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이기는 비결

로마서6:1-14

오늘은 죄의 권세를 이기고 성령의 인도아래 승리하는 비결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6장에서 ‘은혜 아래 사는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다’(2,15절)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 믿고 거듭난 사람이라면, 계속 습관적으로 죄를 범하며 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살펴보겠습니다.

은혜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이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는 첫 번째 이유는 죄의 세력을 파괴시켰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6,7절에서 우리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 죽었다고 말합니다. 죄를 범하고 죄의 지배를 받는 옛 사람이 살아 있으면 계속 죄의 권세가 작동합니다. 그런데 그 옛 사람이 이미 죽었기 때문에 죽은 사람에겐 죄의 권세도 작용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죄의 세력을 파괴시켰다는 뜻입니다. 암을 치료할 때 암세포를 방사선으로 파괴시킵니다. 암세포가 죽으면 암도 함께 소멸됩니다.

죽음은 죄의 세력을 파괴시킬 뿐 아니라 죄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살인죄를 짓고 도망다니던 사람도 죽으면 죄의 형벌에서 벗어납니다. 죄를 진 사람이 죽었으니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이와 같은 원리로 믿음을 통해 예수님과 함께 죽은 사람도 과거의 모든 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주시는 이유는 더 이상 죄의 종노릇하지 말라고 그러신 것입니다.

3절부터 5절에 침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서 침례를 언급하는 이유 예수 믿는 사람이죄에 대해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받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침례의식은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죽었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는 것을 믿기 바랍니다.

은혜 아래 사는 그리스도인이 죄를 지을 수 없는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성품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이식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고 의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이식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아무리 자신에게 유익이 된다고 해도 거짓말로 속이면서 계속 죄를 범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바울은 16절부터 23절에서 성령으로 거듭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는 사람은 본질상 고의적으로 죄를 지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도 연약하여 실수로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곧 뉘우치고 회개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누가 봐도 잘못한 것인데도 말재주를 부려 잘못한 게 없다고 우기며 거짓말로 속이고 계속 나쁜 습관 속에 살면서 죄를 짓는다면 그런 사람은 거듭나지 못한 불신자일 것입니다. 교회 다니며 그런다면 생명 없는 종교생활을 하기 때문이겠죠. 신앙생활과 종교생활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이나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만든 신앙생활지침을 무시하고 자기하고 싶은 데로 하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생각해서도 교회를 생각해서도 자기 양심으로도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죄에 대해 좀더 살펴보겠습니다. 바울 사도가 1,2절에서 말하는 죄는 아직도 그리스도인 속에 남아 있는 ‘악한 성품’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신자는 죄악된 성품에 굴복해 죄를 범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신자라면 누구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 사람인데, 죽음으로 죄의 세력이 파괴되고 다시 살아날 때 주님의 성품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분리를 의미합니다.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되는 것이 죽음입니다. 죄에 대해 죽었다는 말은 죄악된 성품으로부터 분리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믿고 거듭날 때 그 사람을 악한 성품으로부터 분리시켜주십니다. 분리시켰다는 말은 더 이상 죄의 지배력을 받지 않게 만드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악한 성품을 모두 제거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도 내적 자아 속에는 악한 성품이 남아 있습니다(참고, 요일1:8- 우리가 죄 없다고 하면 거짓말 하는 것)

여기서 중간요약을 하면 그리스도인이 죄를 이길 수 있는 비결은 다음과 같은 3중 장치가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첫째 장치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한번 죽음으로써 나에게 왕노릇하던 죄의 지배력이 깨진 것입니다. 둘째 장치는 죄를 미워하고 의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난 것입니다. 셋째 장치는 성령께서 언제나 함께 계시며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악한 성품이 내적 자아에 남아 있더라도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삼중장치가 있어서 습관적으로 죄악된 행동 속에 살 수 없게 만듭니다.

6절을 보면, 옛 사람, 죄의 몸, 종노릇 이런 말이 나옵니다. 죄인된 인간은 누구나 구원받기 전에는 죄에게 종노릇하는 ‘노예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겉으로 아무리 인격적으로 성인처럼 보이는 사람이라도 마음 속엔 죄의 지배력이 작용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악한 행동을 보일 수 있습니다. 교묘하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있고, 매우 이기적인 사람도 있고, 성적으로 방탕한 사람도 있고, 돈에 너무 욕심 있는 사람이 있고, 술에 빠져사는 사람도 있고, 위선자도 있고, 혈기를 부리는 사람도 있고, 시기와 질투가 심한 사람도 있고, 허영심이 강한 사람도 있고.. 아무튼 셀 수도 없는데, 이 모든 것은 옛 사람이 죄의 지배력에 휘둘려 종 노릇할 때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옛 사람’은 단지 시간적으로 옛 것이란 뜻이 아닙니다. 옛의 뜻을 가진 헬라어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알카이오스’와 ‘팔라이오스’인데, 알카이오스는 시간적으로 옛날 것이라는 뜻이고 팔라이오스는 용도가 쓸모 없게 된 옛 것이라는 뜻인데, ‘옛 사람’에선 팔라이오스가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옛 사람’의 뜻은 범죄하고 부패하여 하나님께 쓸모 없게 된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죄의 몸’은 죄의 지배력을 받으며 악한 성품 때문에 계속 죄를 범하며 멸망할 상태에 처한 거듭나기 전의 육신으로 자기 의지가 없는 종처럼 죄의 욕망에 따라 행동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을 때 이 옛 사람, 죄의 몸을 멸하여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게 만들어 주십니다. 죄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죽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차원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옛 사람, 죄의 몸은 이미 멸해졌습니다. 6절의 ‘멸하여’의 헬라어는 καταργηθη인데,  ‘카타르게오’는 무기력하게 하다. 쓸모없게 되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동력전달 체인이 바퀴와 붙어 있는 체인에서 벗어져 분리되어 힘이 전달되지 않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효력은 우리 죄의 대가를 지불하신 것 외에도 믿는 사람의 삶 속에 내주하는 죄의 세력을 무력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녀들이 죄를 이기도록 이렇게 만드신 영적 승리의 시스템이 잘 작동하려면 먼저 우리는 ‘자신을 죄에 대하여 죽은 자로 여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죄의 세력이 무력해지고 파괴됩니다. 그 다음 하나님에 대하여 산자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몸에 이식된 신적 성품, 즉 죄를 미워하고 의를 사랑하는 성품이 작동합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 몸을 불의의 병기로 드리는 대신 의의 병기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몸 자체는 중립적입니다. 죄악된 욕망은 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악한 성품에서 나옵니다. 몸이 죄의 욕망을 따르면 죄를 짓는 불의의 병기가 되고 성령의 인도를 따르면 의의 병기가 됩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죄의 작용원리와 죄를 이기는 비밀을 깨달았습니까? 거듭나기 전에 사람들은 모두 학벌과 인품과 상관없이 죄에게 종노릇하며 일생을 보냅니다. 죄에서 벗어나려면 죄의 지배를 받는 옛 사람의 몸이 죽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음으로 나도 주님과 함께 죽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의 몸을 무력하게 만들어 죄의 지배에서 분리시키고 예수님의 성품을 닮도록 만들어주십니다. 이것을 우리가 경험하는 차원에서 보면 마음이 새롭게 변화되어 죄를 싫어하고 의를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변화된 심령으로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며 살면 결코 고의적으로 계속해서 죄를 지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죄를 이기는 비결입니다. 여러분 모두 이 영적 진리를 깨닫고 승리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