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팍케 하신 하나님

여호수아11:16-23

교우 여러분, 한 주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먼저 서로 인사합시다. 말씀을 들을 때는 편한 마음으로 듣고 집에 돌아가서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살기 바랍니다.  지난 주는 여호수아 10장을 중심으로 가나안 남부지역 점령을 살펴봤습니다(pp2).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브온의 요청에 따라 아모리 다섯왕의 동맹군을 물리치고 막게다 굴에 숨어 있던 다섯왕을 처형한 후 립나, 라기스, 에글론, 헤브론, 드빌을 차례로 정복했습니다(지도pp3,4,)

그동안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장정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적과 싸워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10장 4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신 고로 여호수아가 이 모든 왕과 그 땅을 단번에 취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열심히 싸웠지만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그들 힘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인생도 잘되고 사업도 잘되고 목회도 잘된다는 것을 유념합시다.

오늘은 11장을 중심으로 가나안 북부 지방을 정복한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남방지역의 아모리족들을 정복한 여호수아는 모든 백성들과 함께 길갈로 돌아갔습니다. 여러 날 전투를 했으니 휴식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휴식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남방지역을 장악했다는 소식을 듣고 북방지역에서 맹주역할을 해온 하솔왕 야빈이 북방의 여러 왕들에게 사람을 보내 해변의 모래같이 많은 군사들을 이끌어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메롬 물가에 진을 쳤습니다(pp5,6)

하솔왕 야빈이 주도하는 연합군은 길갈로 내려오지 않고 메롬 물가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 군사를 기다렸는데 그 자체로는 지혜로운 전략이었습니다. 홈그라운드에서 싸우면 여러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지형에도 밝고 군량미 보급도 쉽습니다. 야빈은 이런 점을 생각해서 메롬 물가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이스라엘 공격을 대비했습니다. 야빈의 연합군이 얼마나 많았던지 성경엔 해변의 모래같이 무수했고 말과 병거도 동원했다고 했습니다(4절). 말과 병거는 평지나 구릉지에선 큰 위력을 발휘합니다.

잠시 지형을 살펴보겠습니다(pp6,7) 하솔은 갈릴리 호수에서 정북쪽으로 약 20km 지점에 있는 상부 갈릴리 지역으로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옛 성터 중에 하나였답니다. 거기서 가나안시대의 건축 유물과 솔로몬 시대의 성벽, 아합왕 때의 우물(깊이 38m) 등이 발견되었습니다(pp8-13) 메롬은 갈릴리호수북쪽 16km 지점에 위치한 호수였습니다(pp14).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메롬지역은 평지와 산악지역으로 되어 있고 지금은 작은 호수로 남아 있습니다(pp15-17) 야빈은 호수와 평지와 산악을 적절하게 이용하면서 싸울 생각으로 말과 병거까지 동원했습니다(pp18,19)

하나님은 이번에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편에서 싸웠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그들을 두려워 말라고 격려하신 후 내일 이 맘때에 적들을 몰살시킬 것이라고 말씀하신 후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병거를 불태우라고 지시했습니다. 이것은 축구시합전에 상대선수의 아킬레스건을 자르고 화염방사기로 전차를 불태우는 것과 같습니다. 그 때 그 때 전략이 달랐습니다. 항상 매복만 하는 것도 아니고 유인책만 쓰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번엔 과감하게 적진에 침투해 먼저 전차부대를 무력화시키는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7절에 “졸지에 습격할 때”라고 한 것으로 봐서 여호수아는 길갈에서 메롬물가까지 군사의 이동에서 적진을 기습하기 까지 모두 은밀하게 진행했습니다(p.20,21)

기습공격을 받은 야빈 연합군은 혼비백산해서 북서쪽으로는 시돈과 미스르봇 마임까지 도망가고 북동쪽으로는 미스바골짜기로 달아나는 것을 여호수아 군대가 쫓아가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쳐죽였습니다(pp22-24) 이 전투에서 그 지역 대장 노릇하던 하솔왕 야빈은 여호수아에게 처형당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한 대가였습니다. 남방 아모리 다섯왕의 연합군을 정복할 때처럼 여호수아는 북방 야빈의 연합군과 전투에서 승리하여 북쪽으로 헬몬산 아래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까지 정복하게 되었습니다(pp25-29).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부터 아이성, 남방 아모리 다섯왕 연합군, 북방 야빈의 연합군 등 모든 왕들과 싸우는 동안 기브온 거민 외엔 모두 이스라엘을 대적하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pp21,30). 적보다 약하다고 판단되면 싸우려고 들 게 아니라 화친하여 살아남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다소 비굴하게 느껴져도 살아 있어야 내일이 있고 기회도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기브온왕 외에 가나안 모든 왕들은 마음이 강팍해져 이스라엘을 대적하다가 살해되었습니다.

