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성

여호수아20:1-6

오늘은 여호수아 20장에 기록된 도피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도피성은 고의가 아닌 실수로 살인한 사람이 재판을 받기 전에 보복살해를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피신처였습니다. 12지파에게 땅 분배를 마친 후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도피성을 지정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피성은 모세가 살아있을 때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명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땅을 분배받고 사는 동안 험한 일들이 일어날 것을 아셨습니다. 미리 알고 대비케 하신 것입니다.

도피성은 실수로 살인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특별히 세우신 성읍입니다. 당시는 아직 사법제도가 완비되어있지 못했습니다. 살인이 일어나게 되면 가족이나 부족이 원수를 갚았습니다. 살인이 일어났을 때 정당한 재판을 받기도 피해자측에서 무자비하게 보복할 수 있습니다. 고의가 아닌 실수로 살인이 저질러졌을 때 감정적으로 무제한의 보복이 가해질 경우를 대비해서 살인범이 도피성으로 피해 정당한 재판 절차를 밟을 수 있게 한 것이 도피성제도였습니다.

신명기 35장에 보면, 하나님은 여리고 맞은 편 모압평지에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12지파가 땅을 얻게 되면 그들이 얻은 기업 가운데서 레위인들이 거할 성읍을 나눠 주라고 지시했습니다(신35:2). 하나님은 성막에서 일하며 각지파의 십일조를 받아 생활하는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땅을 분배해주지는 않았지만 48개의 성읍과 거기 포함된 들을 할당해주었습니다. 할당받은 성읍과 들은 레위인에게 최소한의 생활터전이었습니다. 당시에 레위인들은 생계를 위해 돈 대신 가축과 물산과 짐승들을 받았기 때문에 가축과 짐승을 먹일 최소한의 들도 필요했을 것입니다.

레위지파가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선택받은 것은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섬기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레위지파만이 모세를 도와 여호와의 편에 섰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세는 레위지파에게 금송아지를 섬긴 사람들을 쳐죽이라고 했습니다. 레위지파는 모세의 명대로 순종했습니다.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출32:26-29)

 
레위인들이 할당받은 성읍은 48개 성읍이었습니다. 그 중 6개는 도피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도피성의 장로들은 레위인이었습니다. 도피성은 요단 서쪽에 세개, 요단 동쪽에 세개를 택했습니다. 요단 서쪽 도피성은 헤브론, 세겜, 게데스였고 요단 동쪽은 베셀, 라못, 골란이었습니다(수20:7-8).  이 지역이 어디에 있는지 지도를 보면 도움이 됩니다. 
 
요단서쪽 도피성인 가나안 남부지역 헤브론은 유다지파 경계 내에 있고, 중부지역 세겜은 서쪽 므낫세반지파 경계 내에 있고, 북부지역 게데스는 납달리경계 안에 있지만 단의 경계와도 인접해 있습니다. 그 다음 요단동쪽 도피성인 베셀은 르우벤지파 경계 내 싯딤근처에 있고, 라못은 갓지파 경계 내에 있고, 골란은 동쪽 므낫세반지파 경계내에 있습니다. 여섯 도피성은 이스라엘 전역 어디서나 30km 정도 범위내에 있어 하룻밤에 도망칠 수 있는 거리에 있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도피성으로 향하는 도로를 폭을 14m 이상이 되도록 넓게 잘 닦아 놓고 길을 잃지 않도록 “미클라트”(도피성)라는 안내판도 곳곳에 설치해 놓았답니다. 그만큼 신경 쓴 거죠.

이와 같이 살인자는 누구든 도피성으로 도망쳐 일단 보복살해 당하는 것을 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도망가게 하는 것도 은혜입니다. 살인하고 도피성으로 도망쳐온 경우는, 성문 앞에서 도피성 장로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사람을 죽이게 되었는지 먼저 정황을 설명합니다. 그런 후 장로들은 그를 추격하는 보복자들에 의해 살해당하지 않도록 성안으로 피신시킵니다. 그런 후에 절차에 따라 그의 살인이 고의적인 것인지 의도하지 않은 사고였는지 회중 앞에서 증인을 세워 심리합니다.

고의적인 살인으로 판명이 나는 경우는 보복할 권리가 있는 사람에게 살임범을 넘겨줘 복수하게  합니다. 반면에 우발적인 실수로 인한 살인으로 드러나면 장로와 회중들은 그 과실 치사자를 보수자의 손에서 구해내 도피성으로 피신시켜야 할 의무가 주어집니다. 도피성으로 도망친 살인범 중에 고의성이 없는 살인자만 피신하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도피성에 피신한 후라도 고의적인 살인자로 드러나면 장로들은 사람을 시켜 그를 잡아다가 보수자에게 넘겨 무죄한 피를 흘린 대가를 받게 했습니다.

