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전쟁

여호수아10:6-14

오늘은 이스라엘과 아모리 연합군과의 전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기브온이 이스라엘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들고 가나안 남부산악지역에 거주하던 아모리 다섯왕이 연합하여 기브온을 공격해왔습니다. 다급해진 기브온측에서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 진영에 구원병을 요청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적이 눈치채지 못하게 그날 밤새 기브온으로 올라가서 기습공격으로 아모리 다섯왕의 연합군을 상대로 크게 승리를 거뒀습니다.

아모리족 입장에서 보면 기브온의 처사는 참으로 괘씸했습니다. 여리고성, 아이성에 살고 있던 동족들이 침략자들에 의해 처참하게 도륙당하는데 자기들만 살겠다고 적과 내통해 평화조약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기브온은 왕이 거주하는 도성과 같이 비중이 큰 성으로 아이성보다 크고 강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 기브온이 겁을 먹고 적을 찾아가 화친을 맺고 노예가 되기를 자청했다는 소문은 인근의 아모리족에게 동요를 일으켰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왕 아도니세덱이 앞장서서 다른 아모리족 왕에게 기브온을 치자고 제안했습니다.

가나안 일곱족속이 거주하는 지도를 보면 왜 예루살렘왕이 먼저 일어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기브온 바로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기브온 거민들이 침입자들과 화친을 맺고 한 편이 된 것에 대해 예루살렘 거민들이 가장 불안을 느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아모리족 중에도 기브온처럼 항복하고 살길을 도모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을 것입니다. 이런 동요를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예루살렘 왕은 코 앞의 배신자 기브온을 가만 두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은 헤브론, 야르뭇, 라기스, 에글론 지역 아모리왕들에게 사자를 보내 함께 기브온을 치자고 제안했습니다. 헤브론은 예루살렘 남쪽으로 대략 30km 거리, 야르믓은 예루살렘 서쪽으로 대략 20km거리, 라기스는 예루살렘 서남쪽으로 대략 40km 거리, 에글론은 그보다 좀더 먼 곳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여기는 모두 예루살렘 남쪽 산악지역이었습니다. 아모리족은 ‘산중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이 가나안을 낳았고(창10:6), 가나안이 11족속의 조상을 낳았습니다. 11족속 중에 아모리족, 히위족속, 헷족속, 기르가스족속, 가나안족속이 포함되어 있습니다(창10:15-18). 그러니까 이들 가나안 원주민들은 서로 형제간이었습니다. 이 가나안 자손들이 지금의 팔레스타인 땅에 흩어져 살았고 여기서 가나안 땅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가나안 정복전쟁 초반은 주로 아모리족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살아있을 때도 요단 동편에서 아모리족의 두 왕 시혼과 바산왕 옥을 쳐서 몰아냈고, 여호수아도 가나안 진입 직후 여리고성, 아이성, 아모리 다섯 왕의 연합군까지 모두 아모리족을 쳐서 멸했습니다. 초반부터 아모리족이 얻어 맞는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기억하겠지만,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실 때 아직은 아니라고 하셨는데 지금은 아모리족의 죄악이 관영치 아니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창15:16). 그로부터 680년쯤 지나 아모리족에게 심판이 내린 것입니다.

가나안 정복전쟁은 형제들간의 골육상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셈의 후손이고 가나안 원주민들은 함의 후손인데, 셈과 함은 모두 노아의 아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셈의 9대손인 아브라함의 후손들입니다. 아모리족은 물론, 히위족속, 헷족속, 기르가스족속, 가나안족속 모두가 함의 넷째 아들 가나안의 자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조상들은 한 집에서 먹고 자란 형제들이었습니다. 그 후손들이 지금은 가나안 땅을 놓고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습니다.  왜 이런 비극이 생긴 것입니까?

이 쯤에서 우리가 살펴보고 가야 할 사건이 있는데, 아버지 노아가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을 놓고 축복과 저주를 한 것입니다. 창세기 9장 22절 이하를 보면,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벌거벗고 잠이 들었는데 둘째 아들 함이 그 모습을 보고 나가서 형 셈과 동생 야벳에게 알렸습니다. 그러자 셈과 야벳은 옷을 가지고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 아버지의 하체를 덮고 그 모습을 보지 않고 나왔습니다. 노아가 술이 깬 후 작은 아들 셈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서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이 되기를 원한다”(창9:25)고 말해버렸습니다.

인간적 관점에선 성경을 이해하는 데 한계를 느낍니다. 술 취해 벌거벗고 잔 것은 노아의 실수처럼 보입니다. 함이 그런 아비의 하체를 보았다고 해서 아버지가 아들을 저주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선언을 그대로 받아들여 셈과 그 후손에겐 복을 주고 함과 그 후손은 형제들의 노예가 되게 하신걸까요? 그런데 1000년의 세월이 흐른 뒤 셈의 후손과 함의 후손이 전쟁을 벌여 셈의 후손은 땅을 빼앗고 함의 후손은 노예가 되거나 몰살당해야 했습니다. 미국역사 속에서도 함의 후손인 흑인들이 노예로 고난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경위가 어떤 것이든 저주를 받고 죽어야 하는 진짜 이유는 하나님을 거역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함의 후손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살았다면 멸망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아직은 아니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아모리족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아모리족을 비롯한 가나안 후손들이 우상을 숭배하며 죄가운데 살고 있는 것을 회개하고 기생 라합처럼 하나님 편에 섰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지 모릅니다.