마음이 강팍한 것은 위험신호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은혜받지 못하고 불평이 나오고 마른 땅같으면 위기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20절을 보면, 가나안 여러 왕들이 마음이 강팍해져 여호수아를 대적하다가 죽게 된 이유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로 저주 받아 은혜를 입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진멸하려고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라합이나 기브온백성들처럼 마음을 낮춰 살길을 찾지 못하게 하려고 그들의 마음을 강팍하게 만드셨습니다.

강팍하게 만드는 것은 은혜를 배푸시는 하나님의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앞 뒤 정황을 모르면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가나안의 후손들은 자기 의지로 하나님을 버리고 대대로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의 노를 격발시키며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수백년 동안 그들에게 은혜를 배푸시며 봐주고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봐주며 기다릴 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구원얻을 기회가 사라진 것입니다.

심판의 순간에라도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은 구원해주시는 분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뉘우치고 돌아와 용서를 구할 마음을 못 먹게 하려고 마음을 강팍케 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기적을 보이며 이스라엘 백성을 나가게 해달라고 요청할 때도 바로의 마음이 더욱 강팍해졌습니다. 스데반이 복음을 전할 때도 유대인들의 마음이 강팍해져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마음이 강팍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떠났다는 증거입니다. 위기 의식을 느껴야 합니다. 강팍한 마음이 인도하는 길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마음이 강팍해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대적하고 거부하다 결국 멸망의 길로 갔습니다. 로마정부에 의해 팔레스타인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은 거의 2천년 동안 나라를 잃고 세계에 흩어져 고난을 살면서 고당을 당하고 조롱거리가 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대적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미움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돈과 권력이 있으면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돈과 권력은 대부분 인생을 망치고 또 오래 가지도 못합니다. 한국의 어떤 재벌 회장은 많은 돈을 벌었지만 그 때문에 지금 자녀들은 서로 소송을 벌이며 원수처럼 싸우고 있습니다. 정권 초기엔 실세로 자처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공천에 떨어지고 권력을 휘두르다 감옥 가는 사람들이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아래 사랑 받고 사는 사람이 되도록 힘쓰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가에 대해서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사랑받는 것은 우선 자기 하기에 달렸습니다. 하나님 말씀 잘 듣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하나님도 은혜를 배풀고 사랑하신다고 믿습니다. 그 다음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으로 됩니다. 하나님은 은혜주고 싶은 사람에게 은혜주고 미워할 사람은 미워하십니다. 우리는 사울왕과 다윗왕, 에서와 야곱을 통해 이 두가지 측면을 볼 수 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긍휼을 입고 왕이 되었으나 왕이 된 후 교만해져 하나님이 정한 법을 가볍게 여기고 제사를 인도하는 죄를 범했고(삼상13:5-15),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대로 불순종해서(삼상28:18) 하나님의 눈 밖에 나 비참한 인생으로 끝났습니다. 반면에 다윗은 밧세바를 범하고(삼하11:4이하) 그 남편 우리야를 죽음으로 내 몬 죄악에도 불구하고(삼하11:15)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에 끝까지 은혜 아래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은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에 야곱을 더 사랑하여 형이 동생을 섬기도록 결정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신 것입니다(롬9:13.)

가나안 전쟁에서 보는 것처럼 길게 보면 우리 인생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에 따라 결판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며 도와주셔야 성공할 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잘 할 수 있다거나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모리족속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언젠가 때가 되면 하나님께 얻어 맞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들어서든 하나님을 대적하고 우상을 섬기며 사는 사람들을 가만 놔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받지 못하게 방해하는 대상이 되기 전에 마음을 낮추고 은혜를 구하는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 마음 상태를 점검해보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도 없고 감격하는 마음도 안 생긴다면 상당히 위험합니다. 그냥 방치하면 하나님께 멀어지고 세상 영광을 찾아 방황하다가 허망하게 끝날 수 있습니다. 살기 위해서라도 하나님을 찾고 은헤를 구하며 심령이 소생하도록 힘쓰기 바랍니다. 이번 한 주 동안은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여러분 심령상태를 점검하고 치료받는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성령의 책망과 감동이 한 주 동안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                                  여호수아11:16-23
강팍케 하신 하나님

