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려다니는 삶

요한복음21:18

인생은 바다 위에서 노를 젓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여러분 대부분은 열심히 노를 저어 풍랑을 헤치며 목적지를 향해 나가는 과정가운데 있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죽을 힘을 다해 노를 저어야 하겠죠. 그런데 오늘 저는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굳게 붙잡고 있는 노를 놔 버리고 이끌려 가게 놔두라는 것입니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주님을 따라가려면 꼭 알아야 할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지난 주일 저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섬기려는 사람은 먼저 종의 도리부터 배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신분상으로 우리는 누구의 종도 아닙니다. 사람은 물론 하나님께서도 예수 믿고 구원 얻은 사람을 자녀로 대하지 종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녀지만 주의 일꾼은 종의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에게 종의 마인드가 생깁니까? 예수 믿으면 누구에게나 종의 마인드가 생깁니까? 교인들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 위에 사랑이 더해져야 종의 마인드가 생깁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 보면,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반복해서 물었습니다. 그 때마다 베드로는 “예,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도 아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주님께 대한 베드로의 사랑은 진실이었다고 믿습니다. 베드로가 속 마음을 숨기고 거짓으로 대답했다면 그것을 모를 주님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고백이 거짓이었다면 주께서 “내 양을 먹이라” 이런 말씀은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까지 대화를 통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주님의 양을 먹이고 치는 수고를 감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강조하려는 것은 후반부의 이야기 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주님의 양을 먹이고 치라고 당부하신 후에 이후부터 베드로가 어떤 인생을 살게 될 것인지 말씀하셨습니다. 18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 19절에 설명되었는데, 베드로가 주님을 위해 일하다 죽음을 당하고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양을 섬긴 대가로 어떤 보상이나 영광도 약속도 하지 않고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매우 비현실적입니다. 현실 속에서는 예수님을 위해 일할 때도 뭔가 대가를 기대합니다. 실컷 일하고 죽어야 한다면 그 길을 따라갈 사람이 얼마나 될 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을 위해 일할 때도 뭔가 얻기를 바랍니다. 인정받고 싶고 유명해지고 싶고 물질적 보상을 받고 싶어합니다. 유명한 목회자일수록 끌려 다니기 보다는 끌고 다닐 수 있는 힘을 추구합니다. 성공적 목회를 가르친다는 강사들의 입에서는 한결같이 교회도 현실에 적응해야 살아남고 유명세를 이용해야 사람들을 모을 수 있으며 힘을 가져야 세상을 상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런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통제아래 두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힘을 가지려고 합니다. 순종적인 사람들도힘을 갖게 되면 지배적인 사람으로 변하기 쉽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이런 힘의 통제력이 발휘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정, 각종 사회단체, 정부기관 등 어디나 힘의 논리가 작용합니다. 부부 사이에도 주도권 다툼을 벌입니다. 년 말이 되면 각종 단체에서 서로 대표가 되겠다고 싸웁니다. 청와대와 국회가 기 싸움하는 것도 보면 주도권 때문에 벌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독재정권과 국민 사이에서도 힘의 싸움이 벌어집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교회에서도 주도권을 놓고 다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주님을 더 잘 섬기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결국은 상대를 굴복시키고 확실히 지배하려고 하기 때문에 화합이나 공존이 안됩니다. 교단 대표가 되려는 것도 명예와 힘을 갖고 싶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섬기는 종의 표상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세상에서 통하는 힘을 서로 갖겠다고 싸우는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닙니다. 주를 위해 일하다 죽음을 당하는 곳이 아니라 명예를 얻고 힘을 행사하는 자리라 서로 하려고 그럽니다.

