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사명과 자아실현

창 1:27-28 ; 2:18-23 - 안나실목자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어린이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것이 우리 시대에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다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에 관한 방법과 이론, 그리고 경험이 제시된 서적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되는 인간 사회의 모습은 날이 갈수록 더욱 악해져만 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사랑에 관한 책과 이론이 그렇게도 많은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에 갈급해 하고 이혼율이 급증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저는 현대 문명의 발달로 인해 생긴 비인격화 즉 ‘탈 관계’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린이들이 가장 먼저 관계를 맺는 사람이 바로 부모이며 그 중에서도 어머니이기 때문에 오늘 저는 어린이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말씀 보다 먼저 하나님이 창조하신 남성과 여성의 특성과 어머니가 될 여성에게 주신 사명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그 특성을 살펴 보면 개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남성과 여성은 유전 정보가 다르다고 합니다. 남성은 거창하고 추상적이며 보편 타당한 이론을 좋아합니다. 여성은 구체적이고 작은 일을 좋아하며, 현실적이고 감정 표현에 특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남성은 사물의 세계(무엇)와 어떤 것(그것)에 관심을 가지며 과업지향적입니다. 여성은 인격의 세계(누구)와 어떤 사람에 관심을 가지며 인격 지향적입니다. 예를 들면 기계로 짠 스웨터를 사는 것보다 자신이 직접 뜨개질을 해서 만든 옷을 가족들에게 더 입히고 싶어 합니다. 뜨개질을 하는 동안 그 옷을 입을 사람을 생각하며 즐거워하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여성은 관계 맺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남성은 인격 감각이 미숙하기 때문에 잘 듣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교육 특성상 차이도 있습니다. 남성은 기술 조작 능력과 공간 능력이 뛰어나 어린 시절부터 기계 모양의 장난감과 자동차 등을 좋아합니다. 사물을 조작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여성과의 관계보다는 신체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여성을 조작하는 데 익숙합니다. 반면 여성은 언어적 능력이 뛰어나 어린 시절부터 인형놀이나 소꿉장난을 좋아합니다. 이는 가상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남성은 인격을 사물화 하지만 여성은 사물을 인격화 하는 특유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흥미로운 차이는 대뇌의 역할 분담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대뇌는 좌반구와 우반구로 나누어져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의 좌반구는 주로 분석적, 언어적, 연속적 기능을 담당하고, 우반구는 구체적, 비언어적, 공간적 기능을 담당한다고 합니다. 즉, 좌반구로는 인격의 세계를 인식하고, 우반구로는 사물의 세계를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성은 이러한 뇌의 발달이 비교적 전문화(왼손잡이와 난독증이 더 많다)가 되어 있는 반면 여성의 뇌는 기능 분화가 잘 되어 있지 않다고 합니다. 이것은 남성이 인격 인식에 장애를 느끼는 만큼 여성은 사물 인식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남성은 사물의 세계를 세우는데 적합하고 여성은 인격의 세계를 잘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1600년 대부터 400년 후까지는 이성만이 모든 지식의 확실한 근원이라는 합리주의 사상이 지배한 시대입니다. 그 사상의 대표적인 인물 중 한 사람인 데카르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모든 것을 회의할 때만 존재의 가치를 느낀다는 말-아마도 저나 여러분들은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잘 모른 채 우리 자신이 생각이라는 것을 할 줄 아는 꽤 유식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을 때 사용했으리라 봅니다. 그러면 이 명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간은 자기 자신과만 관계를 가지는 유아독존이라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그 어떤 타인과도 아무런 관계 없이-‘우리’란 없다-‘나’와만 관계를 가지는 홀로 서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 개인주의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개인이 무시된 고대 사회에 대항하여 인간 개개인과 그 능력을 중시하고자 하는 정신은 매우 높이 평가해야 할 부분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하지만 그 사상의 영향을 받은 사회는 또 다시 자신 외의 다른 사람들을 더 다양하고 더 지독한 방법으로 무시하게 되었습니다. 문명의 발달이라는 이름 아래 사람의 가치가 개인의 기술과 능력으로 평가되는 사물 중심사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따라서 관계를 떠나서는 존재 의식조차 느낄 수 없는 여성들의 합리적이지 않은 관계성을 질식하게 만들었습니다. 감정을 제쳐 두고 이성을 선택했고, 신체를 무시하고 지성을 택했으며, 인격을 희생시킨 채 사물을 택한 결과로 여성의 가치를 인정치 못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을 위해 선택했던 문명이 이제는 도리어 그 문명으로 인해 사람이 고통 받는 사회로 만들어 버렸습니다.(컴퓨터, 자동차, 스포츠…)

