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여기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야

사도행전10:1-8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는 주된 동기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대부분 복받고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 하나님을 찾는답니다. 예외적인 사람도 있지만 주로 그렇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무시하며 돈과 권력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에 비하면 병고치고 물질의 복을 달라고 하나님께 나오는 사람은 그래도 기특합니다. 그러나 계속 이런 목적으로 교회다니면 탐욕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오염시키고 기복적인 교회생활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최근 총신대 대학원장을 지낸 김세윤박사님이 미국 복음주의 신학자들과 함께 [탐욕의 복음을 버려라](새물결플러스)는 제목의 책을 냈습니다. 그 분은 예수를 믿으면 건강 얻고 출세하고 부자된다는 주장을 ‘번영신학’으로 규정하고 “맘몬(재물)에 대한 우상숭배와 다를 게 없다”고 했습니다. 건강과 부를 얻고 싶은 욕심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 믿는 사람이 재물에 대한 욕심을 하나님 나라의 이상으로 승화시키지 못하면 천박해집니다.

건강과 재물은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핵심가치가운데 하나입니다. 교회에서도 건강과 부유함을 축복의 징표라고 말하는 것을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병들고 가난해서 남의 신세를 져야 하는 상황과 비교할 때 건강하고 부유한 것은 복받은 증거처럼 보입니다. 성경엔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에게 건강과 물질의 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신명기7장 12절부터 15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사는 사람에게 복을 주어 자녀들이 잘 되고 토지의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하고 네 소와 양을 번식케 하며 질병을 네게서 멀리하여 악질에 걸리지 않게 해준다고 되어 있습니다.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공경하고 살면 인생전체를 통해 볼 때 이렇게 잘 되게 해주신다는 메세지입니다.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에게 자녀도 잘되게 해주시고 건강도 지켜 주고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살게 해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만물을 창조한 하나님에겐 그럴 권한도 능력도 있습니다. 문제는 아버지의 재산을 탐내며 거짓된 공경을 하는 자녀가 있다면 그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병낫고 사업이 잘되기 원하는 마음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은 후에는 이런 수준을 넘어서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너무 기복적이고 하나님의 축복을 물질적인 것으로 비하시키고 있다는 비난을 듣고 있습니다. 한국에 처음 복음이 전파될 때 국민들 대다수가 질병과 가난에 시달리며 지쳐있었습니다. 그럴 때  예수 믿고 하나님을 섬기면 병낫고 물질의 복도 받을 수 있다는 메세지는 병들고 굶주린 백성들을 위로하고 소망을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달리 할 일도 없었던 시절이라 힘든 사람들이 천막교회로 몰려 울며 기도하며 하나님께 복을 구하고 열심히 일해서 이젠 패션과 문화에 신경쓰며 살만큼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만족함이 없이 계속 더 물질적 탐욕에 빠져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얼마나 물질적 탐욕에 빠져 사는지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굶주려 죽게 생긴 상황에서 밥을 달라고 외치면 불쌍히 여김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먹고 살만하게 되었는데도 탐욕에 빠져 더 많이 달라고 외치고 싸운다면 정신차리게 혼나야 합니다. 세계 도처에서 굶주리며 죽어가는 사람들이 널려 있는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모여 좀더 큰 집에서 살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옷에 맛있는 것을 맘대로 사먹을 수 있는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떼를 쓰는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하나님이 기쁘시겠습니까?

