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소견에 좋은 대로 살면?

사사기17:1-13

음주운전이 의심될 때 교통경찰관들이 나와서 똑바로 걸어보게 합니다. 술취한 상태에서 똑바로 걷는 건 힘들죠. 갈지자로 걷는 게 편하겠죠. 정상인도 마찬가지일겁니다. 약간 좌 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걸어야 자연스럽고 편합니다. 직선을 따라 걷는 건 힘듭니다. 신앙생활도 성경대로 똑바로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성경말씀을 기준으로 삼더라도 때때로 융통성을 발휘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하다 보면 엉망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내용은 그런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먼저 사사기17장 1-6절까지 내용을 살펴봅시다. 에브라임 산지에(PP3) 미가라는 사람이 어머니와 살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큰 돈을 잃어버렸습니다. 잃어버린 재물은 1,100 세겔이었는데, 은 1 세겔은 대략 11g으로 그 당시 노동자 4일 품삯에 해당하는 가치가 있었답니다. 그러면 얼마나 되는 겁니까? 노동자 기준으로 12년이 넘는 품삯입니다. 이렇게 많은 재물을 잃어버린 미가의 어머니는 정신이 나가 돈을 훔쳐간 사람을 저주하며 아들에게도 못봤냐고 의심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상심해서 저주하는 소리를 들고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미가는 그 돈을 어머니께 도로 내놨습니다. 이제 보니 아들이 어머니의 돈을 훔친거네요. 그러자 미가의 어머니는 잃어버린 줄 알았던 돈을 다시 찾은 게 기뻐서 돈을 훔쳐간 아들을 혼내기는커녕 여호와께 복받기 원한다고 축복하고 나서 은 200 세겔을 들여 아들을 위해 신상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까? 제대로 된 어머니라면 돈을 훔쳐간 아들을 혼내고 벌을 주고 그래서 바로 잡아줘야 할 겁니다. 그런데 미가 어머니는 책망은 커녕 축복해주고 멸망의 지름길인 신상을 만들어 우상을 섬기게 만들었습니다.  모자가 하는 행동을 보니 엉망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미가 집에는 그 전부터 신당이 있었습니다. 미가는 어머니가 만들어 준 신상을 모셔 놓고 또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어 자기 아들 중에 한 사람에게 에봇을 입혀 제사장을 세우고 자기 집이 복받게 빌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게 하나님이 규정한 제사제도를 어기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형상으로든 신상을 만드는 것을 금했습니다(출20:4,5;신4:23). 가정 수호신으로 드라빔을 만드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행위입니다. 제사장 옷인 에봇은 아무나 만들어 입을 수 없는 것입니다(출28,39장).  제사장은 레위 후손 중에서도 아론의 후손에게만 주어진 자리였습니다(출29:9). 미가는 여호와 이름을 빙자해 제사와 관련된 여호와의 규례를 모두 위반했습니다.

본문엔 미가 한 가정이 등장하지만 미가를 통해 그 시대 이스라엘 후손들이 얼마나 무지하게 살고 있었는지 보여줍니다. 이렇게 엉망으로 살게 된 것은 율법을 떠났기 때문일 겁니다. 6절엔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어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해서 그런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왕이 없어서 그랬다면 훗날 왕이 통치할 때는 바로 했습니까? 아닙니다. 더 엉망이 되어 결국 남왕국, 북왕국 모두 멸망의 길을 갔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섬기게 하는 것은 왕이 아니라 말씀입니다. 말씀을 몰라서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살아간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힘써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 다음 7절에서 13절 내용을 살펴봅시다.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어떤 레위인이 거할 곳을 찾아 베들레헴을 떠나 여기 저기 떠돌다가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분배해 줄 때 레위인에겐 땅을 분배해주지 않고 이스라엘 12지파 경내에 48개 성읍을 거주지로 주고(수21장참고) 각 지파의 십일조로 생활하도록 규정했습니다. 유다 베들레헴은 레위인의 거주지 48개 성읍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규정대로 라면 레위인이 베들레헴에 가서 거주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사기18장 20절을 보면, 이 레위인은 게르손 후손으로 모세의 손자였습니다. 게르손 자손들은 잇사갈 지파, 아셀 지파, 납달리 지파, 그리고 바산에 있는 므낫세반지파 중에서 십삼성읍을 얻었으니 이 레위인도 이들 성읍중 하나 가운데 거해야 했습니다. 이 지역은 갈릴리호수를 둘러싼 북쪽 지역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레위인은 북쪽 자기 성읍을 떠나 남쪽 유다 예루살렘으로 내려가 살다가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다시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까지 흘러간 것입니다.

레위인들이 받은 성읍은 스스로 농사짓고 살만큼 충분한 땅은 없었습니다. 집을 짓고 십일조로 받은 가축을 먹일 수 있는 정도의 땅 밖에 없었습니다. 레위인은 십일조를 받아야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십일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생계가 어렵게 되자 성막 봉사의 일을 버리고 호구지책으로 다른 지파들의 거주지로 들어가 살길을 찾는 레위인들이 생겨난 겁니다. 이처럼 떠돌이 레위인이 생긴 것은 각 지파가 십일조 헌물을 제대로 드리지 않아 레위인들이 각자 알아서 이리 저리 살길을 찾아 떠 돌아 다녀야 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한 레위인은 그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운좋게 일자리를 얻은 셈이었습니다.

