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테스트

창세기22:1-13

오늘은 믿음과 시험을 주제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믿음이 무엇인지, 왜 하나님은 믿음을 테스트하시는지 깨닫고 고백의 차원을 넘어 믿음으로 살아가는 교우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동차를 개발할 때 마지막 단계가 성능테스트를 하는 것입니다. 보통 신차를 개발하는데 2-3천억이 들어가는데 시장에 내 놨다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망합니다. 그래서 충분히 성능을 검사하고 됐다 싶을 때 시장에 내 놓습니다. 공들여 만든 차일수록 마구 부셔가며 테스트를 합니다. 도요타가 1989년 벤츠나 BMW 같은 고급 브랜드와 경쟁하기 위해 렉서스를 만들 때 1000개의 엔진을 만들어 시험하고 450대의 차를 테스트에 사용했다고 합니다(LS400).

하나님께서도 가끔 우리 믿음을 테스트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신 사건이 바로 테스트였습니다. 아버지보고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것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시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실제로는 이삭을 죽이지 않을 생각이고 대신 수양을 예비해 놓으셨다고 하더라도 아브라함은 사전에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단지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을 뿐입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죽은 아들을 다시 살려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에 순종했다고 합니다(히11:19). 하지만 창세기22장 어디에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설명은 없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삭의 후손으로 번창케 하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을 가지고 추론한 것 같습니다. 만일 이삭이 자식 없이 죽고 말면 후손이 끊어지는데 그렇게 되면 창대케 되리라는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될 수 없을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이후를 보면, 아브라함이 처음 등장할 때 무슨 대단한 믿음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우상을 섬기는 가정에서 하나님을 모르고 자랐습니다. 아버지 품을 떠나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즉시 순종하지 않고 여러 해를 망서렸습니다. 이방인에게 해를 받을까 겁을 먹고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신앙심이나 인품 어느 면으로 봐도 아브라함은 평균수준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평가받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최초로 삶을 통해 믿음을 보여준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이 초반에는 하는 짓이 비겁하고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줬지만 중반 이후에는 믿음의 거인이 되었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을 통해 믿음이 뭔가 부터 생각해보고,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믿음의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통과한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아브라함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믿음은 무슨 고백이 아니라 순종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보면, 이렇다 할 무슨 고백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보여주는 믿음은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는 것, 하나님의 언약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했는데(창15:6), 여기서도 아브라함이 믿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나 속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후사를 주어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번창하게 해주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창15;4,5).

우리는 믿음을 고백의 차원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지만, 아브라함이 보여주는 믿음은 고백보다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라가는 삶이 곧 믿음이었습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 다 이해가 안돼도 하나님 지시를 따르고, 무슨 말인지 다 실감하지 못하면서도 하나님 언약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 또는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는 어떤 지식을 동원해 고백하는 것은 그렇게 살 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믿음은 행함으로 완성됩니다. 믿음이 있는 만큼 행동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베드로는 물위로 걸어오시는 분이 주님이심을 알고 난 후 주님께 청해 물위로 걸어갔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가만 있는 순간에 베드로는 믿음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러다가 의심이 들어 물 속에 빠지기도 했습니다(마14:28-31). 이처럼 행동으로 참여할 때 하나님을 경험하는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믿음을 행동으로 표현할 때는 실패의 위험도 따릅니다. 우리는 이런 과정을 거쳐 하나님 나라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사람들의 눈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보지 못합니다. 믿음으로 참여해야 그 실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용어는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를 먼저 경험하고 그 영적 체험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 자기를 찾아와 말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믿음은 하나님의 존재가 아니라 순종의 문제였는데 그는 결국 순종했습니다. 순종하기 위해서는 인생을 걸어야 했습니다.

믿음은 나의 삶 속에서만 표현됩니다. 고향을 떠나고, 아버지를 떠나고, 가나안으로 들어가고, 애굽으로 내려가고,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다가 수치를 당하고, 조카를 구출하기 위해 사생 결단도 하고, 100세에 아들을 얻기도 하고 이렇게 펼쳐지는 아브라함의 인생은 모두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었고 이런 과정을 거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주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믿음은 하나님이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창세기22장 1절 보면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되어 있습니다. 그 일은 어떤 일입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 지시에 순종한 이후 그의 삶 속에 벌어진 사건들을 모두 가리킵니다. 이 사건들로 인해 아브라함은 생명을 걸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갈 만큼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믿음도 없는데 시험하겠다고 할 하나님이 아니시잖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시험하지 않을까 걱정할 것 없습니다.

누구든지 실패를 통해 믿음을 세웁니다. 베드로 사도를 보세요. 제일 먼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하고는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못하고 인정에 약해 그러지 말라고 했다가 사단아 물러가라는 책망을 들었고,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하기도 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잘못을 뉘우치고 믿음으로 일어서 주님의 뜻을 받들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쳤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명령을 아브라함에게 내렸습니다. 이렇게 말도 되지 않고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지만 아브라함은 이런 명령을 내리는 하나님께 무슨 뜻이 있고 생각이 있고 계획이 있으시겠지 믿고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번제로 드리려는 아브라함을 보고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까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12)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려는 요지는 아브라함이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는 뜻이 아니라 아브라함은 독자를 희생시키면서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인정해주신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이후부터 나오는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 믿음과 관련해 먼저 주목할 단어는 “가라”(창12:1), “따라갔고”(4절) 입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이 따라가지 않았다면 믿음에 대해 말할 게 아무것도 없었을 것입니다. 믿음을 말로 설명하는 것은 치명적 위험이 있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고, 설명해서는 안 되는 것을 설명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설명해서 아는 게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해 보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착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선택의 순간 앞에 서기 전까지는 당연히 주의 뜻에 순종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순종하기 전까지 믿음은 모릅니다. 희생하기 전까지 헌신은 입증되지 않습니다. 포기하기 전까지 욕심은 다스려진 게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포기하는 순종을 했습니다. 그 동안 아브라함은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떠나고 떠나고 떠나면서 포기하고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아무 일이 없으면 몸은 편하지만 믿음은 자랄 수 없습니다. 수치스런 상황도 만나고, 위기도 닥치고, 죽기를 결단하고 헤쳐나가야 할 사건도 생기고 그래야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이 자랍니다. 믿음이 나무같습니다. 믿음의 여정에서 우리들도 이런 시련과 연단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생기고 자랍니다. 믿음은 마음 속의 생각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주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믿음의 시험은 순종의 시험입니다. 아브라함도 초반에는 대부분 실패했습니다. 이집트 시험에서 실패했습니다. 그랄 시험도 실패했습니다. 하갈과 관련된 시험에서도 실패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모리아 시험에서 패스했습니다. 믿음의 여정에서 우리들도 예외 없이 테스트를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믿음을 테스트하시지만 무리하게 하시지는 않습니다. 아브라함에겐 그의 믿음에 맞게 시험을 하시고 우리에겐 우리에게 맞게 하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달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앞에 일어나는 어떤 사건들은 믿음의 테스트를 위한 것일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상황이 꼬이느냐 불평하지 말고 죽으면 죽으리라고 결심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지하고 말씀을 붙잡고 가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시험을 통과한 여러분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