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타나난 하나님의 의

로마서1:16,17

16. [개역개정]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UMGreek] Διοτι δεν αισχυνομαι το ευαγγελιον του Χριστου επειδη ειναι δυναμιs Θεου προs σωτηριαν ειs παντα τον πιστευοντα Ιουδαιον τε, πρωτον και Ελληνα.

17. [개역개정]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UMGreek] Διοτι δι αυτου αποκαλυπτεται η δικαιοσυνη του Θεου εκ πιστεωs ειs πιστιν, καθωs ειναι γεγραμμενον Ο δε δικαιοs θελει ζησει εκ πιστεωs.


오늘은 로마서 강해 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은 1장 16절, 17절 두 절이며 제목은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로 정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복음에 대한 바울의 태도, 복음의 능력,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믿음의 원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부터 이것들을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한 걸 보니, 복음을 부끄러워 한 사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쓸 당시는 3차 전도여행 중(AD53-57; 행18:23-21:26)) 고린도에 머물 때라고 합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밀라노칙령을 내려 기독교에 신앙의 자유를 허용한 AD313년 이전까지 기독교는 박해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당시 로마는 세계 중심도시며 로마시민들은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로마인들이 태양신을 숭배하는 신전과 의식은 예수 믿는 사람들의 모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장엄하고 화려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분위기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교회 다니는 것, 예수 믿는 것, 성경책을 들고 다니는 것이 사람들 보기에 자랑스럽습니까? 부끄럽습니까? 누군가 만나서 여러분을 소개할 때 주로 뭐라고 합니까? 이름을 말하죠, 그 다음엔 무슨 일을 하는지, 직장이 어딘지 이야기하죠. 또 뭘 말합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도 말합니까? 늘푸른교회에 다니는 것도 자랑스럽게 말합니까? 소개하는데 뭘 그런 걸 말해요. 이런 생각을 할지 모르지만, 자랑스럽게 생각하면 말하지 않겠습니까? 반면에 부끄럽게 여기면 말을 안 하죠.

가정 배경에 대해 전혀 말 안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함께 지낸 지 수년이 되었는데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랐는지, 부모는 뭘 하시는 분인지, 형제들은 몇이나 되며 또 서로 관계가 어떤지 몰라요. 왜 그렇습니까? 말을 안 해주니까 그러죠. 앞으로는 자랑스럽게 말하세요. 예수 믿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자기 부모를 부끄럽게 여기는 자녀와 같습니다. 부잣집에 들어가 살며 일해주고 돈을 버는 것을 머슴 살이라고 했습니다. 머슴 살며 아들을 대학 보낸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서울 부자 집 가정교사로 들어가 대학 다니는 아들을 찾아갔답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남루한 행색이 부끄러워 누구냐고 묻는 말에 자기 집 머슴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의 영광으로 올 때 그 사람을 부끄러워 하리라”(눅9:26)고 하셨습니다. 부끄러운 그리스도인 되지 맙시다.

둘째로 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부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이유는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한 것은 그의 체험에 근거한 것입니다. 유대인으로 율법에 얽매여 살던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복음을 깨닫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오늘 로마서는 물론 그의 서신서들은 모두 그의 체험에서 나온 고백이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에 대해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능력’을 나타내는 헬라어는 6가지나 되는데 여기선 δυναμιs가 사용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단어를 통해 복음이 어떻게 사람 속에서 역사하는 힘이 있는지 보여주려고 한 것 같습니다. 이 δυναμιs는 타고난 능력, 본질상 그 사물 속에 가지고 있는 고유한 힘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복음은 본질적으로 그 속에 사람을 구원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뭘 더 하지 않아도 복음을 전하는 그것만으로도 복음은 듣는 사람을 구원하는 힘을 발휘한다는 뜻이죠. 바울은 이것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지식이나 지혜로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어디서든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신 메사야임을 증거했습니다.

