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한 대로 갚으신다

로마서2:1-16

책망을 들을 때 기분이 좋을 사람은 없습니다. 나중엔 유익하더라도 당장은 수치스럽고 억울하다는 생각에 화도 나고 그래서 저항하고 공격하는 게 일반적인 반응입니다. 화가 나고 분풀이하고 싶은 것도 죄의 욕망인데 그걸 잘 다스리기 바랍니다. 우리는 가인의 경우를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지만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은 매우 화가 나서 안색이 변했습니다. 이걸 보고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왜 화를 내고 안색이 변하느냐? 제가 좋은 마음을 품고 있다면 어찌 얼굴을 들지 못하겠느냐? 네가 좋은 마음을 품지 않으면 죄가 너를 지배하려 할 것이다. 죄가 너를 다스리고 싶어하는데, 너는 죄를 다스려야 한다”(창4:4-7).

가인이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마음을 고쳐먹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했다면 잘못을 용서받고 아담의 장자로서 복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동생을 들로 유인해 죽였습니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 하나님께 “모릅니다. 제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입니까?” 시치미를 뗐지만 통할 리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동생을 죽인 책임을 묻고 그 벌로 다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게 쫓아냈습니다. 잘못을 지적받고 책망을 들을 때 변명이나 저항하지 말고 회개하고 용서받는 기회로 삼기 바랍니다.

오늘은 로마서 2장을 본문으로 ‘누구나 행한대로 갚으신다”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장에서 양심과 자연 속에 들어있는 신성과 능력을 통해 이방인도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면할 수 없다고 증거했습니다. 이어 2장에서는 바울 사도께서 유대인을 대상으로 하나님의 의를 증거합니다. 2장 1절에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라고 했는데, 이것은 유대인을 가리켜 한 말입니다. 유대인은 율법으로 이방인들을 판단하며 죄인 취급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율법을 가지고 판단하는 위치에 있다고 해서 의로운 게 아니며 이방인을 잘못이라 판단한 율법대로 행하지 않으면 그 율법으로 자신을 정죄하는 것임을 지적했습니다.

그 다음 6절을 봅시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율법을 앞세워 이방인에게는 죄를 지었다고 판단하고 비난하면서 은밀하게 같은 죄를 짓는다면 남을 판단하고 정죄한 그대로 그 자신도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켰습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오늘날 그리스도인, 특히 목사나 목자가 귀담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설교나 상담을 통해 양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인도자가 같은 행동을 하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거야 말로 위선이고 바리새인입니다.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내릴 것입니다. 그러니 목자는 양을 책망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잘못을 고치고 나쁜 습관을 버리도록 힘써야 합니다. 오늘 이 부분은 누구보다 제가 마음에 새겨들어야 할 대목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우리가 죄가운데 있다고 해서 즉시 심판의 벌을 내리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가운데 있는 자녀들도 용납하시고 오래 참아주시며 잘못을 깨닫고 돌이키도록 긍휼과 사랑을 배풀어 주십니다. 만일 하나님이 잘못할 때마다 처벌하셨다면 우리는 아마 오래 전에 사형당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래 참고 계시는 것을 오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죄를 짓고도 별일 없으니 괜찮을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타일러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리며 계속 자기 멋대로 살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집 앞에 눈덩이를 쌓듯 그 날에 임할 진노를 쌓는 것입니다.

그 다음 13절을 봅시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함을 얻으리니”. 바울 사도는 여기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듣고 아는 것이 의롭게 해주는 게 아니고 율법을 지키며 하나님 계명대로 행하는 것이 의롭게 해준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매일 성경읽고 묵상하면서도 말씀대로 살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나쁜 습관대로 살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진짜 모습은 주일 예배시간보다 평일 가정이나 직장에서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가는 지 그 모습 속에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인은 율법으로 의롭다함을 얻으려는 유대인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고 시작하는 사람들입니다. 의롭게 되려고 율법을 지키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말씀에 순종하며 합니다.

21-24절의 책망은 유대인들의 위선을 지적한 것입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율법을 맡아 가르치고 선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율법에 도적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기 때문에 도적질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라고 선포하며 가르쳤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뒤에서는 도적질하고 간음했으니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을 욕되게 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것을 지적하며 책망했습니다. 율법을 맡아 선포하고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 율법을 범했기 때문에 더욱 잘못한 것이고 더 비난을 받지 않겠습니까?

같은 범죄라도 일반 국민들보다 판사나 검사는 더 비난을 받습니다. 죄가 된다는 것을 더 잘 아는 사람들이고 또 다른 사람의 죄를 판단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지식을 가진 유대인이 우상숭배하는 것은 이방인이 그러는 것보다 더 하나님의 진노를 살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목사나 목자가 은밀하게 죄를 짓는 것은 불신자가 그러는 것보다 더 진노를 쌓는 일이지 목사라고 목자라고 봐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같은 허물이라도 목사나 목자는 더욱 책망을 들어야 하고 또 혼을 나야 하는 것입니다. 불신자 중에 하나님을 더욱 욕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2장 전체를 통해 우리가 반성해야 할 몇 가지 살펴보고 마치겠습니다. 5절에서 바울은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하겠다는 고집, 이제 나도 어른인데 상관하지 말라고 타일러도 듣지 않는 이런 태도는 버리기 바랍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은 사울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거역하는 것은 사술을 행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악한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다”(삼상15:23)고 지적했습니다.

8절에서 바울은 무리 지어 다니며 육신의 욕망을 따라 진리를 거부하고 불의를 행하는 자들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분노가 임한다고 경고했습니다. 11절에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선악을 판단하실 때 안면이 있다고 봐준다거나 외적인 조건에 따라 다르게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이 생각한 것처럼 선택 받은 백성이라고 죄를 짓는데 봐주시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죄 짓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데도 봐주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도적질, 간음, 이런 것으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입니다. 탐심이나 정욕은 물론, 시기나 질투나 악의에 찬 마음이나 증오심이나 두 마음을 품고 양다리를 걸치는 것이나 배신이나 사기치는 것이나 훔치는 것, 등은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하는 죄악입니다. 우리는 남의 죄와 허물을 판단하고 비난하기 전에 나의 죄와 허물을 살펴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잠언3장 11절 이하에 “여호와의 징계를 가볍게 여기지 말며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책망하고 징계하는 것은 자식으로 대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책망하고 꾸중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책임져야 할 양이기 때문에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합니다. 책망받는 순간은 기쁘지 않겠지만 죄악을 멀리하고 바로 서면 하나님의 복이 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