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헌신

사도행전18:1-3; 로마서16:3-5

오늘은 바울 선교사를 도와 복음전파와 교회개척에 힘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의 삶을 살펴보겠습니다. 두 사람은 출신 배경만 보면 예수 믿기 어려운 사람들이고, 두 사람이 만나 부부될 가능성도 거의 없었는데 가장 주 앞에 가장 모범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의 인생을 보면서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돌아보고 집에 돌아가면 부부가 차라도 마시며 앞으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의논하며 결단하는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 이름이 신약성경에  여섯 번 나옵니다. 그 중 세 번은 오늘 본문 사도행전 18장 2절과 18절과 26절에, 나머지 세 번은 바울 서신서인, 로마서 16장3절과 고린도전서16장19절과 디모데후서4장19절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18장 2절에는 바울 사도께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게 된 배경이 설명되어 있고, 로마서16장 3절이하에는 이 부부가 어떻게 바울을 도왔는지 묘사되어 있습니다. 오늘 저는 이 두 곳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은 2차 전도여행 기간에 고린도에 가서 선교했습니다. 바울은 거기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났는데, 이 부부는 고린도에서 천막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바울도 때때로 장막만드는 일을 해가며 선교활동을 했기 때문에 아굴라 부부와 쉽게 친해진 것 같습니다. 고린도에 머무는 동안 바울은 이 부부와 함께 지내며 선교했는데, 이 때부터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물심 양면으로 바울을 후원하고 복음전하는 일에도 전력을 다했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회람서신을 보면,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바울을 위해서라면 자기들의 목이라도 내어놓을 정도였습니다(롬16:4).

아굴라부부는 바울을 도와주는 것 외에도 그들 스스로 교회를 개척하는 일에 헌신한 평신도사역자였습니다. 로마서16장 5절에 ‘저의 교회’라는 표현을 봐서 아굴라부부 집에서 교회가 모인 것 같습니다. 고린도에서 함께 사역한 후 바울 사도는 아굴라부부를 에베소로 보냈습니다. 에베소에서 아굴라부부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과 함께 자기 집에서 교회로 개척했습니다(고전16:19). 사실 예루살렘교회부터 소아시아 여러 지역에 세워진 교회들은 거의 모두 가정교회로 출발했습니다. 목자 여러분들도 여러분 집이 목장이 되고 가정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초대교회는 물론 지금도 가정집은 종종 교회의 출발지가 되고 있습니다. 교회당 건물을 가지고 교회개척을 하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소수의 믿는 사람들이 집에서 모여 교회를 시작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예루살렘에 믿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하루에 삼천명이나 증가했다고 하는데 그 당시 그 만한 사람들을 한번에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적당한 규모로 나뉘어 제자들의 집에서 가정교회로 모여 떡을 떼고 교제하며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찬양하고 기도했습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빌립보교회도 루디아의 집에서 시작했습니다. 에베소 교회도 아굴라의 집에서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모이던 교회가 교인수가 많아져 작은 그룹으로 나뉘어 여러 가정으로 흩어져 모이든가 좀더 큰 건물을 구해 다같이 모이든가 선택해야 할 때가 오겠지만 개척 초기엔 가정집을 베이스로 시작했습니다. 교회의 본질을 생각할 때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 집에서 교회를 시작하는 것은 장점이 더 많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어떤 사람인지 좀더 살펴봅시다. 아굴라는 본도에서 출생한 유대인이었고(행18:2) 브리스길라는 로마태생의 명문가문출신이었다고 합니다. 본도는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소아시아 중북부, 흑해 동남쪽에 위치한 Sinop, Samsun, Ordu, Trabzon, Rize 까지 연결되는 험준한 산맥지역입니다. 성경에 자세한 설명이 없어 본도 출신 유대인 아굴라가 언제 어떻게 로마로 가서 귀족 출신 브리스길라를 만나 결혼할 수 있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브리스길라는 로마서 16장에는 브리스가로 나옵니다. 로마 귀족 중에 브리스가 가문이 있었기 때문에 브리스길라는 로마귀족출신이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브리스길라는 예수님을 믿게 되어 신분이나 인종을 초월해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 아굴라와 결혼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브리스길라가 아굴라를 만나 걸어가야 했던 인생여정을 생각할 때, 그녀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세상에서는 더 화려하고 안락한 상류사회의 일원으로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로마 귀족출신이 예수님을 믿게 되어 가족들과 소원해지고 유대인 남자와 결혼해서 로마에서 추방당하는 지경까지 몰렸습니다. 본문 2절에 보면, 글라우디오 황제가 모든 유대인을 로마에서 추방시킬 때, 브리스길라도 유대인을 남편으로 두었기 때문에 로마에서 추방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4년 후에 글라우디오 황제가 죽고 추방령의 효력이 정지되어 이들 부부는 다시 로마로 귀환할 수 있었지만, 추방당할 때는 앞날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니 남편을 따라 고향을 떠나는 것은 큰 시련이었습니다.

