운데서도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에서 신앙의 자유를 잃고 얼마나 도망 다녔습니까? 여기는 다른 여건은 좋지 않지만 신앙의 자유가 있고 우리 앞에는 광대한 대지가 있습니다. 신앙의 자유와 광대한 대지, 이것만으로도 감사할 거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금식 대신 감사의 기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농부의 말에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금식 대신에 감사 주간을 선포하고 하나님께 경배드렸습니다. 감사 주간이 끝나고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인디언 완파누아 부족 추장이던 마사소이트와 통역을 맡았던 스콴토가 찾아와 ‘상호 협력하자, 불가침 조약을 맺자’고 제안해왔답니다. 청교도들은 인디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밀과 옥수수 등의 경작 법 등을 배웠습니다. 그 해 가을에 추수를 거둬 들인 후 인디언들을 초청해서 함께 하나님께 추수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Thanksgiving Day에 칠면조를 먹는 것은  추수감사예배를 준비하기 위해 청교도들이 들새를 잡으러 나갔다가 많은 칠면조를 잡아와 먹게 된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청교도들의 첫 수확은 결코 풍성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극한 고난과 가난 후에 겨우 먹고 살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청교도들이 풍성한 수확이 있었기에 감사한 것만은 아닙니다. 질병과 굶주림과 추위로 많은 동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살아남은 자들의 감사였습니다. 극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고 감사할 때 사는 길이 열렸습니다. 적대적이던 인디언이 친구가 되어 도와주었습니다. 청교도들은 감사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여러분도 이지선자매을 알고 있죠? 이대 4학년이던 2000년 7월 30일,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오빠와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교통사고를 당해 차가 불타면서 전신 55% 화상을 입었습니다. 얼굴이 고릴라 같고, 코끼리 같았습니다. 7개월 동안 수술만 11번을 했답니다. 여덟 개의 손가락이 다 잘려 나가고 엄지손톱만 남았는데  손톱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제야 깨달았다고 간증했습니다. 눈썹이 하나도 없어 빗물이 전부 눈으로 들어간답니다. 눈썹이 쓸모없는 줄 알았는데, 눈썹 하나 하나가 그렇게 소중한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막대기처럼 되어버린 오른 팔, 휘어지지도 않습니다. 항상 뻗어 있는데 관절이 구부러지도록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그렇게 귀한 줄 그 전에는 몰랐다라는 겁니다. 이렇게 저절로 이런 줄 알았지 하나님께서 늘 휘어지도록 사용하게 하신 것이 그렇게 고마운 줄은 이렇게 굳어져 있는 다음에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하나도 흘리지 않고 잘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자신을 준비시켜 주셨다고 감사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보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 저의 손이 부끄러운 손이 되지 않기를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제게 이 손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엔 불쌍한 손이지만 전 이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께 찬양합니다. 이 손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악수도 하고, 손 흔들며 인사도 합니다. 그리고 이 손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전하는 글도 씁니다”라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녀는 2005년 보스턴대학교에 합격해 재활상담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다시 2008년에는 뉴욕 콜롬비아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으로 석사 과정을 공부하고  올 해 가을학기부터는 UCLA에서 사회복지학으로 박사과정을 시작한답니다.

시카코 출신의 솔맨이라는 크리스쳔 화가가 있었습니다(Warner Sallman ,April 30, 1892 – May 25, 1968). 그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예수님의 얼굴 초상화를 그린 사람입니다.  솔맨이 결혼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중병에 걸렸습니다.  의사가 “당신은 임파선 결핵을 앓고 있습니다. 앞으로 3개월밖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말했습니다. 그 때 아내는 임신 중이었습니다( In 1916, he married Ruth Edith Anderson). 솔맨이 몹시 괴로워하고 있을 때, 아내가 남편을 위로하며 말했습니다. “3개월밖에 못산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3개월을 허락해 주셨다고 생각하며 감사해요. 아무도 원망하지 말아요. 3개월이 어딥니까? 3개월이나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요.” 둘은 기뻐하며 감사하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 중에 그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답니다. 만일 그가 불평하고 원망하다 죽었다면 이런 멋진 그림은 세상에 없었을 것입니다(위 그림참고).

[빙점]의 저자 미우라 아야꼬(三浦綾子)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으로 불릴 정도였답니다. 77년 일생의 대부분을 병과 싸우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녀는 24세부터 결혼하기 전인 37세까지 13년 동안 꼼짝 못하고 침대 위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알면서 희망을 가지게 되었고, 주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그 감격을 전하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글 중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비극은 자신이 억울하게 고통당한다는 생각의 오해 때문에 생긴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로 마음속의 빙점을 극복하면 누구도 절망에 빠질 필요가 없다.” 자신의 인생을 담고 있는 그녀의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녀는 평생 결핵성 척추염, 대상포진, 직장암, ,파킨슨씨병 등의 난치병과 싸우면서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병으로 잃은 것은 오직 건강뿐이고 그것 때문에 오히려 신앙을 갖게 돼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부당한 권력의 희생양이 되어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면 어떤 심정이 되겠습니까? 남아프리카의 첫 번째 대통령 넬슨 만델라는 백인 정부에 의해 26년간 억울한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가 출옥할 때 사람들은 아주 허약한 상태로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70세가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주 건강하고 씩씩하게 걸어 나왔답니다. 보통은 5년 만 감옥살이를 해도 건강을 잃어서 나오는데 어떻게 26년 동안 옥살이를 했는데 그렇게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냐고 질문했습니다. 만델라는 “나는 감옥에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늘을 보고 감사하고 땅을 보고 감사하고 강제노동을 할 때도 감사하고, 늘 감사했기 때문에 건강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그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대통령에도 당선되었습니다. 이분은 보면 요셉 같은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데이빗 스코퍼 박사(Dr. David Scoper)는 감옥과 수도원 생활의 차이는 단지 불평을 하느냐, 감사를 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랍니다. 거친 식사, 험한 잠자리…환경은 비슷합니다만 감옥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불평하고 원망하지만, 수도사들은 감사로 하루를 시작해 즐겁게 생활합니다. 인생이 감옥이 될지 수도원이 될지는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성인이 되면 평균 2만 6,000개의 단어를 알게 된다고 합니다. 그중에 다른 사람을 가장 기쁘게 하는 최고의 언어가 ‘감사합니다’ 랍니다. 물론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인간의 언어도 ‘감사합니다’ 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유대인의 격언 중에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혀에 붙기 전까지는 아이에게 아무 말도 가르치지 말라” 는 말도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감사하며 삽시다. 청교도들을 생각할 때, 이지선 자매를 생각할 때, 솔맨을 생각할 때, 미우라 아야꼬를 생각할 때 질병과 고통 가운데서도 감사하며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앞에 예로 든 분들보다 더 풍족하고 건강합니다. 그러니 더 감사하고 더 기뻐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떤 환경에서든 불평하는 사람보다 감사하는 사람에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지금 힘들더라도 주님을 바라보고 천국 소망가운데 기뻐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