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복하는 믿음

누가19:1-10

오늘은 하나님을 만난 사람의 변화된 모습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마음,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머무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누가복음 19장 1-10절에 세리장 삭개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날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기 위해 뽕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세무서장이라는 신분과 체면도 버리고 나무에 올라간 것은 그 만큼 예수님을 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갈급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삭개오는 돈도 있고 힘도 있었지만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 때 허무함을 느끼는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면서도 모든 게 잘 되고 만족해서 더 이상 필요한 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그렇게 행복하게 살다가 멸망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나라 최고 부자인 L, K회장들이 인생의 허무함을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찾을 마음이 생길 겁니다. 그런데 아직 까지 그 분들이 인생이 허무해서 하나님을 찾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뽕나무에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삭개오를 봤을 때 그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다가가 이름을 불렀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머물고 싶다”(눅19:5). 삭개오는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셨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주님께 나아가 집으로 모셨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집으로 모시고 들어갈 때 그는 또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그날 삭개오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 자기 재산 절반을 내놓았습니다. 혹시 자기 때문에 손해 본 사람이 나타날 경우는 4배로 갚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는 말보다 행동으로 실천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19:8,9). 말하지 않는다고 모를 예수님이 아니십니다.

삭개오가 구원에 이른 과정을 보면 몇 단계가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삭개오에게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을을 지나간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보기 위해 세무서를 나와 길가의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이 다가와 이름을 부를 때, 주님의 초청에 응하여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뉘 것을 강제로 빼앗은 것이 드러날 경우에는 4배로 갚아주겠다고 말했습니다. 회개를 실천한 것입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어도 이런 변화가 가능할까요? 누구든 예수님과 개인적인 관계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영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갈급한 마음만으로는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예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굴복해야 영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도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구원 얻고 변화될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삶으로 굴복하기 바랍니다. 욥의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욥기에는 의로운 욥을 놓고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있었던 대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장 6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이 사탄 앞에서 욥의 사람됨과 믿음을 칭찬했습니다. 그러자 사탄은 하나님이 욥에게 특별히 잘 해주니 그런 것이라며, 만일 하나님이 욥에게 내려준 모든 복을 거두면 욥이 하나님을 욕할 것이라고 반론을 폈습니다.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세상의 부귀영화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 욥에게 시련이 시작되었습니다(욥1:8~12).

욥은 하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 것도 모른 체 갑자기 재앙을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축이 죽어 나가고 태풍에 집이 무너져 자녀들이 깔려 죽고 욥의 온 몸에 악창이 생겨 가려워 살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답답한 욥은 하나님께 해답을 구했지만, 하나님은 침묵했습니다. 욥은 너무 힘들어 자신이 태어난 생일을 저주하면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저주하지도 않고 순전함을 지켰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았지만 잘못한 것 없이 고난 당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불만이 생겼습니다. 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따져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폭풍가운데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태도가 잘못임을 깨달았습니다. 욥은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인생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려보려는 태도가 이미 주제 넘는 행동임을 깨닫고 회개했습니다(욥42:6).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생사를 주관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토기장이가 자기 맘대로 귀한 그릇과 천한 그릇을 만들어 쓸 수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가지고 귀하게도 하고 천하게도 하실 수 있습니다. 만들어진 그릇이 도공을 원망하거나 비난하거나 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께 항의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아는 것을 분수를 안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라가려면 주님께 굴복당해야 합니다. Surrender라는 말은 원래 군사용어입니다. 웹스터사전에 “다른 사람의 힘에 굴복해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는 행위”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전쟁에서 패하여 굴복한 왕은 자신의 생명, 재산, 영토, 국민까지 승리한 왕이 맘대로 했습니다. 유다가 바벨론과 전투에서 패했을 때 시드기야왕의 아들들은 죽임을 당하고 시드기야왕은 두 눈이 뽑혀 고관 대신들과 함께 바벨론에 사로잡혀갔습니다. 굴복한 사람은 아무런 권리도 주장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굴복당한 사람은 자기 생명도, 재산도,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도 모두 포기하고 전적으로 하나님 처분에 맡깁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따르겠다는 항복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대로 따라가겠다는 결정입니다. 굴복하기 전에는 “내가 원하는 것은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굴복한 후에는 “오직 주님의 뜻대로”(마26:39) 라고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굴복한 사람에게는 오직 순종할 자유만 있을 뿐입니다.

자기 맘대로 살면서 구원 얻기 바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굴복하지 않으면 구원도 없다는 것을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통치에 굴복해서 주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에 굴복하고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영생의 선물이 주어집니다. 주여 주여 한다고 천국 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마7:22)

굴복은 한번의 결정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굴복은 매일 매일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과정을 통해 성취되어갑니다. 인생을 주님께 넘겨드리는 결단을 한 사람도 매일의 삶 속에서 주님께 굴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께 굴복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혼생활과 같은 것입니다. 결혼식은 시작일 뿐 완성이 아닙니다. 결혼식을 통해 한 몸이 된 부부는 죽음이 갈라 놓기 전까지 서로에게 굴복해야 결혼이 유지됩니다.

하나님께 굴복하는 결단을 한 성도는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계명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하나님께 굴복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루 중에도 수 많은 생각이 일어나고 일들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어떤 생각을 따라갈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굴복하는 것은 성령의 도움을 받아 여러분 각자가 해야 할 몫입니다.

하나님께 굴복당하기 위해서는 인생을 통제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이 주도하시도록 놔둬야 합니다. 주도권을 포기하지 않으면 굴복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주인의 자리가 아니라 주도권을 넘겨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유익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믿습니다. 사울이 전쟁에 나가기 전에 사무엘 선지자가 더디 오자 자신이 직접 나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사울이 제사하는 목적은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해 전쟁에서 승리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왜 남김없이 살육당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앗수르에 짓밟히고 유다가 왜 바벨론에 포로잡혀 갔는지 생각해보세요. 하나님께 굴복하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며 성적으로 타락하고 포악해져 하나님의 이름을 욕보이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놔둘 수 없어서 심판과 징계를 받아 그렇게 된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과 친구가 죄어 죄에 빠져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육체에 고통이 가해지는 징계가 따를 것입니다. 더 나가지 말고 멈추기 바랍니다

삭개오는 돈도 많고 영향력도 있는 사람이었지만 하나님도 없고 죄인 취급당하는 인생의 허무함을 느꼈습니다. 세상을 즐기는 동안에는 잠시 하나님 없이도 신나게 살 수 있는 것 같지만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생각하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뽕나무 위에 올라간 삭개오의 마음을 헤아려주신 것처럼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지만 교회당을 찾아나온 여러분의 마음도 살펴주실 것입니다. 주님이 부르실 때 삭개오처럼 예수님을 영접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구원이 여러분 심령과 가정에도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교우들은 욥의 인내를 본받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굴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주간도 주 안에서 승리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