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 목자를 알아본다

요한10:27

양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자기 목자만 따라가는 성질이 있답니다.(요10:27).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인데, 양들은 자기 목자 음성을 구별하는 능력이 있어서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을 따라가지 않고 도망간다고 하셨습니다(요10:4,5) 양이 목자를 알아보는지 실험하는 동영상을 본적 있습니다. 양 우리 밖에 펜스로 가리고 진짜 양치기와 다른 사람을 세워 놓고 양을 부르게 했습니다. 진짜 양치기가 부르자 양들이 우르르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부를 때는 양들이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신생아도 처음에는 엄마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엄마의 품에서 젖을 먹고 자라면서 관계가 형성되면 경험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합니다. 부모를 알아보면 낮을 가립니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가지 않습니다. 그것은 안전을 위한 보호장치라고 생각됩니다. 낮을 가리지 않고 아무나 따라가는 아이는 위험하죠. 이단에 빠진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로 위장한 사단에 속아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 어떤 집회 동영상을 보니 설교자가 강단을 왔다갔다하면서 청중을 향해 “금 이빨, 은 이빨로 바뀔지어다”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청중들은 “아멘!, 아멘!” 화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며 너무 어이없었습니다. 아니 이런 쇼가 통하다니…. 속는 것도 속을 만해야죠. 말이 됩니까? 그게 진짜면 사단이 사기치는 것이고, 가짜면 강사가 사기치는 것 아닙니까? 그것은 진짜든, 가짜든 하나님의 역사와는 상관없는 것입니다. 그걸 보고 놀라운 역사라고 사람들이 몰려든다니 기가 막힙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필수조건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고 충분조건은 성경에 대해 많이 아는 것입니다. 성경에 대해 많이 알아도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거듭난 자녀라도 성경을 잘 모르는 하나님 아버지 음성인지 사단의 속삭임인지 분별하지 못해 미혹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은 ‘기독교라는 종교를 택하여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을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하나님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에게 자녀의 자격을 주십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면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가 생깁니다. 인격적 관계는 서로 대화하는 사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관계는 대화를 통해 발전합니다. 연인 사이에는 말 한마디 안 해도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언제까지 대화 없이 살 수는 없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고 있는 것만으로 좋지만 아이들이 말을 배워 대화를 시작하면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또 말할 수 있을 때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로 발전합니다.

제가 지난 주에 하나님은 지금도 개인적으로 말씀하시니 먼저 물어보고 대답을 들은 후에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항상 먼저 말을 걸어오십니다. 여기서 다시 아담부터 논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이미 기록된 성경을 읽고 깨닫는 것 외에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에 직접 말씀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여러분 자신의 체험이 증거가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경청의 방’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경청의 방은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강조됩니다. 사람들과 대화에서도 말하는 것보다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들어야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이해를 토대로 내가 할 말이 생깁니다. 대화에서 상대의 뜻을 모르면서 하는 말은 거의 쓸모 없는 말이 되기 쉽습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이 지금도 개인적으로 말씀하시는가?’ 이런 질문으로 시간을 보내지 맙시다. 대신 ‘어떻게 하면 하나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을 합시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증거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자기 안에 이미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계시록3장 20절에,  주님은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성령을 통해 복음으로 사람들의 마음 문을 두드립니다. 여러분은 당신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반응하여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도 안에 있는 사람이 그 소리를 들어야 반응할 수 있습니다. 듣는 귀가 어둡거나 다른 곳에 집중하고 있을 때 소리는 있어도 듣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계시록2장과 3장에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메시지가 끝날 때마다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2:7,11,17,29, 3:6,13,22)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섬기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기본적으로 비서관의 삶과 같은 것입니다. 비서관은 가능한 자기를 드러내지 말고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충실하게 이행해야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 주인의 뜻을 헤아리고 순종하는데 전력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섬기면서 자기 맘대로 생각대로 일하는 것은 잘못하는 것입니다. 열매로 나무를 아는 것처럼 행실이 그 사람의 정체를 보여줄 것입니다.

대통령이 비서의 잘못으로 욕을 먹을 때가 있습니다. 대통령을 빙자해 말하고, 지시대로 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는 참모는 해가 될 뿐입니다. 여러분도 지난 수년 동안 그런 사례를 많이 봤을 것입니다. 이런 이치는 신앙생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빙자해 말해서도 안되지만, 하나님의 지시를 듣지 않고 자기 맘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꾼도, 하나님의 자녀도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듣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애쓰는 사람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음성인지 아닌지 분별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영감이나 생각이 떠오를 때 그것이 성령으로부터 온 것인지 악령으로부터 온 것인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또한 나의 생각인지 하나님의 음성인지 구분할 필요도 있습니다. 마음 속에 원하는 바가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객관적으로 듣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우리는 사탄이 대중문화를 이용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음악 뿐만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폭력과 살인과 음란을 조장하고 우리 양심을 무디게 만들어 실제 생활 속에서 그와 같은 죄악을 용납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단은 광명의 천사처럼 다가옵니다.  주의해서 정체를 알아내지 못하면 기만당 할 수 있습니다.

동화 중에 늑대가 나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엄마 염소가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가며 아기 염소들에게 엄마가 아니면 문을 열어주면 안 된다고 일렀습니다. 늑대가 엄마가 없는 것을 알고 아기 염소를 노리고 찾아왔습니다. 늑대는 엄마 염소처럼 변장하고 나타났습니다. “엄마가 왔다 문을 열어라” 아기 염소들이 문틈으로 내다봤습니다. 엄마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목소리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아기 염소들은 엄마 목소리가 아니라면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늑대는 감기가 걸려서 목소리가 변했다고 말했습니다. 늑대에게 속은 아기 염소들은 문을 열어주고 결국 잡혀 먹히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돌아온 엄마 염소가 기지를 발휘해 늑대를 물리치고 아기 염소를 구해냈지만, 아기 염소는 늑대에게 속아 죽을 뻔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일방적으로 말하는 기도에서 듣는 기도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부르짖고 간구하는 기도도 필요합니다. 위급한 상황에서는 부르짖는 기도 힘으로 하루 하루 버티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르짖고 간구하는 기도만 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평소엔 듣는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듣는 기도는 하나님과 친밀한 대화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가능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더 깊게 알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줍니다.

양은 자기 목자를 알아보고 따릅니다. 신생아들도 조만간 부모를 알아보고 낮을 가리며 부모를 따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마땅히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자라야 합니다. 대화는 모든 관계의 기초가 됩니다. 대화에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하는 열망을 가지고 기다릴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교제하는 시간과 장소를 만듭시다. 말씀을 묵상하며 성령께서 여러분 마음에 말씀하시도록 간구하며 기다립시다. 처음엔 기다림이 주로 침묵의 시간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점차 하나님과 대화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말씀과 성령 안에서 주님과의 대화가 발전해나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