유대인 추방령(AD49)을 내린 글라우디오는 로마의 네번째 황제로 AD41-54년까지 통치했습니다. 로마 황제 계보를 보면, 최초의 황제는 예수님이 탄생하기 전에 호적령을 내렸던(BC8) 가이사 아구스도(BC27-AD14)였습니다.(눅2:1), 그의 본명은 옥타비아누스였고 원로원과 협상해서 공화정을 철폐하고 초대황제가 된 인물입니다. 아우구스투스가 나이들어 죽자 부인 리비아의 친아들로 양자가 된 티베리우스(AD14-37)가 황위를 계승했습니다. 그가 자연사한 후 황제의 자리는 티베리우스의 조카 게르마니쿠스의 아들 칼리굴라(AD37-41)에게 돌아갔습니다. 칼리굴라는 폭정을 일삼다 암살당하고 어수선한 정국에 근위대가 나서서 게르마니쿠스의 동생 글라우디오를 황제로 지명했습니다. 글라우디오가 생각보다 빨리 죽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다시 로마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부인에 의해 독살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설이 있습니다. 글라우디오의 뒤를 이은 5대황제는 그 유명한 네로였습니다.

긴 역사를 통해 볼 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대는 그 어떤 때보다 평탄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어쩜 폭풍전야의 고요함 같은 시기일지도 모르지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살던 시대와 비교해보면 지금 우리는 참 평안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전쟁에 내몰리지도 않고, 인권 탄압을 받지도 않고, 기아에 허덕이지도 않습니다. 세상의 헛된 욕심을 내려놓고 어떤 분야에서든 성실하게 일하면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먹고 살면서 주님을 섬기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이런 평안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지만,  지금 당장은 편안하게 살고 있으니 감사합시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불평한다면 그것은 욕심 때문일겁니다.

주어지는 상황은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역경과 고난은 불평과 좌절을 가져다 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더 의미있는 인생을 살 게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에게는 로마에서 추방되어 고린도로 가게 된 것이 바울을 만나 복음을 위해 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해주었습니다. 예수 믿는 아굴라와 결혼해서 귀족의 특권을 상실하고 로마에서 추방당해 고린도에 가서 장막 만드는 거친 일을 해야 했던 브리스길라 앞에 펼쳐지고 있는 인생은 참담한 시련이었습니다. 가족의 극심한 핍박 속에 예수님을 믿었으면 하나님께서 돌봐주시어 더 잘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 반대로 버림받은 것 처럼 펼쳐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일을 주관하신다고 믿는 사람에겐, 역경과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이 원망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하나님의 섭리까지 믿어야 합니다. 분명 이 상황을 통해 하나님이 성취하시려는 뜻이 있다고 믿고 가야 합니다.

로마에서 추방된 아굴라부부는 고린도로 가서 생업으로 천막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그 당시 고린도는 그리스에서 가장 활발한 상업 중심지였습니다. 고린도는 사시사철 뜨내기 인파로 북적대는 항구도시였고 각종 올림픽 경기와 군사이동으로 인하여 천막의 수요가 많았습니다. 장막일을 하는 아굴라가 고린도를 택한 데는 이런 요인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는 상거래가 활발한 항구도시의 특성상 성적으로 자유분방했고, 그곳 사람들은 아데미여신(아프로디테=비너스)을 수호신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고린도를 구원하기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환상 중에 바울에게 “이 성중에는 구원해야 할 내 백성이 많다”고 격려하셨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1년 6개월 동안 머물며 선교했는데,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부부는 물심양면으로 바울을 도와주었습니다.

바울은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부부는 “나를 위해서는 자기 목이라도 내어놓았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도 주를 위해 일하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교회 일에 힘쓰는 남편이나 아내에게 불평하지 말고 예수님과 목사님들로부터 인정받고 칭찬듣는 그런 부부가 되길 바랍니다. 아내 브리스길라 이름이 남편 아굴라보다 먼저 언급되기도 하는데 브리스길라가 남편보다 더 교회일에 힘썼기 때문일겁니다. 교회에서 자주 거론되는 사람은 문제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면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목사님들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자주 찾기 마련입니다. 별로 찾는 사람이 없다면 교회일에 힘쓰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이 안 찾으니 편하고 좋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모자란 사람입니다. 나중에 예수님도 모른다고 할지 모릅니다.

신구약성경 전체를 통해서 가장 모범적인 부부의 모델을 찾는다면 누구일까요? 아담과 이브, 아브라함과 사라, 요셉과 마리아, 아나니아와 삽비라,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등. 무엇을 강조하느냐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주의 일에 헌신한 정도를 놓고 본다면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보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더 본받아야할 부부라고 생각됩니다. 아굴라부부는 그 어떤 부부보다 복음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돕고 교회개척에 힘썼습니다. 교회에서 정말 필요한 사람은 아굴라와 브리스가 같은 부부입니다. 브리스가는 예수님 믿기 위해 귀족의 특권도 버리고 역경속에서도 낙심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복음전파에 힘쓰며 교회를 세우기 위해 시간과 재물을 드렸습니다. 늘푸른교회 부부들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본받아 전도와 교회 사역에 더욱 힘쓰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살면 하나님께서 필요를 채우시고 길도 열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