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돌보시는 하나님

마태6:25-34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Thanksgiving Day의 유래는 전에도 몇 번 말씀했기 때문에 오늘은 생략하겠습니다. 유래를 알기 원하는 분들은 홈페이지 설교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thanks+giving 이란 말은 감사하다고 말하며 준다는 뜻입니다. 목요일 Thanksgiving Day에 목장별로 서로 감사하면서 선물도 나누며 기쁘게 보내면 좋겠습니다. 저는 오늘 ‘자녀를 돌보시는 하나님’ 이란 제목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의식주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새와 들의 백합을 비유로 들어서 하나님께서 돌봐주신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생태계의 먹이 사슬의 원리를 통해 새도 먹고 살 수 있게 하시고 들의 꽃도 때가 되면 아름답게 자라게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음식과 옷과 집이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시며 그 필요한 것을 여러 통로를 통해 공급해주십니다. 사람들이 괜히 걱정하며 욕심을 내지 않으면 서로 필요를 체우며 살 수 있도록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녀들에게는 특별히 보살펴주십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노라”(사49:15). 어머니들이 젖먹이는 자식을 잊는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들을 잊지 않고 돌봐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젖먹이를 둔 어머니가 자기만 살자고 자식을 버리겠습니까? 자식을 낳아 기른 경험이 있는 자매님들은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것입니다.

얼마전에 터키에서 지진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들이 건물에 깔려 사상자가 생겼을 때 일입니다. 발굴하다가 보니 아이를 품에 앉고 죽은 어머니 시신이 나왔습니다. 아이는 어머니 덕에 살았다고 합니다. 건물이 무너질 때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품에 앉고 어머니는 죽은 것입니다. 아이를 버리고 혼자 구석으로 피했다면 혹시 살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어머니에게 그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를 버리는 것도 상상할 수 없는 일입입니다.

제가 2, 3주 전에 사람들이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걱정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걱정 중에 94%가 쓸데 없는 걱정이라고 합니다. 사실 돈 걱정도 쓸데 없는 걱정입니다. 걱정이 도움도 안되고, 또 지나고 보면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 괜히 마음 고생만 했다 싶을 때가 많습니다. 의식주가 걱정이면 검소하게 살도록 노력하고 아르바이트라도 하는 게 낫습니다. 궁궐 같은 집에서 명품으로 치장하고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마세요. 그것은 주님을 따르는 사람의 생활방식이 아닙니다. 그런 걸 부러워하면 천박하게 보입니다. .

하나님이 보시기엔 감사하는 성도가 가장 아름답다고 합니다. 감사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교우들은  1690년 증기기관을 발명한 프랑스 물리학자인 파핀의 말을 들어보기 바랍니다. 그는 세가지 이유로 매일 하나님께 감사드렸다고 합니다. 그가 말한 세가지 이유는 날마다 주시는 일용할 양식, 몸의 건강, 그리고 영생에 대한 소망이었습니다. 이 세가지는 지금 여러분도 가지고 있는 것 아닙니까? 파핀처럼 여러분도 감사하며 살기 바랍니다. 행복감은 프로작이 주는 게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에 병 걸렸다가 낫는 것과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한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감사한 일입니까? 사고가 나서 차가 반파되었지만 몸은 상하지 않은 것과 사고 없이 운전하고 다니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감사합니까? 아기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잘 나은 것과 병원에 갈 일 없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감사합니까? 실직했다가 재취업한 것과 계속 직장에 잘 다니고 있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감사합니까? 어려워서 도움을 청할 수 밖에 없는 사람과 도와줄 수 있는 사람 중에 누가 더 감사합니까? 지금 여러분의 삶을 돌아보세요. 감사할 이유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했다고 다 불평하는 것은 아닙니다. 재난을 당하고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토마스 에디슨은 가나한 소년시절 신문팔며 열차 한구석에서 실험을 하다가 불이나 소동이 벌어지자 화가난 승무원이 에디슨을 열차 밖으로 밀쳐 그 때 충격으로 고막이 파열되었다고 합니다. 훗날 어떤 사람이 귀가 들리지 않아 실험과 연구에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에디슨은 “귀가 안들려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않습니다.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아 연구에 몰두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답니다.

화니 크로스비는 ”소경으로 9,000여 편의 찬송시를 쓴 여인입니다. 찬송가 중에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등은 화니 크로스비가 가사를 지은 것입니다.  크로스비는 아홉살 때 “하나님이 나에게 시력을 허락해주신다해도 안 받으렵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밝은 눈을 주신테이니 세상에서 더럽혀지지 않은 깨끗한 눈으로 주님의 얼굴을 보렵니다” 그녀는 “내 눈을 멀게 한 사람을 만나면 그에게 한 없는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말했답니다. ‘실락원’의 작가 밀턴도 소경이 된 후 “육의 눈은 어두워 보지 못하지만 그 대신 영의 눈이 열려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답니다.

말안해도 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고마운 분들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데 인색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난 한 주 동안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습니까? 사실 감사드려야할 대상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구원해주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자녀는 낳아 길러주고 공부시켜준 부모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인생에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주는 선생님께도 감사해야 합니다. 교인들은 영의 양식을 만들어주는 목사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목사님도 재정을 지원하는 교인들께 감사해야 합니다.

멕시코 어떤 마을엔 온천과 냉천이 나오는 곳이 있답니다. 그래서 동네 아낙들이 온천에 가서 빨래를 삶고 냉천에 가서는 행굽니다. 이것을 본 어떤 외국 관광객이 안내해주는 분에게 말했습니다. “이곳 부인들은 참 좋겠습니다”. “왜요?” “찬물과 더운 물을 맘대로 쓸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안내원이, “그런데도 이곳 아낙네들은 비누가 안나온다고 불평이 많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더랍니다.

예화집에서 읽은 이야긴데, 어떤 독일 암병원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중년의 한 그리스도인이 암으로 혀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수술하기 직전에 의사가 환자에게 “마지막으로 남길 말씀이 뭡니까?” 물었습니다. 수술한 후에는 혀를 사용해 말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최후의 순간이었습니다. 한 참을 생각하던 환자는 “예수님, 감사합니다” 라는 말만 세번을 반복했다고 합니다.

교우 여러분,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복주시고 지켜주신 하나님께 온 마음을 다해 감사합시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때는 빈 손을 보이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년 삼차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시고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라”(출23:14,15)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너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마6:19,20)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영적 이스라엘백성인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부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과 같이 특별한 절기 감사예물은 각자 형편에 따라 약간 부담을 느낄 정도의 액수를 준비해 드리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마음까지 실립니다. 예수님은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재물보다 하나님을 더 의지하며 삽시다. 다음 추수감사주일까지 앞으로 한 해동안 하나님께서 늘푸른교회 모든 가족들의 건강을 지켜주시고 일용할 양식과 필요를 채워주시고 직장과 사업도 잘되게 도와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