민수기35장에는 고의적인 살인과 우연히 실수로 일어난 살인을 구분하는 사례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철 연장이나 돌을 들어 사람을 쳐서 죽이면 그것은 고의적인 살인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반면에 우연히 밀쳤는데 그 사람이 뒤로 넘어져 머리가 돌에 부딪쳐 죽었다면 그 밀친 사람은 고의적인 살인자가 아니기 때문에 도피성으로 피신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신명기 19장에도 실수로 살인한 사례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웃과 함께 벌목하러 삼림에 들어가서 손에 도끼를 들고 벌목하려고 도끼를 내려찍을 때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 이웃을 맞춰 죽게 했습니다. 이런 경우는 원한도 고의성도 없이 우연하게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그래도 그 죽은 사람의 자녀나 가족이 보복하겠다고 나설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도피성으로 피하여 죽음을 면할 수 있게 해준것입니다.

고의적인 살인이 아니어서 도피성으로 피신한 살인자는 살인 사건이 일어날 당시의 대제사장이 죽으면 다시 자기 기업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게 허용되었습니다. 도피성에 머무는 기간은 대제사장의 수명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길게 어떤 사람은 짧게 도피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무고한 살인으로 판명되어 도피성 생활을 시작하고 한 달도 안돼서 대제사장이 죽었다면 그 사람은 한 달 만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죠.

도피성이 보복살해를 피해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고 해도 가족이 있는 집보다 낫지는 못할 겁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죽기 전에 도피성을 벗어나 도피성 경계 밖에서 보수자를 만나면 고의적인 살인을 한 것이 아니라도 보수자는 보복살해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도피성을 벗어난 게 잘못입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 도피성을 나와 고향으로 돌아온 경우는 보수자도 그를 죽일 권리가 없었습니다.  그를 죽이면 보수자는 살인죄를 범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도피성을 만든 목적은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무죄한 피를 흘려 그 땅을 죄악으로 더럽게 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도피성은 보복살인의 악순환을 막고 실수로 살인한 사람이 일정기간 동안 제한된 지역에 거주하면서 다시 자기 기업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기능을 했습니다. 보복한다고 그런 사람은 죽이는 것은 무죄한 피를 흘리는 악순환을 가져올 뿐입니다.

도피성은 하나님의 아이디어였습니다. 도피성 제도는 우리에게 세가지 교훈을 줍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우리의 도피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정상을 참작해 보호해주십니다. 둘째는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을 했더라도 적당히 혼낸 후에는 용서해주십니다. 우리도 피차 적당하게 한 후에는 용서해줘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한번 실수로 포기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다시 일어섭시다.

하나님은 무고한 살인을 막아 이스라엘 각 지파 공동체가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배려하셨습니다. 도피성은 엄격한 율법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작동하는 곳이었습니다. 도피성은 죽어야 할 죄인에게 살 길을 열어주고 다시 회복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습니다. 교회는 죄인들이 도망쳐 와 복음으로 용서받고 다시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곳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잘못했을 때 너무 다그치지 말고 도망갈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합니다. 은혜를 배푸는 게 나중에 자녀를 살리는 길입니다. 형제간에도 친구나 이웃이나 직장동료 사이에도 잘못한 사람이 도망칠 수 있는 은혜를 배풀어 주기 바랍니다. 그래야 나중에 돌아 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어야 할 죄인들에게 살 길을 열어주러 오셨습니다. 영원히 멸망 당하게 되어 있던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죄악의 형벌에서 벗어났고 성령 안에서 주님의 몸인 교회의 일원이 된 후부터는 사망의 권세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한 우리는 죽음의 권세로부터 안전합니다. 그러나 교회를 떠나 방황하면 죽음의 사자인 사단의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귀는 택하신 하나님의 자녀까지도 넘어뜨리려고 먹어를 찾아 으르렁 거리는 사자처럼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은 예수 믿고 난 후의 인생에 대해서만 평가하실 것입니다. 주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으니 이제부터 멋진 인생으로 다시 시작합시다. 하나님은 어떤 죄를 범한 사람이라도 용서받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주십니다. 탕자의 비유를 생각해보세요. 아버지는 한 시도 아들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돌아왔을 때 어떤 허물도 이야기 하지 않고 아들로 받아들였습니다. 탕자에게 아들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자비로운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자신을 용납하고 남의 허물도 용서하여 이전 보다 더 좋은 인생을 살 수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