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께 죄가 되는 것

고전3:16-17 ; 히10:26-31

예수 믿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내 안에 성령이 계시다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합니다. 제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 대부분 교우들은 다소 삼가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목사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이 함께 계시면 더욱 조심하는 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모습들을 봅니다. 성령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성령이 함께 계신다는 자각부터 일어나길 바랍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인들에게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했습니다(고전3:16). 이와 같이 우리 몸은 성령이 살고 계시는 집이기 때문에 우리가 몸으로 어떤 죄를 범하면 그것은 성령께 죄를 범하는 것이 되고, 음행이나 우상숭배로 우리 몸과 마음을 더럽히면 성전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성전을 장사치의 소굴로 만든 것을 보고 예수님이 상을 둘러 엎으며 크게 화내신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고전3:17). 새겨들어야 할 경고입니다.

우리 몸이 성령의 집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성령과 우리는 한 몸입니다. 따라서 우리 몸을 부정하게 만드는 행동이나 죄는 모두 성령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모든 죄가 다 성령께 죄가 되겠지만, 이 시간에는 그 중에서도 성령의 역사를 부정하는 훼방죄, 성령을 속이는 기만죄, 성령을 모독하는 음행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런 행위가 하나님께 죄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말씀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런 죄를 범하는 경우는 다시 용서받을 수 없다고 성경은 경고하고 있습니다(히11:26). 그러니까 오늘 설교말씀을 들은 이후에는 이 세가지 죄를 다시 범해선 큰 일 난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첫째로 성령을 모독하는 훼방죄에 대해 살펴봅시다. 마태복음 12장 31절에서 예수님은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눈 멀고 벙어리  사람을 고쳐 주어 말하고 보게 되자 그것을 보고 바리새인들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 고친 것이라고 예수님을 몰아세웠습니다. 예수님을 죽이고 싶어했던 바리새인들은 이 기적을 보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추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성령이 하신 일을 사단이 했다고 성령의 역사를 부정했습니다. 몰라서 실수한 게 아니었습니다. 의도적으로 사단의 소행으로 몰고 간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행위였습니다.

범죄의 경중을 판단하는데 무의식적인 실수와 의도적인 행동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차이를 중요하게 보십니다. 히브리서10장 26,27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여기서 ‘짐짓’이라는 말은 쉬운 성경 번역을 보면, ‘일부러 계속’ 이런 뜻입니다. 새신자들이 몰라서 성령의 역사를 사단의 역사가 아닌가 의심하는 것은 큰 죄가 안되더라도 성령의 역사인 줄 알만한 수준에 있는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마귀의 소행이라고 성령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은 성령을 훼방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욕되게 하는 죄를 중한 벌을 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둘째로 성령을 기만하는 거짓말의 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사도행전5장 3, 4절에서 베드로 사도께서 아나니아에게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책망하자 아나니야의 혼이 떠나 죽었는데 세 시간쯤 후에 그의 아내 삽비라도 남편과 미리 계획한대로 거짓말을 했다가 혼이 떠나 죽음을 당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죄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 교회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아 교인 중에 다소 여유가 있는 사람은 자원해서 자기 소유를 팔아 어려운 교인들을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몇 주 전에 키프러스 섬 출신 바나바라는 청년이 밭을 팔아 구제헌금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부부도 감동을 받아 용기를 내 밭을 팔아 그 일부를 사도들에게 가져왔습니다. 정황으로 볼 때 이 부부는 처음엔 밭을 판 돈을 전부 구제헌금으로 할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직 재물에 욕심이 남았든지, 자기들 미래가 좀 걱정이 됐든지 얼마를 감춰놓고 얼마를 가져다 사도들에게 주었습니다.

