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의

로마서3:19-31

유대인은 율법을 맡아 이방인들에게 선포하고 가르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유대인은 그걸 특권이라고 생각하며 대단히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이런 연유로 유대인들은 이방인에 비해 우월적 지위에 있고 하나님께도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점에 대해 바울은 유대인을 향해 율법을 가르치는 자가 율법을 범하고 도적질이나 간음을 행하여 하나님을 욕되게 해서는 안되며 그런 죄를 범한다면 참 유대인의 자격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논지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적용됩니다. 교회 즉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자리에 있습니다. 복음의 일꾼이 되어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은 특권이며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오늘날도 교회, 즉 그리스도인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 욕을 먹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유념해서 자신의 행동을 살펴 바르게 해야 할 것입니다.

먼저 1절부터 8절까지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엔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 전하고 가르치는 자의 우월함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범한 잘못을 지적하면서도 유대인의 우월성을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대인 중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에는 변함이 했습니다. 무슨 뜻인지 조금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3장 1절의 ‘나음’은 헬라어 υπεροχη(authority, excellency)를 번역한 것으로 특권, 탁월함을 의미합니다(περισσοs=superior, more). 바울은 2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의미에서 유대인이 이방인보다 나은 위치에 있다고 했습니다. 같은 원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 전하는 주님의 일꾼은 말씀 때문에 우월한 위치에 서게 되며 그것은 특권이기도 합니다. 복음을 위해 일하는 하나님께서 부족한 나를 이렇게 나은 위치에 세워주신 것을 감사하며 성실하게 일해야 합니다 또한 , “왜 저런 사람을 목사나 목자로 세웠나 모르겠다”는 비난을 받지 않도록 삼가해야 합니다.

그 다음 3절부터 8절은 유대인 중 일부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 때문에 제기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 변호하는 내용입니다. 3절의 미쁘심은 헬라어 πιστιs 를 번역한 것으로 믿음, 신뢰, 진실성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에게 율법을 맡겼는데, 정작 그 유대인 중에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믿지 않는 유대인들 때문에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겠습니까? 바울 사도는 비록 유대인 중에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에는 변화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의 우월성엔 변함이 없다는 뜻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을 드러내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경우는 죄인처럼 심판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합리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반박했습니다. 이것은 “선한 결과를 얻기 위해 악을 행하자”고 말하는 것처럼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불신앙과 계명을 위반하는 것은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든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에 기여했다 해도 가롯 유다의 배신은 옳다고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선한 목적이라도 악한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의로우신 하나님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정치적인 사람들을 보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 말은 르네상스시대인 1500년대 이탈리아 도시국가인 피렌체의 정치철학가였던 마키아벨리에게서 유래한 된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명제는 모든 목적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좋은 목적을 전제한다고 말하기는 합니다. 공동체와 공공의 이익을 달성하는데 좋은 수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권모술수를 사용하는 것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사람에게 다같이 이익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서민에게 이익이 되게 하려면 부자들은 다소 희생을 해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바울은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고 그것이 정죄 받아 마땅한 죄라는 것을 지적하면서 오해하지 않도록 9절에서 18절 말씀을 덧붙였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다른 사람들의 죄를 지적하고 책망하며 정죄한다고 해서 자신을 무슨 대단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혔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든 사람이 다 죄 아래 있다고 말한 것을 상기시키며 자신도 죄 아래 있는 부족한 사람임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설교 중에 죄를 책망한다고 저는 죄 없는 의인인체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다 죄 아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고 서로 죄 가운데 있으니 잘못된 행동을 못 본 척 하고 사람을 용납해야 한다는 이유로 교회에 죄가 만연하는 걸 그냥 두고 봐서는 안 될 것입니다. 목장에서 서로 권면하고 필요하면 책망하고 바로잡아줘야 합니다.

바울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 율법 아래 죄인임을 강조한 진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어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19절부터 31절에서 로마교인들에게 율법의 행위로 얻는 의와 차원이 다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19절 보면, 율법은 사람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들어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만들었습니다. 성경은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합니다.

