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세력을 다루는 방법

느헤미야4:1-14

오늘은 리더라면 어디서 일하든 한번쯤 겪게 되는 반대세력을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세상의 영역에선 말한 것도 없고 교회 사역에서도 리더는 자기를 싫어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상대해야 합니다. 반대세력을 방치하면 리더쉽에 손상을 입고 교회나 목장에 파벌이 생겨 사역의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그렇다고 힘으로 누르면 저항력을 키워 언젠간 밖으로 터져나와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리더는 반대세력을 잘 다루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일도 모든 사람이 기뻐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하나님의 일은 곧 자기 일이고 시간과 재물도 아낌없이 드리지만, 자신이나 가족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고 또 안락한 생활을 더 좋아하는 사람은 교회다니는 사람일지라도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하나님의 일을 반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공사도 안 밖으로 반대세력이 있었습니다. 4장엔 주로 외부 세력 산발랏의 반대와 위협에 대해 언급되어 있습니다.

산발랏은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을 상대로 두려움을 이용하는 심리전을 펼쳤습니다.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왕의 허락을 받고 예루살렘성벽을 재건하러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심사가 뒤틀린 인물이었습니다(느2:9). 산발랏은 느헤미야가 성을 건축한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사마리아 군사들 앞에서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조롱하는 말을 쏫아냈습니다(느4:2,3). 그 다음엔 연합전선을 구축해 무장공격을 시도하고(느4:7-12), 대화로 해결하자며 암살음모를 꾸미고(느6:1-3), 중상모략 비난하는 서신을 보내고(느6:5-6), 스마야를 뇌물로 매수해 성전에 들어가 숨어야 안전하다는 거짓 예언을 하게 했는데(느6:12,13), 이것은 느헤미야를 성전에 가둬두려는 술책이었습니다.

산발랏의 방해전략은 두려움을 이용하는 심리전을 폈습니다. 그는 말로 조롱하고 위협하며 사기를 꺽으려고 시도했고, 그 다음엔 무력으로 공격할 것 같은 정보를 흘려 성벽공사에 참여한 유다 백성들을 두려움에 빠뜨리려고 했습니다. 성벽공사에 참여한 백성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동요가 일어났을 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집요하게 공격해오는 산발랏에 대해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성벽 재건을 완성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밀고 나갔습니다.

믿음은 믿고 행동하는 사람을 통해 역사하는 힘이 나타납니다. 믿는다고 고백하고 믿음으로 행동해야할 때 두려움에 빠져 주저하거나 도망가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모세가 각지파 대표 한 사람씩 12명을 선발해 가나안땅을 정탐하도록 보냈는데, 거기서 거대한 아낙자손들을 보고 두려움에 빠져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매뚜기같은데 어떻게 싸워서 이길 수 있겠느냐며 이제 다 죽었다고 통곡하며 사기를 떨어뜨렸습니다. 그 때 여호수아와 갈렙이 나서서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다”(민14:8,9)고 말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나머지 사람들은 두려움에 빠져 실패하여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인생을 끝냈습니다.

훗날 사울왕때 이스라엘백성들이 불레셋과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불레셋 진영엔 골리앗이라는 거인장수가 나와서 이스라엘을 조롱하며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었습니다. 골리앗의 키가 여섯규빗 한 뼘(삼상17:4)이니 계산하면 2m 96cm입니다. 그 기세에 눌린 이스라엘 군영에선 비웃음과 조롱을 당하면서도 골리앗이 두려워 나서는 장수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했다”고 합니다(삼상17:24). 그 때 형들을 위문차 왔던 다윗이 하나님의 군대가 모욕을 당하는 것을 보고 열통이 터져 돌맹이를 들고나가서 골리앗을 물리쳤습니다.

싸움에선 겁먹으면 집니다. 산발랏은 이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는 허약하기 짝이 없는 유다인들이 모여 폐허가 된 흙무더기에서 무슨 성벽을 다시 쌓겠다고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고 조롱했습니다.  암몬 사람 도비야도 너희가 쌓는 성벽을 보니 얼마나 허약한지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지겠다고 비아냥댔습니다. 사실 산발랏이나 도비야는 유다 백성들의 아픈 곳을 때렸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지끔까지 그들의 말처럼 무기력하게 지내온 게 사실입니다. 에스라가 먼저 유다로 내려와 성전보수공사를 시작했지만 이들의 방해 때문에 무너진 성벽은 보수하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산발랏이 예루살렘성벽재건을 반대한 이유는 쉽게 짐작이 갑니다. 산발랏은 호론 사람(느2;10)으로 나오는데, 주석가들은 호론은 예루살렘 북서쪽 20km에 위치한 ‘벧호론’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산발랏은 벧호론 출신이거나 그곳에서 살면서 사마리아지역을 다스리는 총독이었습니다.  산발랏 입장에선 예루살렘이 강해지면 사마리아가 중심지인 자신의 세력이 약화될 수 있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성벽공사를 반대했을 것입니다. 산발랏은 하나님의 명예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권세만 생각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세상 일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르게 보입니다. 하나님의 명예를 구하는 관점에서 보는 것과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관점에서 보는 것은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하나님의 명예를 먼저 생각한 느헤미야는 무너진 성벽을 방치하는 것은 이방인들 보기에 수치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사마리아를 무대로 권세를 잡고 있던 산발랏은 유다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무너진 성벽 같은 것은 신경쓰지 말고 각자 유익을 구하며 뿔뿔이 흩어져 사는 게 유리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산발랏이 하나님보다 자기 유익을 구하는 그런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려움은 생각보다 깊게 영적 사역에 방해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역자들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목회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밴처기업가들에게도 큰 적이랍니다. 두려움은 개척목회자들에게도 최대의 적입니다. 저도 오랫동안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싸워야 했습니다. 제가 목사안수 받고 처음 담임목사로서 사역한 곳이 경남 창녕의 월령에 있는 시골교회였습니다. 한껏 여유롭게 지내도 되었을 때인데 왠지 모르게 시골에서 허송세월한다는 압박을 느꼈습니다. 3년 후에 서울 영등포 당산동 개척 5년된 교회로 옮겼는데 3개월쯤 지나자 전임목사를 따르던 사람들이 한 두명씩 떠났습니다. 그걸 보며 실망감과 함께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마음 한 구석엔 목회성공에 대한 두려움 같은게 있습니다.

