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례는 영적인 결혼식

사도행전2:37-42

한 주 동안 잘 지내셨죠? 말씀나누기 전에 좌우 옆 사람들과 인사합시다. 교회에 침례탕이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여름수양회 기간 중에 침례를 주고 있습니다. 이번 여름수양회 기간에도 침례식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침례식에 대비하여 침례가 무엇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아직 침례(세례)를 받지 않은 분들, 유아세례만 받은 분들, 개인적 신앙고백없는 상태에서 세례나 침례를 받은 분들은 구원상담을 받은 후 수양회에서 침례를 받기 바랍니다.

1. 침례의 유래

오늘날 교회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는 것은 예수님의 명령에 따른 것입니다. 마태복음28장 19절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예수 믿는 사람에게 침례를 줘야할 책임이 있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침례는 예수님보다 요한이 먼저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마태복음 3장을 보면, 유대 광야에서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소리쳤습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요단 강에서 침례를 주고 있던 요한에게 나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요한에게 나와 침례받은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 것을 아직 알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요한에게 침례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가지고 침례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회개의 표시로 요한에게 침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은 최초의 사례는 오순절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도들이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잘못을 일깨우자 하나님의 아들을 죽게 했다는 자책감이 든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 사도는 “회개하고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람을 얻으라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행2:38)고 말했습니다.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그날 삼천명 정도가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은 것 같습니다. 그 규모가 상상이 됩니까?

2. 침례와 세례

세례라는 말에 익숙한 분들을 위해 침례와 세례의 차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글 성경에 세례로 번역된 헬라어는  βαπτισμα이고, 그 동사형은 βαπτιζω로 ‘물에 잠그다’는 뜻입니다. 영어성경은 알파벳음을 따서 Baptism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헬라어 βαπτισμα는 물로 씻는다는 뜻보다  물속에 잠긴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요한과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배푼 의식이나 초대교회의 침례탕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결과를 봐도 단지 물을 뿌린 것보다 전신 혹은 일부가 물에 잠긴 형태로 의식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한글 성경에 세례로 번역된 것은 먼저 중국 성경에 세례로 번역된 것을 그대로 따왔기 때문입니다. 헬라어는  βαπτισμα를  세례로 번역한 곳은 세계에서 중국과 한글 성경 뿐입니다.  영어성경은 모든 번역본에 다 baptism으로 되어 있습니다.

초대교회 이후 사도시대에도  물에 잠기는 의식을 행하다가 환자들이 물에 잠기는 침례를 받기 어려울 때 예외적으로 물을 들어 붇는 관수례를 주기는 했습니다. 세례가 침례대신 교회에서 공식적 의식이 된 과정을 보면 이렇습니다. 주후 1311년에 라벤나 공회에서 침례와 세례는 다를 것이 없다는 변론을 했으나 16세기 종교개혁 후까지 약식세례는 공식 의식으로 행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 1643년 웨스트민스트 종교회의에서 이 문제를 토의하다가 표결한 결과 24대 24로 동수가 되었는데 이때 의장이었던 라이푸드가 약식세례에 투표함으로 약식세례가 공식 세례로 인정되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오늘날에는 침례의식보다 약식세례를 주는 교회가 더 많아졌습니다.

Baptism은 믿음을 표현하는 상징적 의식이니 세례든 침례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침례의식을 고집하는 것은 고지식한 태도로 보입니다. 반면에 침례는 의식을 통한 믿음의 고백이기 때문에 물 속에 잠기는 침례의식으로만 죽음과 장사와 부활의 믿음을 표현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저는 Baptism의 언어적 의미와 역사적 배경과 신앙고백의 의미를 고려할 때 물에 잠기는 의식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3. 침례의 영적 의미

요한이 침례를 준 것은 회개의 표시였습니다. 사람들이 요한에게 나와 침례를 받을 때는 아직 메시야가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침례 요한은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라고 이 땅에 파송된 마지막 선지자였습니다. 요한이 침례를 준 목적은 사람들이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먼저 죄인임을 인정하는 마음이 생겨야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한 의식, 죄를 인정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겠다고 하면 넌센스입니다.