인류의 역사는 처음부터 하나님을 잘 믿느냐 안 믿느냐로 갈렸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원인은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핵심에는 종교문제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최근엔 경제를 중심으로 나라들이 종교의 장벽을 넘어 서로 연합하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빛과 어둠이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에 언젠가는 종교적인 문제로 갈등과 분열이 일어날 것입니다. 세상 권력이 경제를 매개로 서로 협력해 하나되길 원해도 하나님께서 가만 놔두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느냐 거역하느냐로 갈릴 것입니다.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살면 하나님을 떠나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억지 부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 섬긴다고 수백 년 전부터 조상 대대로 살고 있는 땅을 빼앗아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에게 준다는 게 말이 됩니까? 말이 안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기 어렵습니다. 지금 이스라엘과 그 주변 나라들 간의 싸움도 이 연장선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주장하는 근거는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셨다는 것 아닙니까? PLO/PNA 입장에서 보면 2천년 동안 조상 대대로 살고 있던 땅을 빼앗아가니 가만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가나안정복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셈입니다. 

이제 하나님 관점에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창조주로서 세상 모든 것은 다 하나님 것입니다. 하나님입장에선 하나님을 부정하며 다른 신을 섬기며 대들고 거역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겠습니까? 믿 고 순종하며 따르는 사람에게 주고 싶겠습니까? 하나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믿고 따르는 아브라함에게, 그 아브라함이 아끼는 자식들에게 복을 내려주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에 진군한 것은 하나님께서 “네 후손에게 주겠다”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한지 적어도 470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하나님은 수백 년 동안 아모리족에게 기회를 주시고 기다리신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기브온측에서 여호수아에게 구원병을 요청할 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그들을 두려워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그들의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가 없으리라”(8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네 손에 붙였다”는 말씀 속에 전쟁을 주관하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전쟁에서 하나님은 아모리 연합군진영에 덩이 우박을 내려 칼에 죽은 병사보다 더 많은 아모리병사들이 죽음을 당했고, 도망가는 아모리군사들이 어둠 속으로 숨지 못하게 중천에 뜬 해가 종일도록 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직접 나서 싸우셨습니다(14절) 말 그대로 “여호와의 전쟁”이었습니다.

그 동안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군사들은 아모리족을 상대로 연전 연승을 거뒀습니다. 아모리족이 약해서 이스라엘이 쉽게 이긴 것은 아닙니다. 아모리족은 또한 함의 후손입니다. 지금 흑인들이 함의 자손인데, NBA농구선수들을 생각해보세요. 거기엔 장대한 흑인 선수들 판입니다. 여호수아시대에도 함의 자손들은 신체적으로 장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함의 후손인 아모리병사 역시 셈의 후손인 이스라엘병사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었습니다. 다섯왕이 연합해서 대군을 거느리고 나왔으니 여호수아에게 결코 쉬운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전략과 전술은 군사력보다 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왜군에 비하면 항공모함 앞의 돗단배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순신 장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지형과 물 때를 이용하는 치밀한 전략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나안 전투에서 여호수아는 매번 다른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이번에는 적의 방심을 이용한 기습공격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지체하지 않고 그 날 밤에 행군하여 기브온으로 올라가 대부분 잠자리에 들어있던 아모리군사들을 기습했습니다. 거기에 야구공만한 우박이 내려 야영지를 쑥대밭을 만들었습니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절반이 죽고 남은 병사들은 혼비 백산해서 도망쳤습니다. 이스라엘군사들은 벧호른에서 야알론골짜기까지 추격하며 도망가는 아모리사람들을 남김 없이 도륙했습니다. 아모리 군사 숫자가 얼마나 많았으면 하루 종일로도 모자라 해를 중천에 묶어둬야 했겠습니까?

교회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전쟁을 통해 배울 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는 여호수아의 지도아래 사전에 준비된 정복 플랜에 따라 다같이 협력해 가나안 땅을 정복해갔습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과정의 일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편애하여 가나안 후손들의 땅을 빼앗아 준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복을 주신다면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권력만 탐하는 재물만 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며 진로를 계획해야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가나안 정복전쟁을 보면 하나님이 시킨 일을 하면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승리하게 해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아모리족보다 강해서 여리고성, 아이성, 기브온, 아모리다섯왕의 연합군을 이긴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여 도와주셨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전쟁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시작이었을 뿐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은 예수님을 통해 교회에 계승되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여기에 늘푸른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무엇인지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따르는 사람들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공동체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여리고와 이이성과 기브온을 굴복시킨 여호수아와 이스라엘백성들처럼 우리들도 늘푸른교회를 거점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복음과 사랑으로 한 사람, 한 사람씩 정복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고 주님이 시킨 일이기 때문에 실패할 수 없습니다. 우박을 내리고 태양을 멈추신 하나님이 함께 하며 도와주실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을 네 손에 붙였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지체 않고 진격해 나간 것처럼, 우리도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세상으로 나가 전도와 목장사역에 힘써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영적 공동체를 세웁시다. 단지 세상의 성공과 재물을 따라가지 말고 학교와 직장에서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도록 힘쓰기 바랍니다. 주님이 시키는 일을 하며 살면 주께서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도와주실 것입니다. 이번 한 주 동안 가정과 학교와 직장과 일터에서 벌어지는 영적 전투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며 승리하는 하는 복을 누리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