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과 칭찬을 받는 길

잠언3:1-10

오늘은 잠언 3장 1-10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받는 방법을 말씀하겠습니다. 우리가 학교나 직업훈련원 등에서 배우는 목적은 그 지식과 기술을 활용해 유익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우등생이 사회에서 열등생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배운 것을 자기 삶에 적용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하면 그렇게 되기 쉽습니다. 신앙생활도 성경과 설교를 통해 듣고 배우는 것을 매일 삶에 적용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말씀 듣는 순간 위로 받는 차원에서 끝내고 교회당 밖으로 나가서는 자기 생각대로 살면 신앙생활에 실패합니다. 오늘 듣는 말씀을 마음에 두고 매일 순종하여 여러분 인생이 잘 되고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훈계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버지의 가르침과 명령을 마음에 소중히 간직하라고 당부합니다(1절). 그러면 오래 살고, 성공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2절). 오래 살고 성공해야죠. 생각해보세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녀들이 사고나 병들어 일찍 죽고 하는 일이 잘 안되기를 바라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인 여러분 모두 오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순종하여 계획하는 일이 다 성공하고 건강하게 오래 온 가족이 행복하게 살기 바랍니다.

약은 먹어야 효과를 봅니다. 약봉지 품에 앉고 있다고 약효가 있습니까? 돈은 써야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은행에 넣어두기만 하면 좋을 게 뭡니까? 나중에 그걸 물려받는 사람은 좋겠지만 자기에겐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지식을 활용해서 살아야 많이 공부한 덕을 봅니다. 기술을 활용해서 뭔가 만들어야 사람을 유익하게 하고 돈도 벌죠. 성경을 많이 알면서 그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말씀이 주는 유익은 없고 교만해질 뿐입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순간부터 실천하기 바랍니다.

본문 중에 여러 좋은 말씀이 있지만 오늘은 그 중에 세가지를 순서대로 말씀하겠습니다. 우리가 유념할 첫번째 교훈은 성실입니다. 3절에 “너는 성실과 사랑을 절대 버리지 말고”,  NIV엔 Let love and faithfulness never leave you로 되어 있습니다. 직역하면 ‘사랑과 성실이 결코 너를 떠나게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성실이 Faithfulness로 번역되어 있는데 그 속엔 ‘믿을 만함’이란 뜻도 있습니다. 성실하다는 것은 곧 믿을만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을 성실하다고 말하는 것은 믿을만하다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믿을 만한 사람이 되려면 또한 정직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집단이나 조직에서든 믿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 기용됩니다. 최근 대통령 당선자가 인수위원을 선정해서 발표했습니다. 첨엔 능력을 먼저 보겠죠. 그런 사람이 몇으로 압축되면 최종적으로 낙점할 때는 신뢰성으로 판단할 것같습니다. 능력이 있더라도 믿을 수 없는 사람에게 일을 맡길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곁에 두고 일을 맡기려면 믿을 수 있어야죠. 직장에서도,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스에게 믿을만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기 바랍니다. 성실해서 믿을 만한 사람이 되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앞 날이 잘 풀릴 것입니다.

믿을만한 사람인지 평가는 평소 언행으로 이뤄집니다. 평소에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자기에게 불리하거나 부끄럽더라도 꾸며대거나 둘러대지 않고 사실대로 정직하게 말해야 믿음이 갑니다. 이렇게 정직하게 직설법으로 말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노력해야 합니다. 사람은 거의 모두가 본능적으로 자기에게 유리하게 꾸며대는 성향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고 어떤 때는 거의 본능적으로 꾸며댄다는 생각도 없이 그렇게 거짓을 말합니다. 상대를 배려해서 그런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어떤 동기에서든 사실을 말하지 않고 거짓을 말하는 것은 신뢰성을 해칩니다. 몇 번만 그렇게 하면 자신을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게 됩니다. 둘러대거나 꾸며대는 성향이 있는 사람은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사실을 말하도록 주의하기 바랍니다. 사실대로 말하기 곤란한 상황, 예를 들어 내가 피해를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될 수 있다면, 그럴 때는 노코멘트가 최선입니다. 최근에 교회에서도 서너 사람으로부터 어떤 상황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설명을 들었는데 모두 다 달랐습니다. 모두 당사자에게 유리하게 말했습니다. 지금도 진실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들 모두를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내가 믿을 수 없는 사람에게 교회 일을 맡겨 둘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은 친구들 사이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성실성에 대해 어떤 평가를 받고 있습니까? 성실성은 능력이나 열성과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을 만한 사람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성공한 인생을 살려면 믿음을 줘야 합니다. 미모나 재능이 처음엔 관심을 끌게 되지만 믿음을 주지 못하면 오래 가지 못하고 밀려납니다. 잠시 이용하고 버리려고 한다면 모르지만 끝까지 함께 하고 싶을 때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할 것입니다. 믿을 수 있는 성실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세요. 그래야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4절).