분명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서구 세계는 그 힘이 막강하고 산업화로 그 기능이 눈이 부실 정도로 발달된 사회이긴 하지만 차갑고 딱딱하며 싫증 나는 세계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과학의 발달로 객관적인 연구가 가능한 질병은 모두 정복하지만, 사랑의 결핍에서 오는 신경성 질병은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막대한 부를 축적하긴 했지만 삶의 질은 저하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삶의 질은 물질이 아닌 감성의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차갑고 비인격적인 기계 같은 세계에 어떻게 하면 따스한 온기를 불어 넣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그 마음에 품으셨던 세계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 둘 다를 지으신 목적이 무엇이었을까요?

창세기 2장 18-23절에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9-20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남자에게 가시 세계의 일을 감당케 하시고 18절에서는 남자의 인격적인 부족한 면을 채우기 위해 ‘돕는 배필’을 지으셨는데 23절에 보니까 이 배필은 없어도 되는 자가 아니라 반드시 꼭 있어야 되는 여자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지으신 남자와 여자는 종속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또 창세기 1장 27-28절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자에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종족 보존 뿐만 아니라 정복하고 다스림에도 함께 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인격이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 즉 하나님이 기대했던 인간을 말합니다. 고립된 인간이 아니라 관계 속의 인간, 곧 타인과 자연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는 인간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런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비로소 하나의 인격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인류 역사와 문명의 이룩하는 일을 남자에게만 명하신 것이 아니라 여자와 함께 할 것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권력 투쟁으로 얼룩진 남성적인 역사와 인격보다 사물을 우위에 두는 남성적인 문명 사회를 건설하였습니다. 기술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인간은 더욱더 물건처럼 취급 당해졌는데 특히 여성의 경우가 더욱 그러했습니다. 종으로, 성적인 대상으로, 그리고 하나의 장식 도구로 취급 당해 왔습니다.

이처럼 여성의 가치가 하락되자 억압 속에 있던 여성들은 참다 못해 ‘안에서 밖으로’ 문을 박차고 나가게 되었습니다. 여권 회복을 부르짖으며 가정을 버리고 사회 속으로 뛰어 들어가 오랫동안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에 끼어들어가 그들과 경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사회는 직장 여성과 주부를 대립 관계로 보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모든 사회적 구조가 남성적이니 여성들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따라야 했기 때문에 여성 특유의 인격적인 능력은 접어둔 채 여성들마저도 남성화된 여성을 자아실현의 본보기로 삼는 사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자아실현’이란 무엇입니까? 사전적 의미로는 ‘자아의 본질을 완전히 실현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나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가치를 최대한 발휘하는 것을 말합니다. 되지도 않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꼭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며 마땅히 되어야 할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자아실현입니다.