교우 여러분, 한 주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먼저 서로 인사합시다. 말씀을 들을 때는 편한 마음으로 듣고 집에 돌아가서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살기 바랍니다.  지난 주는 여호수아 10장을 중심으로 가나안 남부지역 점령을 살펴봤습니다(pp2).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브온의 요청에 따라 아모리 다섯왕의 동맹군을 물리치고 막게다 굴에 숨어 있던 다섯왕을 처형한 후 립나, 라기스, 에글론, 헤브론, 드빌을 차례로 정복했습니다(지도pp3,4,)

그동안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장정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적과 싸워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10장 4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신 고로 여호수아가 이 모든 왕과 그 땅을 단번에 취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열심히 싸웠지만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그들 힘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인생도 잘되고 사업도 잘되고 목회도 잘된다는 것을 유념합시다.

오늘은 11장을 중심으로 가나안 북부 지방을 정복한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남방지역의 아모리족들을 정복한 여호수아는 모든 백성들과 함께 길갈로 돌아갔습니다. 여러 날 전투를 했으니 휴식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휴식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남방지역을 장악했다는 소식을 듣고 북방지역에서 맹주역할을 해온 하솔왕 야빈이 북방의 여러 왕들에게 사람을 보내 해변의 모래같이 많은 군사들을 이끌어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메롬 물가에 진을 쳤습니다(pp5,6)

하솔왕 야빈이 주도하는 연합군은 길갈로 내려오지 않고 메롬 물가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 군사를 기다렸는데 그 자체로는 지혜로운 전략이었습니다. 홈그라운드에서 싸우면 여러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지형에도 밝고 군량미 보급도 쉽습니다. 야빈은 이런 점을 생각해서 메롬 물가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이스라엘 공격을 대비했습니다. 야빈의 연합군이 얼마나 많았던지 성경엔 해변의 모래같이 무수했고 말과 병거도 동원했다고 했습니다(4절). 말과 병거는 평지나 구릉지에선 큰 위력을 발휘합니다.

잠시 지형을 살펴보겠습니다(pp6,7) 하솔은 갈릴리 호수에서 정북쪽으로 약 20km 지점에 있는 상부 갈릴리 지역으로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옛 성터 중에 하나였답니다. 거기서 가나안시대의 건축 유물과 솔로몬 시대의 성벽, 아합왕 때의 우물(깊이 38m) 등이 발견되었습니다(pp8-13) 메롬은 갈릴리호수북쪽 16km 지점에 위치한 호수였습니다(pp14).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메롬지역은 평지와 산악지역으로 되어 있고 지금은 작은 호수로 남아 있습니다(pp15-17) 야빈은 호수와 평지와 산악을 적절하게 이용하면서 싸울 생각으로 말과 병거까지 동원했습니다(pp18,19)

하나님은 이번에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편에서 싸웠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그들을 두려워 말라고 격려하신 후 내일 이 맘때에 적들을 몰살시킬 것이라고 말씀하신 후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병거를 불태우라고 지시했습니다. 이것은 축구시합전에 상대선수의 아킬레스건을 자르고 화염방사기로 전차를 불태우는 것과 같습니다. 그 때 그 때 전략이 달랐습니다. 항상 매복만 하는 것도 아니고 유인책만 쓰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번엔 과감하게 적진에 침투해 먼저 전차부대를 무력화시키는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7절에 “졸지에 습격할 때”라고 한 것으로 봐서 여호수아는 길갈에서 메롬물가까지 군사의 이동에서 적진을 기습하기 까지 모두 은밀하게 진행했습니다(p.20,21)

기습공격을 받은 야빈 연합군은 혼비백산해서 북서쪽으로는 시돈과 미스르봇 마임까지 도망가고 북동쪽으로는 미스바골짜기로 달아나는 것을 여호수아 군대가 쫓아가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쳐죽였습니다(pp22-24) 이 전투에서 그 지역 대장 노릇하던 하솔왕 야빈은 여호수아에게 처형당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한 대가였습니다. 남방 아모리 다섯왕의 연합군을 정복할 때처럼 여호수아는 북방 야빈의 연합군과 전투에서 승리하여 북쪽으로 헬몬산 아래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까지 정복하게 되었습니다(pp25-29).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부터 아이성, 남방 아모리 다섯왕 연합군, 북방 야빈의 연합군 등 모든 왕들과 싸우는 동안 기브온 거민 외엔 모두 이스라엘을 대적하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pp21,30). 적보다 약하다고 판단되면 싸우려고 들 게 아니라 화친하여 살아남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다소 비굴하게 느껴져도 살아 있어야 내일이 있고 기회도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기브온왕 외에 가나안 모든 왕들은 마음이 강팍해져 이스라엘을 대적하다가 살해되었습니다.