침례는 회개하는 사람이 받는 의식입니다. 회개는  헬라어로 μετανονια입니다. 이 단어는 마음이 변하여 이전과 달라졌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잘못을 인정하고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물론 더 이상 그런 행동을 하고 싶지 않은 상태로 마음이 달라지는 수준까지 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오락끊고 성경읽겠다고 결심하고 하루 이틀까진 잘 버티지만 삼일이 지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있죠? 그래선 안되겠다는 생각은 있지만 오락을 하고 싶은 마음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바뀌면 행동이 달라지는 건 쉽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변하는게 회개인데 마음을 바꿔주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의 대표적인 특징은 마음이 바뀌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따르고 싶은 마음이 생겨야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유대인들에게 회개를 촉구한 내용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 예수님을 믿지 않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도록 만든 것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예수를 구세주로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미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모세의 율법을 배우며 자라기 때문에 예수님을 거부한 대부분의 유대인들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잘못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십자가에 죽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이 잘못을 인정하고 이제라도 부활하신 예수를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로 받아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회개의 개념을 우리에게 적용해봅시다. 베드로 사도가 전하는 복으을 듣고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한 잘못을 인정하고 메시야로 믿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은 물론,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죄가 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뭘 회개할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예수를 믿지 않고 산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큰 죄라고 인정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침례의 영적인 의미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장사된 후 다시 부활한 것을 고백하는 의식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받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여 죽어 장사되었다가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다시 살아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롬6:3-5). 침례 자체가 구원을 배풀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회개하고 믿음으로 침례받으면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가 장사되고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침례는 의식을 통해 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이 있으면 침례를 안받아도 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침례를 통해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의미를 생각해볼 때 침례는 영적인 결혼식과 같습니다. 침례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몸된 것을 고백하기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한다”(고후11:2)고 말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이런 비유적 관점에서 침례는 영적 결혼식입니다. 침례를 받는 것은 신부로서 예수님을 남편으로 섬기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결혼식은 남녀가 한 몸이 된 것을 선포하는 예식입니다. 결혼한 부부는 성적으로 한 몸을 이룹니다. 결혼한 배우자의 성적 교제는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며 배우자를 위해 자신의 몸을 주는 것입니다. 만일 결혼관계를 벗어나 다른 사람을 통해 이런 친밀함과 사랑을 표현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죄가 됩니다. 결혼 이전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적 친교를 결혼 안에서 허용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영적으로 결혼하여 신부가 된 우리들도 오직 예수님만 섬겨야 합니다. 성경엔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간음으로 표현했습니다. 간음은 큰 죄입니다. 영적 간음인 우상숭배는 하나님보시기에 가장 큰 죄악입니다. 예수 믿고 침례받은 사람은 예수님과 영적으로 결혼한 것이기 때문에 결혼한 아내가 남편에게 충실해야 하는 것처럼 오직 예수님만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4. 재침례

끝으로 재침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장로교회 출신으로 고등학교 때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나중에 침례교 신학대학교에 들어가 침례교회를 다니게 되었는데 거기서 침례의 의미를 깨닫고 재침례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속한 Foursquare Gospel Church도 물에 잠기는 Baptism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교회에서는 물에 잠기는 Baptism를 합니다. 호칭도 침례라고 부릅니다. 세례에 익숙해 침례라는 말에 거부감이 드는 분들은 Baptism이란 말을 쓰면 좋을 것입니다. 용어를 가지고 다툴 필요는 없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중고등학교 때 교회다닌 사람은 학습받고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는 회개와 믿음을 가지고 받아야 하는데 간혹 믿음없이 권유에 따라 세례받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나중에 예수님을 정말 믿게 되어 전에 받은 세례가 무의미한 것을 깨닫고 다시 세례나 침례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세례받은 사람이 세례와 침례의 차이를 이해하고 다시 침례를 받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믿음없이 세례나 침례를 받은 사람은 꼭 다시 Baptism을 받도록 권합니다. 세례받은 사람이 침례의 의미를 깨달아 다시 받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억지로 할 필요는 없습니다.

침례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에 대한 믿음이 생긴 직후에 가능한 빨리 받는 게 원칙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은 그날 즉시 침례를 받았습니다. 3,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침례 받는 장면은 대단한 광경이었을 겁니다. 빌립의 전도로 예수 믿은 이디오피아 내시도 즉시 개울물에 내려가 침례를 받았습니다. 예수 믿는데 아직 침례를 받지 못한 분들은 이번에 침례를 받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침례주는 것은 주명의 명령입니다. 침례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장사되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을 믿는 사람이 의식을 통해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침례로 예수님과 연합하여 한 몸이 됩니다. 그래서 침례는 영적인 결혼식입니다. 이미 침례받은 분들과 수양회에서 침례받을 분들은 침례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순결한 신부로서 주님을 잘 섬기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