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으로 시작한 것을 육체로 끝내지 말자

갈라디아3:2,3

평신도 사역훈련이 시작되어 집사님들이 말씀을 전하기 전 주 7월 29일 주일에 제가 성령의 나타남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예수 믿고 성령 받았으면 성령이 함께 계신 것이 말과 행동 속에 보입니다. 따라 해봅시다. “있으면 보이고 없으면 안 보인다” 보이는 교인들이 되기 바랍니다. 오늘은 ‘성령으로 시작한 것을 육체로 끝내지 말자’ 이런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나 천국의 소망 중에 기쁘고 즐겁게 살아야 당연한데, 우울증에 걸린 사람, 절망 중에 있는 사람, 죄책감에 빠져 있는 사람,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분노하는 사람, 세상을 원망하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많습니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는 교회도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살펴보면 연약하여 넘어지고 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리며 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늘푸른교회는 어떤가요

예수 믿는 사람에겐 감사하며 기쁘고 즐겁게 살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외아들을 보내주어 구원 얻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어 생명과 진리로 인도하고 승리하도록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교회를 주시어 하나님을 가족을 얻고 사랑 받으며 살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무기력하고 힘들게 신앙생활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여기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먼저 본문 말씀을 봅시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책망했습니다. 갈라디아교인들이 예수 믿어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유대주의 교사들의 말을 듣고 할례를 받는 유혹에 빠졌습니다. 구원을 위해 할례를 받는 것은 인간의 능력과 의지와 힘과 노력으로 구원을 이루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을 떠나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그 결과는 실패와 좌절과 멸망 뿐입니다. 이처럼 성령과 믿음을 떠나 자기 힘으로 완전하게 살려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무기력해지고 신앙생활이 힘든 이유는 오직 성령으로 할 수 밖에 없는 것을 자기 힘으로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힘으로 하는 교회생활은 잘 하면 교만이요 못하면 절망입니다. 설교를 예로 들어봅시다. 설교자는 성령이 나를 통해 말씀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자기가 준비해서 자기가 설교한다고 생각하면 청중의 반응이 좋으면 교만해지고 안 그러면 이정도 밖에 안 된다고 실망합니다. 설교를 잘한다 못한다 평가하는 것도 주제 넘는 일이죠.

율법은 나쁜 것이 아니지만 인간이 연약하여 지킬 수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탈출해 시내산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도록 생활지침을 내려주셨습니다. 그것이 율법입니다. 율법은 다 지킬수록 좋은 것입니다.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율법을 기준으로 삼으면 다 범법자가 되어 벌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상 얻어 맞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신 하나님이 믿음으로 율법을 대신하고 성령으로 보내 도와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얻은 후에도 인간의 능력과 의지와 힘과 노력으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도 구원은 은혜를 통해 믿음으로 얻지만 신앙생활은 내 힘과 의지로 해야 한다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가만 있어서는 안되고 뭔가 해야 한다는 말은 맞는데, 여기서 내 힘과 의지가 아니라 성령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알지 못하는 세상은 자신의 힘과 의지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공부하고 운동하고 훈련하는 모든 것이 자기 힘과 의지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자기 의지와 능력으로 세상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세상에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 원리 속에 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신앙생활도 이런 식으로 하려고 합니다. 예수 믿고 성령 받은 사람들도 성령을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쉽게 망각하고 자기 힘으로 잘 해보려고 하다가 지쳐서 나가 떨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성령으로 시작한 것을 육체로 마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목자의 일이나 찬양팀에 봉사하겠다고 시작할 때를 생각해봅시다. 제가 지명해서 세웠든 여러분이 자원했든 대부분 처음 시작할 때는 믿음의 차원에서 성령을 의지하는 마음이 컸을 것입니다. 풀타임 사역은 물론 목자와 찬양대원으로 봉사하는 것도 성령을 의지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해야만 완주할 수 있는 사역입니다. 자기 의지나 감정으로 하면 얼마 못가서 힘들어 그만 둬야 할 때가 옵니다. 안 그러면 기쁨은 사라지고 의무감 속에 억지로 하게 되겠죠. 그런 사람은 설득하려고 하지 말고 빨리 바꿔주는 게 좋습니다.

