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을 누리자

로마서 5:1-11

오늘은 로마서 5장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5장 1절부터 11절에서 로마교인들에게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으니 화평을 누리며 즐거워하라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 12절부터 21절에서는 아담을 통해 죄가 세상에 들어와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준 것처럼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믿는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되는 대표성의 원리를 설명했습니다. 오늘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결과인 하나님과 화목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상황에서 더 나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고’, ‘은혜에 들어가고’,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소망가운데 즐거워하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은 그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고 하나님도 기뻐하시는 자녀가 되었으니 계속 은혜 속에 살면서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즐겁게 살아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 심령 상태는 어떻습니까? 평안하시죠?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사람이 기쁘고 즐겁게 살아야 할 이유는 지금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미래의 축복을 보장받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일이 잘되고 재물을 많이 모아서 기뻐하고 즐겁게 사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다고 생명의 위협을 받고 도망다녀야 했던 초대교회 교인들이 어떻게 기뻐하며 즐겁게 살 수 있었겠습니까? 어려운 상황인데도 기뻐하며 즐겁게 살 때 진짜 믿는 사람입니다. 알았죠?

1절에”화평을 누리자” 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 구절 헬라어는 εχομεν ειρηνην입니다. εχομεν은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KJV, NIV에도 we have peace with God 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글 성경에는 ‘누리자’로 번역되었습니다. εχομεν 대신 εχωμεν 을 사용한 고대 사본들도 있습니다. εχωμεν은 Let us have의 뜻입니다. 문맥을 보면 어느 단어를 사용하든 내용상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εχομεν을 사용하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으니, 하나님과 화평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뜻이 되고, εχωμεν을 사용하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으니 하나님과 화평을 누립시다로 해석됩니다. 바울이 처음 어느 단어를 사용했는지 분명치 않지만 문맥상 εχωμεν이 더 적합할 것으로 생각해 ‘누리자’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Denny, Robertson, Irwin Nestle 등)

‘하나님과의 화평’은 기본적으로 느낌의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의 변화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는 것은 법적 효력 같은 것입니다. 내가 어떤 느낌이 있어야 효과가 있고 느낌이 없으면 효과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지만 즉시 특별한 느낌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어떻게 보시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온 사람을 의롭다고 봐줍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사이에는 평화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죄의 형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기뻐하고 즐겁게 살기 바랍니다. 누리고 살아야 복입니다.

하나님의 화평한 관계 속에 기쁘고 즐겁게 살려면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여러분도 성경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믿을 때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음은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안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믿는 나에게 의롭다고 선언해주셨는데 맘은 편치 않습니다. 그러면 평안을 가지고도 평안하게 살지 못하는 것이죠. 가지고 누리지 못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 마음에 평강을 주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마음의 평안을 위해 성령께 간구하기 바랍니다. 다니엘 콜만에 따르면 우리 생각과 행동은 70%이상 감정의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Emotional Intelligence). 그러니 성령의 감동아래 지성과 감정의 균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 다음 바울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고 의롭다함을 얻어 하나님 나라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환란 중에도 즐겁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고난은 즐겁지 않습니다. 어떤 것 때문에 너무 기뻐서 고난이 닥쳤는데도 불평하고 낙심하지 않고 계속 기쁘게 살았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주식 폭락으로 1억쯤 손해를 보게 됐는데도 복권 10억에 당첨된 사람은 1억을 손해보고도 기뻐하겠죠. 망나니로 살던 아들이 병들어 죽기 직전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아들을 잃은 것은 고통이지만 아들이 예수 믿고 구원얻은 걸 생각하면 어머니는 매우 기뻤습니다.