세상에서 부자가 되는 것은 자기 영혼을 위해서는 결코 유익하지 못합니다. 세상의 재물은 다소 불의한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내가 더 많이 가질려면 결국 남의 몫을 빼앗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일꾼에겐 최저 임금을 주고 자기 몫을 더 많이 챙긴다든지, 세금을 다 내지 않는다든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서 돈을 번다든지, 위장전입과 같은 방법으로 부동산에 투자해서 재산을 증식하든지, 이자 놀이를 하든지, 이런 것들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사회에서 합법적인 것이라도 하나님 보시기엔 불의한 재물에 가깝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재물을 추구하기 보다는 하나님나라의 이상과 가치에 맞춰 살아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오늘 여기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야 한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죽은 후에 들어가는 영적세계로만 생각해선 안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지금 여기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나라의 이상에 따라 살면서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 보여줘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통해서 보여집니다. 교인들이 세상 풍속과 욕심을 따라 살면서 죽은 후에 천국가면 된다고 여긴다면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나라의 참모습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생각에 오늘날 교회가 잘 하고 있는 것 같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나님 나라를 시간적으로 미래로 연기하거나, 공간적으로 하늘 위로 밀어올려선 안됩니다. 지금 여기에 하나님 나라의 통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예수님은 ‘몸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 나라의 삶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뭔지 좀더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밥먹고 일하고 놀고 공부하는 모든 삶의 영역이 다 하나님 나라와 관계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여러분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가치를 판단하고 옳은 일인지 그릇된 일인지 윤리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순간마다 하나님 나라는 여러분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장마철에 폐수를 무단 방류할 것인지 말 것인지, 건축공사를 할 때 철근을 빼돌려 이득을 취할 것인지 말 것인지, 양잿물이 들어 있는 세척제로 학생들 급식판을 씻을 것인지 말 것인 것, 환경을 오염시키는 화장품을 과다하게 쓸 것인지 최소화할 것인지 등. 우리가 단지 절약을 위해서만 아니라 환경을 생각해서 일회용품을 자제할 것인지 말 것인지.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따라 살면 물질 중심의 세상에선 핍박을 받고 경제적으로 손해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로 믿는다고 고백하는 수준을 넘어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마태 3:13)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이름이 우리의 잘못된 삶의 방식으로  인해 세상 사람들로부터 모독을 받게 해서는 안됩니다(로마 2:24). 독불 장군은 없는 법입니다. 혼자서 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교회를 세워주셨습니다.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들이 세상 사람들의 눈 높이에 맞게 자꾸 수준을 낮춰 편하게 가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면 일시적으로 사람들의 인기를 얻을지 모르나 결국 예수님께 버림당하게 될 것입니다. 촛대를 옮기겠다는 말씀을 유념해야 합니다.

고넬료를 한 번 생각해봅시다. 그는 ‘이달리야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로마군의 한 군단(legion)은 6천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한 군단 안에 10개의 대대(regiments)가 있어 일개 대대는 600명으로 조직되고 이 대대는 다시 100명 단위로 편제되었답니다. 또한 대대마다 모두 고유한 이름이 붙어 있는데, 사도행전27장 1절을 보면, ‘아구사도대’가 나옵니다. 로마의 지배 아래 있던 가이사랴에는 당시 5개의 백인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그 중 이달리야대는 로마출신 군인으로만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고넬료는 로마출신 군인 100명으로 구성된 부대를 지취하는 로마 장교였습니다.

로마 장교인 고넬료가 어떻게 식민지 나라의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고넬료는 자신은 물론 온 가족이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가장의 책임을 다하고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했습니다. 그의 신앙심이 진실했다는 것은 4절에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는 천사의 말이 증명해줍니다.  고넬료의 경건한 삶은 형식적이거나 가식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도 우리처럼 하나님께 나가 필요한 것을 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물질적으로 돕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후원해주었습니다.

고넬료는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베드로나 바울과 같이 보통 사람은 따라가기 힘들만큼 믿음의 거인은 아니었습니다. 가정이나 직장을 내려놓고 오로지 복음전파만을 위해 산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직업군인으로 자기 일에 충실하면서 하나님을 공경하고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로마 제국의 군인인 동시에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지금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다간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고넬료의 구제를 보았고 고넬료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마음에 담아 두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은 진실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섬기며 따르는 사람을 눈여겨 보고 계신다는 것을 알 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보내 복음을 듣고 예수 믿어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만들어주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고넬료처럼 자기 일에 충실하며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며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도와주고 적어도 금요일 밤엔 기도회에 참석해 진정을 담아 기도를 생활화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억하고 계시다가 필요할 때 은혜로 갚아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