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나타남

고전12:4-11

물컵 속에 붉은색 물감을 떨어뜨리면 어떻게 변할 것 같습니까? 컵 속의 물이 붉게 변합니다. 이처럼 성령이 임하셨을 때도 성령 때문에 변화가 나타납니다. 물감이 물색을 변화시키는 것처럼 성령과 함께 하는 사람에겐 성령의 나타남이 있기 마련입니다. 오늘은 성령님이 임하셨을 때 나타나는 세가지 변화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성령이 임하시면 세상과 분리되는 변화가 나타납니다. 성령의 본질적 특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령의 뜻이 뭡니까? 거룩한 영입니다. 거룩이라는 말은 세상과 구별되다는 뜻입니다. 성령은 세상과 구별된 영이라는 뜻입니다. 구별되려면 색깔이 다르든지 무리에서 따로 떨어져 나와야 합니다. 성령이 세상과는 색깔이 다르고 세상과 거리를 유지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요, 예수님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라는 말은 세상으로부터 부름을 부름받아 구별된 공동체라는 뜻입니다. 성도라는 말도 세상에서 구별된 거룩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교회와 성도를 세상과 구별되게 만듭다고 생각합니까? 성령님이십니다. 성령이 임하면 구별될 수 밖에 없습니다. 성령은 이 세상에 속한 영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영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은 세상과 거리를 둬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 속에 살더라도 세상과 한편일 수 없습니다.

회개를 생각해봅시다. 회개는 자신의 행동과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돌아서는 것입니다. 우리 행동과 삶은 세상 문화, 세상 생활방식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섞여 지내며 세상의 음악, 영화, 자유로운 이성교제, 이런 것들 속에서 육신의 즐거움을 추구하며 맘대로 살다가 어느 날 이것 죄악이라고 회개한다면 왜 그런 겁니까? 누구 영향 때문입니까? 바로 성령 때문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성령이 임할 때만 일어납니다. 성령이 죄악이라고 가르쳐주고 성령이 싫어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순절에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찔려 우리가 어찌할꼬 회개했습니다. 그 때 성령의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잘못인줄 안다고 다 회개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쁜 짓하는 사람들도 잘못인줄은 압니다. 그래서 숨어서 하고 , 안했다고 발뺌합니다. 몰래 바람피지 광고하면서 합니까? 나쁜 줄 알지만 좋아서 합니다. 그러다가 성령이 임하면 이런 것을 버리게 만듭니다.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세상과 친구하며 돈을 사랑하고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며 성적으로 방탕하게 살면 안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6장 9,10절에서 계속 이렇게 살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이런 죄 가운데 살았더라도 예수의 이름을 의지하여 회개하고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함을 얻으면 용서받고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성령을 구하며 세상과 분리된 삶을 살기 바랍니다.

둘째로 성령이 임하시면 일치와 화해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령이 임하면 세상과는 분리되고 주님과는 연합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4-6절을 보면, 은사는 여러 가지라도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라도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라도 모든 것을 모든 사람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성령님은 모두 같은 한 분입니다. 우리들이 마음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성령님의 인도아래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면 마음도 생각도 행동도 같아지고 화합을 이룰 수 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분열되는 것은 성령을 구하지 않고 각자 자기 소견대로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성령 받지 못한 사람들이 교회를 주도하거나 성령 받은 교인들이 성령께 순종하지 않고 자기 유익을 위해 서로 편을 만들어 자기 주장을 내세우면 교회를 분열될 수 밖에 없습니다. 교회에선 누가 옳으냐 따지기 보다 주님의 몸을 세우는데 덕이 되느냐 그게 더 중요합니다. 옳은 주장을 하다가 교회가 분열되고 주님의 몸이 상처를 입히면 잘못한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는 분쟁 때문에 바울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어떤 사람은 나는 바울편이라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나는 아볼로편이라고 말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나는 베드로편이라고 말하자, 나머지 사람들은 나는 그리스도편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울편, 아볼로편, 베드로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물론 잘못이고 그리스도편이라고 말하는 것도 잘하는 게 아닙니다. 왜냐면 나는 그리스도편이다 이렇게 말하는 순간 분열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고 교회다니는 사람 중에 그리스도편이 아닌 사람이 어딨습니까? 모두 다 그리스도편이죠.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교인들에게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려고 하느냐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갈3:3). 유대교에서 개종한 사람들이 갈라디아교회에 와서 할례를 받고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에 현혹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성령으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얻게 된 것을 상기시킨 말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얻었다고 믿는 사람은 성령의 내주하심도 믿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것은 누구에게나 성령으로 된 일입니다(고전12:3). 성령은 교회가 한 몸을 이루고 사랑하기 원하십니다. 성령이 목사님을 비난하라고 시켰습니다. 성령이 우리 목자를 미워하라고 시켰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성령을 따르지 않고 자기 감정을 따라가기 때문이죠.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4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도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니라”(1-5절).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에서 거치는 자가 되지 않도록 성령의 인도아래 순종하기 바랍니다.