미가는 아들 중 하나에게 제사장 역할을 맡겼지만 레위족이 제사장을 맡아야 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제사장은 레위 후손 중에서도 아론의 후손만 맡을 수 있는 직책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가는 자기 집을 찾아온 레위인에게 해 마다 은 열 세겔과 옷 한 벌과 음식을 제공할 테니 나와 함께 지내며 나를 위해 제사장을 맡아달라고 고빙했습니다. 고빙(雇聘)은 학식이나 기술이 뒤어난 사람에게 어떤 일을 맡기려고 예의를 갖춰 고용한다는 뜻입니다. 일자리를 찾아 떠돌던 레위인 입장에선 만족한 조건은 아니라도 먹고 사는 길은 얻은 셈입니다.

이 레위인을 보니 한심한 생각이 듭니다. 실로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겨야 할 레위인이 먹고 살기 위해 떠돌다 미가의 집에 들어가 하인처럼 호구지책으로 그 집안 잘 되게 해달라고 빌면서 지내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이 레위인은 참으로 다행인 상황이 비참하지 않습니까? 레위인이 자기 소임을 버리고 떠돌아다니게 된데는 물론 이스라엘 공동체에 책임이 없지 않습니다. 12지파가 하나님이 제정한 규례에 따라 소득의 10분의 1을 성막에 드려 성막에서 일하는 레위인의 양식을 삼도록 했다면 레위인은 일반백성들의 소득 수준보다 오히려 조금 높게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떨어지면서 백성들이 제대로 십일조를 하지 않아 레위인들은 생계가 어려워 먹고 살길을 찾아 성막을 떠났을 것입니다

오늘날 목회자의 생활을 후원하는 방식은 미가의 경우와 가까운 경향이 있습니다. 보통 연말이 되면 예.결산 위원회에서 다른 예산과 함께 목회자 사례비도 책정하는데 올해엔 얼마를 올려야 하는 지 신경전을 펴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런 방식은 결과적으로 교회를 고용주로 만들고 목회자를 교회에서 고용된 사람으로 만듭니다. 사실 목회자가 하나님께 고용된 종이지 교회에 고용된 종은 아니잖습니까?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려고 소위 자기 사람을 예.결산 위원에 포진시키는 목회자들도 있는데, 하나님이 정한 방식대로 하면 이런 부작용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12지파에게 십일조를 바치게 해서 성막에서 일하는 레위지파에게 식량으로 주었습니다. 이것을 참고해 교회는 목회자에게 교인 10명에서 12명의 십일조만큼 매월 사례비로 후원하면 됩니다. 교인들 수입이 많아지면 좀더 많아지고 적어지면 그에 따라 적어지겠죠. 십일조를 드리는 교인들이 10명을 넘지 않을 때는 교회 운영을 생각해야 하니 5,6명 분의 십일조 만큼 사례비로 지원받고 나중에 십일조 교인이 15명 이상이 되면 10명분의 십일조만큼 사례비를 받도록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후반기 부터는 이 원칙을 적용해볼 생각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저도 좋고 여러분도 좋을 겁니다.

미가는 레위인을 가정 신당의 제사장으로 세운 후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었습니다.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운 게 어딘가 마음이 걸렸는데, 이제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세웠으니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말씀을 떠나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집안에 우상 신당을 꾸며 놓고 떠돌이 레위인을 붙잡아 자기를 위해 제사 드리게 해 놓고는 그걸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며 복주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사실 미가는 하나님을 섬기는 게 아니고 자기를 위해 복내려 줄 우상을 섬긴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러분은 미가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레위인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겠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읽 때 잘 했다는 것인 것 잘못했다는 것인지 분별하면서 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고 기도했다는 구절만 보고 잘했다고 착각하면 안됩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여호와게 복받기를 원하노라”고 간구하고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고 했습니다. 미가는 레위인을 거룩히 구별해 제사장을 삼고 여호와께 복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미가와 그의 어머니는 하나님이 정한 규례를 무시하고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행동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신앙생활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겨 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입니다. 신명기7장 12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이 정한 법도과 규례를 잘 지키며 살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어 번성케 하시고 자녀에게도 은혜를 배푸시고 직장과 사업도 잘되게 해주시고 병에 걸리지 않게 건강도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대로 살면서 복을 받겠다고 하는 것은 헛된 소망입니다. 하나님이 정한 규례대로 살기 힘들다고 성경에서 하지 말라는 것을 괜찮다고 말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길이라고 주장해서는 안됩니다. 요즘은 동성결혼을 허용하라고 야단치는데, 교회다니는 사람들도 동조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버리고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사시대가 혼란에 빠진 것은 왕이 없는 사사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말씀 앞에 굴복해야 하는데 그게 싫어서 말씀을 가르치는 레위인을 섬기지 않아 생계가 어려워진 레위인은 자기 소임을 져버리고 떠돌이가 되었습니다. 미가처럼 복을 받기 원하는 욕심꾸러기들은 자기 방식대로 가정에 제단을 만들어 우상을 섬기듯 복을 빌고 살았습니다. 말씀을 떠나면 이런 식으로 잘못된 신앙생활을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생각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그게 중요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맞춰 똑바로 걸어가는 것이 믿음생활입니다. 불편하다고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매일 말씀을 묵상하며 성령의 감동에 따라 살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서 복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주의 은혜와 성령의 위로가 한 주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