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며 삽시다

출23:14-16; 신16:13-17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낌 없이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여 그 아들 독생자 예수님까지 아낌 없이 주셨다고 했습니다. 아들까지 내주신 분이 어찌 아끼는 것이 있겠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해 한 해 동안 감사한 일들을 돌아보고 하나님과 고마운 분들께 감사드리는 한 주간이 되길 바랍니다. 먼저 추수감사절 유래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추수감사절은 16세기에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이 혹독한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고 다음해 1621년 농사를 지어 수확을 거둔 후 도와준 인디언을 초청해 음식을 나누며 하나님께 감사드린 파티에서 유래되었답니다. 미국은 11월 넷째주 목요일이 Thanksgiving Day입니다. 1941년 미국의회는 대통령과 합의하여 11월 네번째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해 공휴일로 공포했습니다.  교회에서 지키는 추수감사절은 미국의 Thanksgiving Day에서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그 당시 순례자들(The Pilgrims)은 형식적인 영국국교회를 벗어나고 싶었는데  영국교회 입장에서 보면 위험분자들이었습니다. 영국교회에 참석하지 않고 그들끼리 예배드리는 이유로 벌금을 내고 투옥을 당하고 그룹을 이끌던 Henry Barrowe and John Greenwood는 다른 사람을 선동한다고 처형을 당했답니다. 순례자들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 1620년에 신대륙을 향해 떠났습니다. 그 배 이름이 메이플라워였습니다. 항해하는 동안 극심한 폭풍우가 몰아쳐 아무도 갑판에 나가지 못하고 Cargo space에 모여 시편을 노래하며 서로를 위로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65일간의 항해 끝에 1620년 12월 11일 Plymouth항에 도착했습니다. 그 때는 겨울이라 심한 추위와 식량난, 기후 차와 영양실조 등으로 그 해 겨울에 102명 가운데 44(46명?)명이 죽었고, 나머지 사람들도 질병에 시달리며 살아남기 위해 굶주림과 추위와 질병과 싸워야 했습니다. 인디언들은 곤경에 처한 청교도들에게 옥수수 등의 곡물을 가져다 주고, 농사짓는 방법도 가르쳐주었답니다.

청교도들은 인디언의 도움으로 다음 해 1621년 씨를 뿌렸지만, 여름엔 극심한 가뭄으로 농작물이 말라 죽어갔습니다. 청교도들은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비가 내려 농작물이 살아났고 가을에 풍성한 곡식을 추수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청교도들은 고마운 인디언들을 초대해 90여명이 모여 추수한 곡식과 야생 칠면조 고기 등을 함께 나누며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The first thanksgiving feast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날 추수감사절에 Turkey 고기를 먹는 것은 맛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때를 회상시켜주는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유월절에 누룩 없는 떡을 먹으며 지키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추수감사에 대한 성경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한 직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농사를 짓고 수확을 얻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리며 절기를 지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출애굽기23장 14절을 보면, 매년 3번 절기를 지키라고 되어 있습니다. 세 절기는 무교절(유월절), 맥추절(칠칠절,오순절,초실절), 수장절(초막절) 입니다(출34:18-26;레23:4-44;민28:16-29;신16:1-17). 이 중에 맥추절과 수장절은 추수 후에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축제였습니다.

절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지속하기 위한 의도에서 주신 것입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없어 제사의식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복을 구할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절기나 제사를 잘 지키는 것은 힘든 일이었지만 삶의 기쁨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힘든 제사의식 없이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와 복을 구하고 기쁨을 얻을 수 있게 되었으니 더욱 감사할 일입니다. 모세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하고 …빈 손으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주신 복을 따라 힘껏 감사하기 바랍니다.

2012년 한 해도 감사한 일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은 가장 감사할 일입니다. 기도할 수 있고 응답해주시는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섬기는 복을 누리는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홀로 사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 함께 할 수 있는 가족들이 있는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천국의 소망을 나누며 격려와 위안이 되는 교회 가족이 있는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아직은 건강하고 거할 집도 있고 일용할 양식도 있으니 어찌 감사치 않겠습니까? 빈 손으로 세상 와서 이정도 살다 가면 되는 것 아닙니까? 불평하는 게 욕심이죠.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전 뭐 감사할 게 별로 없네요” 이런 생각이 듭니까? 왜 감사할 게 없겠습니까? 여러분도 믿음의 선물을 받았고 천국의 소망으로 힘을 얻잖습니까? 가족 있는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부모가 계신 것도 감사하고 자녀가 있는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직장 있는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한 두 사람 빼 놓고는 지금 당장 처한 상황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감사할 것 뿐입니다. 건강 하나만 있어도 감사할 일입니다. 건강하니 공부하며 미래를 꿈꾸고 또 직장 다니며 수입을 얻잖습니까? 건강에 문제가 있더라도 고쳐주실 것을 믿고 미리 감사하기 바랍니다.