우리가 주의할 두번째 교훈은 겸손입니다. 본문 가운데 5절에는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7절에는 ‘스스로 지혜로운 체하지 말라’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잠언은 1장 1절에 솔로몬이 쓴 것으로 나옵니다. 열왕기상4장 32절 보면, 솔로몬이 잠언 3천을 말했다고 합니다. 솔로몬이 잠언을 쓴 목적 가운데는 잠언 1장 4절에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대부분 젊은이들이 대학을 나오는 요즘엔 청년 여러분이 부모세대보다 더 지식이 많습니다. 특히 IT분야에 대한 지식과 기술은 우리 세대는 초등학생 수준이고 여러분은 대학생 수준이죠. 하지만 인생이 지식에 비례해 잘 살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솔로몬의 IQ가 얼마나 높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그 당시 가장 지혜로운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열왕기상4장 29절 이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솔로몬의 지혜가 동양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모든 민족 중에서 소로몬의 지혜의 소문을 들은 천하 모든 왕 중에서 그 지혜를 들으러 왔더라”  솔로몬이 어떻게 지혜로웠는지는 갓난 아기를 놓고 두 여인이 서로 자기 아들이라고 우기는 사건의 판결에 잘 드러나있습니다(왕상3:16-28).

요즘엔 친자 확인이 일도 아닙니다. 유전자 검사해보면 되죠. 솔로몬 당시엔 목격자 증언을 듣거나 아이와 엄마를 비교해보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습니다. 목격자도 없고 아직 누굴 닮았는지 알 수도 없는 갓난 아기라 두 여인 중 누가 친어미인지 어찌 가려내겠습니까? 같은 유대인이라 피부색도 머리카락 색깔도 같았을 겁니다. 그 때 솔로몬 왕은 두 여인에게 아이를 반으로 잘라 공평하게 나눠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진짜 엄마는 산 아들을 저 여인에게 주고 죽이지 말라고 간청하고 다른 여인은 좋다고 받아들였습니다. 그 반응을 보고 솔로몬은 아이를 잃더라도 살려야 한다는 여인이 아이의 어머니라고 판결했습니다. 친 어머니는 자식의 생명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모정이란 게 있잖습니까? 모정이라는 지식을 실제 상황에 적절하게 응용하는 능력이 지혜죠.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과신하면 위험합니다. 가장 지혜롭다고 평가받은 솔로몬 조차도 자기 지혜를 과신하다 국정도 인생도 망쳤습니다. 솔로몬이 잠언 3장의 내용을 말할 때는 분명 하나님을 경외하며 삼가하던 전반기였을 것입니다. 다윗왕이 전쟁터에 나간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여 나은 아들이 솔로몬이었습니다. 다윗왕이 밧세바를 사랑해서 네 아들로 왕위를 계승케 하겠다고 했지만 적자도 아니고 모계 기반도 약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왕이 된 후 솔로몬은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했고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일천 번제를 드리고 성전을 건축하고 여호와의 말씀을 받들어 나라를 통치했습니다. 그 결과 솔로몬 통치 중반에 이르러 이스라엘은 최고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통치 후반기에 들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통치기반을 구축하고 왕권을 맘대로 행사할 수 있게 되자 이전 처럼 겸손히 여호와만 의지하지 않고 주변 나라 애굽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의 공주를 데려다 혼인동맹으로 정치적 안정을 도모했습니다(왕상11장). 정략결혼은 제후국이 주변 소국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흔히 쓰는 전략이었지만 솔로몬에게는 이방신을 끌어들이는 치명적인 실수 였습니다.

