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소중한 것이 당신에게도 소중합니까

요한3:16-21

12월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신 성탄절이 있는 달입니다. 오늘은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생일을 가장 잘 축하하는 것인지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무엇이 주님을 가장 기쁘게 해드리는 지 알려면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3장 16절 이하에 그런 이유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본문 18,19절을 다시 읽어봅시다. 여기보면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이유가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예수 믿고 구원얻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예수 믿고 구원원도록 전도해야 합니다.

18절에서“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구절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보면서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했습니다. 이 구절이 의미를 가질려면 주어인 하나님의 존재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거나 믿지 않는 사람에겐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말이 의미가 없습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하나님이 무슨 사랑입니까?

문맥을 살펴보면, 18절의 말씀은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하신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유대인 중에서도 율법에 가장 열심이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었습니다. 따라서 니고데모는 이미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또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 따라 살려고 애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니고데모에게는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말에 이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면 얼마나 감동을 받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듣고 감동받지 못하는 교인들도 아마 같은 증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옆에 계신 것처럼 하나님의 존재가 분명해져야 설교 말씀이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을 보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무엇보다 먼저 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믿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게 되기 바랍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습니까? 예수님보다 하나님에 대해 더 잘 아는 분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아담보다도 에녹보다도 아브라함보다도 모세보다도 하나님을 더 잘 아는 분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죽게 할만큼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자식을 둔 부모의 심정이 되면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인간이 하나님이 세상의 깊이를 다 하는 것은 아마 불가능한 일일 겁니다. 아직은 차원이 다르잖습니까? 하지만 생각해볼 수는 있을 겁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을 만드신 분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부모이고 인간은 자식이죠. 모정이 더 하겠지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본능적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죽어야 할 죄인이라고 손가락질을 해도 어머니는 그 아들을 감싸고 대신 벌받겠다고 하잖습니까? 김혜자 주연의 어머니라는 영화를 보면 ……. 세상 사람은 하나님께는 자식입니다. 사람들이 거역하고 죄를 지어도 여전히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사람은 듣고 확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여자는 더 그런다고 합니다. 서로 사랑하니까 연인이죠. 그런 연인사이에도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합니다. 사랑하는 줄 알아도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야 정말 이 사람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구나 확인되고 행복해집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경 곳곳에 사랑을 고백해 놓으셨습니다. 직접 사랑한다고 말씀하시기도 하고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기도 하고 마지막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 사랑을 확인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자꾸 읽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질 겁니다.

그 다음 18절 후반절,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을 살펴봅시다. 이 구절의 뜻은 믿지 않으면 멸망당하고 영생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창세기에 기록된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에게 동산 중앙의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먹으면 죽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이브는 하나님처럼 지혜롭게 될 수 있다는 사단의 거짓말에 속아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범했습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고 선언하셨는데 그것이 아담 안에서 인류의 운명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창세기, 특히 에덴동산에서 벌어진 일들을 신화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과학적 지식으로 에덴동산에 있었다는 선악과, 뱀이 말을 하며 유혹하는 것, 생명나무, 이런 게 납득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고, 흙가지고 사람을 만드셨다는 것은 납득이 됩니까? 따라서 믿음으로 진리로 받아들이든지 믿지 못해 거부하든지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 어떤 것은 납득되고 어떤 것은 말이 안된다고 구분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에덴 동산 이야기는 신화가 아니라 지금은 사라져 없는 자연과 영적 세계가 공존하는 신령한 세계의 이야기였습니다.

예수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영생얻는 길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죄를 용서받는 길은 잘못한 만큼 대가를 치루는 것입니다. 대가를 치루는 형벌에는 사형, 감옥형, 벌금형이 있는데 하나님께 지은 죄는 사형입니다. 사형은 집행이 지연될 수는 있어도 대가를 치루고 살 수 있는 여지는 없습니다. 사람의 운명이 이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식이나 마찬가지인 인간이 이렇게 멸망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 사람들의 형벌을 대신 받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3일 후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대속으로 죄인들이 구원얻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담당하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사람은 죄를 용서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Thom S. Rainer의 The Unchurched Next Door(우리가 교회 안 가는 이유)를 보면, 불신자들을 연구하면서 알게 된 ‘열가지 놀라운 사실’ 중에 그리스도인이 되는 방법에 대해 들어본 사람이 극소수라는 데 놀랐다고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그냥 교회가자고 하는 사람들은 좀 있어도 불신자에게 구체적으로 복음을 전해주고 예수 믿도록 인도하는 교인들이 생각보다 적었다는 것입니다. 미국적 상황이긴 하지만 잭이라는 분은 예수믿은 후 고백하기를 60년을 살면서 자기에게 ‘그리스도인이 되는 방법’에 대해 얘기해 준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교회가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탄생을 가장 축하는 길일까요? 케익을 자르면서 축하의 찬양을 드리기도 해야겠죠. 그렇지만 거기서 끝내는 것은 우리는 즐거울지 몰라도 하나님과 예수님께는 그렇게 기쁘지 않을지 모릅니다. 세상에 오신 주님을 축하하고 기쁘게 해드리기 원하는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불신자 곁으로 가야할 겁니다. 주님과 함께 세상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 곁으로 가기 위해 하늘을 떠나 세상으로 오셨습니다.

세상 속으로, 불신자 곁으로 가는 것은 번거롭고 불편하고 때로는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도 하늘을 떠나 세상으로 오실 때 이런 불편함과 위험을 감수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구간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태어나자 마자 살해의 위험을 느끼고 애굽으로 피신해야 했습니다. 자신의 성공이나 가족의 행복이 우선이라면 이런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잃어버린 자들이 정말 여러분에게 소중한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께 무엇보다 소중한 곳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소중한 잃어버린 사람들 곁으로 가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방법을 알려줘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마크 목사님이 쓴 [복음과 개인전도]책을 보면, 의도적으로 같은 레스토랑과 사무실을 자주 찾아다니며 만나는 사람과 관계를 개선하고 안면을 터 놓으면 전도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직장에서 한국사람을 보면 점심시간이나 퇴근 직전에 일부러 차나 커피를 들고 가서 공통의 관심사가 될 만한 주제로 이야기하고 친해지기 바랍니다. 학교에서 지나치다 한국 학생을 보게되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웃으며 인사하고 두번째, 세번째 만나면 다가가 친구가 되도록 노력하고 그러다 보면 일년에 한 두명의 전도대상자를 얻지 못하겠습니까?

라이너의 [어제의 불신자에게 듣는다]는 책을 보면 믿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힘겨운 시기에 따뜻한 위로와 도움에 많은 불신자들이 복음에 마음을 열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불신자를 통해 알게 된 사실 중에는 불신자중 82%가 초대 받으면 적어도 교회에 갈 것이라고 응답했다는 것입니다. 관계를 만들고 기회를 봐서 가정 모임이나 카페 친교모임에 초대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매월 마지막 주에 교회로도 초대하기 바랍니다. 할 수 있는 것도 안하면서 전도가 안된다고 말하는 것은 참 그렇죠?

예수님도 유대와 사마리아와 갈릴리 온 마을을 돌아다니며 전도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간증들어보면 남의 집에가서 일해주고 애봐주고 보험들어주고 그러면서 전도한답니다. 12월 한 달 동안 집사님들, 목자들도 잃어버린 사람들 곁으로 다가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방법을 알려주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소중한 것이 여러분에게도 소중합니까?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 질문에 아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소중한 것이 여러분에게도 소중한 것이 되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