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한 사람

사사기2:6-15

한 주 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앞뒤 좌우 옆 사람들과 “은혜받고 승리합시다” 이렇게 서로 인사합시다. 앞으로 다섯 번 정도 사사기를 중심으로 설교할 계획입니다. 오늘은 사시기2장을 본문으로‘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한 사람’이런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본문 7절을 보면, “(이스라엘)백성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10절을 보면, 여호수아 세대 사람들이 다 그 열조에게 돌아가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했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후 세대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가나안 백성들이 섬기던 이방신을 섬겨 여호와를 화나게 만들어 재앙이 임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 세대와 후 세대 사람들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함께한 장로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이분들의 영향으로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다 떠난 후세대 사람들은 이방신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누군가 붙잡아 줘야 하는데 그럴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한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가정에서든 교회에서든 사회에서든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사사시대의 특징을 간략하게 살펴보고 가겠습니다.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 공동체는 출애굽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요셉의 초청으로 애굽에 내려간 야곱의 가족은 전부 70명이었는데 애굽에서 430년의 세월을 보내고 모세의 인도아래 출애굽한 직후 계수한 이스라엘 자손의 숫자는 전쟁에 나가 싸울만한 장정들만 603,550이었으니(민1:46) 남녀노소를 다 합친 숫자는 2백만명 정도는 되었을 것입니다. 이 2백만명이 이스라엘국가를 만드는 출발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모세와 그 뒤를 이어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명을 받아 백성들을 인솔하는 신정체제로 시작했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를 보좌하는 장로, 백성 중에서 선발된 천부장, 백부장 같은 관리들이 있었지만 최고 리더쉽을 발휘하는 사람은 모세와 여호수아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사사시대에 와서는 바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12지파가 땅을 분배받은 후에는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가 한 덩어리로 움직이는 게 아니고 각 지파별로 독립해서 운영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용어로 지방자체시대가 열렸습니다.

몇 주전 여호수아서를 중심으로 설교할 때 이스라엘 12지파의 땅 분배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각 지파가 가나안 땅 어느 곳을 분배 받아 정착했는지 기억합니까? 성경은 한 번에 암송하려고 해선 안되고 자꾸 반복해서 봐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스토리와 중요한 내용이 머리 속에 남게 됩니다. 사사기는 내용적으로는 여호수아서 후반부와 연결됩니다.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 각 지파가 경계 내에 아직 남은 땅을 정복하기 위해 가나안 원주민들과 정복전쟁을 벌이고 주변 이방나라의 침공에 맞서 전쟁하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사’는 재판관, 통치자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여호수아가 죽고 사울왕이 등장할 때까지 300 여년 동안 이스라엘 지파를 다스리던 지도자들의 역할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사사들은 평소엔 백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는 사법과 행정의 일을 주로 담당하다가 외부에서 적이 침공해올 때는 일시적으로 백성들을 이끌고 전투를 지휘하기도 했습니다. 사사기에는 12명의 사사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앞으로 시간이 되는 데로 살펴볼 것입니다.

사사기에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할 때 하나님은 이방 나라를 들어서 이스라엘을 침공하게 하여 위기에 처하게 하고 이방나라의 압제로 고통을 받고 그 고통 속에서 뉘우치며 하나님께 구원해달라고 간청할 때 하나님은 사사를 일으켜 구원해주시는 과정이 반복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면 안됩니다.

은혜로 용서받고 가족과 함께 교회 잘 다니며 복된 생을 할 만하면 또 옛 사람의 욕망이 세상의 유혹과 협력해서 무슨 일을 도모해서 또 깨지고 그렇게 반복해서는 안됩니다. 예수 믿고 새 사람이 되었으면 세상살이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주님만 바라보며 하나님 뜻에 맞게 살아야 그게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이 믿음으로 살 수 있습니까?” 이러면 마귀가 “그렇지 너 말 잘했다. 이리 오너라” 그러면서 죄악으로 끌고 갑니다. 전 경고했으니 나머지는 여러분이 알아서 잘 하세요.

사사기 1장 1절 이하를 보면,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벌어진 일로 되어 있지만 오늘 본문 2장은 아직 여호수아가 살아 있는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사기 1장 1절 이하에 12지파 대표들이 모여 여호와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울까요?”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유다가 먼저 올라가 가나안 사람들과 싸워 제비 뽑아 얻은 땅을 정복하라고 했습니다. 제가 이 구절을 보면서 우리들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한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가 먼저 올라가 싸울 것을 왜 묻습니까?

12지파는 제비뽑기로 이미 땅을 분배 받았습니다. 그러면 각 지파 스스로 일어나 우상숭배로 심판 해야 할 가나안 사람들을 쳐서 몰아내고 하나님의 기업을 세워야 합니다. 서로 먼저 나가 싸워야 할 사람들이 누가 먼저 싸우러 나갈 것인지 물은 것은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교회에서도 전도나 봉사는 서로 우리가 하겠다고 해야 하는데 자원하는 목장이 없으니 모아 놓고 이번엔 누가 하겠느냐? 누가 해라 그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기업을 세우는 일은 먼저 앞장서는 사람이 복받습니다. 믿습니까?

