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힘이다

느헤미야8:1-12.

여러분은 언제, 무엇 때문에 기뻐하며 힘이 납니까? 재물이나 권력도 힘을 주죠?  승진해도 힘이 좀 나죠? 이런 노래도 있습니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어린 자녀들이 힘이 될때가 있죠. 오늘은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힘이다”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수문앞광장에 모여 하나님의 율법을 듣고 회개하며 감동해서 우는 백성들에게 느헤미야는 “오늘은 여호와의 성일이니 울지 말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다”(느8:10) 위로했습니다. 저도 여러분에게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힘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힘든 일이 생깁니다. 낙심하지 말고 여호와를 의지하며 기쁘고 즐겁게 살기 바랍니다. 그래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겨납니다.

먼저 6, 7장의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6장에는 느헤미야에 대한 모함과 인신공격, 7장에는 인구조사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위협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의 지도아래 성벽공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자 초조해진 산발랏과 도비야 일행은 느헤미야를 집중 공격했습니다. 그들은 느헤미야를 해치려는 속셈으로 오노 평지에서 만나 대화하자고 제안했는데 느헤미야가 눈치체고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느헤미야가 모반을 꾀한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아이야에게 뇌물을 주어 거짓 예언으로 느헤미야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지만 느헤미야가 지혜롭게 잘 대처했습니다.

평화를 가장한 대화제의를 쉽게 생각하고 나갔다면 살해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모반을 꾀한다는 소문이 수산성 왕의 귀에 들어가 의심을 사게 되었다면 정치적으로 큰 위기를 맞이했을 것입니다. 스마야가 적들이 자객을 보낼 지 모르니 성전 외소에 들어가 숨으라고 느헤미야에게 예언해주었는데, 느헤미야가 자기만 살겠다고 숨었다면 백성들의 지지를 잃었을 것이고, 제사장이나 레위인 외엔 성전 본관에 들어가서는 안되는 율법을 범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스마야가 뭔가 잘못된 길로 인도한다는 것을 눈치챘고 뇌물을 받고 거짓 예언을 한다는 것을 깨달아 함정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적들의 위협과 모함과 공작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은 52일 만에 성벽공사를 완성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유다에 온 1차 목표는 달성한 셈입니다. 성벽건축이 끝난 후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방위 체제를 정비하고 통치질서를 세우기 위해 인구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 내용은 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인구조사는 대부분 세금징수나 군역을 위해 실시되었습니다. 그 다음 8장에는 총독 느헤미야와 학사겸 제사장 에스라의 주도로 전개된 회개와 부흥운동에 관한 내용입니다. 제가 설교제목은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힘이다’고 정했지만 주된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과 영적 부흥운동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왜 예루살렘이 침공받아 무너지고 유다 백성들이 이방땅으로 사로잡혀가게 되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열왕기하 25장을 보면, 바벨론의 침공으로 예루살렘성이 무너지고 왕과 대신들과 백성들이 사로잡혀간 기록이 나옵니다.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을 공격했을 때 예루살렘성은 3년동안 버텼습니다. 그 정도 견딘 것도 튼튼한 성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성벽이 아무리 튼튼해도 하나님이 지켜주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침공한 정치적 이유가 있겠지만 영적 차원에서 보면, 하나님이 이방 갈대아 군사를 불러다가 범죄한 유다를 징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유다에 긍휼과 자비대신 냉혹한 심판과 처벌을 내리셨습니다. 성벽에 구멍을 뚫고 들어온 바벨론 군사들은 성전과 왕궁을 불태우고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어버렸습니다(왕하25:4,9,10). 왕자들은 아버지 시드기야왕이 보는 앞에서 살해되었고, 시드기야왕은 두 눈이 뽑힌체로 사슬에 결박당해 바벨론으로 끌려 갔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고 우상과 죄가운데 산 결과였습니다.

