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존적 공동체

갈라디아서6:1-10

한 주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먼저 옆에 계신 분들과 그리고 앞뒤로 서로 눈 인사부터 하고 편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을 준비를 합시다. 여러분은 혼자 있을 때가 더 편합니까? 여러 사람과 어울려 지낼 때가 더 편합니까? 저는 좀 내성적이라서 그런지 혼자 있을 때가 편합니다.  가끔은 혼자 있을 때 편하다고 느끼더라도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더불어 살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의존적 공동체라는 제목으로 교회생활에 관해 하나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제가 인터넷 검색창에 물어봤더니 사람들이 결혼하는 이유로 사랑하기 때문에, 생활의 안정을 위해, 주위 시선이 부담되어, 등과 함께  ‘외로워서’가 주된 이유로 나왔습니다. 외로움 때문에 이성에 관심을 갖고 교제하다가 사랑에 빠져 결혼하는 커플도 있고, 사랑에 빠졌다고 할 수는 없어도 친밀감과 신뢰감이 생겨서 그 정도면 괜찮다고 싶어 결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밑바닥 정서를 보면, 사실 외로움 때문에 결혼하는 게 첫번째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을 타는 것은 사람이 본래 더불어 살도록 창조된 존재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아담이 혼자 있을 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창2:18). It’s not good for the man to be alone.  혼자 있는 것을 안좋다고 하셨는데, 아마도 외롭게 보여서 그런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하나님은  돕는 배필로 여자를 만들어 그 둘을 짝지어 부부로 살게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은 최초의 시작부터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로 시작했습니다.

하나님도 삼위일체의 관점에서 공동체십니다. 창세기1장 26절을 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고 하셨다고 합니다. 여기 보면, 하나님은 “우리”라고 복수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우리라는 표현을 놓고 볼 때, 하나님은 공동체 하나님이십니다.

공동체는 창조질서에 속하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특성 중 하나는 서로 의존하는 것입니다.  서로 의존하는 공동체 삶은 가정은 물론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에베소서5장 31-32절에서 바울은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 것이다. 이것은 깊은 뜻이 담긴 비밀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해 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교회가 의존적 공동체라는 사실은 바울서신 곳곳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로마서 12장 4,5절, 고린도전서12장 12,13절, 에베소서2장 19,22절,  등을 보면, 바울은  예수 믿는 우리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체는 서로 의존해서만 생존하며 자기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손과 발은 홀로 살아갈 수 없고 몸에 붙어 있어야 살 수 있으며 눈의 도움을 받아야 자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농구선수는 주로 손으로 골을 넣지만 손은 결정적으로 눈과 발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축구선수는 주로 발로 골을 넣지만 눈은 물론 몸의 모든 지체의 도움을 받습니다. 주일에 교회나와 예배드리는데도 여러 지체들의 섬김을 받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분, 가르치는 분, 찬양하는 분, 간증하는 분, 라이드해주는 분, 점심을 제공하는 분 등 여러 지체들의 도움을 받아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교인들은 서로 의존하는 공동체 삶의 일면을 보여줍니다. 사도행전2장과 4장을 보면, 그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눠 먹었습니다. 하나님 가족의식을 가지고 서로 의존하며 살다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족들이 마음에 걸려 물건을 나눠쓰고 재산을 팔아서 도와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지난번 밀로스라브 볼프가 Public Faith에서 빌레몬서에 대해 말한 것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바울은 노예인 오네시모가 예수님을 믿어 형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오네시모의 주인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 형제로 대해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노예라는 사회적 제도는 그대로 있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이 노예를 형제로 대하면 노예제도는 더 이상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복음의 전신에 따라 살면 사회제도 철폐나 개혁을 위해 정치적 힘에 의지하지 않아도 사회변화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의존적 삶의 방식도 이런 관점에서 조명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 문화는 독립심을 강조합니다. 남에게 의존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깁니다.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해결해야 합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세속적 문화의 영향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의 배후에는 이기심이 숨어 있습니다.  남에게 피해주는 게 나쁘다고 말하는데 속셈은 손해보기 싫기 때문입니다. 다른 부분에선 상당한 수준의 믿음으로 사는 교인들도 상호의존적인 공동체 생활에선 걸음마 수준입니다. 여력이 있는 사람은 손해보기 싫고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은 수치심을 느낍니다.

상호의존적인 공동체의 삶은 작은 희생을 통해 많은 복을 누리도록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입니다. 그 몇 가지를 언급하면, 첫째로 갑자기 어려움을 당했을 때 그 폭풍우를 헤쳐나갈 ‘힘’을 얻습니다. 둘째는 더불어 지내는 사람들로부터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데 필요한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세째는 영적 성장에 필수적인 ‘상호책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상처 치유에 도움이 되는 ‘용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전도서4장 9,10절을 보면,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은 것은 혹 누가 넘어지면 그 동무들이 붙들어 일으켜주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할 것”(요16:33)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고보는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약2:8)고 말합니다. 바울은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6:2)고 말합니다.

