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속의 어머니들

삼상1:9-11

오늘은 어머니 주일입니다. 어린 자녀들을 키우느라 수고하는 자매님들께 성령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성경 속의 어머니’를 주제로 성경에 나오는 네 명의 어머니들의 삶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중에는 성공한 어머니도 있고 실패한 어머니도 있습니다. 어머니된 자매 여러분들은 성경 속의 어머니들의 믿음과 헌신과 눈물을 보면서 주 앞에서 어떤 마음으로 자녀를 양육할 것인지 생각해보고, 내 자식들이 주님을 위해 사는 사람으로 키워내는 것이 성공하는 어머니가 된다는 것을 유념합시다.

먼저 인류 최초의 어머니 이브부터 살펴봅시다. 이브는 신앙에서 실패하면 자녀 양육도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브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범해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듣고 받은 벌은 고통 속에 수고하고 자식을 낳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창3:16). 반면에 아담에게 내린 벌은 음식을 얻기 위해 수고롭게 일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창3:17). 노동과 출산(양육)의 수고는 벌인 동시에 남편과 아내의 역할 분담으로 생겨난 사명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관점에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것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주어진 사명이며 특권이라고 생각됩니다.

성경의 가르침으로나 신체적 특성으로 보나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일을 여성에게 주어진 사명이며 특권입니다. 여성은 그 무엇보다 출산과 양육을 통해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데 기여하게 되며 자신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게 됩니다. 자매 여러분들도 동의합니까? 이브(하와)라는 호칭도 어머니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창세기3장 20절을 보면,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불렀는데 그 이유는 이브가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답니다.

아담이 기대한 대로 아내 이브는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을 낳았습니다. 성경엔 이브가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을 어떻게 양육했는지 별로 언급이 없지만, 오늘날 어머니들처럼 두 아들을 낳는 고통과 키우는 수고를 감당했을 것입니다. 남들은 낳아놓으면 다 큰다고 합니다. 민혜나 린지도 그렇잖습니까? 세월이 흐르니 저절로 다 큰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부모, 특히 어머니는 자녀를 키우느라 잠 못 자며 고생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이브도 두 자녀를 키우느라 많은 수고를 했을 것입니다.

성장한 두 아들 가인은 농사를 짓고 아벨은 양을 치며 생업에 종사하는 사내로 자라났습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을 드렸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린 것은 부모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배웠기 때문일 겁니다.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고 가인도 아벨도 처음 소득을 얻은 후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며 제사 드린 것을 보면 이브는 자녀 신앙교육을 잘 시킨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다음 전개되는 이야기를 보면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고 하나님께 벌을 받아 집에서 쫓겨나 유리 방황하다 인생을 마쳐야 했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이 드린 제물과 그 제사는 받으셨지만 가인이 드린 제물과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반성하고 고쳐야 마땅한 일인데, 형 가인은 동생 아벨을 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형제가 들에 나가 있을 때 가인은 아벨을 쳐 죽였습니다. 이브에겐 이보다 더한 비극은 없었을 것입니다. 두 아들로 인해 이브의 인생은 처참하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로서 이브가 자녀 교육에 실패한 원인은 신앙생활의 실패에 있었을 것입니다. 범죄한 후 이브는 이전처럼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이브는 첫 아들 가인에게 충분한 사랑과 용납을 하지 못해 애정결핍의 가인을 만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거절 당할 때 참지 못하고 분통을 터뜨리며 동생을 시기하는 가인의 모습에서 애정결핍의 증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가인이 어머니의 사랑을 충분히 받고 건강한 마음으로 가지고 자랐다면 동생을 죽이는 살인자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어머니로서 이브는 실패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둘째로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리브가는 자기 소망대로 자녀를 몰아가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지혜를 발휘한 어머니였습니다. 리브가가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낳은 이야기는 창세기 25장 19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삭은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지 못하자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리브가는 쌍둥이를 임신했습니다. 태아가 뱃속에서 서로 싸워 리브가는 어쩌면 좋으냐고 하나님께 물었는데, 두 국민이 뱃속에 주도권 다툼을 벌이느라 그렇다면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죠? 하나님은 형 에서가 동생 야곱을 섬기도록 할 생각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택하심이 인간적 조건이나 행위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임을 보여주려는 의도였습니다(롬9-11,12).

저는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가 에서 처럼 어떤 사람에겐 운명처럼 다가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기독교신앙은 기계적인 운명을 믿진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전개되는 인생 앞에 운명이라는 두 글자를 생각하는 게 또 인생사가 아닙니까? 때로 어떤 사람에게 세상은 참 공평치 못하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토기장이의 비유에서 드러난 것처럼 피조물에겐 창조주가 공평하다 못하다 불평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런 느낌이 듭니다. 에서가 그랬을 것 같습니다.