환란으로 번역한 θλιψιs는 “누르는 것, 압박, 고통, 궁핍”의 뜻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θλιψιs가 찾아옵니다. 가난, 곤경에 처한 상황, 학업이나 취업의 부담, 부도, 질병, 사고, 실직, 이별, 이혼, 신앙의 박해 이런 것이 우리를 억누르고 고통을 줍니다. 지금 이런 상황 속에 있는 분들의 심정이 어떻습니까? 그래도 하늘의 소망으로 기쁘고 즐겁게 삽니까?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 환란이 인내심을 키워주고 마음을 단련시켜 하늘의 소망으로 이끌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Paul G. Stoltz는 Adversity Quotient: Turning Obstacles into Opportunities 에서 사람을 세 종류로 구분했습니다. 첫째는 Quitter, 고난을 만났을 때 쉽게 포기하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Camper, 현실에 안주하는 형입니다. 60, 70%가 여기에 속한다고 합니다.  셋째로 Climber, 등산가형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포기 하지 않고 계속 전진하는 사람들입니다. 스톨츠는 클라이머의 능력을 ‘역경지수’라고 불렀습니다. 젊을 때는 요셉처럼 역경이 마음을 단련하고 믿음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며칠전 신문 자료를 보니, 2030세대와 5060세대간에 생각 차이가 큰데 그 중에 하나가 고생에 대한 것이라고 합니다. 5060세대들은 자녀들이 너무 쉽게 살려고 한다고 걱정합니다. 조금만 어려워도 이겨내려고 하질 않고 불평한다는 거죠. 반면에 2030세대들은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섭섭하고 또 자기들이 얼마나 힘든지 몰라준다는 생각이 든답니다. 세대 마다 환경이 다르긴 해도 나름 역경을 만나겠죠. 이럴 때 견뎌내는 힘을 키워야 합니다. 견뎌내면 더 좋은 상황을 맞게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인격도 성숙해지고 믿음심도 깊어질 것입니다.

바울은 5절부터 9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음으로 내 몰면서까지 죄인들을 구원얻게 해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만큼 크셨기 때문임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 때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5절, 8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반복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소망을 가져도 좋은 근거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에 있습니다. 바울의 논리는 우리들이 사랑스럽지 못하고, 사랑할 만하지도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께 반역적이고 하나님을 증오하는 죄인이었을 때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을 죽게 내어 주셨거든, 하물며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하심을 얻어 사랑스런 자녀의 신분을 가진 사람들을 장차 그 진노(마지막 심판의 불못)에서 구해주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바울에 동의하십니까?

그 다음 10절의 “화목되었은즉” 이 부분을 봅시다.  ‘화목되었다’는 헬라어는 καταλλασσω는 ‘바꾸다, 교환하다’는 뜻입니다. 화목은 하나님과 적대적 관계가 평화의 관계로 바꾸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다음 4단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화해는 예수님의 중보(대속)에 의해 이뤄집니다. 둘째로 인간 편에서는 하나님께 대한 적대적 의지를 버리고 죄를 고백하고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셋째로 둘째 과정의 결과로 우리 심령에 변화가 일어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직한 양심이 생깁니다. 끝으로 하나님 편에서는 사랑과 은혜로 용납해주십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해집니다.

끝으로 10절의 “구원을 얻을 것이니”에 대해서도 살펴보겠습니다.  σωθησoμεθα는 σωζω 구원하다의 1인칭 복수 미래 직설 수동태입니다. 여기서는 앞으로 받게 될 구원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을 때 의롭다함을 얻었고 또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래서 구원을 3단계로 나눠 칭의의 구원, 성화의 구원, 영화의 구원으로 설명합니다. 칭의의 구원은 하나님의 율법 앞에서 의로운 신분을 수여받아 죄의 형벌을 제거시켜주는 것으로 예수 믿을 때 주어집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미 이 칭의의 구원이 이뤄졌습니다. 그 다음 성화의 구원은 칭의의 구원을 얻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의 삶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죽을 때까지 성령을 통해 계속 이뤄집니다. 끝으로 영화의 구원은 주님 재림하실 때 우리 몸이 영광스럽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성화와 영화의 구원을 가리킵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는 로마서 5장을 통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 속에 평안을 누리며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바라보며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처한 지금 환경이 심령을 억누르고 고통을 주더라도 하나님 나라에서 받게 될 축복을 생각하며 기쁘게 살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세상으로부터 희롱을 당하고 채찍질을 받고 결박되어 옥에 갇히고 돌에 맞고 칼에 죽음을 당하고 입고 먹을 것이 없어 떠돌며 궁핍하고 학대를 받았어도 끝까지 믿음으로 산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 나라 소망을 가진 사람은 자기 시대에 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세상에 부유하고 잘 나가는 것 부러워하며 불평이 나오지 않게 기도에 힘쓰기 바랍니다.

이 번 한 주 동안 셀모임에선  주 안에서 기쁘고 즐겁게 사는 데 방해되는 것을 서로 말하면서 교제하기 바랍니다. 그 방해거리들이 과연 타당하고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인지, 아니면 믿음으로 나가지 않기 때문인지 돌아보며 여러분 마음 속에 기쁨을 빼앗기지 말기 바랍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자의 기쁨은 당사자 밖에 모릅니다. 세상이 몰라준다고 그 기쁨이 어디 가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얻게 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한 주 동안 성령의 위로와 기쁨으로 충만하길 바랍니다.