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은 계속되어야 한다

느헤미야13:4-

오늘은 느헤미야 13장을 중심으로 “개혁은 계속 되어야 한다”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세수도 하고 샤워도 합니다. 하루만 지내도 먼지와 땀 등으로 더럽고 냄새도 납니다. 매일 씻어야 청결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과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죄성이 있는 속물들입니다. 마음 속에는 탐욕과 정욕과 악한 생각이 나오고 삶은 그로 인해 때가 묻습니다. 생각없이 살면 하나님께 멀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운전할 때처럼 이리 저리 핸들을 돌리며 바른 길로 가듯 잘못을 고쳐가며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개혁은 계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5장 14절을 보면,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왕 20년부터(BC445) 32년까지(BC433) 12년 동안 유다 총독의 자리에 있었다고 합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내려온 주된 이유는 무너져 방치된 성벽을 다시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반대와 위협이 있었지만 성벽공사는 52일 만에 끝났습니다. 그 후에 성문짝을 만들어 다는 시간을 고려해도 공사는 3,4개월에 끝마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바로 수산궁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아직 반대세력들이 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벽 건축이 완료된 후에도 느헤미야 유다 총독으로 좀더 머물러 있을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50년이 넘는 포로기 동안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유다 백성들은 그 땅으로 이주해 온 이방인들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의 율법에서 멀어진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유다 총독으로 오기전 벌써 70년 전에(AD515) 무너진 성전이 재건되었고, 학사 에스라가 느헤미야보다 먼저 13년 전에(AD458) 예루살렘에 와서 율법을 가르치며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에스라10장 19절을 보면, 에스라는 유다인들에게 이미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살고 있는 이방여인과 헤여져 내 보내게 했습니다.  오늘날엔 불신자와 결혼했다고 해서 이혼하게 하는 게 할 수는 없겠죠. 교회가 이렇게 하면 고소당할 겁니다. 그래서 더욱더 믿는 사람과 결혼해야 합니다.

느헤미야의 지도로 성벽공사를 완공한 직후에도 유다 백성들은 수문앞 광장에 모여 에스라를 통해 율법을 들으며 지난 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살기로 다짐하는 집회를 했습니다. 9장을 보면, 그달 24일에 또 모여 금식하며 이방인들과 절교를 선언하고 그동안 잘못한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재확인하며 율법에 순종하며 살겠다고 서약하고 자기 이름 위에 도장까지 찍었습니다(9:38). 10장을 보면 유다 백성들은 여호와의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지켜 이방인과 혼인하지 않을 것이며 레위인을 지원하는 십일조를 드리고 안식일을 준수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저는 그 때 유다 백성들의 맹세가 거짓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회개하고 앞으로 율법의 규례대로 살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결심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지도아래 잘 해보려고 단단히 결심했지만 10여년의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일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촉발하는 이전의 죄악에 다시 빠져들었습니다. 오늘 본문 13장을 보면 이전에 서약한 것과 달리 유다 백성들은 또 다시 이방인과 혼인하고 십일조를 제대로 드리지 않았고 안식일도 무시하고 제사도 제대로 드리지 않았습니다.

4절을 보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사장 엘리아십이 레위인들을 위해 십일조 헌물을 저장해 두는 방을 느헤미야를 대적해 성벽공사를 방해하고 위협하던 도비야에게 개인용도로 사용하도록 허락해줬습니다. 이 일은 느헤미야가 수산궁으로 돌아가고 예루살렘에 있지 않을 때 아닥사스다왕 32년 후에 일어났습니다. 예루살렘에 문제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온 것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분명치 않지만 수산궁으로 돌아갔던 느헤미야가 다시 유다로 내려와서 이런 사실을 알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위해 성전 뜰의 방을 내준 것을 알고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성전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제사장이 한 일이라 그의 체면과 영향력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제사장이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모른척할 수는 없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사람을 시켜 도비야의 세간을 전부 밖으로 빼고 그 방을 청소한 후 본래의 용도대로 사용하도록 시정했습니다. 그런 후 민장들을 불러 “하나님의 전이 어찌 버린바 되었느냐”고 책망했습니다. 느헤미야의 성전에 대한 열성은 성전을 청결케 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연상시켜 줍니다.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잘못은 또 있었습니다. 그는 손자를 호론 사람 산발랏의 딸과 결혼시켰습니다. 사마리아 총독 산발랏은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벽을 공사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느헤미야를 살해하려고 음모를 꾸몄던 이방인이었습니다. 레위기 21장 14절을 보면, 대제사장 가문은 이방인과 혼인하지 못하게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손자를 이방여인과 혼인시켜 잡혼을 금지한 율법을 어겼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일도 바로 잡아 엘리아십의 손자를 유다에서 추방시켰습니다. 총독이라도 대제사장을 상대로 이런 개혁을 단행하는 것은 상당한 저항이 있었을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안식일을 무시하는 풍토도 바로 잡았습니다. 유다에 살고 있던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로 나르고 또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 등 여러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 팔았습니다. 느헤미야는 그것을 방치하고 있는 책임을 물어 유다 귀인들을 불러서 책망하고 이후로는 안식일에 일하는 것도 식품을 운송하거나 파는 행위도 금지시키고 예루살렘 성문을 닫아 출입을 금하고 레위인으로 감시병을 세웠습니다. 

