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으로 인도받는 길

갈라디아5:16-24

지난 주 설교를 마친 후 어떤 형제가 “목사님이 설교 중에 성령으로 해야 한다는 말을 여러 번 했는데 ‘성령으로 해야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두 가지를 설명했습니다. 성령으로 한다는 것은 첫째로 내 생각이나 마음대로 하지 않고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주님께 묻고 대답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고, 둘째로는 나의 지식이나 재능이나 경험보다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은 성령으로 인도받는 삶을 주제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16절에서 “성령을 따라 행하라” 말합니다. 성령을 따라 살려면 무엇보다 먼저 성령의 존재를 인정해야 합니다. 성령을 무시하면서 성령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성령님은 인정하면 드러내 보여주시고 무시하면 숨습니다. 성령님을 인정하는 방법은 모든 일을 성령께 묻고 인도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를 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설교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과 수시로 저를 찾아와 조언을 구하고 그 대로 따라 가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설교는 듣고 흘려버리고 함께 살아도 의견을 묻지 않고 자기 맘대로 살면 저는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을 것입니다. 함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함께 산다고 다 인도받는 것이 아닙니다. 조언을 구하며 순종하려고 해야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훈련으로 몸에 익혀야 할 부분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생각과 마음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도 제 개인적인 일은 물론이고 상담할 때도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생각이 떠오르는데 나중에 보면 성령의 인도보다는 그냥 제 생각이 더 반영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과 다를 때가 많기 때문에 즉답하지 말고 기도하며 물어봐야 합니다.

묻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누가 주인인지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마음 속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마음 속의 왕좌에 자신이 앉아 있는 사람은 자신이 주인이라 자기 맘대로 하면서 살 겁니다. 그리스도가 마음 속의 왕좌에 앉아 있는 사람은 예수님이 주인이시니 뭐든 주님께 먼저 물을 것입니다. 이 개념은 매우 단순해서 초등학생도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린 자녀를 둔 교우들은 이 개념을 자녀들에게 가르쳐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깨닫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용돈을 쓸 때 그걸 누구에게 물어보고 씁니까? 아마 거의 맘대로 쓸 겁니다. 그 돈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은이도 까페에서 일하고 얼마를 벌어 어디에 쓰는지 저에게 묻거나 보고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저도 물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 돈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종업원은 주인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고 하지만 주인은 종업원에게 별로 묻지 않죠. 자기가 주인이니 자기 맘대로 하죠. 주인이 아니고 종이라는 마인드가 있어야 물어보게 됩니다.

그 다음 성령을 따라 살려면 죄를 멀리하는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17절을 보면,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역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둘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사는 사람에겐 성령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죄 때문에 성령이 역사할 수 없습니다. 19절부터 21절에 우리가 피해야 할 죄의 목록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이 가운데서 청년 여러분들은 시기적으로 남녀 사이의 성적인 죄, 시기와 분쟁, 술취함 등을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성령이 함께하고 역사하는 것은 주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간청하지 않더라도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역사도 나타납니다. 해가 뜨면 따뜻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성령의 내주와 충만은 요청에 의해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고 순종하는 마음을 유지하면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달라고 구하지 않더라도 죄를 멀리하고 거룩하게 살면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인도를 경험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불순종, 또는 부정한 죄 때문입니다. 이런 죄는 성령을 무시하고 거슬려 행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겐 성령이 자신을 드러내 역사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며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살면 성령이 소멸됩니다. 여기서 소멸은 없어진다는 뜻 보다 무시당해 존재감이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에겐 성령께서도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부족해서 예수 믿고 구원 얻은 후에도 주님께 불순종하고 죄를 짓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령과의 관계에 갈등이 생기고 위기를 맞기도 합니다. 이런 갈등과 위기를 방치하면 성령을 소멸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소위 ‘영혼 호흡’이 매우 도움이 됩니다. 몸에 해로운 이산화탄소는 배출하고 몸에 유익한 산소를 들이 마시는 육체의 호흡처럼, 영혼 호흡이란 자백의 기도로 불결한 죄를 배출하고 믿음으로 영혼에 유익한 말씀과 성령을 들이마시는 것입니다.

