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믿음

로마서4장

오늘은 로마서 4장을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을 한 번 더 살펴보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4장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은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믿음은 공로가 될 수 있는가 이 점에 대해서도 살펴보겠습니다. 믿음이 공로가 될 수 있는지 알려면 믿음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4장 모든 구절을 자세히 살펴볼 시간이 없기 때문에 앞서 말한 세가지 요지와 관련된 구절들을 중심으로 보겠습니다. 먼저 1절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에서 ‘육신으로’ 이 구절이 문장 속에서 어디에 연결되며 그 뜻은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개역성경의 ‘육신으로’는 헬라어성경 κατα σαρκα를 번역한 것입니다. 쉬운 성경은 NIV를 따라 ‘이 문제에 대해’(in this matter)로 의역되어 ‘육신으로’라는 말이 없어졌습니다. 이러면 본래의 뜻을 찾아보기 어려워 좋은 번역은 아닌 것 같습니다.

Danny는 ‘육신으로’를 뒤에 나오는 ‘우리 조상’과 연결시켜 아브라함아 유대인에게 육신의 조상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Vincent는 ‘육신으로’를 ‘얻었다’와 관련시켜 아브라함이 육신에 속한 그 무엇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할 게 있느냐는 뜻으로 해석했습니다. 문법적 해석에선 둘 다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전후 문맥 속에서 어느 쪽 해석이 더 합당한지 판단해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육신으로’를 ‘얻었다’와 연결시키면, ‘인간의 노력으로 아브라함이 무엇을 획득한 것에 대해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이런 뜻이 됩니다. 이것은 바울 사도께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는 것은 은혜와 믿음으로 된다고 줄 곳 이야기해왔기 때문에 부적절한 해석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육신으로’ 이 말은 개역성경처럼 우리 조상과 연결시키는 게 합당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아브라함이 혈통적으로 유대인의 조상이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 다음 3절,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이 구절의 의미를 살펴봅시다. 이 문장에서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뭔지 아는 게 중요합니다. 이것은 바로 앞 구절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은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뭘 믿었다는 것인지, 혹은 어느 수준으로 믿었다는 것인지 자세한 언급이 없는데, 그 내용은 18절부터 21절에 나옵니다.

18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는 하나님 말씀”을 믿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창세기 15장 4,5절에 나옵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은 환상 중에 하나님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고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러 나가 하늘의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시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 같으리라’는 말은 하늘의 뭇 별처럼 많게 되리라는 뜻입니다 이 때 아브라함과 사라는 출산 능력에 있어서는 이미 죽은 몸과 같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몸이 자식을 낳기에 생물학적으로는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식을 낳게 해주겠다고 하십니다. 자신의 몸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고, 하나님의 약속임을 생각하면 믿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과 불신앙 사이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자신의 불가능한 상황을 해결해주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신앙과 불신앙 사이에서 망설이지 않고 믿음으로 응답했습니다. 하나님은 이걸 보고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20절에서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말의 헬라어 ενεδυναμωθη는 수동태로 ‘강하게 하다’, ‘힘을 가하다’ 의 뜻입니다. 수동태이니 스스로 노력해 강해진 게 아니고 강해지도록 외부에서 힘이 주어졌다고 봐야 합니다. 그 외부의 힘은 믿음이었습니다. 만일 내가 믿는 것이라면 믿음을 외부의 힘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을 내가 고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믿음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믿음이 공로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봅시다.

앞서 3절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을 공로로 여겨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했을 가능성은 없겠습니까? 이전에 사도 바울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죄 아래 있으며 그들 자신의 행위로써 의를 획득하는 것은 불가능하고도 말했습니다. 믿음이 백지 상태에서 인간의 자유 의지로 결단하는 것이라면 행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인간이 자유의지로 결단한 것이기 보다는 은혜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공로가 될 수 없고 자랑거리도 될 수 없습니다. 우리 믿음은 물에 빠진 사람이 구조받기 위해 구명대원에게 손을 내미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에 대해 믿음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 유대인들은 육신으로 자기 조상된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았다는 것을 내세웠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 사도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인정하실 때 아브라함은 할례 받기 전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의롭다함을 받은 것은 할례나 율법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할례는 할례 받기 전에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것을 확인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육신으로 유대인의 조상일 뿐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도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갈 때 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율법이나 행함을 생각하면 곧 죄책감에 빠지기 쉽습니다. 예수 믿고 거듭난 이후에도 행함으로는 완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 안에 있는 우리들을 행위가 아니라 믿음을 보고 의롭다고 하신다는 것을 매일 기억하기 바랍니다. 회개도 예수 믿기 전과는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의 회개는 죄인으로서 죄를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의로운 하나님의 자녀로서 잘못을 시인하고 개선하는 과정입니다. 물론 이것을 악용해선 안될 것입니다. 고의적으로 잘못하며 자신을 합리화한다면 그런 사람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6장에서 자세히 다루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요약하고 마치겠습니다. 오늘 중심 주제는 율법이나 행위가 아니라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얻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여주기 위해 바울 사도는 아브라함을 예로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의롭다함을 얻은 것은 할례를 받기 전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이것이 의롭다함을 얻게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는 근거가 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좀 잘 못한 것이 있어도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해주십니다. 물론 잘못은 고쳐야죠.

하나님 눈에 들려고 애쓸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의 대속만 믿으면 하나님 눈에 듭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의롭게 보이려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보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을 더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것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그걸 깨닫는 게 은혜입니다. 은혜 받았다는 말은 이 복음의 원리를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는 예수님을 믿는 것보다 더 값진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것의 가치는 곧 하나님의 생명만큼의 가치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는 우리의 믿음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믿음은 우리에게도 귀하지만 하나님께도 귀한 것입니다. 그 믿음이 예수님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설교말씀을 잘 이해했으면 한 주 동안 주 안에서 평안을 누리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