어느 교회 사모님이 위암 판정을 받고 입을 굳게 다물고 미음도 입에 대지 않았답니다. 한창 나이에 이 지경이 된 것은 개척 교회 시절의 극심했던 고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목사인 남편과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런 아내를 보니 목사님도 맘이 좋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신학교 학장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얼굴이 어둡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목사님은 아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학장님이 제안했습니다. “노트를 한 권 사다가 아내에게 주세요. 그 노트에 감사할 일만 생각나는 대로 적으라고 해보세요.”

목사님은 즉시 노트와 볼펜을 사 들고 아내에게 갔습니다. 남편의 말에 아내는 “이 마당에 무슨 감사할 일이 있다고 그러세요.” 신경질을 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방을 나오고 한 참 지난 후에 사모님은 한 두 줄씩이나마 노트에 감사할 일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답니다. 그러는 중에 사모님은 그 동안 살면서 고마운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사모님은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찾아 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그러자 점점 통증은 사라지고, 다리에는 웬일인지 힘이 생겼습니다. 병원에 가니 의사가 깜짝 놀랐습니다. 암세포가 사라진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환경이 좋아야 감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스펄젼(1834-1892) 목사님은 40세 이후부터 관절 통풍 때문에 몹시 고생했답니다. 그 때는(1870년대) 아스피린이나 혹은 마취제가 발달해 있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그 통증을 참고 견뎌야 했습니다. 한번은 통풍 때문에 기동을 못하고 고통을 겪고 있는데 교회 신자 한 사람이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스펄젼 목사님, 통풍으로 몹시 아픈 이 순간에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까?" 이에 스펄젼이 대답하기를 "예, 감사하려고 무척 애를 씁니다. 이 병이 나은 후에 하나님 앞에 참으로 감사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교인은 스펄젼 목사님에게 "목사님, 지금 몸이 아플 때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오히려 그 아픈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분명히 그 병을 고쳐 주실 것입니다." 그 말에 스펄젼은 참으로 감명을 받고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는 자신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역경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찰리 스미스란 흑인 이야기입니다. 그는 1981년 130세의 나이로 플로리다 주 바토우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에게 130년의 세월은 고통의 전시장과도 같았답니다. 그는 노예로 태어나 갓난아이 때부터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미국 남부와 서부를 헤매며 매맞고 모욕을 당하며, 굶주리고 병들어, 죽을 고비를 스무 번도 넘게 경험했습니다. 130년 동안 고생만 한 스미스는 임종하기 며칠 전 자신을 방문한 스티븐스 목사 앞에서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내가 흑인으로 태어나게 했음에 감사드립니다. 고통스러운 노동 생활도 감사합니다. 130년 간 언제나 내 곁에 계셔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험한 인생을 살면서 이 분이 무엇 때문에 감사했다고 생각합니까?

UC데이비스의 심리학 교수 로버트 에몬스는 "생리학적으로 감사는 스트레스 완화제로 분노나 화, 후회 등 불편한 감정들을 덜 느끼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12세에서 80세 사이의 사람들을 상대로 한 그룹에는 감사 일기를 매일 또는 매주 쓰도록 하고, 또 다른 그룹들에는 그냥 아무 사건이나 적도록 했습니다. 한달 후에 보니, 감사 일기를 쓴 사람 중 4분의 3은 행복지수가 높게 나타났고, 수면이나 일, 운동 등에서 더 좋은 성과를 냈습니다. 그저 감사했을 뿐인데 뇌의 화학구조와 호르몬이 변하고 신경전달물질들이 바뀐 것입니다. 감사함을 느끼는 순간 사랑과 공감 같은 긍정적 감정을 느끼는 뇌 좌측의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된답니다(Robert Emmons,Thanks! How the New Science of Gratitude Can Make You Happier.)

에몬스는 우리가 감사할 방법 10가지를 제시했습니다. 그 중 몇 가지는 지금 당장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먼저 자신이 누리는 혜택들을 생각해보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여기엔 재능, 은사, 도움을 주는 사람들, 소유물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둘째는 최악의 때를 회상하고 현재 상황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넷째는 다른 사람이 베풀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는 민감성을 키우는 것입니다. 사실 하루에도 감사하다고 말해야 할 경우들이 많이 그냥 지나갑니다. 다섯째는 일기 등에 감사의 글을 쓰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격려와 축복의 언어를 사용하는 습관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한 해 동안의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께도 감사 드리고, 부모 형제에게도 감사 드리고 영혼의 목자에게도 감사 드리고 주변의 고마운 분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바랍니다. 마음을 담은 카드와 선물도 나누고 감사의 전화도 하기 바랍니다. 존 밀러는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 가는 감사의 깊이에 달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감사하는 것은 행복해지는 길입니다. 한 주간 감사하며 행복해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