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섬기려면 종의 도리부터

눅17:5-10

하나님의 자녀라 생각하며 보통 교인으로 신앙생활 하려면 몰라도 주님의 제자로서 교회를 섬기는 일꾼이 되려면 먼저 종의 도리부터 배워야 합니다. 종의 마인드를 가지지 않고 종이 하는 일을 하려고 하면 감사보다 불평과 원망이 나오기 쉽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종의 도리를 주제로 말씀하겠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봅시다. 어느 날 사도들이 예수님께 믿음을 더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뜻밖이었습니다. "만일 너희에게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 바다에 심겨라' 해도 그것이 네 말에 순종할 것이다."(6절)  그러고 나서 별로 연관성도 없어 보이는 종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성경해석의 원리 중에 하나가 전후 문맥을 봐가며 해석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그렇습니다.만일 5,6절을 7~10절과 떼어 놓고 별개의 이야기로 취급하면 예수님이 말씀하려는 의도에서 상당히 벗어납니다. 그렇게 볼 때는 6절을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역사가 일어난다’ 이런 식으로 보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여기서 종의 비유를 말씀하신 뜻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을 더 달라는 사도들에게 그 시점에서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을 깨우쳐주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종의 도리였습니다. 본문을 쉽게 풀어 설명하면 이런 뜻입니다. “너희는 지금 믿음이 부족한 게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그러나 내 생각엔 너희에게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믿음이 부족해서 일을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뽕나무에게 명하여 뿌리 채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는 이런 말도 안 되는 명령을 하더라도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지금 너희에게 필요한 것은 종의 도리를 깨닫는 것이다” 뭐 이런 이야기입니다.

종의 비유 내용을 살펴봅시다. 어떤 종이 아침 일찍 밭에 나가 종일 일했습니다. 종은 하루 종일 일했으니 칭찬도 듣고 차려다 주는 밥을 먹고 쉬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종은 집에 돌아오자 마다 또 주인을 위해 저녁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주인이 식사하는 동안에는 힘들게 수종을 들었습니다. 주인은 종에게 수고했으니 먼저 먹으라거나 감사하다거나 팁을 주지도 않았습니다. 주인이 볼 때 그것은 종이 당연히 해야할 일이었습니다. 종도 마땅히 자기가 해야할 일로 알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사도들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을 더 갖는 것이 아니라 종의 자세라고 말씀하시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주님을 섬길 때 어떤 분야든 주님의 종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종이 아니라 자녀로 대우해주십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자녀지만 종의 도리를 몸에 익혀야 합니다. 종의 마인드가 없으면 자기 주장을 하고 불평하게 됩니다. 사람의 종이 된다는 것은 말이 안되지만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종이라는 것은 지금도 말이 됩니다. 누구든 주님의 일을 하려는 사람은 일을 맡기 전에 먼저 종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종이 되지 못한 사람이 종이 하는 일을 하게 되면 불만이 터져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종은 열심히 맡은 일을 할 뿐 주인에게 인정받는 것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주인이 어디 종을 칭찬하고 그럽니까? 종이 당연히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도 가끔 힘들다고 불평하는데 그럴 땐 종의 마인드가 부족하다는 걸 느낍니다. 가끔 유학생청년목회를 벗어나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귀한 사역인줄은 알지만 지치게 만듭니다. 경제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 받고, 청년들과 대화도 점차 힘들어져 이젠 장년목회로 바꾸고 싶습니다. 그런데 내가 주인이 아니고 종이라 내 맘대로 할 수는 없습니다.

종은 일을 가려하는 사람이 아니고 주인이 맡겨주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예화 집에서 읽은 이야기인데, 하늘에 있는 두 천사가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임무를 부여 받았답니다. 한 천사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에 가서 통치하라는 것이었고, 다른 천사는, 가장 더러운 마을에 가서 그 거리를 청소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두 천사는 다른 천사에게는 어떤 일이 주어졌는지 모릅니다. 그져 자기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뿐입니다. 천사도 하나님의 종이니 시키는 데로 할 자유 뿐입니다.

일의 가치는 누구를 위해 하는 일인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그 일 자체에 있는 게 아닙니다. 변호사가 조폭을 위해 일하면 범죄행위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힘없는 억울한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일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림의 가치가 뭘로 결정됩니까? 畵家가 누구냐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청소하는 일이라도 그 일이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데 기여한다면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일은 뭐든지 세상에 그 어떤 일보다 귀하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교회에서 일하는 청소부가 권력을 탐하는 장관이나 국회의원보다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종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하고 있는 일이 아니라 주인입니다. 가장 위대한 나라에 가서 통치하는 것과 가장 더러운 마을에 가서 청소하는 것 모두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똑같이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종에게는 이 일을 시키고 저 종에게는 저 일을 시킨다고 할 때  더 위대하거나 덜 중요한 명령이 있을 수 없습니다. 둘 다  하나님의 명령이고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종들이 신경 써야 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슨 일을 맡기셨는가?’ 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하나님이 맡기신 그 일에 순종하고 있는가?’ 입니다.

종의 도리를 안다고 종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기 스스로 주님의 종으로 살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종의 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 중에도 종의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교회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는 단지 유능한 사람보다 종의 의식을 가지고 교회를 위해 일하는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믿음을 더 달라는 사도들의 요청에 대해 종의 도리를 다하라는 주님의 뜻을 헤아리기 바랍니다.

평등한 민주 사회에서 종이라는 말 자체에 거부감이 들 수 있지만, 하나님과 일꾼의 관계를 설명할 때 일꾼이 어떤 마음과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용어가 청지기와 종입니다. 오늘 제가 종의 도리에 대해 말씀 드리는 것은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이 “제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으로 만들어 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아직 부족하더라도 주님을 섬기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종의 도리를 먼저 배워기 바랍니다.

종의 도리를 모르거나 종의 마인드가 없는 사람들이 교회 일을 맡겨주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무슨 이득이 생기는 것도 아니라 교회 일도 하다 보면 지칩니다. 그래도 종의 의식이 있는 사람은 마땅히 할 일이라고 갑니다. 힘들어 불평하면서도 감사합니다. 그런데 종의 마인드가 없으면 견뎌보다가 결국 박차버립니다. 교회를 옮기기도 합니다. 이건 종의 자세가 아닙니다. 주인의 자세죠. 그래서 종의 마인드가 없는 사람은 끝까지 충성하기 어렵습니다.

큰 교회에선 직분을 맡아보려고 온갖 충성을 다하며 몇 년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큰 교회에서 장로직분을 얻으면 명예도 되고 영향력도 얻고 또 비즈니스에도 유익이 있고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작은 교회에서 재정 집사가 되고 목자가 되는 것은 부담만 지는 일입니다. 교회 일은 대우 받기보다는 섬기는 일입니다. 종의 자세로 섬기려는 마음이 없으면 힘들 때 불평이 나옵니다. 집사든 목자든 운영위원이든 예수님이 강조하신 것처럼 종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한 것 뿐이라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목자야 말로 종의 마인드가 없이는 할 수 없는 사역입니다. 시간과 재물을 투자해야 하는 목자의 사역은 하나님의 종이 된 사람들만 감당할 수 있는 일입니다. 주인 아들에게 종의 일을 시키면 기쁘고 감사하겠습니까? 종이 하는 일은 종이 아니면 감사한 마음이 안 생깁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감수할 마음이 있는 종이 아니면 목자로 섬기는 게 즐겁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종의 도리가 몸에 배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섬기는 것이 감사하고 즐거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