안식일은 할례와 함께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식으로 지켜야 할 의무사항이였습니다. 하나님이 6일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고 제7일째 되는 날에 휴식하신 것을 기념해서 하나님의 백성들도 이 날은 일하지 말고 쉬면서 다른 6일과 구별해서 하나님의 날로 지키도록 했습니다. 그러면서 안식일에 일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먹고 살게 해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증거가 만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 광야 생활할 때 안식일 전날에는 만나를 두배로 거두게 해주셨고 안식일 아침엔 만나를 내려주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느헤미야는 이방여인을 아내로 맞이해 낳은 자녀들이 유다 방언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이방여인과 혼인한 유다인을 공개적으로 책망했습니다. 이방인과 결혼을 금한 것은 인종이 다른 국제 결혼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이방 종교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부모가 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 자녀들도 교회 안에서 자라는데 아빠든 엄마든 한 쪽만 교회다니면 자녀들 중에는 안다니는 사람도 나오고 또 교회다니는 사람들도 방해받습니다. 이런 현상이 유다 가정에도 일어난 겁니다. 그 당시 유대인 외엔 거의 모든 이방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나 우상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에 이방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면 그들이 섬기던 우상도 따라 오게 되어 하나님도 섬기고 우상도 섬기는 결과를 가져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대표적인 피해가 솔로몬왕 말기에 일어났습니다.

솔로몬왕은 중반까지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누구보다 현명한 군주로 나라를 잘 다스려 번영을 이루었지만 말기에 이르러 정치적인 안정을 도모하려는 목적으로 주변 이방나라 모압, 암몬, 에돔과 시돈 여인을 후처나 첩으로 들여 정략결혼을 했는데 그 여인들이 시돈의 아스다롯, 암몬의 밀곰(몰록), 모압의 그모스를 위한 신당을 예루살렘 세우고 섬기면서 솔로몬도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이 멀어지고 백성들도 우상숭배에 빠지고 나라도 둘로 분열되어 싸우면서 결국 망했는데(왕상11장),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이 사실을 상기시켰습니다.

죄악은 우리 삶에 뿌리를 내리면 가라지처럼 뽑아내기 쉽지 않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자라서 모내기도 해보고 또 피사리도 해봤습니다. 볍씨를 소독해서 골라서 싹을 내서 모내기를 한후 자라는 걸 보면 그 전에 떨어진 가라지 씨가 벼보다 더 무성하게 자라 그걸 뽑기가 쉽지 않습니다. 잘못된 습관이나 죄악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도 모르게 마음 밭에 떨어진 죄악의 씨가 습관을 먹고 자라서 이젠 고치려고 해도 잘 안됩니다. 생활 속의 죄악은 대개 돈과 권력과 욕망과 인간관계 속에 얽혀있기 때문에 개혁이 어렵습니다.

대제사장 엘리아십은 도비야와 이전부터 알고 지내는 터라 성전 뜰에 있는 방을 이방인에게 내주는 죄를 범했고, 또 제사장으로서 이방인과 혼인해선 안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사마리아 총독으로 권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산발랏과 사돈을 맺었습니다. 엘리아십은 대제사장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인간관계나 권력에 약해서 무너졌습니다. 일부 백성들도 돈 때문에 안식일을 범하고 미모나 재물에 이끌려 이방여인과 혼인해서 자신은 물론 자녀들의 신앙을 망쳤습니다. 삼일교회에서 청년들에게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을 물어보니, 남자는 외모, 여자는 경제력을 첫번째로 꼽았다고 합니다. 왜 믿음이 첫번째가 아니냐고 하니까 믿음은 기본이라고 둘러댔다고 하네요.

13장에 등장하는 느헤미야의 나이가 얼마나 되었는지 정확하게 모릅니다. 유다에 총독으로 부임할 때 40대쯤 되었다면, 아마 7,8년 이르거나 늦을 수도 있겠지만, 그의 나이는 5,60대가 되었을 것입니다. 유다 총독으로서 느헤미야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재건을 위해 시종일관 개혁의 길을 걸었습니다. 개혁자로서 자신에게도 철저했습니다. 만일 비리가 있었다면 적들이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유다 총독으로 부임한 후 느헤미야는 부정부패와 싸우며 한결 같은 모습으로 하나님을 위해 일했습니다.

저는 느헤미야서의 해심 메세지는 개혁과 신앙회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잘못된 것을 보면 저항해야 합니다. 그게 프로테스탄트입니다. 내일은 루터의 종교개혁 494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종교개혁은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비텐베르그 정문에 95개 논제를 붙여놓고 토론을 벌인데서 촉발되었습니다. 그 핵심은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었습니다. 개혁신앙을 물려받은 후손답게 우리는 자신의 개혁에 먼저 힘써야 합니다.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크게 두가지, 기복신앙과 목회자의 교권주의를 개혁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에 죄악이 스며드는 것을 방관하지 말고 예수님처럼 분노하며 개혁에 앞장서기 바랍니다. 교우 여러분, 느헤미야처럼 세상에서 보상받을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 인정받고 상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끝까지 충성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