다시 본문으로 갑시다. 7절과 10절 말씀을 요약해보면, 여호수아와 함께 했던 장로들이 살아 있을 때는 그들의 인도아래 백성들이 여호와를 잘 섬겼는데 이분들이 세상을 다 떠나고 난 후 새로 태어나 후세대들은 여호와께서 누군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알지 못해 가나안 사람들의 신을 섬기다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역사를 먼저 체험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인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 한 사람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잘 섬겼는데 여호수아가 세상을 떠나자 백성들이 통째로 믿음을 잃어버리고 고통을 당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교회에는 여호수아, 또 함께한 장로들처럼 삶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믿음의 비밀을 가진 사람들이 꼭 필요합니다. 공부를 많이 하고 노력한다고 믿음이 쌓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이 있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여호수아가 무슨 공부를 많이 해서 하나님을 잘 알게 된 겁니까? 모세를 따라다니며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고 또 모세가 죽은 후엔 자신이 앞장서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체험하면서 믿음이 커졌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언제나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세도, 여호수아도 세상을 떠난 것처럼 영적 리더들도 때가 되면 세상을 떠납니다. 때가 되면 저는 가고 여러분이 늘푸른교회를 이끌고 가야 할 때가 올 겁니다. 한국교회가 여러가지로 위기를 맞이하는데, 그 중에  하나는 한경직 목사, 김수환추기경, 옥한흠목사 같은 분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분들이 떠난 빈자리를 대신하여 교인들을 감화시켜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인도할 리더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각 교단 조직하에 교권을 가지고 활동하는 분들이 있지만 교회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존경받는 차세대 지도자들의 영향력이 아직은 미미합니다.

교회도 국가도 세대교체가 참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아는 여호수아와 장로들이 떠났더라도 후세대 사람들 중에서 믿음의 사람이 나왔어야 했는데 그게 잘 안되었습니다. 출애굽, 가나안 정탐활동, 광야 40년, 가나안 정복활동, 이 기간은 모두 격동의 세월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전무 후무한 기적을 일으키셨고, 모세와 아론,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믿음의 영웅들이 활동했습니다. 그 시대 백성들은 그것을 직접 보면서 위대하신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0절 보면, 후 세대 사람들은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일도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후세대 사람들이 여호와에 대해 무지하여 믿음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이전 세대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사사시대 초기는 모세와 여호수아 시대에 비하면 하나님이 직접 나서서 놀라운 역사를 행하신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사사시대 초기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이적을 보거나 그와 관련된 소문을 들은 것도 없었습니다.   

여러분도 모세와 여호수아 시대와 사사시대 초기의 상황을 비교해보면 다소 이해가 갈 겁니다. 모세와 여호수아 시대 사람들은 엄청난 하나님의 역사 속에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왕을 상대로 10가지 재앙을 내려 굴복시켰습니다. 홍해바다를 갈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도록 해주셨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움직여 길을 인도해주셨습니다. 하늘에서 일용할 양식을 내려주기도 했습니다. 견고한 성과 철기로 무장한 가나안 사람들을 상대로 기적같이 승리하게 해주었습니다. 이에 비하면 사사시대 초기엔 별다른 역사가 없었습니다.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에 정착한 후엔 바로왕을 상대할 필요도 없었고, 광야를 배회하는 것도 아니고 가나안연합군과 남쪽 북쪽에서 또 다시 대규모 전투를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여호수아시대에 이미 가나안 주력부대를 패퇴시켰기 때문에 사사시대 초기엔 잔당을 소탕하는 정도였습니다. 이젠 각 지파가 믿음을 가지고 힘을 모아 스스로 해결해 나갈 때가 된 겁니다. 하나님은 모세나 여호수아 시대처럼 직접 나서 이스라엘을 위해 초자연적 역사들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사사시대 초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전 세대와 달리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도 듣지도 못했고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했습니다.

사사시대 초기에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역사가 없었더라도 후세대들은 할아버지 시대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역사를 알아야 했습니다. 후세대에게 신앙교육이 단절된 게 문제였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모세와 여호수아 시대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들을 부모세대는 후세대에게 전달하고 가르쳐 여호와를 경외하며 살도록 양육했어야 했는데 그걸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 결과 단 몇 세대 만에 이스라엘 공동체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가나안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진노하게 만들어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신명기 6장 1절 이하를 보면,  오래 전 모세는 부모세대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의 날이 장구하도록 하기 위하여 네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자녀들에게 철저하게 가르쳐 여호와를 경외하게 만들도록 당부하고 또 당부했습니다. 부모는 자녀와 함께 집에 있을 때든지 차를 타고 돌아다닐 때든지 주말에 쇼파에 기대어 쉬고 있을 때든지 밖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줄 때든지 틈 만나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씀을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도 죽기 직전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불러 놓고 여호와를 잘 섬기도록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백성들은 그렇게 하겠다고 맹세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후 세대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설교를 마무리하겠습니다. 가정과 교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사람들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나만 하나님을 알면 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믿음이 있는 부모는 자녀들을 믿음의 길로 이끌어 줘야 합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떠난 후 자녀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어찌 되겠습니까? 세속주의에 빠져 재물과 세상 성공만 추구하면서 하나님의 진노아래 살면서 재앙을 당하고 고통을 받게 될지 모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시작될 때부터 늘푸른교회를 위해 하나님이 행하신 역사를 보고 체험한 분들은 교우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도와야 합니다. 뒤늦게 합류한 교우들은 늘푸른교회를 위해 주님이 행하신 일들을 다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듣고 체험한 교우들이 나중에 교회에 나온 사람들에게 성령께서 늘푸른교회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말해주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일에 동참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늘푸른교회를 위해 행하신 역사를 보고 듣고 체험한 교우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의 섬김과 수고로 인하여 모든 교우들이 주님을 잘 섬기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