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으로 성장하자

벧전 2:1~2 - 김재범 목자


늘 평신도사역달이 돌아올때가 되면 어떠한 말씀을 나눠야 할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됩니다. 여러가지 면에서 부족한 모습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하니 더욱 그런 고민이 되는것 같습니다. 지난 일년간의 제 삶을 돌아보면 역시 가장 큰 일은 엘리의 성장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엘리가 크고 자라나는 것을 보면서 성장에 대한 묵상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요, 오늘은 성장의 주제를 가지고 여러분과 말씀을 나눠볼까 합니다.

아이가 자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누가 계획하고 준비하지 않아도 아이의 몸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물이 흐르듯 성장의 변화를 겪게 됩니다. 엘리가 1년 2개월이 이제 되었는데, 그 짧은 기간에 정말 엄청난 발전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됩니다.  얼마전에 김목사님께서 “그리스안에서 성숙한 제자가 되자”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신 적이 있는데 거기서 생명이 자라는 원리를 이렇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씨가 자라는 이유는 그 안에 생명력과 더불어 성장력이 본질적으로 들어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씨가 자라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자란다는 말씀이죠. 거듭난 사람의 영에도 이와 마찬가지로 영적인 생명력/성장력이 본질적으로 들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영적인 성장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어떤 특별한 능력을 갖추어 서도 아니고, 어떤 성장의 비법을 알아야만 성장하는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성장하도록 필요한 모든 요소를 갖추어 놓으셨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영적 성장에 대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영적 성장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마치 영적 성장은 우리 노력으로 쟁취해야 하거나, 하나님께 extra credit를 따 내는것처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이것은 영적 성장을 오해한 것입니다. 적절한 습도와 햇빛만 있으면 씨가 싹을 터는것 처럼, 성장이란 필요한 영양소 공급만 해결되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영적인 성장에 있어서 필요한 환경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벧전 2:2에 보면,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신령한”의 헬라어인 로기코스 (logikos)에는 “말씀” 이라는 뜻도 있어서 신령한 저은 곧 말씀의 젖을 의미합니다. 마가복음 4:4 절에도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라” 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떡을 먹는것에 비교하십니다. 오늘날 저를 포함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간단한 진리를 잊어버리고 있는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그저 영적 성장 세미나나, 부흥회, 주일 성경공부, 성경 일독 수양회 등등을 다니느것으로 영적 성장을 얻을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보조해주는 역활의 supplement 일 뿐이지, 성장을 이뤄내는 근본이 될수는 없습니다. 영적 성장을 이뤄내는 근본적인 원동력이 되는것은 오늘 본문의 말씀에 나와 있는대로 매일매일 내가 소화할수 있는 양의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갓난 아이들 같이 말씀을 찾으라 하셨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갓난 아이는 4시간마다 젖을 찾습니다. 그 이유는 아이의 위가 아직 많은 양을 담을수 없기 때문에 조금씩 먹고, 소화하고 조금씩 먹고 소화하고를 반복 하는 겁니다.  갓난 아이에게 일주일에 한번 젖을 주는것으로 성장을 기대할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 반대로 일주일 치의 젖을 한번에 주입시킨다고 (그렇게 하는것 조차 가능치 않지만) 그 아이가 일주일간 배 고프지 않을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의 포인트는 매일 소화할수 있는 양의 말씀 먹는 훈련을 하라 입니다.

