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누가16:13

감사의 달 마지막 주일인 오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제목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한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재물을 섬기며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진리를 따라 살려면 정직해야 하고 자신의 치부를 드러낼 용기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제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한 주간 무슨 생각을 많이 하면서 지냈는가 돌아봤습니다. 한 주동안 제 머리 속에 맴돈 생각들은 늘푸른교회진로, 교회당구입, 교회재정상황, 주택구입, 북한 기아어린이 돕기, 감사절파티준비, 섬선교후원문제, 수양회준비, 기도가 필요한 교인들 생각, 등이었는데 주로 하나님과 돈이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목사님들은 교인들보다 돈의 필요가 더 많습니다. 개인생활도 해야 하고 교회도 운영해야 하고 또 선교차원에서 도와달라는 곳도 많습니다. 3일전 한국 섬선교단체에서 제게 메일을 보냈는데 서남해안 교회없는 섬선교에 파트너가 돼달라고 했습니다. 후원금을 보내달라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돈에 초연할 수 있는 목사님들이 거의 없습니다. 어떤 날은 하나님보다 돈을 더 많이 생각합니다. 목사님들 모임이나 선교회 기도모임에 갔다오면 돈 생각을 더하게 됩니다.

부자든 가난하든 재물에 대한 욕심이나 유혹에서 초월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도 세상을 사는 동안 돈이 필요합니다. 돈이 없어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보면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재물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 겁니다. 어느 교회에서 자매들에게 배우자 조건에 대해 물어보니 첫번째가 경제적 능력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도 경제적 능력이 최소한 3위 안에는 있을 겁니다. 제 딸을 생각할 때 저도 그렇습니다.

돈이 이렇게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겨야 할 그리스도인에겐 재물에 대한 욕심과 유혹은 평생 조심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너무 기복적이라고 걱정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재물의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교인들이 물질적 복을 추구하니까 목사님들이 기복적인 설교를 하고, 또 교인들이 듣고 싶어하는 설교를 해서 교인수가 늘어나는 교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섬기고 재물도 섬기다가 결국은 재물을 섬기게 됩니다. 이런 현상은 오래전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 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광야생활을 끝내고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우상의 유혹에 넘어가 혼합종교에 빠져 여호와의 진노를 사서 앗수르와 바벨론에 멸망하고 사로잡혀 간 것을 잘 알겁니다. 그 전부터 가나안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은 농사를 지으며 풍년을 가져다 준다고 여긴 바알을 섬겼습니다. 바알 축제 기간에는 다산을 기원한다는 의미에서 백성들이 바알여사제들과 제의적 성관계도 했다고 합니다. 가나안에 정착한 후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 바알숭배의 유혹에 빠졌습니다. 재물과 성적 쾌락으로 유혹했기 때문에 무수한 경고와 징벌에도 불구하고 바알우상은 근절되지 않았습니다.

남자들은 거의 대부분 돈과 여자와 권력의 유혹에 약하다고 합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유혹에 약한 이유는 갖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20대엔 이성, 돈, 권력 순으로 유혹을 받습니다. 30대엔 돈, 이성으로 순서가 좀 바뀌는 경향이 있습니다. 40대 이후엔 개인에 따라 순서가 왔다 갔다하면서 세가지 유혹을 다 받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돈에 대한 욕심이 더 커진다고 합니다. 돈이 가장 필요하기 때문일 겁니다. 이런 필요 때문에 그리스도인에게도 돈이 하나님보다 더 앞자리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재물은 항상 조심할 대상입니다.

