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거룩해야 한다

골로새서3:5-17

여러분은 교회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교회는 강조하려는 바에 따라서 다양한 이름으로 정의됩니다. 성경을 보면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골1:24), ‘그리스도의 신부’,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가족’, ‘성도들의 공동체’ 등으로 부릅니다. 교회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공통적인 요소는 교회는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교회라는 용어는 마태복음 16장 18절에 처음 등장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조차 처음 들었을 때 교회가 어떤 것인지 잘 몰랐고 교회가 세상에 세워지기 전까지는 제자들에게 관심을 끌지도 못했습니다.

성경에는 교회라는 말보다 제자라는 말이 먼저 나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12제자는 물론이고 오순절 날 베드로 사도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도 제자로 불렸습니다. 사도행전2장 41절을 봅시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니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6장 7절도 봅시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시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아직 교회로 호칭되지는 않았지만 예루살렘에 있던 제자들은 가정에서 교회로 모였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재산과 소유를 팔아 서로 나눠주기도 하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 그러니까 불신자들에게도 칭송을 들었습니다(행2:42-47).

사도행전8장 1절 이후부터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제자들의 모임이 교회로 호칭되었습니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여기서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라는 말이 나옵니다. 예수 믿고 따르는 사람을 개별적으로는 ‘제자’라고 부르고, 그 제자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교회가 무엇인지 그 특징 하나를 분명히 알았을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의 공동체입니다. 제자가 아니면 교회의 멤버가 될 수 없습니다. 그 당시는 예수 믿고 함께 모이기만 해도 박해를 받고 심하면 감옥에 갇히거나 생명이 위험할 때이니 예수 안 믿는 사람이 교회에 나갈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교회가 현대교회보다 더 순수한 영적 공동체가 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는 것은 생명을 걸고 내리는 결단이었습니다. 유대인 최고 의결기관이었던 공회는 예수의 이름을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금지시켰습니다. 스데반은 전도하다 돌에 맞아 죽었고 예수 믿는 사람들도 붙잡혀 감옥에 갇혔습니다. 특히 사울은 각 집에 다니며 예수 믿는 사람들을 끌어다가 옥에 넘기는 일을 했습니다(행8:3).

이런 상황이니 예루살렘교회에서는 불신자들이 교회당에 출석하며 그 교회 이름을 더럽히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 상황은 다릅니다. 교회 다닌다고 박해받거나 위협당하지 않습니다. 이민 사회에선 교제 차원에서 또는 비즈니스를 위해 교회 다니는 게 유리할 때도 있습니다. 교회도 전도 차원에서 불신자들이 나오는 것을 환영합니다. 문제는 교회에 불신자들이 많아지면서 죄에 오염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거룩하지 못한 것이 교회당내 불신자 탓만은 아닙니다. 철저하게 회개하지도 않고 또 죄악에서 떠나려고 하지 않는 절반의 그리스도인들이 더 위험합니다. 물어보면 예수 믿는다고 말합니다. 배경을 봐도 기독교가정에서 자라서 오랫동안 교회 다닌 사람입니다. 그런데 육신의 욕망에 따라 살면서 하나님 말씀에 굴복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엄밀하게 말하면 불신자에 가깝지만 예수 믿는 사람으로 간주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성경 어디를 봐도 회개 없이 예수 믿고 구원 얻는 그런 복음은 없습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행2:38),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행3:19)고 거듭 말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음란하는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술취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6:9,10)고 말했습니다. 불신자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교회다니며 계속 이런 죄가운데 살면 하나님 나라를 얻을 수 없다는 경고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음행이 큰 죄입니다. 바울 사도는 음행은 자기 몸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몸은 성령이 계신 집이기 때문에 음행은 거룩한 성령을 욕되게 만듭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주위 친구들이 이성 친구들과 쉽게 성관계를 맺는다고 해서 유혹받으면 안됩니다. 세상 풍조를 변화시킬 수 없더라도 최소한 자기 자신이라도 잘 지켜야 합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 우리 교회에 와서 주님의 피값으로 사신 교회를 오염시키는 걸 가만 두고 봐서도 안됩니다.

방심하면 죄악이 교회에 스며드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최근에 우리 늘푸른교회도 죄의 오염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습니다. 새가족이 늘어나고 또 기존 교우들 중에서 일부 사람들이 어울려 술을 먹고, 남녀 교제가 덕스럽지 못해 걱정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주님의 교회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듣지 않도록 조심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그정도는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믿음의 자유가 있을지 몰라도 복음에 방해가 되지 않게 스스로 삼가하는 게 덕을 세우는 길입니다.

죄는 시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본성의 문제입니다. 초대교회나 1세기에는 죄가 되던 것이 현대교회에서는 죄가 안 되는 것입니까? 골로새교인들에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죄악이 우리에게는 단지 privacy에 불과한 것이 됩니까? 그들에게 부끄러운 말과 행동이 여러분에겐 자랑스러운 것이라도 됩니까? 음행과 악한 정욕을 따라 술취하며 사는 것은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올 것입니다. 악한 생각과 모함과 거짓말은 우리에게도 부끄러운 것입니다.

우리 몸은 성령이 거하는 집입니다. 몸을 죄로 더럽게 하는 것은 성령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술이나 음행 등은 언제든 그만 둘 수 있을 것 같지만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죄의 권능이 역사합니다. 모든 죄악의 배후에는 악한 영이 역사한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육신적 쾌락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이 지배당하고 마침내 영혼까지 잃게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이런 문제가 있는 청년들은 이것 때문에 내 영혼이 멸망할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죄악과 싸우기 바랍니다.

몸이 이미 쾌락의 노예가 되어 있을지 모릅니다. 죄악과 싸우는 대신에 은밀하게 숨어서 그 쾌락을 즐기고 싶어할 수도 있습니다. 죄악에서 벗어나려면 땅에 있는 지체를 죽어야 합니다. 참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욕망이 강하면 인내심은 무너집니다. 죄의 욕망이 역사하는 몸을 죽어야 욕망도 유혹도 소멸됩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사실을 믿기 바랍니다. 그 다음엔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이것은 거듭나는 것입니다.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요 새롭게 재창조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 죽고 믿음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은 죄 운데 살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말하지만 죄를 사랑하는 것은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술, 도박, 약물중독, 포로노, 혼전성관계 등에 빠져 육신의 쾌락을 즐기고 있다면 그 몸은 옛 사람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분노, 악의, 더러운 말,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그 마음도 옛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마세요. 교회를 얼마나 오래 다녔는가 그것이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말보다 몸과 마음의 반응이 거듭난 사람인지 더 잘 알려줍니다.

습관적인 죄에서 벗어나려면 싸워야 합니다. 육체의 욕망과 싸우세요. 환경을 바꾸세요. 혼자 있을 때 죄의 유혹이 강하면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세요. 예를 들어 도서관에 가든가, 영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사람과 함께 아파트를 얻어 모니터링을 해달라고 하세요.  술 먹자고 불러내는 사람은 당분간 멀리하세요. 외로워 이성에 빠진다고 하는데, 교회모임에만 열심히 참석해도 외로울 시간이 없을 것입니다.

교회는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예수 믿고 거듭난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어찌 죄악을 즐기는 세상 사람들처럼 살면 안됩니다. 더욱이 우리는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정결하지 못한 신부가 어찌 사랑을 받겠습니까? 남이 알고 모르고 그런 게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정결한 신부인가 부정한 신부인가 그게 문제입니다. 더욱이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죄 가운데 사는 것은 예수님의 몸을 더럽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합시다. 무엇보다 여러분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