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데살로니가전서4:1-12

오늘은 데살로니가전서4장 1-12절 말씀에 근거하여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3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 사도께서 이제 예수 믿은지 체 1년이 안되는 초신자들에게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와 관련해 권면한 말씀입니다. 여기 있는 여러분들은 대부분 예수 믿은지 1년 이상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미 다 잘 알고 행하리라 믿지만 확인차원에서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는 마케도니아의 주요 항구도시였습니다. 현재는 살로니카(혹은 테살로니키)라고 불리는 그리스도시입니다(사진).  데살로니가는 기원전 315년경 카산드로스가 세웠고 알렉산더 대왕의 누이이며 자신의 아내 이름을 따서 데살로니카라고 불렀답니다. 후에 마케도니아가 로마의 속주가 되었을 때, 데살로니가는 그 속주 정부의 행정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가 방문해서 전도할 때 데살로니가는 번성하는 도시 중에 하나였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제2차 전도여행 때((AD 51-53)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가 전도해서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바울 일행은 세 안식일에 걸쳐  데살로니가의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강론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주로 그리스인이었던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걸 보고 일부 유대인들은 불량배를 데리고 바울이 머무는 곳을 찾아와 행패를 부려 바울 일행은 베뢰아 지역으로 예정보다 일찍 떠나야 했습니다. 이런 내용이 사도행전 1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유대인들의 소동으로 예상보다 일찍 데살로니가를 떠나야 했던 바울이 제2차 전도 여행중 고린도에 머물 때 (행 18:12-17)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써 보낸 편지입니다. 데살로니가는 기독교의 복음에 대해 적대적인 분위기였고, 이제 막 예수 믿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불신자인 그들의 친척들과 이웃 사람들들로부터 경멸과 조롱을 받고 있었습니다. 예수를 믿게 된 헬라 귀부인들은 아직 불신자인 남편으로부터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를 받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난동부리는 유대인들 때문에 급히 떠나왔기 때문에 데살로니가 교회가 염려가 돼서 디모데를 보내어 교회의 사정을 알아오게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지역을 방문하고 돌아온 디모데는 바울에게 교회사정을 소상하게 설명했습니다. 디모데의 보고에 따르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을 사모하며(3:6-10), 바울이 전해준 가르침을 잘 지키고(2:13), 신앙 때문에 고난을 당하면서도 기쁘게 교회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1:2-10). 그렇지만 걱정스러운 면도 있었는데 , 그리스도께서 곧 다시 오시리라 기대로 생업에 힘쓰지 않는 교인들(4:11-12), 과거의 부도덕한 생활을 청산하지 못한 교인들(4:1, 13-18). 주님 재림 전에 먼저 죽은 가족들이 혹시 잘못될까 봐 슬퍼하는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에 감사하며 격려하는 동시에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데살로니가전서를 써 보냈습니다.

이 시간에는 데살로니가전서 4장 전반부의 내용 예수 믿는 사람이 마땅히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관련해서 3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것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권면한 말씀인데, 그 첫째는 음행을 멀리하라는 말씀입니다. 음행은 데살로니가교회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이방인 교회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음행은 하나님이 정한 질서인 결혼관계를 벗어나 성적 욕망을 충족하려고 할 때 발생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 사회는 율법의 통제아래 있던 유대인사회보다 더 음행이 광범위하게 퍼져있었습니다. 종교의식의 미명하에 음행이 행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음행은 어느 지역에서든 이방인들이 예수 믿고 돌아올 때 버려야 할 죄목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고 난 후 음행에 빠졌다기보다는 음행하던 사람들이 예수 믿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아직 음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교회에 음행이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로마서1장26,27절을 보면,  로마교회도 음행의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엔 부끄러운 정욕에 빠져 남녀끼리는 물론, 동성끼리도 부끄러운 짓을 한다고 나옵니다. 유투부 동영상 자료를 보면, 고대 로마제국은 쾌락을 추구하다 멸망했다고 평가될 정도입니다. 고린도교회에도 음행이 문제가 되어 바울은 그런 사람과는 교제하지 말고 내 쫓으라고 지시했습니다(고전5:1,13). 그 외에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골로새서에도 음행에 대한 경고가 나옵니다(갈5:19;엡5:5;골3:5). 이걸 보면 거의 모든 이방인 교회에 음행이 문제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음행은 교회 밖의 불신자들의 음행보다 더 나쁩니다. 6절에 형제를 해하지 말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것은 교회에서 기혼자들 사이에 음행이 생기면 서로 배우자에게 큰 상처를 주게 될 것입니다. 피해자는 평생 벗어나기 힘든 배신의 고통을 겪어야 할 것입니다. 잘못하면 가정이 깨지고 교회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누군들 처음부터 작정하고 음행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대부분 어쩌다 우연한 기회에 그렇게 되는 것이죠. 물론 사단은 그런 우연한 기회를 계속 노리다가 이 때다 싶을 때 미혹해 넘어지게 합니다.

음행은 성인남녀라면 누구든 넘어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물론 사회 지도급 인사들인 검찰총장, 대학교수, 사제, 목사 등도 예외가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작정하고 부정을 저지르겠습니까? 어쩌다 서로 끌려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다정한 말 한마디, 배려가 성적 욕망이 개입되고 배후에 사단이 역사하면 성인남녀가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음행입니다. 음행에 빠지면 지옥 간다는 생각으로 조심합시다. 연말 연시 분위기, 송년회 등이 많은 때에 조심하기 바랍니다.