사도들이 이 돈을 그냥 받았으면 칭찬받는 것으로 끝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충만하신 베드로 사도께서 아나니아가 얼마를 감추고 안 그런 척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성령을 속이는 행위로 베드로 사도는 이제 막 성령의 역사로 교회가 세워지는 초기에 교회에 거짓과 위선이 침투하고 있는 매우 심각한 죄악으로 봤습니다. 그 배후에 사단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당시 아나니아에겐 회개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거짓말한 것을 지적한 것은 베드로 사도였지만 그들의 혼을 거둔 것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라면 교인들이 무슨 마음을 품고 헌금을 하든 헌금한 것으로 축복해주고 칭찬하고 그러잖습니까? 우리 교회에서도 마찬가지 일 듯 싶습니다. 교인들이 십일조나 사랑의 헌금이나 기타 목적의 헌금을 했을 때, 목사님들이 영적으로 분별해서 온전히 드리고 있는지 판단하고 , 일부를 숨기고 있다고 책망하고, 그 사건으로 인해 죽음을 당하는 교인이 생긴다면 어떤 반응이 일어날 것 같습니까? 예루살렘 교회처럼 두려운 마음으로 삼가할까요? 교회에 처들어와 난리를 칠까요? 그 전에 오늘 교회 현실에서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거짓말을 하긴 했지만, 그것이 즉시 죽음을 당할 만큼 큰 죄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죄에 관용적인 우리 태도가 교회가 오염되는 것을 막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성령을 기만하는 것은 죽음을 당할 만큼 큰 죄라는 인식부터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아나니아나 삽비라와 흡사한 우리들의 거짓말에 대해 똑 같은 처벌이 내려진다면 매 주일 수 많은 교인들이 예배 중에 죽음을 당하는 일이 일어나진 않을까요? 여러분 자신에게 적용하면 어떨 것 같습니까? 저는 오래 전에 죽었을 것 같습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서 십일조나 작정헌금을 온전하게 드리지 못한 때가 있었거든요. 온전하게 십일조를 드리려면 월급 뿐 아니라 부동산이나 주식이나 기타 수당 등으로 얻은 수입에 대해서도 십일조를 해야 하고 그러죠. 또 은혜 받았을 때 나름대로 작정했다가 없었던 일로 한 적도 있고 그러지 않습니까? 마음 속에서 일어난 일이니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성령님은 알고 계실 겁니다. 사소한 것이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직이 최선입니다.

셋째로 성령을 더럽히는 음행의 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 3, 5절에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에서 문제가 된 음행에 대해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단에게 내어주었다’고 할만큼 최고수위의 징계를 내리게 한 고린도교회에서 일어난 음행사건은 계모를 아내로 취한 사건이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세상엔 별일이 다 일어납니다. 열왕기상 1장을 보면, 다윗왕이 늙이 기력이 쇠하고 몸이 차가워져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아 아리따운 처녀를 구해 침실 시중을 들게 했습니다. 그녀 이름이 수넴 여자 아비삭인데, 다윗왕이 죽은 후에 아들 아도니야가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말하자면 계모벌인 수넴 여자 아비삭을 자기 아내로 삼게 달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왕상2:17).

물론 이런 일은 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교회에서 일어났다는데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 더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 어찌 가만 두고 보고 있느냐고 책망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이 더럽혀진 것을 보고 불같이 화를 내셨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를 퍼져나가는 것처럼 특히 성적을 방탕한 것은 쉽게 오염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살처분하는 특단의 조치처럼 바울은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음행하는 그 사람에 대해 관용을 배풀지 않았습니다.

음행은 성경에서 매우 엄격하게 반복적으로 경계하는 죄목 가운데 하나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9절에 음란하는 자(성적으로 부도덕한 자), 간음하는 자, 탐색하는 자(Male prostitutes), 남색하는 자(homosexual offenders)는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판단 기준은 성인 남녀의 성적 관계에 대해 관용적인 입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전에 간통죄를 처벌하던 나라들이 이젠 간통죄를 폐지하는 추세입니다. 성인남녀 사이에 합의에 의해 은밀하게 이뤄진 행위에 대해 국가가 나서서 처벌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가르침과 더 거리가 벌어졌습니다.

바울 사도는 음행이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혼인 성인들이 합의에 의해서 관계를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았다고 안심할 게 못됩니다. 하나님은 결혼 밖의 성관계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는 것은 우리 몸이 성령의 집이기 때문에 성령이 거하는 집을 더럽게 만들어 성령을 욕되게 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독신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건강한 성인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성적 욕구를 느낍니다. 욕구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부끄러워할 일도 아닙니다. 말씀과 기도에 힘쓰고 성령을 의지해 깨끗함을 유지하도록 힘쓰고 적당한 때 결혼하는 게 도움이 될 겁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0장 11절에서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란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광야에 머물 때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다 3천명이 칼에 죽임을 당한 사건이 있었고(출32:28), 그 후 싯딤에 머물 때는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다가 여호와의 진노로 염병, 즉 전염병이 생겨 2만 4천명이 죽었습니다(민25:9). 바울의 말에 따르면 오늘 우리에게 경고하는 말씀으로 이런 사건을 성경 기록으로 남겨놨다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나 간음은 하나님 보시기에 죽어 마땅한 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해 성령의 역사를 부정하는 행위, 성령을 기만하는 행위, 성령을 더럽히는 행위들은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남용해선 안됩니다. 죄를 짓지 않도록 힘쓸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을 때 과거의 모든 죄는 용서받습니다. 지난 날에 우상을 섬기고 음행을 했더라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게 되는 순간 하나님은 믿음을 보고 의롭다고 인정하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께서 대신 죽음의 형벌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여 사후 심판에서 형벌을 면제시켜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사망에 이르는 죄라는 것을 알면서 고의로 죄를 범할 때는 다시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집인 여러분 몸과 마음을 거룩하게 유지하도록 최선을 다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