이제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뭔지 살펴보겠습니다. 본래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도록 주신 계명들입니다. 출애굽 직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우상숭배 문화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애굽에서 막노동하며 노예로 살았기 때문에 도덕의식이나 준법정신이 부족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만들려면 규율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율법이었습니다. 율법 그 자체는 의로운 것이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하나님 백성답게 만들려고 율법을 줬지만 결과는 누구도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하여 모두 다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율법은 600가지가 넘는다고 합니다. 이 중에 하나만 못 지켜도 범법자가 되는 것 아닙니까?  사실 우리는 예수님의 기준으로는 십계명도 다 지키지 못하잖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율법으로는 인간이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율법 외에 다른 길을 만들어주었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의입니다.

22절에 보면 바울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온다고 말합니다. 또한 이 의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주어집니다. 믿음으로 얻는 의에 있어서는 더 이상 유대인과 이방인 구별이 없습니다. 율법에 대해서는 유대인이 유리한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의롭다함을 얻는 데는 유대인이라고 유리할 게 없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율법아래 죄인으로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예수님의 구속을 믿으면 그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게 됩니다.

24절의 ‘구속’은 속죄, 대속과 같은 뜻입니다. 구속의 헬라어는 απολυτρωσεωs인데 λυτρoν은 ‘값을 지불함으로써 풀려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의 죄를 위해 죽으심으로 죄값을 대신 지불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믿는 사람은 죄에서 풀려납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율법아래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고 살려는 마음을 갖게 해줍니다. 왜 믿어야 하는지도 모르고억지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 복음을 깨닫고 믿고 싶은 마음이 생겨야 합니다. 복음을 깨닫고 믿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은혜의 결과입니다.

25절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와 관련해 ‘화목제물’, ‘죄를 간과하심’ 이런 말 나옵니다. 믿음은 율법의 행위, 다시 말해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선물처럼 주어진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예수의 피로 인해 화목제물로 세웠다는 말은 예수님이 희생의 제물이 되어 죄인들이 용서받고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희생의 대가는 보혈의 효과를 믿을 때 유효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님의 대속을 믿을 때 전에 지은 죄를 처벌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십니다. 간과로 번역된 헬라어 αφεσιν과 παρεσιs는 면제, 용서의 뜻입니다.

예수 믿고 의롭다함을 얻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 믿음이지 행위가 아닙니다. 예수 믿는 것도 하나님께서 깨달아 믿도록 해주셨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믿음은 전적으로 내 의지의 선택만은 아닙니다. 이 점을 생각할 때 의롭다함을 얻는 과정에서 내가 잘했다고 자랑할 게 전혀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불신자들보다 더 양심적이거나 행실이 좋았던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예수 믿고 거듭나 구원얻은 사람은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겸손하게 교회생활해야 할 것입니다.

의롭다함을 얻고 구원얻은 하나님 자녀들은 언행을 조심해야 합니다. 거듭나지 못한 게 아닌가 의구심이 들 게 하는 말은 은혜를 받은 사람에겐 합당치 못합니다. 아직 부족해서 당장 실행하지 못하더라도 더 잘 하려는 모습을 보여야지, 주님을 위해 해야 할 일을 못하겠다고 말하는 걸 보면 “거듭난 사람이 저런 식으로 말할 수는 없는데?” 그런 의문이 듭니다. 자식을 사랑하면 아까울 게 무엇입니까? 지옥의 형벌을 면제시켜 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 아까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예수 믿고 의롭다함을 얻은 것은 세상 그 어떤 것에도 비할 수 없는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거기에다 주님의 교회에서 복음의 일꾼으로 세움받는 것은 세상 그 어떤 자리에도 비할 바가 없는 영광입니다. 주일학교 교사를 할 수 없다면 장관직도 대통령도 하지 않겠다고 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주님 섬길 때 목적은 물론 수단방법도 선해야 합니다. 속임수나 불법적인 행동을 해선 안됩니다. 사람은 누구라도 율법을 다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율법아래 의롭게 되려는 사람은 죄인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선행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아야겠다는 생각은 아예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믿음으로 삽시다.  한 주 동안 믿음으로 얻은 의를 즐기며 평안을 누리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