스트레스가 심할 때 화를 내거나 육신의 욕망을 도모하는 음란한 생각이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럴 때 죄책감에 빠져 침울해하지 말고 영혼 호흡을 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화를 낸 것이나 음란한 생각 등 우리가 범한 모든 죄를 인정하고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 용서받았음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다음 피해를 준 사람에게도 용서를 구합니다. 이렇게 반복하는 과정에서 죄를 멀리하고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끝으로 성령을 따라 살려면 자신의 감정이나 다른 사람의 조언보다 말씀을 붙잡고 가야 합니다. 구름다리를 건너본 경험이 있습니까? 대둔산에 올라가 구름다리를 건널 때 무서워서 줄을 꼭 잡고 건넌 적이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구하는 사람은 이처럼 의식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조심 조심 걸어가야 합니다. 감정적 경험을 구하려고 애쓰지 말아야 합니다. 감정을 따라가면 넘어지기 쉽습니다.

인격적 만남에는 감정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가족이나 연인이 함께 있으면 행복감을 느끼고 기분도 좋아집니다. 좋은 감정은 관계를 발전시키고 지속시켜 줍니다. 성령을 체험할 때도 감정에 변화가 나타납니다. 마음이 뜨거워지기도 하고 충만감을 느끼기도 하고 황홀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감정 쉽게 변합니다. 때때로 감정은 근거 없이 어떤 상황에 따라 주관적으로 느껴지는 것들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감정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지만, 감정에 변화가 생겼다고 해서 성령이 함께하고 하나님의 뜻이라는 증거는 될 수 없습니다. 성경에 벗어나는 것을 구하는 기도를 하고서 확신이 생겼다고 해서 하나님이 응답하신 증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때때로 사단은 사람들의 감정을 이용해 공격합니다. 두려움, 외로움, 격한 분노, 시기와 질투의 감정에 빠졌을 때 사단은 그 감정을 이용해 죄를 범하게 만듭니다.

좌절감 또는 배신감에 빠져있을 때 하나님의 사랑, 또는 능력에 대해 의심이 들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하나님이 전능한 분이시라면, 어떻게 이렇게 절박한 상황에 빠질 수 있는가 그런 의심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성경말씀대신 감정을 따라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보지 말고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가야 이겨낼 수 있습니다. 때때로 목사님이나 목자에 대해서도 부정적 감정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도 감정에 따라 행동하지 말고 말씀을 붙잡고 성령의 인도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좋다고 오는 사람도 있지만 실망하고 떠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최근에도 늘푸른교회가 좋다고 온 교우들도 있고 뭔가 실망해서 떠난 사람들도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도 이런 고민을 하는 날이 올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날이 오면 오늘 말씀을 꼭 기억하기 바랍니다. 그 때 기분이나 감정에 따라 가지 말고 성령을 통해 말씀으로 응답해주시도록 기도하며 기다리기 바랍니다. 감정을 따라가면 사단에게 휘둘릴 뿐입니다.

저는 오늘까지 세 번 성령을 주제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성령이 타나납니다. 있으면 보이고 없으면 안 보이는 법입니다. 성령이 임한 사람에겐 시간이 흐르면서 성령의 열매가 맺고 은사도 나타날 것입니다. 22절부터 23절을 보면, 성령의 열매로 사랑과 희락과 화평,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나옵니다. 이런 인격적 특성이 보일 때 그 사람은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이다 그런 뜻입니다.

신앙생활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움으로 하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마라톤 풀코스를 뛸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오토바이나 차를 타고 가면 마라톤 풀코스 32.195km 얼마든지 달릴 수 있습니다. 성령없는 신앙생활이 힘들지 성령으로 하면 즐겁고 신납니다. 성령의 능력을 힘 입는 첫 걸음은 성령의 존재를 인정하고 매사에 묻고 인도를 구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의 인도를 구하는 사람은 죄를 멀리하고 감정에 끌려가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조만간 성령의 인도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삶에 적용하며 성령의 인도를 받는 한 주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