마음이 강팍한 것은 위험신호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은혜받지 못하고 불평이 나오고 마른 땅같으면 위기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20절을 보면, 가나안 여러 왕들이 마음이 강팍해져 여호수아를 대적하다가 죽게 된 이유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로 저주 받아 은혜를 입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진멸하려고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라합이나 기브온백성들처럼 마음을 낮춰 살길을 찾지 못하게 하려고 그들의 마음을 강팍하게 만드셨습니다.

강팍하게 만드는 것은 은혜를 배푸시는 하나님의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앞 뒤 정황을 모르면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가나안의 후손들은 자기 의지로 하나님을 버리고 대대로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의 노를 격발시키며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수백년 동안 그들에게 은혜를 배푸시며 봐주고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봐주며 기다릴 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구원얻을 기회가 사라진 것입니다.

심판의 순간에라도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은 구원해주시는 분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뉘우치고 돌아와 용서를 구할 마음을 못 먹게 하려고 마음을 강팍케 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기적을 보이며 이스라엘 백성을 나가게 해달라고 요청할 때도 바로의 마음이 더욱 강팍해졌습니다. 스데반이 복음을 전할 때도 유대인들의 마음이 강팍해져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마음이 강팍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떠났다는 증거입니다. 위기 의식을 느껴야 합니다. 강팍한 마음이 인도하는 길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마음이 강팍해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대적하고 거부하다 결국 멸망의 길로 갔습니다. 로마정부에 의해 팔레스타인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은 거의 2천년 동안 나라를 잃고 세계에 흩어져 고난을 살면서 고당을 당하고 조롱거리가 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대적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미움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돈과 권력이 있으면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돈과 권력은 대부분 인생을 망치고 또 오래 가지도 못합니다. 한국의 어떤 재벌 회장은 많은 돈을 벌었지만 그 때문에 지금 자녀들은 서로 소송을 벌이며 원수처럼 싸우고 있습니다. 정권 초기엔 실세로 자처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공천에 떨어지고 권력을 휘두르다 감옥 가는 사람들이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아래 사랑 받고 사는 사람이 되도록 힘쓰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가에 대해서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사랑받는 것은 우선 자기 하기에 달렸습니다. 하나님 말씀 잘 듣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하나님도 은혜를 배풀고 사랑하신다고 믿습니다. 그 다음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으로 됩니다. 하나님은 은혜주고 싶은 사람에게 은혜주고 미워할 사람은 미워하십니다. 우리는 사울왕과 다윗왕, 에서와 야곱을 통해 이 두가지 측면을 볼 수 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긍휼을 입고 왕이 되었으나 왕이 된 후 교만해져 하나님이 정한 법을 가볍게 여기고 제사를 인도하는 죄를 범했고(삼상13:5-15),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대로 불순종해서(삼상28:18) 하나님의 눈 밖에 나 비참한 인생으로 끝났습니다. 반면에 다윗은 밧세바를 범하고(삼하11:4이하) 그 남편 우리야를 죽음으로 내 몬 죄악에도 불구하고(삼하11:15)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에 끝까지 은혜 아래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은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에 야곱을 더 사랑하여 형이 동생을 섬기도록 결정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신 것입니다(롬9:13.)

가나안 전쟁에서 보는 것처럼 길게 보면 우리 인생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에 따라 결판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며 도와주셔야 성공할 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잘 할 수 있다거나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모리족속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언젠가 때가 되면 하나님께 얻어 맞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들어서든 하나님을 대적하고 우상을 섬기며 사는 사람들을 가만 놔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받지 못하게 방해하는 대상이 되기 전에 마음을 낮추고 은혜를 구하는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 마음 상태를 점검해보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도 없고 감격하는 마음도 안 생긴다면 상당히 위험합니다. 그냥 방치하면 하나님께 멀어지고 세상 영광을 찾아 방황하다가 허망하게 끝날 수 있습니다. 살기 위해서라도 하나님을 찾고 은헤를 구하며 심령이 소생하도록 힘쓰기 바랍니다. 이번 한 주 동안은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여러분 심령상태를 점검하고 치료받는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성령의 책망과 감동이 한 주 동안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