성벽을 튼튼하게 다시 세웠더라도 신앙을 재건하지 않으면 예루살렘성은 또다시 무너질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유다 백성들도 이젠 이걸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8장 1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고 있던 칠월에 모든 백성이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율법을 가르쳐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성벽공사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간 지 일주일도 안돼 예루살렘성에 거하는 유다 백성들이 다시 모인 것입니다. 데모하려고 모인 게 아니라 성경가르쳐달라고 모였습니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느헤미야나 에스라가 먼저 소집한 게 아니라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수문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7월은 유대인에게는 새해가 시작되는 달입니다. 성벽공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간 사람들이 그냥 집에서 쉬는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새해를 시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복받을 때는 생각하는 것이나 하는 행동이 예전과 다른 것 같습니다. 여러 달동안 성벽공사에 동원되어 귀가도 못하고 일했으니까 신년 연휴는 가족들과 집에서 쉬는 게 오히려 당연한데도 그 때 유다 남성들은 얼마나 은혜가 충만했던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다고 모두 수문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말하자면 영적 갱신과 부흥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학사겸 제사장 에스라는 특별히 나무로 만든 높은 단위에 올라가 백성들을 향해 율법을 낭독하고 백성 곁에 있던 레위인들이 보충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백성들은 에스라가 낭독하는 율법을 들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는 표시로 모두 일어서서 경청하며 손을 들고 아멘으로 화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했습니다(5,6절). 그들은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할 뿐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습니다. 앞으로 우리도 일어서서 성경을 읽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에스라가 낭독하는 율법을 듣던 백성들은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율법을 듣던 백성들이 왜 울기 시작했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예배나 집회에선 눈물이 마음의 감동, 진실한 참회, 은혜받은 표식 같은 것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때 수문앞 광장에 모인 유다인들은 율법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얼마나 다르게 살고 있는지 자각하고 참회하는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또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율법을 듣고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해서 울기도 했을 것입니다. 바벨론에 잡혀가 머문 기간이 50년이 넘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돌아온 유다인들은 유아 때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과 바벨론에서 태어난 2세들이었을 것입니다. 고국에 돌아와 무너진 성전과 성벽을 건축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새해를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개가 무량했을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나타나는 영적 반응은 이해, 양심, 감정, 의지의 순서로 진행된다고 합니다. 설교를 듣던, 성경공부를 하던,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면 양심이 발동합니다. 어떤 사람은 죄의식을 느끼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은혜에 감사하고 기뻐합니다. 죄의식은 양심으로 고뇌에 찬 감정을 일으키고 감사한 마음은 평안을 누리게 해줍니다. 둘 다 어떤 형태로든 의지에 영향을 줍니다. 은혜가 작용할 때는 뉘우치고 행동을 고칩니다. 반면에 악한 영의 영향을 받게 되면 완고해지고 적대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설교나 성경공부의 목적은 잘못을 깨닫고 고쳐서 하나님 뜻대로 살면서 복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설교를 듣고 성경을 공부하는데도 삶에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사람은 이 4가지 단계 어디선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거나 오해하는 경우, 양심이 무뎌져 말씀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는 경우(우상숭배자들), 이런 경우엔 감정의 변화도 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양심의 고통을 느끼면서도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거부하거나, 아직 의지적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 등이 있습니다. 영적 갱신은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성령의 감동이 필수적이며 구원에 이르는 믿음으로 나가려면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해야 합니다. 목자들은 이런 영적 변화의 단계를 잘 이해하고 양들의 반응을 살펴보기 바랍니다.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우는 백성들에게 오늘은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고 기뻐하라고 위로했습니다.하나님 말씀듣고 우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로 보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이 날만큼은 울지 말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성일을 보내라고 백성들을 위로했습니다. 우는 게 잘못이 아니라 때와 상황이 기뻐할 때였기 때문입니다. 성벽을 완공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날이니 우는 것보다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게 더 힘이 되죠. 그래서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집에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며 여호와를 기뻐하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힘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은 일주일 중에 가장 기쁘고 좋은 날입니다. 주일 예배는 울며 드리는 것보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주일이 가장 즐겁고 기쁜 날이 되게 해줘야 합니다. 주일 오후에 애들만 떼 놓고 쇼핑다니고 애들이 웁니다. 그건 신앙교육에 좋지 못합니다.   

기독교역사에서 영적부흥이 일어난 시기는 예외없이 성경말씀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있었습니다. 심령이 메말라 답답함을 느낀다면 먼저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첨엔 지루할 수 있지만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 성경말씀이 살아움직이는 체험을 하게 될 겁니다. 소그룹으로 모여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요즘 교회는 말씀보다 찬양에 더 감동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음악 자체가 감동과 어떤 영감을 느끼게 해 만족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씀의 깨달음이 없으면 생활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찬양에서 넘치는 은혜를 경험한다고 해도 말씀을 대신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요약하고 마치겠습니다. 성벽공사에 지친 유다 백성들은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수문 앞 광장에 모여 에스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토요일 철야근무했으니 주일에 집에서 쉬어도 될 텐데 하나님 말씀 듣겠다고 새벽부터 교회당에 나가는 사람과 같은 거죠. 저는 이런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기에 그런 반응이 나왔던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항상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잖습니까? 수십년동안 성전이 무너지고 성벽이 허물이 진 걸 보고도 남의 일처럼 여기고 하나님도 찾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성전과 성벽건설에 목숨 걸고 지친 몸을 이끌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다고 수문 앞 광장에 모여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이런 영적갱신은 하나님의 개입이 있을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도 이런 영적 갱신이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물론 영적 갱신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수산성에서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슬퍼하며 눈물로 기도한 것처럼 여러분 심령에 영적 부흥을 일으켜 주시도록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히 여기고 사모한 것처럼 우리도 주의 말씀을 천금보다 귀히 여기며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과 같은 마음으로 주의 말씀 대면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배푸시면 주의 말씀이 살아나고 우리 심령이 감동을 받고 우리 의지로 하지 못했던 영적 갱신과 부흥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여러분 삶가운데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