교회가 세상을 통제하기 위해 힘을 과시하는 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종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모든 영광을 주겠다”는 사단의 유혹을 거절했습니다. 명예와 힘을 통한 사단의 유혹은 그 때 한 번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사단은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이것을 가지고 유혹해왔습니다. 1세기 이후 교회는 이 힘의 유혹 앞에 쉽게 무너졌습니다. 제왕처럼 군림하는 것도, 권력 앞에 시녀처럼 아부하는 것도 교회와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힘의 논리를 앞세워 오만해진 모습은 결코 주님을 따르는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가지고 있는 힘을 포기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상대로 힘으로 굴복시켜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교회는 오랜 세월 동안 힘과 권력을 복음선포의 수단으로 삼고 싶은 유혹을 받아왔습니다. 실제로 교회는 이 유혹에 수도 없이 굴복했습니다. 힘을 갖는 것이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데 유리하다고 주장하며 힘을 추구하고 힘을 사용해왔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십자군 전쟁 같은 것입니다.

최근에 어떤 목사님이 스쿠크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면 대통령 하야 운동을 벌이고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고 해서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반대하는 취지는 저도 동감합니다. 그러나 종교적 이유로  대통령 하야 운동을 펴겠다는 주장은 힘의 논리로 대항한다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 분이 기독교와 자신에게 무시당하지 않을 힘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발언을 했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세상에 힘을 과시하는 것은 주님이 원하는 교회의 모습이 아닐 것입니다.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하나님도 오래 전에 포기한 방법입니다. 노아 홍수 사건이나 광야 40년에 걸쳐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죽었던 사실을 생각해보세요.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곁길로 나간 자식들을 다 죽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힘을 포기하고 사랑으로 섬기는 길을 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힘이 없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은 아닙니다. 교세가 커지고 또 유명해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힘에 의존하기 쉽습니다.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목회자나 리더들은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사랑대신 힘을, 십자가 대신 지배력을, 이끌려가기보다는 끌고 가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하신 후 그를 목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을 그의 미래를 보여주는 예언으로 주셨습니다. 네가 젊어서는 원하는 곳을 마음대로 다녔으나 네가 늙어서는 다른 사람이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너를 데려 갈 것이다”(요21:18). 여러분은 이 구절이 무슨 뜻이라고 봅니까? 이 구절이 여러분 삶에도 상관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하버드대학 교수였다가 라르쉬로 옮겨 장애자들과 공동생활을 하며 그들을 섬긴 헨리 나우엔은 18절의 말씀은 크리스쳔 리더의 핵심을 보여주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을 놓아버리고 예수님의 겸손한 길을 따를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제시해준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양을 섬기는 목자가 되면 자신도 모르는 또 바라지도 않는 고통스런 곳으로 끌려 다니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자는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끌려 다니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깊이 사랑해서 어디로 인도하든 그 분을 따라가는 사람, 지팡이 하나로 만족하며 길을 떠나는 사람, 가난하여 주님 외엔 의지할 것이 없는 사람, 그래서 세상에 미련이 별로 없는 사람 그런 사람입니다.

이런 관점은 세상과는 달라도 한참 다릅니다. 그래서 주님을 따라가려면 주님에 대한 깊은 묵상과 신학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많은 설교가 깊은 신학적 성찰을 통해 나오는 대신에 성경적 용어로 포장된 심리학이나 사회학적 조언에 그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성경구절을 단순히 반복하는 대신에 예수님을 마음을 통해 다시 우리에게 들려질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을 비워 종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셔서 사랑으로 섬기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리 저리 끌려 다니며, 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으면서도 마지막엔 그 잔을 받아 마신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은혜는 항상 아름다운 모습만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에게 함께 죽자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만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야고보도 죽었고 스데반도 죽었습니다. 주를 위해 죽음의 자리로 끌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지금 뭐하고 있습니까? 더 갖겠다고 싸우면서 불평하고 사랑으로 섬기지 못해 힘들어하며 여기 저기 기웃거리는 모습이 싫어질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주인은 이끌고 종은 끌려 다니는 게 맞습니다. 끌려 다녀야 할 사람이 주관이 분명하고 스케줄이 꽉 짜여 있으면 안됩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이냐 실패냐 이런 생각 자체를 버리세요. 뭘 먹고 살 것인지 그런 걱정도 하지 마세요. 여러분 인생을 힘들게 끌고 가려고 하지 말고 끌려 다니세요. 그러다 보면 주님 뜻에 가깝게 살다 천국에 가 있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위로와 평강이 충만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