솔로몬은 정략결혼을 통해 전쟁을 하지 않고도 그들을 지배할 수 있다면  좋은 길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문제는 솔로몬에게 시집온 이방 나라의 공주나 귀족 여인들이 자기 나라에서 섬기는 신을 이스라엘로 들여와 궁중에서부터 우상을 숭배하게 된 겁니다. 솔로몬왕은 그걸 금하지 않고 우상의 전각을 지어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매우 실망하셨습니다. 아버지 다윗이 아니었다면 제 명에 죽지도 못했을 겁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생각해 솔로몬 생전엔 놔두시다가 그가 죽고 나서 반역이 일어나 남북으로 분열되게 했습니다.

솔로몬은 지혜롭고 명철한 사람이었지만 그 지혜와 명철이 그의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지혜와 명철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겸손히 행할 때 위력이 있습니다. 솔로몬의 전반기 인생이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버리고 자기 지혜와 명철을 의지하여 살면 자기 꾀에 넘어가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솔로몬의 후반기 인생이 그걸 잘 보여줍니다. 자기가 한 말을 자기가 잊고 실패하고 말았으니 인간의 지혜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겁니까? 시력 나쁜 사람이 안경을 의지하듯 두려운 마음으로 주의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솔로몬처럼 왕의 자리에서 나라를 운영하는 사람이든, 교회에서 목장을 운영하는 사람이든 지가 지혜를 과신하지 말고 여호와를 의지하고 범사 모든 일에 성령께서 인도하시기를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서있는 사람이 두려운 마음을 갖는 것처럼 삼가하고 조심합시다.

우리가 순종해야 할 세번째 교훈은 섬김입니다. 9절과 10절에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재물로 여호와를 섬기면 물질의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이 재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재물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재물이 우상이 되고 재물의 노예가 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선지 성경엔 재물을 하나님을 섬기라는 말씀으로 차고 넘칩니다. 교회에서 헌금에 대해 설교를 많이 해야 합니다. 제 친구 목사님도 괜히 오해받기 싫다고 헌금 설교는 일년에 한번이나 하든지 안 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교인들을 복받게 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해야 합니다.

솔로몬 당시에 이스라엘은 목축과 농경사회였습니다. 그들에게 재물은 많은 양떼와 풍성한 포도의 수확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창고가 가득차고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친다는 것은 한 해 수입을 많이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물로 여호와를 섬기라 그러면 물질의 복을 받게 될 것이라 것을 수 없이 강조하셨습니다. 절기를 지키려고 여호와께 나올 때 빈 손을 보이지 말고 형편에 따라서 정성껏 예물을 준비해 드리라고 했습니다(출23:14-17). 말라기엔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것을 훔쳐가는 것이기에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말3:8,9).

그리스도인은 율법의 의무로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인 되심에 대한 신앙고백과 주님을 섬기는 차원에서 십일조를 드립니다. 저는 목사로서 교인들에게 모든 면에서 본이 되어야 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십일조와 헌금에서도 본이 되기 위해 힘껏 합니다. 거기엔 여러분이 나를 보고 따라 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습니다. 교회가 운영되기 위해서는 재정이 필요합니다. 저는 십일조가 교회에서 필요한 재정을 공급하는 하나님의 방식이라는데 별 이의가 없습니다. 제가 한 달 헌금하는 액수는 십분의 일이 아니라 십분의 2가 조금 넘습니다.

바울 사도는 선교와 성도들을 섬기기 위해 정성껏 헌금하도록 말했습니다(고후9:7-8). 마음에 정한대로,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규칙적으로(고전16:2) 드리라고 했습니다. 또 미리 준비했다가 드리라고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구약시대나, 초대교회에서나 지금이나 재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정확하게 십일조를 드리든 믿음으로 마음에 정한 금액을 드려도 될 것입니다. 제 생각엔 십일조의 원리와 정신을 생각할 때 지금도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교회에 헌금하는 것 외에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것도 재물로 주님을 섬기는 길입니다.

솔로몬은 2절에서 자신이 당부하는 명령을 지킬 때,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고 평강을 더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명령은 다름 아닌, 믿을 만한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 자신의 지혜를 과신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재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 이 세 가지입니다. 부모에게 믿음가는 자녀가 되고 목사님께 믿음 가는 교인이 되고 윗 사람에게 믿음 가는 일꾼이 되세요. 여러분 자신을 너무 과신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세요. 수입이 생기면 제일 먼저 하나님을 섬기세요. 이렇게 살면 하나님께도 사람에게도 인정받고 여러분 인생이 잘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