예수 믿어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살아도 세상에선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닥쳐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위로의 말이나 경제적으로 도와줄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얼마나 힘든 인생입니까? 그럴 때 교인들이 아무런 관심도 도움도 주지 않으면 얼마나 실망스럽겠습니까? 내가 곤경에 처했을 때 언제라도 달려와 힘이 되어줄 목장이 있는 게 좋습니까? 없는 게 좋습니까? 여러분도 그런 목장을 원합니까? 그러면 평소에 그런 목장을 만드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바랍니다. 목장 멤버들에게 어떤 필요가 생겼을 때, 모른척하지 말고 제일 먼저 달려가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기를 힘쓰기 바랍니다. 그러면 나중에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 사람이 제일먼저 달려와 도와 줄 것입니다. 일차로 목장 안에서 이런 관계를 만들어 내야 하겠습니다. 건강한 소그룹은 교회의 생명력입니다.

명목상 조직차원에서 소그룹이 편성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상호의존적인 공동체로서 목장이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 교회의 목장이 앞서 말한 것처럼 목자와 목장 멤버들 상호간에 서로 의존적인 공동체로 만들어져가고 있느냐 하는 걸 우리가 자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의 생명력은 예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러나 교회의 경쟁력은 서로 사랑의 짐을 지는 의존적인 공동체에서 나옵니다. 어떤 교회든 명칭은 다르더라도 소그룹이 있습니다. 목장이든 구역이든 순이든 셀이든 말입니다. 문제는 감동을 주는 소그룹인가하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 차원에서, 목자들은 목장 차원에서 양들에게 감동을 주는 공동체를 만드는데 앞장서야 합니다. 그래야 목장에 사람이 모입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우선 내 목장 안에 있는 양들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힘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양들에게 어떤 도움이 생기면 마음과 정성을 쏫고 시간과 돈을 씁시다. 목자는 먼저 내주는 사랑을 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내주시고, 예수님이 양을 위해 자기 내주신 것처럼 목자는 양을 위해 자기를 내주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랑을 받고 자란 양들은  또한 그런 목자가 되어 섬길 것입니다. 우리가 상호의존적인 공동체로 살아야 이런 교회와 목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주를 사랑하고 섬기려는 분들은 내 것을 내어 주는 것, 손해보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마음이 생기더라도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생각하며 이겨내기 바랍니다.  누가복음18장 18절 이하를 보면, 부자관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 나라와 영생에 매우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율법적 기준으로는 10계명을 지키며 나름 최선을 다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보시는 기준에서는 이 사람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게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재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사람이 여러운 사람들을 위해 재물을 내어 놓기 원했습니다. 하지만 이 부자 청년은 아직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부자청년에게 바라시는 것은 먹고 살 것이 없을 정도로 가난한 자에게 다 베풀라는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여유분을 의식주도 해결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라는 것입니다. 내어 주고도 이 부자 청년은 충분히 자기와 가족들이 생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이 더 좋은 복된 인생을 가로 막은 것입니다. 우리도재물에 대한 욕심이 주님을 섬기며 더 복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그런 인생을 포기하는 어리섞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을 이기는 길은 수입이 적을 때부터 주님께 드리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습관이 몸에 베게 하는 게 좋은 방법입니다.

의존적 공동체 삶을 만들어가는데는 내어주는 사랑 뿐 아니라 감사하게 받고 기뻐하는 훈련도 필요합니다. 앞서말한 것처럼 왠지 받는 게 자존심 상합니다. 저도 받을 때 좀 불편합니다. 선물은 괜찮은데 구제받는 그런 상황에선 안 받는 편을 택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그럴 겁니다. 왜냐면 남에게 의지하고 피해주는 게 나쁘다고 듣고 자랐기 때문입니다. 그래 놓고 받으라고 하니까 수치심이 드는 겁니다. 그래서 받는데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가족으로 사랑이 풍성해는 공동체가 되려면 자존심을 내려놓고 형제 자매의 사랑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의존적 공동체의 삶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목적은 교회는 세상 문화와 가치관을 따라 사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곳이니 아까운 마음이 들더라도 의지적으로 내어주는 사랑을 베풀어야 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사랑의 손길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나중에 기회가 될 때 도움이 필요한 지체에게 베풀며 살자고 권면하려는 것입니다. 먼저 목자 여러분, 오늘 말씀처럼 여러분에게 맡겨준 주님의 양들에게 내어주는 사랑을 베풀기로 결단하겠습니까? 제 형편이 허락하는 한 앞서 행할 것이니 목자 여러분들도 본받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은 양인 교우 여러분들도 여러분 목자를 본받아 서로 사랑하며 서로 짐을 나눠지며 힘과 의지가 되는 목장을 만들어 행복하게 교회생활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