그 다음 둘째로 교우 사랑에 더욱 힘쓰라는 말씀입니다. 9절 보면,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형제 사랑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교인들은 서로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케도냐 모든 형제들을 대상으로 잘 실천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사실을 언급하며 데살로니교인들을 칭찬하면서 앞으로 더욱 더 많이 하라고 격려했습니다.

예수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 후 천국 갈 때까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어려운 형제/자매들을 도우며 사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신앙생활은 결국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께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큽니까?” 물었을 때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는  레위기19장 18절 말씀을 인용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실천의 측면에서는 형제사랑이 더 강조되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고백만으로는 부족하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도 고백만으로 끝내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신명기를 보면, 하나님은 절기마다 하나님께 나와 제사를 드릴 때 자원하는 마음으로 힘께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먹을 게 없어서 뭘 가져오라는 게 아니고 우리가 귀하게 여기는 재물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을 때 재물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설명하면, 재물 있는 곳에 마음도 있는 법이라, 재물을 하나님께 옮겨 놓는 순간 내 마음도 하나님께로 옮겨집니다. 주 안에서 이웃에 대한 사랑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과 함께 그 사람이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주는 순간 내 재물의 일부가 그 사람에게 옮겨집니다.

사랑을 주고 받는데 예외 될 사람은 없습니다. 혹시 난 지금 가난하니까 받기는 해도 주지는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오해입니다. 빈부는 그냥 상대적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겐 내가 가난한 자가 되고, 어떤 사람에겐 내가 부자가 됩니다. 주변엔 내 도움을 기다리는 가난한 자들이 항상 있습니다. 여러분이 부모로부터 용돈을 받고 적은 수입으로 한 달을 살아간다고 해도,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 형편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힘껏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표현입니다. 다비다라는 여제자는 선행과 구제에 힘썼습니다(행9:36).  바나바는 자기 밭을 팔아 가난한 교인들을 도와주었습니다. 고넬료 역시 구제에 힘쓴 사람입니다(행10:2). 반면에 영생을 얻겠다고 예수님을 찾아와 선행을 논하던 부자 청년은 재산을 팔아가 가난한 자를 도와주라는 예수님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때때로 재물이냐 하나님 나라냐 이렇게 놓고 선택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단지 재물을 포기하는 것은 어렵지만, 재물 대신 하나님 나라를 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끝으로 세째는 자기 일에 힘쓰라는 권면입니다. 11절 보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바울이 열심히 일하라고 권면한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곧 다시 오시리라는 기대로 생업에 힘쓰지 않고 시간만 보내는 교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4:11-12). 바울은 그들에게 직장과 일터로 돌아가서 자기 일에 힘쓰고 생계문제로 남에게 의지하며 피해를 주지말고 열심히 일해서 궁핍함을 면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줄 수 있도록 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데살로니가서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기간인 AD52년 경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20년 정도 지났을 때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곧 다시 오실 것처럼 말하고 가셨기 때문에, 그로부터 20 여 년이 지났을 때 내일 당장이라도 주님이 오실 것처럼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언제 오신다고 그 때를 정확하게 언급하신 적은 없지만,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 생전에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극심한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하늘나라 소망을 품고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재림신앙은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극단적인 재림신앙은 다소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내일 당장 주님이 오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기들끼리 모여 재림을 기다린다며 생업도 팽게치고 가정도 돌보지 않고 그래서 그래서 사회문제가 되고 교회도 혼란에 빠뜨리고 그러면 안됩니다. 한국교회도 10,20년 전만 해도 임박한 종말론, 다시 말해 주님이 곧 오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밤마다 모여서 집회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직장도 그만두고 어린 자녀들까지 데리고 자기들끼리 모여 기도하며 주님이 오신다고 예고한 날짜에 주님도 안 오시고 공중에 들려 주님을 맞이하게 될 줄로 기대했는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 날짜를 다시 연기하고 그래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 크게 실망하고 실족하고 사회적 비난을 받고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재림과 세상 끝날에 대한 신학적 견해는 크게 3가지, 전천년설(premillennialism), 후천년설, 무천년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천년왕국 전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전천년설이고, 후에 이루어진다는 것이 후천년설이며, 무천년설은 천년왕국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전 기간을 천년왕국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설문 조사에 따르면 미국 복음주의 지도자들 65%가 전천년설을 믿는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한국교회는 주로 미국선교사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전천년설을 지지하는 목사님들이 아마 다수일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강조하는 사람들은 주로 전천년설 입장에서 계시록을 해석하는데, 그들에 따르면, 먼저 그리스도의 공중재림(PAROUSIA)있고, 그 때  소수의 성도들이 휴거하고 이어7년 대환란을 통과하고 7년이 끝날 때 그리스도께서 지상재림(Epiphany)하여 문자적으로 일천년동안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마음이 바쁩니다. 왜냐면 주님이 공중 재림하실 때 주님을 맞이하러 휴거하는 성도들은 7년 대환란을 면하고 공중에서 어린양혼인잔치를 즐기고 지상의 성도들은 7년 환련을 겪어야 합니다. 그래서 환란 전에 휴거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주님께 인정받아야 한다고 해서 지나치게 열심을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님 재림하실 때 성도가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은 17절에 나옵니다. 그러면 누가 어디서 들려 올라가게 될까요? 이에 대해서는 마태복음24장 40,41절에 예수님은 밭에 있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들려 올라가고, 매를 갈고 있던 두 여인 중 한 여인이 들려 올라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꼭 기도원에 모여 기도며 기다리는 사람이나 선교현장에 나가 선교하는 사람만 잘 보여서 들림받는 게 아닙니다. 자기 일에 충실하면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이 어디에 있든지 주님이 오실 때 들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살면서 교회생활 잘 하는 것이 안전한 바른 신앙생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