흔히 하나님을 처음으로 구제주로 믿고 고원을 얻은 사람들을 일컬어 영적 갓난아이라고 표현합니다.  분명히 영적으로 살아있는 존재로 구원의 확신이 있고, 하나님과 교통할수 있는 채널이 열려있지만, 분별력이 모자라서 유혹에 자주 빠지기도 하고, 신앙생활의 중심이 자기자신이 되어 주위 사람들이나 목자들을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저희 늘푸른교회는 지난 6년간 셀모임 중심의 사역을 하면서 영적 갓난 아이들을 많이 접해볼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우리의 그간 사역을 뒤돌아보며 느낀것은 우리가 그들과 친교하고 기도하는것 만으로는 그들을 영적 성장으로 이끌어 나갈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난번 정준집사님께서 말씀을 나눌때 특히 제가 와 닿았던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시간의 관점에서 봤을때, 청년의 때가 가장 부유한 때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에서 하나님께서 저희 늘푸른교회에게 청년중심 사역을 맡기신 것은 결코 작은 사역이 아니고, 정말 하나님 나라를 위한 전략적으로 중요한 사역을 맡기셨다는 말씀이였습니다. 전 이 말씀을 듣고 참 회개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희가 너무도 안일한 마음으로 내 영의 상태도 잘 돌아보지 아니하고, 그저 이제는 기독교 문화에 익숙한채로 살아온것이 아닌가에 대한 반성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구원으로 이르게 하시고 늘푸른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그저 우리가 서로 친하게 지내고, social club 같이 좋게 즐기라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그리스도의 장성량 분량까지 자라게 하고 우리가 받은 가르침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고 더 나아가서는 영적인 성숙을 이뤄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라고 우리 늘푸른교회를 세워주신 것입니다. 골1:28절에 보면,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라고 되어있습니다. 그 본문은 김목사님께서 설교하셨던 구절인데요, “완전한”으로 변역된 헬라어는 문맥에 따라 “완전한”, “성숙한”의 의미로 사용된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성경에서의 번역은 “완전한”으로 되었지만, 예수 믿는 사람도 절대적인 의미에서 완전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 말은 “성숙한”의 의미로 풀어쓰는게 더 낫다고 해석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고 있는 영적인 성숙이란 무엇일까요? 저도 궁금해서 자료 검색을 많이 해 보았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떤 명확한 정의가 없었습니다. 각각 목사님들도 견해가 조금씩 달라서 그 정의가 애매모호 하긴 했습니다. 성경에 대해 지적으로 성숙한 것을 영적인 성숙이라고 생각할수도 있겠고, 교회에서 섬기고 봉사하는 것을영적인 성숙이라고 생각할수도 있겠고,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품어주는 감정적 성숙을영적인 성숙이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습니다. 또는 법 없이도 살아갈수 있는 도덕적인 사람을 보고 영적 성숙이라 말할수도 있을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영적으로 성숙한 자의 표징이 될수는 있겠지만, 영적인 성숙을 정의한다고는 말할수 없습니다. 여러 의견들과 정의를 종합해서 볼때, 영적인 성숙이란, 쉽게 얘기해서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님을 나타내는 것이고, 좀더 technical 하게 얘기하자면, 우리의 자아를 온전히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그 이끄심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성숙을 위해서는 단순히 말씀을 먹는것 뿐 아니라, 기도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필수적입니다. 밥에도 아이의 밥이 있고 어른의 밥이 있습니다. 히브리서5:12~14에 보면 아이의 밥은 젖으로, 어른의 밥은 단단한 식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어린아이 때엔 그저 맛있기만 하면 됩니다. 그 음식이 얼마나 몸에 영양이 되는지는 관심 밖입니다. 영적인 어인아이의 시기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사랑/재물의 복에 관한 말씀은 아멘으로 받아도 헌신이나 고난, 훈련에 관한 말씀은 귓등으로 듣습니다. 그리고 더 문제가 될수 있는 부분은 이렇게 말씀의 편식을 하면서도 자신의 상태가 건강한줄로 알기 쉽다는 점입니다. 몸에 있는 영양분이라것도 마찬가지죠. 예를 들어, 몸에 여러 가지 비타민이 다 필요하지만, 모든 비타민이 항상 필요한것은 아닙니다. 밤 눈이 어두워져야 비타민 A필요했구나 깨닫는 것이구요, 우울하거나 괜히 기분이 다운되어야 비타민D가 부족하구나 하고 깨닫는 거죠. 우리가 말씀을 편식하고 먹는다면, 뜻하지 않은 어려움이나 역경을 만나서야 그 때에 필요한 말씀 먹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으로, 받아들이거나 이해하기 힘든 어른의 말씀을, 기도와 묵상으로 우리 삶에 비춰보고, 성령님의 감동하심에 따라 우리 삶을 조정하는 일은, 영적 성숙을 이루는데 꼭 거쳐야 할 길입니다.