셋째로 성령이 임하시면 영적 분별력이 생깁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26절에서 성령이 오시면 우리에게 예수님 말씀이 무슨 뜻인지 깨닫도록 가르쳐주시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게도 해주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천국 복음입니다. 천국은 영적 세계 아닙니까? 우리는 성령을 통해 영의 세계를 알아갑니다. 영이신 성령을 체험하고 성령을 통해 하나님 나라 영적 세계를 배웁니다. 요한복음 16장 8절에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책망으로 번역한 헬라어 엘렝틱스는 혼낸다, 각성시킨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성령의 나타남’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각 사람에게 임하여 다음과 같은 역사를 일으켜 성령이 임재하고 계심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보면,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고치는 역사, 능력행함, 예언함, 영들을 분별함, 방언과 통역하는 것이 나옵니다. 이것들은 모두 영적 능력들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공부하거나 훈련해서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영적 차원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14장에 은사의 필요성과 유익함에 대해 더 설명이 나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예언하기를 사모하고 방언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이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려고 사마리아를 통과하실 때 수가성 우물가에서 사마리아여인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처음 본 여인에게 과거에 남편이 다섯이 있었고 지금 살고 있는 남자도 합법적인 남편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여인은 소름이 끼쳤겠죠. 어떻게 예수님이 아셨겠습니까? 성령의 지식의 말씀이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5장을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소유를 팔아 얼마를 감추고 교회에 헌금했습니다. 성령으로 베드로는 아나니아가 거짓말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세상 지식과 학문을 의지하지 말고 성령을 의지하며 살기 바랍니다. 영국의 저명한 수학자이며 러셀과 쌍벽을 이루는 철학자 알프레드 화이트헤드 교수가 폭설이 내려 길을 분간할 수 없는 런던의 어느 언덕길을 가는데 한 노파가 눈길에 미끄러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부축해서 구조해줬더니 “고맙기도 해라. 예수 믿는 분인가 보죠?”했답니다. “나는 예수를 안 믿습니다.” 하는 교수의 말에 노파는 다짜고짜로 “여보시오. 어쩌려고 다 늙은 사람이 예수 안 믿소. 나는 아까 죽으면 주님 만날 것을 생각하고 눈 속에서 찬송을 불렀는데…”노교수는 숙연해졌습니다. 그는 자기 지식뿐 아니라 영국 천지의 학문 속을 다 뒤져도 저 노파가 가진 것은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갔습니다. 한 달 내내 그 교회 목사님은 철학적인 설교를 했습니다. 노교수를 위해 준비한 설교였습니다. 그러나 노교수는 목사에게 “그런 것은 내가 더 많이 압니다. 내가 찾는 것은 저 노파의 예수입니다.” 라고 했답니다.

교우 여러분!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은 성령이 계신 것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받은 성도들이 불신자와 똑 같은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세상을 멀리하고 주님을 가까이 하며, 교우들이 서로 마음을 같이하여 일치를 이루고 다투다가도 화해하고, 영적인 것에 대한 분별력이 생깁니다. 이런 특징을 생각할 때 성령 없이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교회생활은 성령받고 해야만 합니다. 교회다니는 게 재미없고 힘들다고 느끼는 분들은 성령받기를 구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