성화의 과정은 성령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믿을 때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이 없어도 우리 힘으로 잘 할 수 있다면 왜 성령을 보내주셨겠습니까?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신앙생활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성령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성령받았다고 무슨 자랑하라고 성령 주신 것이 아닙니다. 전장으로 나가는 병사에게 최신형 소총을 지급할 때 그걸 적에게 자랑하라고 주는 게 아니죠. 맨주먹으로 싸워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성능 좋은 총을 주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이 성령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이종 격투기 참피언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군대 가서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되었습니다. 명색이 내가 격투기 세계 참피언인데 그런 생각으로 자기 힘과 기술만 믿고 총들고 싸우는 적을 상대로 맨손으로 나가 싸우면 어찌 되겠습니까? 빵~~~~~~~~!, 격투기 참피언이라도 총들고 나가 싸워야 하는 겁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상대해야 할 적은 영적 존재인 사단입니다. 성령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이시겠죠?

신앙생활의 성패는 인간적 수준이 아니라 성령으로 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직책이나 직분은 벙커가 아닙니다. 목사님들도 성령으로 살지 않으면 실족합니다. 한국의 유명한 청년교회 목사님도 넘어졌잖습니까? 미국의 유명한 방송전도자도 넘어졌습니다. 예수 믿고 거듭난 사람들도 성령의 능력으로 살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경건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보는 수준에서 조금 높은 윤리적 수준을 유지하며 도덕적인 사람이 될 수는 있을지라도 하나님 마음에 흡족한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성령으로 살려면 영적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육신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상담할 때 성령께 묻고 대답을 기다리기보다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근거해서 조언할 수 있습니다. 설교할 때 말씀을 묵상하며 성령의 음성을 듣고 전달하기 보다 어떤 주제 혹은 제목을 정해놓고 임의로 여기 저기서 좋은 말들을 수집하고 편집해서 세상적 지혜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전하는 말이 논리적이고 교훈적일 때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말에도 사람들은 감동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설교가 아닙니다. 신앙서적 중에도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갖다가 편집해 놓은 책들이 많습니다. 사실 귀한 시간만 허비하게 하는 쓰레기죠. 심지어는 QT하면서도 성령의 음성을 듣기보다 자기 생각을 강화시키는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에 비해서 오늘날 교회는 인간의 지혜와 지식과 기교가 성령이 차지해야 할 자리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부인하는 신학박사들이 교회를 운영하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영혼을 인도하는 목자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기 위해 골방으로 들어가는 대신에, 무슨 비결이 없을까 온갖 세미나와 수련회를 쫓아다닙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어린 아이를 상대하듯 말할 수 밖에 없다(고전3:1)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영적으로 말이 안 통했다는 뜻입니다.

성령으로 해야 할 일을 육체로 하려고 할 때 나타나는 증상을 몇가지 살펴보고 마치겠습니다. 이 증상을 가지고 성령으로 하고 있는지 육체로 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해야 할 일을 육체로 하고 있다면 즉시 성령을 의지하도록 힘쓰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교회에서 하고 있는 일이 자신을 의롭게 하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이면 성령으로 시작해서 육체로 끝마치는 위험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육체로 하는 일의 대표적인 증거는 다툼과 분열입니다. 여기엔 시기와 질투가 따라오고 그 결과는 당을 만들어 분열하고 서로 증오하는 감정에 빠집니다. 출발선에서 동기와 목적이 무엇이든 다툼과 증오와 분열은 성령을 떠나 육체로 끝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죄책감과 무기력함에 빠져 방황하는 것도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만 힘의 원천이기 때문에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면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고 목장 차원에서 사랑의 교제를 강화시켜도 활력이 떨어지고 무기력해집니다. 넘어지는 것은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리가 부실한 사람은 지팡이나 의족을 의지해야 합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하면 조만간 지쳐서 넘어집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이 임하실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성령받은 후에 세상에 나가 땅끝까지 다니며 사역하라고 했습니다. 이 가르침에 따라 우리도 먼저 성령받고 성령의지는 법을 배운 후 사역의 현장으로 가야 합니다. 성령을 무시하고 근심케 한 것을 자백하고 전심전력으로 성령을 구합시다. 한 주 동안 교회 봉사의 일이든 개인 생활에서든 성령으로 해야 할 일을 육체로 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 있는지 살펴보고 성령께 돌아가 성령을 의지하며 다시 시작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