여러분은 가난할 때와 부유할 때 중에 어떤 때 하나님을 더 잘 섬길 것 같습니까? 맘같아선 부유할 때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경제적 여유가 좀 생기면 하나님 일에 더 힘쓰고 어려운 사람도 돕고 그럴 수 있겠죠. 그러면 2,30년 전에 비해 더 잘 살게 된 지금 우리는 이전 세대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을까요? 여러분이 여러분 부모보다 더 헌신적으로 주님과 교회를 섬기고 있는지 보면 답이 나올 겁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되었는데도 하나님을 더 잘 섬기는 게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물질적인 복을 내려 부유하게 해주고 싶겠습니까?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찾던 사람들이 먹고 살만해지니 하나님을 찾던 간절한 마음은 사라지고 모아놓은 재물로 세상을 즐기며 치장하고 노느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장사나 사업이 잘돼서 교회일에 신경쓸 시간도 없습니다. 이렇게 산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부유하게 된 것이 오히려 해로운게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과 재물의 관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모델은 아브라함과 다윗입니다. 아브라함의 부르심에 순종하면 물질의 복은 따라온다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풀타임 사역자들에게 해당하는 모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을 떠나 지시하는 곳으로 가면 복을 내려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 복받는다는 것을 보여줘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할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이 계획을 성취하는데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기대에 못미치고 실수한다고 버릴 그런 카드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가나안으로 내려갔습니다. 가나안으로 이주한 첫 해에 기근이 심해 아브라함가족은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거기서 아브라함은 바로 왕을 통해 양과 소와 노비와 나귀와 약대를 얻었고(창12:16) 애굽에서 나올 때는 육축과 은금이 풍부한 부자가 되어 있었습니다(창13:2). 바로왕은 자신을 속인 아브라함의 재산을 몰수할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이 두려워 그를 곱게 보내주었던 것입니다. 그 후에도 가축이 늘어나 아브라함은 거부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사명은 고향을 떠나 지시한 곳으로 가서 평안히 살다가 죽는 것이었습니다(15:16). 뭘 더 할 게 없었습니다. 하나님 잘 믿고 사는 것이 사명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물질의 복을 더해주실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 믿고 잘 사는 걸 세상에 보여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물질의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살면 물질의 복은 따라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먼저 찾으면 물질의 복은 주어집니다. 하나님을 찾는 이유가 하나님보다 재물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잘 믿지 못해 물질의 복도 받지 못하고, 재물의 복이 주어지더라도 하나님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다윗은 하나님 맘에 들면 부귀와 권세도 얻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일반 그리스도인에게 더 가까운 모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재물과 왕권을 달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다윗은 재물과 왕권을 차지하려고 나쁜 짓을 하거나 다툰 적도 없습니다. 사울왕에게 실망한 하나님께서 이름없는 목동으로 있던 다윗이 마음에 들어 재물도 주고 왕권도 넘겨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의 삶을 통해 하나님 마음에 들면 재물도 권세도 얻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 당시 왕으로 뽑힌 사울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온전하게 순종하지 않고 자기 생각에 좋은대로 행동하여 하나님 눈 밖에 나기 시작했습니다. 불레셋과 전투를 하러가기 전에 승전을 위해 하나님께 제사를 올리려고 할 때 제사를 인도할 사무엘이 정한 기일내에 오지 않자 자신이 나서서 번제를 드렸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정한 제사의 규례를 어기는 행동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나올 때 대적한 아말렉(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와 첩 딤나의 소생)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김없이 진멸하라고 하셨는데 사울은 아각왕과 살진 양과 소는 남겨두었습니다.

사울에게 실망한 하나님은 다윗에게 왕위를 넘겨줄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새의 아들을 보니 마음에 딱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다윗의 삶을 보면 어떤 점이 하나님 마음에 들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욕보이는 골리앗을 보고 격분해 만군의 하나님 이름으로 대적하러 나갔습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추격하는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잡고도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운 왕을 해할 수 없다고 옷자락만 베어갔습니다. 피를 많이 흘려 직접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 수 없다고 거절하셨지만 다윗은 평생 성전건축을 위해 재물과 재목을 준비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명예를 존중하고 사랑하고 헌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재물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은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울왕의 인생이 그 증거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기복적인 교인들의 삶을 통해서도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잘 섬겨 하나님 마음에 들면 재물도 얻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삶이 그 증거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하나님을 경외하며 복받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도 이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재물을 거부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는 것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이면 재물을 모으면 안되고 무조건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물질의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문제는 재물을 섬기며  재물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을 섬길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자청년을 보고 “부자가 천국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심히 어렵다”(막10:25)고 비관적으로 말씀하신 것은 그 부자 청년이 재물을 포기하지 못해 주님을 따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삭개오는 재물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또 토색한 것이 있다면 4배로 갚겠다고 했을 때 주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인정하셨습니다(눅19:8,9).

교우 여러분 재물보다 하나님을 섬기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면 주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물질의 복도 주십니다. 다만 재물에 대한 탐심으로 필요이상 부자가 되려는 마음은 경계하고 또 하나님으로부터 재물의 복을 받아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늘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그 재물로 복음전파하는 교회사역을 후원하기 바랍니다. 재물은 쌓아두면 우상이 됩니다.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의지하게 되고 나중엔 재물이 아까워 하나님을 섬길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것을 유념하고 하나님을 잘 섬겨 복받고 살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