다이너마이트는 헬라어 δυναμιs를 음역한 것입니다. 다이너마이트는 폭발하는 힘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터질 때 바위를 깨뜨리는 힘이 발휘됩니다. 복음은 세상 철학과 학문의 견고한 진을 깨뜨리고 예수 믿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빈센트는 “복음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그 자체로 신적인 에너지”라고 말했습니다. 복음이 선포될 때 성령은 죄인들의 심령 속에 파고 들어가 회개하고 믿도록 역사하십니다. 복음의 능력은 유대인 뿐아니라 이방인에게도 동일하게 작용합니다. 오늘 우리들이 그 증인아닙니까? 복음의 능력을 믿기 바랍니다.

셋째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복음과 하나님의 의로 나눠 설명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의에 대해 먼저 말하겠습니다. 앞에서 복음이 죄인을 구원하는 능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복음에 그런 능력이 있는 것은 복음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의’ 때문입니다. 복음도 알아야 하지만, 이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를 잘 깨닫는 것이 로마서를 이해하는 핵심입니다. 먼저 성경에 나타난 의의 개념부터 봅시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에서 의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η δικαιοσυνη입니다. 이것은 명사이고 형용사는 δικαιοσ입니다. 크레머에 따르면 의에 근본 개념은 “명령에 일치하는 상태나 조건”을 의미한답니다. 의는 인간이나 어떤 외적 여건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명령에 일치하는 상태에 있을 때 그것을 의롭다고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것을 그의 의δικαιοσυνην로 여기셨습니다(창15:6). 여기서 아브라함은 조금 전과 비교해서 윤리나 도덕적으로 갑자기 수준이 높아진 것은 아닙니다.

또한 크레머는 성경에서 δικαιοs, 의롭다는 말은 주로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거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와 그 행동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어 있다고 합니다. 예컨데, 요한일서 1장 9절,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이 구절에서 하나님을 δικαιοs, 의로우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서 의는 세속적인 윤리 도덕의 차원이 아닌 철저하게 신앙적 개념입니다. 하나님이 의도하는 관계 속에 있거나, 하나님의 명령에 일치하는 상태에 있는 사람을 의롭다고 했습니다.

이제 δικαιοσυνη, δικαιοs의 뜻이 무엇이며 누구에게 어떤 상태에 있을 때 사용하는 말인지 이해가 됩니까? 그 이해를 가지고 17절의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 풀어보겠습니다. 의는 본질적으로 인간에게서는 찾을 수 없고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인간이 의롭게 되려면 하나님으로부터 의가 와야 합니다. 왜냐면 인간에겐 의라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인간에게 배풀어주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의가 인간에게 주어집니까?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 복음과 믿음입니다.

복음의 헬라어는 το ευαγγελιον입니다. 문자적 의미는 천사(αγγελοs)가 가져다 준 좋은 소식이라는 말입니다. 누가복음 2장 10절에 보면, 천사가 와서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고 했습니다. 그 소식이란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이 구세주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죄값을 위해 예수님이 대신 죽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믿을 때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고 하나님의 의를 죄인에게 배풀어주십니다.

교우 여러분, 저는 오늘 주로 복음에 대해 여러분께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이 세상에 보내셨고,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고 죽으신 후 부활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을 때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고 의롭다고 인정해주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사람은 누구든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 없습니다. 의는 본래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 죄인된 인간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의롭다함을 얻고 하나님 자녀의 신분이 회복되고 영생을 얻고 천국의 기업도 얻습니다. 오늘 이 시간이 바로 여러분이 이 모든 것을 확실하게 해 둘 수 있는 기회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기로 결단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구세주로 세상에 보내셨기 때문에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것은 곧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예수를 거부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세요. 그러면 의롭다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전에 예수 믿는다고 고백했지만 지금 확인이 없어 불안했는데 오늘 말씀을 듣고 믿고 싶은 마음이 생긴 분들은  이 시간 한 번 더 영접하는 결단을 하기 바랍니다.

지금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기 원하는 분들을 위해 제가 영접기도를 하겠습니다. 마음 속으로 따라하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이 저의 죄를 담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다시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그 믿음으로 제가 의롭다함을 얻게 될 줄 믿습니다. 믿고 싶은 마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천국 소망가지고 살게 인도해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