세상 일은 어느 편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 보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리브가는 하나님의 뜻을 알 게 된 후 야곱을 통해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에서의 입장에서 보면 어머니 리브가는 진짜 나쁜 어머니였습니다. 리브가는 작은 아들 야곱과 한 편이 되어 눈 어둔 남편을 속이고 큰 아들 에서가 받아야 할 아버지의 축복을 야곱이 받게 도와주었습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에서는 어머니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에서가 볼 때 하나님도 하나님이시지만, 어머니가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에서와 야곱의 인생은 단지 두 사람의 인생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에서와 야곱의 인생은 인간의 행위와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을 보여주려는 무대였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각자 자신의 뜻에 따라 선택하며 살아갔을지라도, 큰 틀에서 보면 태어나기도 전에 계획된 하나님의 의도에 따라 연출되는 연극 같은 것이었습니다. 두 자식이 복중에서 싸울 때 하나님은 리브가에게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리브가는 남편 이삭이 세상 떠날 때가 가까운 줄 알고 큰 아들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권을 시행하려고 할 때 동생 야곱이 받도록 했습니다.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도록 믿음과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셋째로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이야기를 봅시다. 한나는 자녀를 주의 종으로 바친 가장 모범적인 어머니였습니다. 한나의 남편 엘가나에게는 한나외에도 브닌나라는 부인이 있었습니다. 브닌나는 자식이 있었지만,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한나는 부닌나보다 더 남편의 사랑을 받았지만, 자식이 없어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브닌나가 자식이 있다고 업신여기는 것 같아 한나는 너무나 화가 나고,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울며 밥도 먹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남편 엘가나는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마음이 슬프뇨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 하뇨"(삼상1:8) 하고 위로했지만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한나는 회막이 있는 실로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자식을 주시면 하나님께 바쳐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를 들어 아들을 낳게 해주었습니다. 한나는 아들이름을 사무엘이라고 지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 구했다”는 뜻입니다. 자식 이름을 지을 때 잘 되게 해달라는 뜻보다는 하나님의 역사나 은혜를 기억할 그런 이름을 짓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김주은’ 얼마나 좋습니까? 평생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살 게 아닙니까? 한나도 사무엘을 보면서 주님께 기도하여 얻었다는 것을 평생 기억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서원한대로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갓난 아이를 당장 하나님께 드릴 수 없으니, 젖을 뗄 때까지 키우다가 사무엘을 제사장 엘리에게 보냈습니다. 아마 사무엘이 4살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자식 얻기 위해 무슨 기도는 못하겠습니까? 우리도 하나님께 딜하는 식으로 기도할 때 많지만 응답된 후엔 잊어버리죠. 하지만 한나는 아직 이안이나 노아 같은 어린이를 품에서 떼어 정말 하나님의 종으로 바쳤습니다. 보통 어머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후에 사무엘이 장성하기 까지 주기적으로 뒷 바라지를 했습니다. 훗날 사무엘은 이스라엘 역사에서도 가장 훌륭한 사사요 선지자가 되어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믿음의 어머니 한나가 있었기에 사무엘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넷째로 침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을 살펴봅시다. 엘리사벳은 특별한 사명을 받은 인물을 아들로 두었기 때문에 아들에 대해 항상 애절한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어머니였습니다. 엘리사벳은 아론 가문 출신의 여인으로 그녀남편은 같은 가문 출신의 제사장 사가랴였습니(눅1:5). 그들은 나이가 많았지만 아직 자식이 없었습니다. 남편이 성소에 들어가 제사장 직무를 볼 때 천사가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게 될 것이고 말했습니다. 사가랴는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천사는 사가랴에게 아들을 낳으면 이름은 요한이라 짓도록 당부하고 요한이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예언해주었습니다.

천사의 증거에 따르면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보다 조금 먼저 세상에 와서 메시야의 길을 예비할 사명이 주어진 인물이었습니다.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서 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는 일을 하도록 세상에 보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메시야를 위해 먼저 가서 일할 사람을 세상에 보낼 계획이셨는데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기도하니 그 가정에 요한을 보낸 것입니다. 말하자면 요한은 엘리사벳의 아들이기 전에 주를 위해 살아야 할 사명자였던 것입니다.

요한은 대중 앞에 나와 메시야를 증거하기까지 빈 들 광야에서 생활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사벳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런 아들을 하나님의 종으로 강하게 키우기 위해 육신의 정을 포기하고 광야로 내어 보냈습니다. 때가 되어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며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요단강에서 침례를 주었습니다. 침례 요한에겐 사생활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주를 위해 안락한 삶은 포기한지 오래였습니다. 연애 한번 해본 적 없을 것입니다. 마침내는 헤롯의 술자리 연회에서 참수당해 죽었습니다. 엘리사벳은 그런 아들을 지켜봐야 했을 것입니다.

주를 위해 헌신하는 데도 여러 차원이 있습니다. 그 중에 자식을 드리는 것이 가장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자신이 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은 믿음이 있다면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고난을 당하고 위험에 처해도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일을 하면서 겪는 것이라도 자식이 헐벗고 굶주리고 육신의 고통을 당하고 모함을 받고 생명의 위험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을 보는 것은 어머니로서 참으로 힘든 일일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주님을 위해 자식을 바친 어머니들 중에서고 가장 힘든 상황을 견뎌냈습니다. 이런 어머니가 있었기에 요한은 자기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며 죽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청년 시절 방탕한 삶을 살았던 어거스틴은 어머니 모니카의 신앙의 본과 눈물의 기도로 회개하고 주 앞에 돌아와 서방 교회의 기초를 놓은 위대한 신앙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는 가난한 목사의 아내로 19명의 자녀들을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육하고 그들을 위해 밤을 세워 기도하며 주의 일꾼으로 길러냈습니다. 수산나는 자녀에게 하나님의 쓰실 그릇이라는 자아인식과 목표의식을 심어줌으로 어린 시절부터 방황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어머니 여러분들은 지금 여러분 자녀가 성장해서 어떤 사람이 되고, 무엇을 위해 살면 좋겠습니까? 어머니가 하나님을 잘 섬기며 은혜가 있어야 자녀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남편들은 아내가 어머니로 자녀를 잘 양육할 수 있게 사랑을 배풀고 배려해야 합니다. 어머니는 자녀에 대해 기대하는 아름다운 미래상이 있어야 합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돈 많이 벌고 출세하라” 이런 말은 하나님 믿는 부모들이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어머니 여러분들은 자녀가 주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지 생각하며 자녀가 그 길을 가도록 격려하기 바랍니다. 어머니가 계시는 자녀 여러분들은 어머니의 수고에 감사하며 기쁘게 해드리며 하루를 보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