두려움과 조롱은 복음의 일꾼들을 주저 앉게 만드는 사단의 전략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겐 다소 부족해도 위로하고 격려해야지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사실 리더라고 해도 자기만 아는 부족한 점이나 핸디켑이 있습니다. 부족하고 못하는 줄 아는데 그걸 지적하며 못한다고 하면 정말 힘 빠집니다. 복음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서로 격려하고 칭찬해줘야 합니다. 잘하고 있는데 기죽이지 말고 최소한 실력만큼은 평가해줘야 합니다. 두려움과 열등감을 이용하려는 원수의 말에 귀담아 듣지 말고 느헤미야처럼 담대하게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자신을 공격하는 적을 상대로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은 다소 충격적입니다. 느헤미야는 산발랏 일행에 대해 하나님께 “저희 욕하는 것을 자기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혀가게 해주시고 주의 앞에서 그 악을 덮어두지 마옵시며 그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4, 5절)라고 구했습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원수를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 속에 불타는 분노를 묻어두고 거룩한 척하는 것보다는 정직한 기도였습니다. 직접 원수갚는 행동을 하는대신에 하나님께 맡기고 자기는 성벽 재건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어쩌면 분노가 성벽공사에 박차를 가하는 에너지가 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비난과 조롱에도 불구하고 성벽공사가 잘 진행되자 산발랏은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과 아라비아 지도자들을 규합해서 무력공격을 계획했습니다(7,8절). 이 음모는 유다 첩보원들을 통해 느헤미야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성벽공사를 지원해주라는 아닥사스다왕의 조서가 있었지만, 사마리아총독은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을 공격하고 그들이 모반을 도모하려했다고 꾸며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느헤미야도 이런 정황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파숫군을 세우고 지형까지 고려해 성 뒤 낮고 넓은 곳에 각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든 백성들을 배치하고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해 싸우라”(14절)고 격려했습니다.

성벽공사를 반대하는 적들이 공격해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느헤미야는 공사를 잠시 중단할 수도 있었습니다. 아니면 공사를 멈추고 전열을 가다듬어 선제공격을 시도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제3의 길을 택했습니다. 공사를 중단하지도 않고 무력으로 산발랏과 맞서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자체 방어를 튼튼히 하면서 공사에 집중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적의 위협으로 공사를 중단하면 다시 시작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무력으로 산발랏을 상대했다면 진짜 모반으로 몰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적의 기습공격에 철저하게 대비하자 산발랏 일당은 승리를 확신할 수 없어 공격계획을 포기했습니다. 공사만 하기에도 부족한 인력인데 일부를 빼서 칼과 창과 활을 들려 전투배치하느라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사람들은 적의 공격이 없었기 때문에 괜한 수고만 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느헤미야가 철저하게 대비했기 때문에 싸우지 않고도 적을 물리쳤던 것입니다. 우리가 깨어 기도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사단은 항상 기습공격을 노립니다. 우리가 깨어 기도하며 영적 불침번을 서고 또 공격이 있으면 언제라도 물리칠 수 있도록 믿음의 방패와 말씀의 검을 두 손에 들고 대기해야 할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성벽공사에 전력을 다한 것은 목표의식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유다에 온 최종 목표는 성벽건축이었습니다. 그의 계획은 모두 그 목표를 향해 움직였습니다. 산발랏을 물리치더라도 모반으로 오해받아 성벽공사를 완공할 수 없다면 그것은 실패입니다. 그는 자신이 지금 할 일은 산발랏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성벽공사를 끝내는 것이었습니다. 책상정리하다가 시간을 다 써버리는 것은 어리섞은 것입니다.

교회사역에서도 리더는 반대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리더는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는 있습니다. 때로 반대목소리가 자신을 돌아보고 더 나은 길로 가게 해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리더는 반대하는 사람들 때문에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중단해서는 안됩니다. 18세기 전도자 조지 휫필드나 존 웨슬리도 노방전도활동을 비방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거센 저항을 받았지만, 그들은 비난하는 자들에게 응수하지 안고, 논쟁에 휘말리는 것을 피하고 복음 전파에 집중해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교회가 문을 닫고 그들에게 등을 돌렸지만 하나님은 그대신 길거리의 많은 군중들이 그들을 따르게 만들었습니다. 

교회사역에서 리더들은 반대세력이 생기면 먼저 자신이 하나님 편에서 일하고 있는지 살펴보기 바랍니다.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반대세력에 기죽지 말고 먼저 하나님께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세력에 대해서는 가능한 직접 응수 안하는 게 좋습니다. 먼지는 피해야지 직접 상대하면 먼지를 뒤집어 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합니다. 양을 돌보고 전도에 힘쓰면 누가 뭐라고 욕하고 비난해도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쓰십니다. 반대세력을 직접 상대해서 처리하려고 하면 나도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시비를 거는 사람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게 맡기는 게 최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