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보다 오늘에 충실한 삶

히11:13-16

시간이 흘러 2012년 마지막 주일이 되었습니다. 내일이 있고 다음 주일도 어김없이 찾아오겠지만 마지막 주일이라고 하니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해엔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겠다고 이런 저런 계획을 세우며 마음을 다잡아 보는 것 같습니다. 저도 한 주 동안 2012년을 돌아보며 생각이 많았습니다. 제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내일보다 오늘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자세이기도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이 무엇인지, 믿음으로 사는 것은 어떤 것인지 여러 사람들의 인생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고 싶은 분들은 히브리서 11장을 반복해서 읽으세요. 그러면 성령께서 여러분이 가야 할 길을 깨닫게 해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11장 전체를 놓고 볼 때 중간 요약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13절의 ‘이 사람들’은 앞에 언급된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를 가리킵니다. 이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믿음으로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살아 생전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실제로 받지는 못했습니다. 집 나간 아들이 저 멀리 오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좋아하는 아버지 같은 심정으로 살다 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약속이 안 이뤄진다고 낙담하며 불평으로 하루 하루 산 것이 아니라 저기 오고 있다고 기쁘게 살다가 갔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믿음의 태도를 기뻐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몇 가지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첫째로 매일 믿음으로 살아야 죽을 때까지 믿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13절을 영어 성경 NIV로 보면, “이 사람들은 죽었을 때 (그 때까지) 여전히 믿음으로 살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 없다 그런 게 아니고 한결같이 매일 믿음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것으로 충분합니다. 약속의 말씀을 받는 순간은 모두 미래의 약속일 뿐입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성취되겠지만 살아 생전에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성취되지 않는 것은 아직 때가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때가 아닌데 이뤄달라고 조르는 것보다 하나님 때에 이뤄지기를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이 옳바른 태도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워야죠.

셋째로 이 세상은 천국을 향해 가는 여행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자녀들의 영원한 처소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예비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미국 시애틀 땅에서 이민생활, 또는 유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나그네의 삶에 대해 한국에서 터 잡고 사는 사람들보다 더 실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행하는 사람들은 이곳 저곳 둘러보며 여행자체를 즐기며 미련없이 떠납니다. 오래 머물지 못하고 떠나야 하기 때문에 한 시간이라도 그냥 보내지 않고 여기 저기 열심히 다니며 구경할 것입니다. 인생도 한정된 시간에 여행하는 것과 같으니 세상에 미련은 두지 말고 그러나 주어진 시간은 열심히 특히 오늘 하루에 충실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요즘은 online 공간이 소통의 대세라 저도 시간 나면 여기 저기 다니며 글을 읽는데, ‘위지안’ 이라는 중국의 젊은 여 교수 이야기가 감동적이어 잠시 나눌까 합니다. 그녀가 쓴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가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1979년생인 위지안은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에서 유학 후, 환경과 경제학을 접목한 새로운 시도를 가지고 귀국해 중국 학계의 주목을 받으며 서른이 안 된 나이에 푸단대학교 강단에 서게 되었답니다. 그런 때에 위지안은 말기 암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습니다. 온몸에 전이된 암세포 때문에 뼈가 녹아내리는 고통이 이어졌습니다. 그런 고통 속에서 그녀는 절망하고 신을 원망하는 대신 ‘삶의 끝에 와서야 알게 된 것들’을 자신의 블로그에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인터넷 상에서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며, 중국 대륙을 오열하게 만들었답니다.

“운명이 나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간다 해도, 결코 빼앗지 못할 단 한 가지가 있다. 그건 바로 ‘선택의 권리’다. 나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내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권리를 행사할 것이다. 절대 포기하지 말 것. 우리에겐 오늘을 살아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으니까”
“시간이 나면 아이들과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좋은 차를 살 돈으로 어머니를 한 번 더 찾아뵙고 신발도 사 드리세요.”
“뭔가를 이루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보다, 곁에 있는 이의 손을 한 번 더 잡아보는 것이 훨씬 값진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랑은 나중에 하는 게 아니라 지금 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에.”

위지안은 이렇게 삶의 끝에 서서 자신이 알게 된 것, 즉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삶을 대하는 긍정성과 희망, 자신의 일에 대한 소명, 가족에 대한 사랑, 건강, 살아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인생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지난 4월에 떠났다고 합니다. 저는 그녀의 글을 읽으며 내일을 위한다는 미명으로 오늘을 희생시키는 삶은 어리석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일의 성공을 위해 오늘을 불행하게 살지 않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시간적 개념보다가치를 강조하는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산다고 해서 오늘은 무시하고 미래만을 생각하며 살아선 안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산다는 것은 돈, 성공, 명예 같은 세속적 가치보다 사랑, 나눔, 섬김, 희생과 같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으로 내일에 대한 소망을 가진 사람도 자신에게 주어진 것은 오늘의 시간 뿐입니다. 지금까지 내일이 계속 이어져왔지만 더 이상 내일이 계속되지 않는 날이 올 것입니다. 어쩜 그날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태로 올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지금 내게 주어진 오늘 가장 아름다운 선택을 하는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시간은 달리는 기차와 같습니다. 저 앞에서 나에게 다가오는 기차는 내 앞에 머물러 있는 것은 순간이고 곧 멀어져 갑니다.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순간을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순간의 오늘에 충실하지 못하면 세월만 보내게 될 지 모릅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에 충실합시다. 여러분도 내일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라면 지당한 말입니다. 하지만 내일의 성공을 위해 오늘은 희생하라는 말이면 속임수입니다. 판/검사, 의사 이런 직업군이 성공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곤 합니다. 10년을 고생해서 한 30년 행복하자는 건데 그 30년이 생각만큼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누군가 사랑하려면 내일 하지 말고 오늘 하세요. 누군가 도와주려면 다음 주에 하려고 하지 말고 오늘 하세요. 주님께 가까이 나아오는 것도 다음에 하려고 하지 말고 지금 하세요. 누군가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려면 다음에 하려고 하지 말고 오늘 하세요. 내일의 성공을 위한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오늘의 행복한 삶을 포기하지 마세요. 반대로 오늘의 행복한 삶에 방해가 된다면 내일의 성공을 포기하세요. 한 주 동안 믿음으로 오늘을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한 주간 주 안에서 승리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