소위 여권 회복과 여권 신장을 부르짖는 여성 해방 운동은 여성의 소중함을 인정하자는 것이지 남성과 동일시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남성을 경쟁의 상대로 삼는 것도 아니며 여성이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나는 것도 아닙니다. 때와 경우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직장 생활을 주시면 하는 것도, 또 때와 경우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직장 생활을 포기하라고 하시면 포기하는 것 모두 자기 실현입니다. 예를 들어 츄리닝이나 몸빼 입고 집에서 살림살이만 하는 것은 자아실현이 아니고 정장 입고 회사에서 컴퓨터 만지는 것만 자아실현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 되었습니다. 말이 좋아 자아실현이지 솔직히 말하면 집안일이 귀찮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성은 사물이 아닌 사람을 위해 일하는 동안 그 상대방에 대해서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여성이 집안 일을 지루해 하고 싫증을 느끼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이어서 그렇습니까? 일을 한 만큼 보상이 주어지지 않아서 입니까? 물론 그것도 해당됩니다. 하지만 더 주된 원인은 남자들이 집안 일을 하찮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하는 일의 가치를 인정하기 보다는 남자를 위해 마땅히 해야 할 봉사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돈을 앞세워 여자들을 지배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다행한 것은 오늘날 집안일의 문제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젊은 부부들이 집안일을 함께 부담하고 있으며 새로운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는 인격적인 접촉을 위해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자가 집에 있든, 직장에 나가든, 어느 것을 선택하든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현재 우리의 사회는 여전히 여성만이 갖고 있는 특유의 성향과 사명을 무시한 채 그 가치를 교육의 수준과 직업의 종류, 그리고 소득의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성의 고유 사명은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남성들은 평생을 살아도 알 수 없는 임신과 출산의 신비스러움은 여성만이 경험할 수 있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아기가 태어난 후 처음 일 년 동안은 아기에게 엄마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입니다. 왜냐하면 그 아기의 남은 생애의 정신 건강이 그 일 년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경우만 모든 아기는 미숙한 상태로 태어납니다. 다른 모든 포유 동물의 경우, 새끼는 태어나는 즉시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먹이를 찾아 나서지만 사람의 경우는 일 년쯤 되어야 겨우 그런 단계에 진입합니다. 그래서 엄마는 아기와 24시간 동행하며 아기의 부족함을 본능적으로 보살핍니다. 이것은 남자가 주도할 수 없습니다. 본질적으로 부성애란 없습니다. 아기가 태어난 후에도 여전히 엄마와 절대적인 접촉을 즐기는 이유는 그 아기가 엄마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여성에게는 두 가지 강력하고도 자연적인 욕구가 있습니다. 한 편으로는 결혼해서 엄마가 되어 자기의 조그마한 세계를 만들고 자식을 사랑하고 양육하고 돌보는 것을 좋아하면서 동시에 그 작은 울타리를 벗어나 넓은 세계를 향해 문을 열고 그 세계 속에 동참하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욕망을 조화시키기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느 한 편을 억제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한 편을 포기하거나, 둘 다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고통스러운 희생을 감수합니다. 이러한 내적 갈등은 어느 순간 강력하게 다가와 가정 주부는 자기가 받은 재능을 세상에서 사용하지 않은 데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직장 여성은 자식들을 제대로 양육하지 않은 문제로 고민에 빠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자는 만족할 줄 모르는 존재라고 조롱하듯 비판하곤 합니다. 집에 있을 때는 지루해 하고, 직장에서는 가정을 그리워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여성은 무엇을 하든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여성이 자유를 획득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어떤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때와 경우에 따라 여성이 있어야 할 자리가 가정이든 직장이든 그곳에서 여성 특유의 인격 감각을 잃지 않을 때 우리 사회는 더욱 더 인간미가 풍기는 사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자아 개념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사람을 가리켜 ‘중요한 타인’(significant others) 이라고 합니다. 즉, 인간은 관계 속에서 인격이 형성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지적이며 객관적인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감정적이며 인격적인 관계입니다. 이것은 각각 남성과 여성의 지배적인 특성에 부합됩니다. 즉 객관적인 관계는 남성의 이성적인 성향에, 인격적인 관계는 여성의 감정적인 성향에 부합합니다.

사람은 남성이나 여성 할 것 없이 유년 시절 이후 계속해서 객관적인 관계를 배워왔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지배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반면에 인격적인 관계는 지극히 드물 뿐 아니라 그 가치조차 무시 당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남성들은 이성적인 사회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 나머지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를 거의 인식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왠지 모르게 불안을 느끼며 삽니다. 정서 생활과 인격적인 접촉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 채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18세기 초 유럽을 정복했던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은 “나에게 그 나라의 어머니를 보여 다오. 그러면 내가 그 나라를 정확히 평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의사이며 20세기 기독교가 가장 사랑한 상담자인 폴 투르니에는 “병을 치료하지 말고 인격을 치료하라”고 했습니다.

이미 어머니가 되었고, 앞으로 어머니가 될 사랑하는 자매 여러분, 그리고 이 여성들을 아내로 맞이했고 또 앞으로 아내로 맞이할 형제 여러분!
 
현대인인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동료 인간으로부터, 자연으로부터 소외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인격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인격 감각이 뛰어난 여성들이 제 자리에서 인격적인 기여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성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개발하고, 여성적인 방식으로 느끼고, 여성적인 방식으로 인생을 이해하고, 여성적인 방식으로 사고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돕는 배필을 잘 감당하므로 자아실현을 잘 하십시오. 인격의 공백을 사물로 대신하여 인격이 성숙하지 못한 사물적인 어린 아이로 키우지 마십시오. 기혼이든 미혼이든,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여성은 동일한 사명, 즉 인격이 사물보다 우선임을 보여 주는 것은 하나님께서 여성에게 주신 아주 특별하고도 유일한 사명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