이제 성경에서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의 특징을 좀 찾아보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납니다. 먼저 자기 중심적이였던 인물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아 이스라엘의 왕이 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큰 축복과 택하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기 중심적 이였습니다. 몇번이고 자기의 생각을 하나님 말씀 위에 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리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신의 입장이 다급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제사장이 드려야할 제사를 자기 자신이 직접 드리는 죄를 범하고 맙니다. 그럼 여기서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난 사람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이미 사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려고 기름부은 사람이였습니다. 사울은 이 소식을 듣고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고, 그러한 다윗은 사울을 처치할수 있는 기회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사울을 자기가 벨수 없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상황을 살펴본다면 다윗이 사울을 처치하는것도 완전히 정당화 될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자기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넘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습니다.  요셉은 아무런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다는 이유만으로 형들에게 버림받고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게 됩니다. 형들에게 버림받은 것만해도 서러운데, 노예로 까지 팔려갔으니, 요셉이야 말로 형들에게 앙금을 품어도 이해해만한 고난을 겪었습니다. 나중에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고 난후, 다시 형들과 대면하게 됩니다. 복수를 하고자 맘만 먹었다면 정말 그야말로 복수하기에 너무나도 완벽한 설정이였죠. 하지만, 자신 보기를 두려워해 하는 형들에게 요셉은 이렇게 말 합니다. 하나님께서 형들과 우리 가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나를 애굽에 먼저 보내어 놓으신 것이라고.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또 겸손하며 이해가 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께 말씀을 받고 몇십년에 걸쳐 방주 만드는 일을 다 해 냅니다. 우리는 그저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방주를 만들었구나 라고 쉽게 얘기하지만, 노아는 이 말씀에 자신의 인생을 걸어야 했습니다. 노아는 배를 만드는 사람도 아니였고, 그 방주는 바다에서 만든것도 아니고, 산 위에서 만들었습니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노아는 이 일을 묵묵히 실천하고 꾸준하게 하나님의 순종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영적으로 성숙한 이들은 자아보다 하나님께 인도하심을 구하고,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통해 그분의 뜻을 이루시며 이들을 크게 축복하십니다. 우리가 흔히 이런 이야기들을 들을때 이들은 특별한 사람들이지, 나는 이렇게 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이 사람들 모두가 자아를 버려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우리 자아 버리는 일에 두려움을 갖고, 우리가 그것을 해낼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혼을 위한 작은 책”에서는 이 과정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를 변화시키기 보다는 세상이나 다른 이들을 바꾸고 싶어한다. 그러나 영적인 성장은 딱 그 반대다. 영적성장이란 ‘다른 차원’이 드러날 수 있도록 자기 의견과 헛된 생각, 잘못 알고 있던 것들을 모두 놓아버리는 일이다. 우리 정체성이 하나도 남김없이 변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고통이 따르는데, 그것은 소멸과 변형이 어떻게 다른지를 에고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점이 바뀔 때 그것은 마치 죽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당신은 물론 죽은게 아니다. 오히려 생전 처음으로 온전히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
영적인 성장과 성숙은 몇몇 사람만 할수 있는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영적 성숙으로 향하길 원하시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제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영적 성장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며 우리 모두가 꼭 겪게 되어 있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제가 지난 일년간 엘리의 성장을 시켜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그 동안 내 영의 건강상태에 대해서 너무도 무관심했다는 것이였습니다. 내 영에게 아무 말씀도 먹이지 않으면서 영적으로 변화가 없고 발전이 없는 것만 안타까워했습니다. 매번 같은 실수로 넘어지고 주님앞에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도, 그 근본적인 문제가 영적인 성장이 덜 되어서 그렇다고 깨닫지 못하고 늘 새로운 다짐과 내 자신의 의지로 그 벽을 넘어보려 했습니다. 그런 미련한 저에게 주님께서는 신체적인 성장을 곁에서 지켜보게 하심으로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아이의 신체가 자라나는것을 보면 너무 신기하고 오묘하기만 합니다. 아무것도 할줄 모르던 갓난아이가, 때가 되면 사물에 촛점을 맞추고, 때가 되면 이가 나고, 젖밖에 못먹던 아이가 단단한 음식도 먹게 되고, 때가 되면 의사소통이 저절로 이루어 집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고, 부모로서 아이에게 도움을 준것이 있다면 그저 필요한 때에 영양소를 공급해 준것 밖에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섭리아래, 그리고 정하신 시간에 이루어 집니다.
영적인 성장도 이와 똑같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꾸준히 영양소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한, 그 말씀이 우리 안에서 소화되고 영적인 피와 살이 되어 여러 영적인 변화를 일으킨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 역시 하나님이 정하신 섭리대로, 그 시간대에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빨을 더 빨리 키우겠다고 키울수 있는 것이 아닌것 처럼, 내가 어떻게 다리만 빨리 자라게 할수 없는 것 처럼, 영적인 성장도 한 부분만 우리가 특별히 더 빨리 성장시킬수 없습니다. 지금 혹시 이 자리에 특정한 유혹에 넘어져서 늘 주님앞에 고민하고 기도하는 형제/자매분이 있으신가요?  좀 더 기다리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영적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묵묵히 말씀을 먹읍시다. 그리하면 어느새인가 하나님과 친밀히 교재하고 있는 여러분들을 발견하게 되실줄 믿습니다. 저희 모두가 열심으로 주님의 말씀을 먹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나고 더욱 나아가서는 영적인 성숙을 이뤄내는 늘푸른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